<Globus - Europa>
From Agincourt to Waterloo
아쟁쿠르 전투부터 워털루 전투까지
아쟁쿠르 전투는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의 전투 중 하나로 1415년 8월 25일 금요일(성 크리스핀Saint Crispin의 날) 날 북부 프랑스의 아쟁쿠르에서 벌어졌다.
워털루 전투는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웰링턴, 블뤼허가 이끄는 영국, 네덜란드 및 프로이센 등이 포함된 연합군이 싸워 연합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이며 여기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2번째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Poitiers and then Anjou
푸아테이, 그리고 앙주까지
푸아티에 전투는 1356년 9월 19일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백년 전쟁 중 벌어진 전투이다. 백년전쟁의 1,2기를 거쳐 3차례 영국에게 결정적 승리를 안겨준 전투 중 두번째 것이다.
The Roses War, The Hundred Years
장미전쟁, 백년전쟁
장미 전쟁은 붉은 장미를 표시로 삼은 랭커스터 왕가와 흰 장미를 표시로 삼은 요크 왕가 사이의 왕위 쟁탈전이었다. 1455년부터 1485년까지 벌어졌다.
백년 전쟁은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서, 프랑스를 전장으로 하여 여러 차례 휴전과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계속되었다. 명분은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였고, 실제 원인은 영토 문제였다.
Through Battlefield of Blood and Tears
피와 눈물로 얼룩진 전쟁터
From Bosworth field to Pointe Du Hoc
보즈워스 평원 에서 프앙테 뒤 오크까지
보즈워스 전투는 15세기 잉글랜드의 장미 전쟁동안 벌어진 중요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1485년 8월 22일 요크 왕가의 국왕 리처드 3세와 그와 대항해 왕위를 다툰 랭커스터 가문의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훗날 잉글랜드 왕 헨리 7세)사이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는 리처드 3세의 전사로 인한 패배와 헨리에 의해 튜더 왕가 수립이라는 결과로 막을 내렸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반도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1944년 6월 6일 벌인 상륙 작전으로, 작전명은 오버로드 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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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내전은 잉글랜드 왕국의 왕당파와 의회파 간에 있었던 내전이다. 1642년에서 1646년까지 있었던 첫 번째 내전과 1648년에서 1651년까지 있었던 두 번째 내전은 찰스 1세의 지지자들과 의회파 간의 내전이었고, 1649년에서 1651년까지 있었던 세 번째 내전은 찰스 2세의 왕당파와 의회파 간의 내전이었다. 1651년 9월 3일에 우스터 전투로 내전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났다.
갈리폴리 전역 또는 다르다넬스 전역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 다르다넬스 해협의 갈리폴리에서 벌인 일련의 상륙 전투이다.연합군은 1915년 2월 19일과 2월 25일, 3월 25일에 각각 다르다넬스 해협의 터키군 포대를 포격했으나 터키군의 반격과 기뢰 등으로 인해 3척의 함대가 격침되고, 3척이 대파되었다.
이로 인해 총책임자 윈스턴 처칠이 총관직에서 물러나고 영국 해군의 피셔 제독도 사임했다. 이에 연합군은 새로 임명된 영국의 I. 해밀턴 장군의 지휘 아래에 4월 25일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주축으로 한 영연방 및 프랑스군 7만 명을 갈리폴리에 상륙시켰다.
하지만 독일 제국의 오토 리만 폰 산더스 장군과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터키군의 공격으로 실패했다. 또 터키군의 병력을 잘못 파악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병사가 8587명이나 전사하고 1만 9367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연합군 총사상자는 25만 명에 달했으며 터키군도 21만 명의 사상자를 냈는데 이 과정에서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했던 물리학자 헨리 모즐리도 전사했다.
결국 상륙 작전의 실패로 연합군은 6개월 뒤에 갈리폴리에서 철수했다.
배넉번 전투는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기간 중인 1314년 6월 23일부터 24일에 걸친 이틀 동안에,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가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이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의 침공을 스코틀랜드 스털링의 배넉번에서 막아 낸 전투이다. 스코틀랜드의 사실상 국가인 《스코틀랜드의 꽃》은 이 배넉번 전투에서의 승리를 다루고 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나폴레옹의 빛나는 승리 중 하나로, 프랑스 제국에 대항하여 결성된 3차 동맹을 효과적으로 분쇄시켰다. 1805년 12월 2일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은 거의 9시간에 걸친 힘든 싸움 끝에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지휘하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을 결정적으로 격퇴시켰다. 전투가 벌어진 장소는 모라바의 브루노에서 남동쪽 약 10km떨어진 아우스터리츠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는 흔히 전술상의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프랑스 공방전은 1939년 9월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의 최초 진영간 전면전으로, 1939년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 선전포고 이후 가짜 전쟁에 이어 벌어진 사건이며 1940년 5월 10일부터 프랑스가 독일과 정전협정을 맺은 동년 6월 21일까지의 시간 동안 벌어진 전투였다. 이 침공전의 결과로 그저 지역강국에 불과한 독일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시작되어 유럽과 대서양 일부 구역에 한정한 짧은 전쟁으로 끝날 수 있었던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본격적인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었다.
볼셰비키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인솔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분파이다.
파시즘은 자국의 국가, 인종, 민족이 이를 구성하는 개인, 무리, 기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즉 국가, 민족, 인종이 개인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찬양한다. 이러한 국가의 실현을 위해 파시스트들은 규율, 세뇌, 실질적 교육 및 우생학을 통해, 국가 전체를 동원시키는 일당 전제주의 국가를 구현하여, 개개인을 조상, 문화, 혈연에 있어 초개인적 연관성에서 비롯된 민족주체성 안에서 하나로 뭉치는, 유기적 국가 공동체로 만든다는 신념 위에, 자국을 청년기로 회복시키고자 한다. 파시스트들은 국가와/또는 민족은 영속적인 갈등 상황에 처해있으며, 이에 따라 강자는 스스로 강해져 그 힘을 약자에게 행사함으로써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유대인 대학살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전멸시키려는 목적으로 자행하였던 제노사이드이다.나치 독일은 유대인 외에도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집시, 정신지체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소련의 전쟁포로, 여호와의 증인과 프리메이슨 등 여러 ‘원치 않는 부류’를 유대인과 함께 학살하였다.이들은 대부분 집단수용소에 옮겨져 조직적으로 학살되었으며, 장애인의 경우는 의사에 의해 안락사시키는 방법으로 5만명이나 학살했다.
레닌그라드 포위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중 하나이다. 독일군은 소비에트 연방 제2의 대도시 레닌그라드를 900일 가까이 포위하였으나, 레닌그라드는 포위를 견뎌내어 훗날 스탈린에게서 영웅도시라는 칭호를 받는다. 기아 및 포격전으로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생겼는데, 소련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67만 명, 일설에는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했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이 건설한 것으로서 서베를린을 동베를린과 그 밖의 동독으로부터 분리하는 장벽이다. 그래서 서베를린을 공산주의 국가안의 유일한 자본주의 지역이라고 해서 '육지의 섬'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동독의 관리들은 이 장벽을 반 파시스트 보호벽이라고 불렀다. 냉전의 상징이자 독일의 분단을 상징하여 왔다. 동독 탈주자가 많아지자 이를 막으려고 1961년 8월 13일에 만들어진 이후 점차 이 장벽은 보강되었으며, 1989년 11월 9일 자유 왕래가 허용된 이후 차례로 장벽이 붕괴되었다.
로마 진군은 1922년 10월 28일에 베니토 무솔리니가 검은 셔츠단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하여 정권을 잡은 사건이다. 무솔리니가 로마에 들어오자, 이탈리아의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무솔리니에게 내각을 구성해 달라고 요청을 했고,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아, 무솔리니의 무혈 쿠데타는 성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전쟁이 시작된 때는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이 1939년 9월 17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으로 본다. 그러나, 또 다른 편에서는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의 중화민국 침략, 1939년 3월 나치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일본 제국 히로시마 시와 나가사키 시에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사실상 끝이 났으며, 일본 제국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9월 2일에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 결과로 동아시아의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지역들이 독립하거나 모국으로 복귀하고, 그 외에도 여러 제국들의 식민지가 독립하게 되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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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we will lose 작성시간 13.07.11 독소전 중요 반환점은 쿠르스크에서 시작 됐는데... 사람들이 죄다 스탈린그라드로만 알고 있음...ㅡㅡ 1943년 3월,4월에 독일 남부집단군이 다시 반격을 개시해서 하르코프 -로스토프 라인까지 소련군 도로 밀어버렸는데...독일군의 본격적인 후퇴는 쿠르스크의 치타델 작전으로부터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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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곰이오☞☜ 작성시간 13.07.11 가사는 나중에 붙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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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블마로소이다 작성시간 13.07.11 Europa는 유럽이여 보다 에우로파 부르는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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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님이좋까 작성시간 13.07.12 유럽 역사 공부하게 만드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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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님이좋까 작성시간 13.07.12 유럽 역사 공부하게 만드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