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또는 지배를 뜻하는 그리스어 Kratia를 Cratia로 변형하여 밴드의 이름을 지은 크라티아는 기타리스트 이준일이 중학교 재학시절 해모수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다 초등학교 동창인 보컬 최민수를 영입하여 지금의 밴드명으로 바꾸고 활동하게 된다.
이들의 음악 스타일은 정통 L.A 메탈의 느낌 그대로를 고스란히 음악에 잘 살려냈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을수 있다.
Line Up (1987~2010)
Vocal 최민수 (1987) - 정상원 (1987) - 이윤식 (1987~1988) - 최민수 (1988~1990) - 이국진 (1990) - 차상록 (1990~1992) - 김헌진 (2008) - 최성은 (2010~)
Guitar 이준일 (1987~)
Bass 박창규 (1987) - 홍진호 (1987~1988) - 박성용 (1988~1990) - 김봉민 (1990~1992) - 백동호(2008~)
Drum 조성수 (1987~1988) - 양현종 (1988) - 권태원 (1988~1992) - 최재학 (2008) - 오일정(2010~)
1987년말 파고다 극장과 63 빌딩 공연후 보컬인 최민수가 탈퇴하게 되고 베이스에 박창규도 제로지에 합류하면서 보컬엔 정상원과 베이스에 홍진호가 합류하게 되지만 두 차례의 공연 후 보컬 정상원은 탈퇴한다.
당시엔 주다스 프리스트 (Judas Priest), 콰이어트 라이옷 (Quiet Riot), 머틀리 크루 (Motley Crue) 같은 밴드의 곡들을 카피하며 기량을 충실히 쌓아나갔다.
일본 헤비메탈 밴드 라우드니스 (Loudness)의 보컬리스트 미노루 니하라의 스타일과 흡사한 보컬 이윤식의 합류로 라우드니스를 위주로 카피하며 파고다 극장, 대학로, 63 빌딩, 88 체육관 등에서의 활발한 공연을 통해 많은 팬들이 생겨났으며 이들의 성원에 보답하듯 파격적인 분장과 쇼킹한 무대매너 등으로 팬들에게 단순히 청각적으로만 전달하는 음악이 아닌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제공했다.
1988년 팀의 중심인 기타리스트 이준일을 제외하고 대대적인 멤버의 교체가 있었는데 보컬리스트 최민수의 복귀와 베이스에 박성용, 드러머 권태원의 가입으로 이 시기는 앨범발매와 더불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 결과물로는 1988년 헤비메틀 옴니버스 앨범인 Friday Afternoon Vol.1에 'King Of Rock'이라는 곡으로 참여 (이때 드러머는 양현종)하며 많은 반향을 일으키며 Friday Afternoon Vol.1에 함께 참여하였던 아발란쉬와 함께 1989년 조인트 앨범을 발매하기 이른다.
이 앨범에는 문명의 이기심으로 인한 종말을 예고하고 또 그것에 대해 준비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The World Stops Turning', 성도덕이 문란한 여성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자 하는 'Hard Headed Woman', 전형적인 메탈 발라드풍의 'All That Want is', 당시 유행하던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를 재치있게 표현한 'Rock Box' 4곡이 수록되어 있다. 미국 밴드 도켄 (Dokken)의 기타리스트 조지 린치 (George Lynch)의 추종자로 알려져 있는 이준일의 연주가 인상적이며 포이즌 (Poison), 머틀리 크루 (Motley Crue), 엘.에이 건스 (L.A Guns) 등의 영향을 받은 느낌이 물씬 뭍어난다.
이 때 부산, 광주, 충주, 잠실 학생체육관, 계몽사 아트홀, 송설, 우드스탁등에서 자작곡과 포이즌 (Poison), 머틀리 크루 (Motley Crue), 엘.에이 건스 (L.A Guns), 스키드 로우 (Skid Row) 같은 밴드의 곡들을 연주하며 왕성한 라이브 활동과 더불어 이들의 스타일을 확고히 다지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1990년 2월 광주공연을 끝으로 보컬리스트 최민수는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하게 되고 베이시스트 박성용 또한 탈퇴하며 보컬 이국진과 베이스 김봉민을 영입하게 되지만 이국진은 1990년 잠실 펜싱 경기장에서 개최된 락앤롤 코리아와 제로지와의 합동 공연후 탈퇴하여 비스킷이라는 그룹에서 활동하게 된다.
다시 공석이 된 보컬에는 밴드 무명 출신의 차상록을 영입하며 광주, 인천, 안양, 대구등에서 공연하며 4곡의 신곡을 선보였다.
1992년 베이시스트 김봉민은 신성우 밴드로 옮겨가고 박철이 들어왔지만 함께 연주한적은 없으며 보컬리스트 최민수, 베이시스트 박성용이 탈퇴하면서부터 크라티아는 사실상 와해된 상태였으나 팀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이준일의 노력으로 2년간을 버텨왔다. 하지만 당시의 흐름은 메탈이라는 장르가 설 땅이 줄어들던 시기였다. 안타깝게도 이들 또한 그런 흐름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이들이 남긴 흔적에 비하면 그 수명이 짧았다는게 문제였지만 당시 너무나 열악한 환경 탓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 밴드 또한 넘쳐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수는 없는 것이 당시의 열악한 환경, 예기치못한 음악계의 대격변의 징조를 알아차릴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비난의 화살은 당시 사회에 돌리도록 하자! 아무튼 그렇게 그들은 일부 사람들의 기억에만 존재하던 밴드로 남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팀의 리더 이준일은 와신상담의 자세로 16년간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
2008년 재결성한 크라티아는 리더 이준일을 중심으로 보컬 김헌진, 베이스 백동호, 드럼의 최재학의 라인업으로 일산 유비파크, 허브랜드, 클럽 스카이하이 등에서 활동하며 재기에 성공하는듯 했지만 드러머 최재학이 스카이하이 공연후 연락두절되자 다시 한번 어려움을 맞게 된다.
2010년 현재 보컬 최성은과 드러머 오일정을 영입하여 새롭게 시작했다. 예전의 레파토리와 새롭게 선보이는 자작곡 등으로 무장한 이들의 항해에 앞으로 더 큰 암초가 존재할수도 있겠으나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무사히 목적지에 크라티아 호를 정박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앞으론 그들의 항해에 순풍만 존재하길 바라는 맘으로 힘찬 박수를 보내줄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