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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2월 제 1교시 올해 교재 서양미술사 저자소개 및 73p까지 요약

작성자초록공주(김문숙)|작성시간15.03.01|조회수813 목록 댓글 2

올해의 교재

                                                                                                       김문숙                                                                  

『서양 미술사』

 

 

 

 

저자소개:

에른스트 곰브리치-

 저자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는 1909년 비엔나에서 태어나 1936년에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1959년부터 1976년 은퇴하기까지 연구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셨고 런던 대학의 와버그 연구소(WARBURG INSTITUTE) 소장과 동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수많은 책들과 평론, 논문들을 출판하였다. 2001년 11월 영국 런던 서쪽 햄스테드 자택에서 92세로 타계했다. 1972년에는 나이트(KNIGHT) 작위와 1988년 메릿 훈장(O.M.), 1944년 괴테상(GOETH PRIZE)과 비엔나 시가 수여하는 황금메달(GOLD MEDAL OF THE CITY OF VIENNA)훈장을 수여받는 등 국제적 명예를 얻었다. 그의 베스트셀러 『서양미술사』는 45년 전에 초판이 출간되어 현재에는 16판까지 발행되었고 전세계의 미술학도들에게 변함없이 지식과 기쁨을 제공하고 있다. 곰브리치 교수의 책은 훌륭한 미술사 저술의 표본이며, 우리 문화 유산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ART AND ILLUSION : A STUDY IN THE PSYCHOLOGY OF PICTORIAL REPRESENTATION(1960), THE SENSE OF ODER : A STUDY IN THE PSYCHOLOGY OF DECORATIVE ART(1979) 등이 있다.

 

역자 백승길

 THE KOREA TIMES사 기자를 거쳐 1961년-93년까지 유네스코 한위 출판부장, 문화, 홍보부장, 기획 실장을 역임하였다.

 

이종숭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2년 동아일보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된 바 있으며 현재 미술평론가로 활동중이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상상력의 개념」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책소개

 지금까지 출간된 미술에 관한 가장 유명한 책 중의 하나. 1950년 영국에서 초판이 간행된 이래 전세계에서 서양미술사 개론의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백승길과 이종숭에 의해 번역된 이 책은 1994년에 간행된 16차 개정증보판을 원고로 한 것이다.

 곰브리치는 이 책을 '자신들의 힘으로 이제 막 미술 세계를 발견한 10대의 젊은 독자들'을 위해 저술했다. 그들은 '유식한 체하는 전문 용어의 나열이나 엉터리 감정들을 재빨리 알아내어 분개할 줄 아는 비평가'들이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미술의 세계에 처음 입문하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쉽고 폭넓고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다.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을 쓰는 데 지은이가 정한 몇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도판으로 보일 수 없는 작품은 가능한 한 언급을 피할 것, 둘째는 진정으로 훌륭한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할 것, 세번째는 임의대로 도판을 선정하지 않을 것. 분량은 700페이지에 달하고, 컬러 도판 413개가 실려 있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부터 오늘날의 실험적인 작품들까지, 각 시대와 양식, 작품과 작가를 알기쉽게 정리하고 있다. 미술의 역사란 과거와의 연관 속에서 미래를 암시하는 각 작품들로 끊임없이 구성되고 변화하는 전통의 역사라는 것이 지은이의 믿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던 그 시대가 생생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책속으로

 전문용어나 얄팍한 감상의 나열이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평생동안 미술책은 모두 그럴것이라고 백안시하는 악습이 되고있다...나는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평범하고 비전문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평이한 말을 사용하려고 성심껏 노력했다... 서문에서

 상상력이 대단히 풍부하고 타협을 모르는 젊은 화가인 카라바조는 늙고 가난한 노동자이며 단순한 세리였던 마태오가 갑자기 앉아서 책을 쓰게 되었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내느라 고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머리에 먼지 묻은 맨발로 커다란 책을 어색하게 거머쥐고, 익숙하지 않은 글을 쓴다는 긴장감 때문에 걱정스럽게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성 마태오>를 그렸다. 그의 옆에는 방금 천상에서 내려와 마치 선생님이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노동자의 손을 공손하게 잡아 이끌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천사를 그렸다.

 카라바조가 제단 위에 걸게 되어 있는 이 그림을 성당에 납품하자 사람들은 이 작품이 성인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분개했다. 그 그림이 수락되지 않아 카라바조는 그림을 다시 그려야만 했다. 이번에는 그도 모험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사와 성인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관한 인습적인 관념을 엄격하게 준수했다. --- p.31

 베르사유가 바로크 양식인 것은 그 장식적인 세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거대한 규모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이 건물의 거대한 덩어리를 좌우 날개 부분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각 익부에는 고상하고 장엄한 외관을 부여하는 데 주력했다. --- p.447

 

 

 

 

 

 

 

 

 

서양 미술사 73p까지 요약

                                                                                                                                                *=곱하기

  서양 미술사

 

                                                                                                                                       

 

 서론

미술과 미술가들에 관하여

 

 미술은 존재 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미술작품은 인간을 위해서 만든 물체라는 사실이며, 미술가가 작품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그 작품에 대한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하나의 그림이나 조각들이 어떻게 되어 있어야 제대로 된 것인지 말해 줄 수 있는 규칙은 없다. 미술에는 언제나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것들이 있으며 그 작품을 대할 때 마다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처럼 다함이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은 그 자체의 불가사의한 법칙과 모험을 가지고 있는 가슴 설레게 하는 자극적인 세계이다. 이러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품속의 모든 암시를 포착하고 숨겨진 조화에 감응 하려는 그런 참신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 마음가짐은 상투적인 미사여구나 진부한 경귀 같은 것에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눈을 뜨는 것을 돕는 것이지 입을 헤프게 놀리는 일을 돕는 것은 아니다.

 - 곰브리치의 서문 요약

 

 

1

루벤스 <아들 니콜라스의 초상>.1620년경.검정과 빨강 분필 소묘

 

2

뒤러 <어머니의 초상>.1514년. 검정 분필 소묘.42.1*30.3cm. 베를린 국립 박물관 동판 화관

 

 

4

피터데 호흐.<사과 껍질을 벗기는 여인이 있는 실내>. 1663년 유화. 70.5*54.3cm 런던 월리스 컬렉션^                                                        

 

3

무리요. <부랑아들>. 1670-5년경.유화. 146*108cm. 뭰헨알테 파나코텍

 

 

5

멜로초 다 포를리. <천사>.1480년경. 프레스코의 부분. 바티콴 회화관

 

 

6

멤링. <천사>. 1490년경. 목판에 유채로 그린 제단화의 부분. 안트웨르펜 국립 박물관

 

 

7

귀도 레니. <가시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1639-40년경. 유화의 부분. 62*48cm. 파리 루브르

 

 

8

토스카나의 한 미술가. <그리스도의 얼굴>.1175-1225년경. 십자가상의 부분 . 목판에 템베라. 피렌체 우피치

 

 

9

뒤러. <산토끼>. 1502년. 종이에 수채와 구아슈. 25*22.5cm. 빈 알베르티나

 

10

렘브란트.<코끼리>.1637년. 검정 분필 소묘. 23*34cm. 빈 알베르티나

 

11

피카소 .<앎닭과 병아리들>. 1941-2년. 에칭.36*28cm. 뷔퐁의 <박물지博物誌 >삽화.

 

12

피카소. <수탉>. 1938년 목탄 소묘. 76*55cm. 개인 소장

 

13

제리코. <엡솜의 경마>. 1821년. 유화.92*122.5cm. 파리 루브르

 

14

에드위어드 머어브리지. <달리는 말의 동작>. 1872년 연속 사진. 킹스턴 어폰템스 미술관

 

15

카라바조. <성 마테오>. 1602년경. 거부된 작품.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제단화.223*183cm. 현재 소실됨. 전에는 베를린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 소장

 

16

카라바조. <성 마테오>. 16602년경. 다시 그린 작품.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제단화 . 296.5*195cm.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17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1505-6년.목판에 그린 유화.113*88cm.빈 미술사 박물관

 

18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를 위한 네점의 습작. 1505-6년. 스케치북의 한 페이지. 종이에 펜과 잉크.36.2*24.5cm. 빈 알베르티나

 

 

 

1

신비에 싸인기원

 선사및 원시부족들 : 고대 아메리카

 

 언어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미술이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실용성에 의해서 그려지고 조각품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고대의 미술품들은 주술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의 동물 벽화나 천장에 동물그림은 원시인들이 다음날의 식량이 되는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 한 것 같다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지금도 주술적인 목적을 위해서 바위에 동물들의 그림을 그리는 부족이 있고, 정기적인 축제를 벌여서 동물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동물같이 움직이는 엄숙한 춤을 추는 부족이 있는것은 이러한 의식이 그들에게 먹이를 압도해서 잡을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물들이 그들과 연관을 맺고 있다고 여겨 부족 전체를 늑대부족, 까마귀 부족, 개구리 부족이라고 믿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암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믿고 신성한 주피터의 신전에 암늑대의 동상을 세우고, 계단 옆에 우리를 만들어 늑대를 기르기도 한다. 사자는 영국의 암묵적인 상징이며 부족들이 의식을 행할 때 동물의 모습을 닮은 가면을 쓰고, 이런 가면을 쓰면 변신을 해서 까마귀나 곰이 된 것처럼 생각했다. 이러한 의식은 미술에 영향을 끼쳤다.

 

 원시 미술가들은 우리들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정교하게 조각품이나 인물상을 만들어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의 목각(교재44p 도판), 나이지리아 흑인청동두상(45p), 티이티에서 출토된 나무에 신네트를 쒸워 만든 ‘전쟁의 신 오로’(46p),뉴기니의 파푸아만에서 출토된‘의식용 가면’(47p)북미인디언의 나무조각,‘북미 북서 연안지대의 인디언족 추장의집’(49p),마야족의 돌계단에서 출토된‘죽음의 신의 머리’(50p), 알래스카의 ‘의식용 가면’(50p),페루의 치카나 계곡에서 출토된‘애꾸눈 사나이’(52p), 아즈텍의‘비의신 틀라록’(52p), 등이 있다. 그림과 문자는 혈연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19

<들소>. 기원전 15.000-10.000년경. 동굴 벽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20

<말>. 기원전 15.000-10.000년경 동굴 벽화. 프랑스 라스코 동굴

 

21

프랑스 라스코 동굴 천장에 그려진 동물들. 기원전 15.000-10.000년경

 

22

<마오리 족장의 집에 장식된 상인방>.19세기 초.목각. 32*82cm. 런던 인류 박물관

 

23

<흑인 청동 두상>. 나이지리아의 이페에서 출토. 족장의 상으로 추정.12-14세기. 청동. 높이 36cm.런던 인류 박물관

 

 

24 <전쟁의 신 오로>.타히티에서 출토.18세기.나무에 신네트를 씌운 것 길이 66cm. 런던 인류 박물관

 

25 <의식용 가면>.뉴기니의 파푸아 만에서 출토.1880년경. 나무와 나무껍질 밎 식물성 섬유. 옾이 152.4cm 런던 박물관

 

26

<하이다(북미 북서 연안 지대의 인디언)족 추장의 집>19세기 모형. 뉴욕 미국 자연사 박물관

 

 

27

<죽음의 신의 머리>. 마야족의 돌제단에서 출토. 500-600년경.온두라스. 코판 37*104cm. 런던 인류 박물관에 있는 석고 모형

 

28

알래스카의 <의식용가면>.1880년경. 채색 목판. 37*25.5cm. 베를린 국립 미술관. 민속 미술관

 

29

<애꾸눈 사나이 머리 모양의 토기>.페루 치카나 계곡에서 출토. 250-550년경. 점토. 높이 29cm.시카고 미술 연구소

 

30

아즈텍의 <비의 신 틀라록>.14-15세기. 돌. 높이 40cm. 베를린 국립 미술관. 민속 미술관

 

바위에 부족의 토템인 주머니쥐의 무뉘를 그리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2

영원을 위한 미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레타

 

 지구상에 어디에든 미술은 존재한다. 하나의 계속적인 노력으로서 미술의 역사는 남프랑스의 동굴 속이나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부족들로부터 시작 되는 것이 아니다. 이 기원들이 우리와 직접적 전통으로 연결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약 5천 년 전 나일 강변 미술을 우리시대와 연결 시켜주는 거장은, 제자에게로 그 제자로부터 추종자 또는 모방자에게로 전해 내려오는 직접적인 전통은 전해오며 그리스 거장들은 이집트인들에게서 배웠고, 미술가들은 모두 그리스 제자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 미술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집트 미술은 톡특하다. 미술가는 벽면에 그물모양의 직선을 그려 넣음으로 그림을 시작했고, 모든 조각이나 회화, 건축들에 ‘균형과 엄숙한 조화’가 깃들어 있다. 이러한 양식은 거의 이집트 미술 역사 동안 지배 했다. 미술가가 되려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양식이 몸에 배게 습득을 해야 했다. 아름다운 상형문자 필기를 배워야 했고, 상형문자의 형상과 상징을 명확하게 돌에 새길 수 있어야 했다. 독창적인 것을 아무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과거에 추앙 받았던 기념비들과 가장 비슷하게 조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가장 뛰어난 미술가로 간주됐다.

 3천년이 흘러도 이러한 미술 양식이 변함이 없었지만 이집트 미술 양식의 규칙을 뒤흔든 왕이 나타났다. 18왕조 아멘 호테프4세는 이단자였다. 오랜 전통에 의해 숭상 되어온 관습을 타파했다. 하늘의 신神인 호루스(Horus)와 장례의 신 아비누스, 전령신 토트 등의 수많은 신을 배격하고, 태양의 모양으로 그리게 한 ‘아톤’(Aton) 신을 자신이 만들어 내어 숭상했다. 그는 이신의 이름을 따서 ‘아크나톤’으로 부르게 하고 그의 왕궁마저 다른 신을 믿는 사제들 손이 미치지 않는 ‘텔엘아마르’ 라고 불리는 곳으로 옮겼다. 이때의 그림은 그가 왕비와 동일한 크기로 그려져 있고, 자녀들을 사랑스럽게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후일 유물 발굴 때 앞 시대의 엄숙하고 남녀 크기가 다른 그림과 다른 이 그림에 보던 사람들이 놀라워했으리라고 저자는 추측했다. 이러한 전통 파괴의 시대는 아나크톤 왕의 후계자였던 투탕카멘 왕조 때 멈추고 옛 종교들이 다시 부활되어 미술도 이전시대의 양식이 부활 되었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 말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의 계곡을 의미 한다. 이 민족의 하나인 '수메르'인은 정확성을 좋아 했으며

고대 도시 우르(Ur)를 통치 했던 상고 시대에는 왕이 죽으면 저승에서도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게 모든 가족들과 노예들을 함께 매장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야만인족에게도 고도로 세련된 미술은 생겨났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전쟁에 패배한 종족들과 빼앗은 전리품에 대해 기록하는 전승비를 세우도록 했다. 앗시리아인들은 전쟁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을 남겼다.

 

31

<가자(Giza)의 피라밋>. 기원전 2613-2563년경

 

32

<석회석 두상>. 기원전 2551-2528년경. 기자의 한 고분에서 출토. 높이 27.8 빈 미술사 박물관

 

33

<네바문의 정원>.기원전 1400년경. 테베(Thebes)의 고분 벽화. 64*74.2cm. 런던 대영 박물관

 

34

<헤지레의 초상>.기원전 2778-2723년경. 헤지레 묘실의 나무로 된 문의 일부. 높이 115cm.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35

<크눔호텝 묘실의 벽면>.기원전 1900년경. 베니하산 부근. 1842년 카를 렙시우스가 출판한 <유물(Denkmaler)>에 실린 삽화에서

발췌

 

36

도판 35의 부분

 

37

<나무위의 새들>. 도판 35의 부분. 니나 먹퍼슨 데이비스가 원화를 본떠 그린 그림

 

38

 죽은 자의 심장의 무게를 재는 일을 하고 있는 자칼 머리 모양의 신(神)인 아비누스와 오른 쪽에서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는 따오기 두상의 전령신인 토트(Thoth). 기원전 1285 년경. 죽은 자의 고분에 안치된 두루마리 그림인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나오는 한 장면. 높이 39.8cm. 런던 대영 박물관

 

39

<아멘 호테프 4세(아크나톤)>.기원전 1360년경. 석회석 부조. 높이 14cm. 베를린 국립 미술관. 이집트관

 

40

<딸들을 안고 있는 아크나톤과 네르페티티>. 기원전 1345년경. 석회석. 제단 부조. 32.5*39cm. 베를린 국립 미술관. 이집트관

 

41

<단검>. 기원전 1600년경. 미케네 출토. 청동에 금과 은과 흑금으로 상감. 길이 23.8cm.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42

<파라오 투탕카멘과 그의 아내>. 기원전 1330년경.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출토된 왕좌의 일부. 나무에 금박과 채색.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43

<하프>의 부분. 기원전 2600년경. 나무에 금박과 상감. 우르에서 출토. 런던 대영 박물관

 

44

<국왕 나람신의 기념비>. 기원전 2270년경. 수사 출토. 돌. 높이 200cm. 파리 루브르

 

45 <요새를 공격하는 아시리아 군대>. 기원전 883-859년경.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의 석고 부조.런던 대영 박물관

 

<금 스핑거스를 제작하고 있는 이집트 장인>. 기원전 1300년경. 테베의 한 고분 벽화. 런던 대영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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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복숭아(박경숙) | 작성시간 15.03.04 초록공주님 서양미술사 책의 사진들이 시원하니 좋네요 너무 잘 하세요
    애쓰셨구요 전 회원들은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좀 차갑습니다만 몸조리 더 잘하시고 회복된 모습으로 뵙길 바라며 오늘도 행복한 날 되셔요
  • 작성자초록공주(김문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12 고마워요 회장님!
    저 뿐 만이 아니라
    회원분들 모두께 보내 드리는
    세심한 배려
    매번 감탄을 보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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