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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공파(昭靖公派)

파평윤문 청화직 경영관

작성자尹汝訓|작성시간14.01.04|조회수213 목록 댓글 1

경연관(經筵官)

 고려·조선시대 국왕의 학문 지도와 치도 강론을 위하여 설치한 경연의 관직. 학문과 인품이 탁월한 문관으로서 겸직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경연관은 왕조시대에 가장 명예로운 벼슬로서 여러 가지 특별 대우를 받는 청화직(淸華職)이었다.우리 나라의 경연관은 고려 초기부터 설치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1132년(인종 10) 정원(鄭沅)·윤언이(尹彦頤)·정지상(鄭知常) 등이 경연에서 진강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인종은 서적소(書籍所)를 설치하고, 유신들을 번갈아 인접하여 강학하기도 하였다.경연은 몽고간섭기에 서연(書筵)으로 강등되어 경연관도 서연관으로 개칭되었으나, 1390년(공양왕 2)에 복원되었고, 관제도 재정비되었다. 이 때의 경연관은 영경연사 2인, 지경연사 2인, 동지경연사 2인, 참찬관 4인, 강독관 2인, 검토관 4인이었다. 심덕부(沈德符)가 영경연사,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이 지경연사에 임명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경연관제의 기초가 되었다. 조선왕조 개창 직후인 1392년 7월의 관제제정 시에 이것이 대체로 계승되었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이 설치되어 경연 전담부서화하게 되었다.1437년부터 집현전관원 20인 중 10인은 경연관, 10인은 서연관을 겸하게 하였다. 또, 이 때 사경(司經) 등의 하위직이 신설되었다. 경연관제는 성종 때 최종적으로 정비되어 ≪경국대전≫에 직제화되었다.즉 정1품 영사 3인, 정2품 지사 3인, 종2품 동지사 3인, 정3품 당상참찬관 7인, 그리고 정4품 시강관, 정5품 시독관(侍讀官), 정6품 검토관(檢討官), 정7품 사경(司經), 정8품 설경(說經), 정9품 전경(典經)이었다.영사는 3의정이 겸했고, 참찬관 이상은 중신(重臣)들 가운데서 선임하였다. 시강관 이하는 홍문관 관원들이 겸직하게 하였다. 또, 문·무 2품 이상 관 중에서 별도의 경연특진관을 선임하기도 하였다. 경연관을 선정할 때는 대신들과 이조의 당상관들이 빈청(賓廳 : 궁궐 내의 회의실)에 모여 협의한 뒤 후보자를 초록하여 상주하였다.경연 진강 때마다 모든 경연관들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 초기에는 보통 동지사 이상 1인, 참찬관 1인, 시독관 이하 4, 5인 정도가 참여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보다 많은 인원이 진강에 참가하였다.1581년(선조 14) 성혼(成渾)이 재야학자로서 경연에 참여한 이래, 초야의 학자들 중에서 경연관으로 초빙되는 사례가 많아지게 되었다. 그들을 세칭 산림(山林)이라 불렀다. 경연관들은 왕의 학문 지도가 주임무였지만, 군주의 치도를 강론하기도 했고, 중요 정치 문제를 토의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참고문헌>> 世宗實錄
<<참고문헌>> 成宗實錄
<<참고문헌>> 經國大典
<<참고문헌>> 經筵日記
<<참고문헌>> 增補文獻備考
<<참고문헌>> 集賢殿硏究(崔承熙, 歷史學報 32·33, 1966·1967)
<<참고문헌>> 朝鮮初期의 經筵制度(南智大, 韓國史論 6, 1980)
<<참고문헌>> 朝鮮 英祖代의 經筵(權延雄, 東亞硏究 17, 1989)
<<참고문헌>> 朝鮮前期 經筵의 諸理論(權延雄, 歷史敎育 13·14合輯, 1990)

참찬관(參贊官)

 조선시대에 국왕에게 경서(經書)를 강론하고 경연(經筵)에 참여하였던 정3품 당상관(堂上官)의 관직. 기록상 고려 공양왕 때에 처음 나타나는데, 정원 4인이 모두 대언(代言) 즉 승지였다. 조선 태조 때에는 5인이었다가, 태종 때 승정원(承政院) 승지(承旨)가 6인으로 늘면서 참찬관도 6인이 되었다. 성종 때 홍문관을 설치한 뒤 그 부제학이 역시 정3품으로 참찬관을 겸하게 되어, 정원 7인으로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참찬관 명단 : 윤강, 윤결, 윤경립, 윤계, 윤광소, 윤광의, 윤광익, 윤덕준, 윤동형, 윤옥
윤심형, 윤의중, 윤자임, 윤지인, 윤지형, 윤집, 윤춘년, 윤희성, 윤희손

 

시강관(侍講官)

조선시대인 세종 2년(1420)에 설치한 경연청(經筵廳)의 정4품 관직. 태조때에는 고려의 제도인 강독관 4인을 두었다. 정종때에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리하였다. 세종때에는 집현전의 부제학이 이를 겸하였다. 성종이후에는 홍문관의 직제학.전한.응교.부응교가 이를 겸하였다. 임금에게 경적(經籍)과 사서(史書) 등을 강론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시행하던 경연(經筵)은 시강관 외에 경연관도 맡아 하였다.

 

시강관 명단 : 윤광소, 윤돈, 윤동형, 윤세호, 윤의립, 윤의중, 윤인경, 윤인서,
윤지, 윤지경, 윤지인, 윤지형, 윤춘년, 윤현

 

시독관(侍讀官)

조선시대의 경연의 정5품 관직으로 경연청(經筵廳)에서 임금에게 경서(經書)를 강의하였다.
조선 태조때에는 고려의 제도인 강독관 4인을 두었었는데, 정종 때에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리하였다.
그 뒤 세종 때에는 집현전의 직제학이 이를 겸하였으며, 성종이후에는 홍문관의 5품관인 교리(校理)와 부교리(副校理)가 이를 겸하였다. 고종 33년(1896)에는 왕태자궁(王太子宮)을 시강원(侍講院)으로 고치고, 주임관(奏任官)인 시독관을 두어 왕세자의 교육을 맡게 하였다.

 

시독관 명단 : 윤강, 윤계, 윤광소, 윤광의, 윤광익, 윤구, 윤금손, 윤덕준, 윤동준 윤동형, 윤봉오, 윤심형,윤원형, 윤의립, 윤의제, 윤인서, 윤자임,윤지경, 윤지완, 윤지인, 윤지형, 윤집, 윤현, 윤옥

 

검토관(檢討官)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속한 정6품의 관직. 강독(講讀)과 논사(論思)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으며, 대개는 타관(他官)이 겸직하였다. 기록상으로는 고려 공양왕 때 처음 나타난다. 당시에는 4품 이하의 관원이 겸했던 것 같으며, 태조 1년(1392) 7월에 관제를 새로 정할 때 정5품에 2인을 두었다. 세종 때에는 집현전의 5품관 1, 2인을 임명하고 성종 이후에는 홍문관의 6품관을 이에 임명하였다.

 

검토관 명단 : 윤강, 윤결, 윤경립, 윤계, 윤광소, 윤광의, 윤광익, 윤덕준, 윤동형,윤의중, 윤일규, 윤자임, 윤지인, 윤지형, 윤집, 윤춘년, 윤희성, 윤희손

 

특진관(特進官)
조선시대의 관직. 경연(經筵)에 참시(參侍)하여 왕의 고문에 응하는 관리. 성종실록에 의하면 경연관 외에 특별히 왕의 고문에 대비한 재상을 선임하여 2명씩 교대로 경연에 입시하도록 왕명에 의하여 1486년(성종 17년)에 처음 설관(設官)되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성종 즉위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특진관은 문관· 무관· 음관(蔭官)을 막론하고 2품이상 관리 가운데 의정부· 육조· 한성부의 관직을 역임한 사람을 대상으로 홍문관의 장(長)이 초계(抄啓)하여 선임하였으며, 정원은 없었다. 원칙은 문관만 입시하는 경연에 무관도 참여하도록 한 것은 국정전반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한 조치이다.  

 

특진관 명단 :윤강, 윤개, 윤금손, 윤덕준, 윤돈, 윤방, 윤봉오, 윤사익, 윤선각, 윤세호
윤순, 윤승길, 윤양, 윤양래, 윤용, 윤원형, 윤은로, 윤인경, 윤인함
윤임, 윤지선, 윤취상, 윤헌주, 윤현, 윤형, 윤효손, 윤훤, 윤휴, 윤희손, 윤희평

 

세자와 왕의 의무교육, 제왕학

조선시대에 원자(元子)가 태어나면 일단 보양청(輔養廳)에서 원자의 보호와 양육을 담당하며, 보양관으로는 종2품 이상의 고위관료들로 보통 3명, 혹은 임금의 특명으로 추가된 인물이 맡는다. 그리고 원자가 서너 살쯤 되면 강학청(講學廳)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제왕학(帝王學)을 교육하며, 강학관은 대개 보양관들이 그대로 임명되지만 학덕이 뛰어난 사람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 시기의 교육은 소학·천자문·격몽요결 등 유교교육이 중심이였다. 수업은 매일 아침, 낮, 저녁 때에 각각 한 차례씩, 시간은 대략 45분 가량입니다.보통 하루에 본문 한 글자를 교육하여 사부가 한문의 글자 음과 뜻을 새겨주면 원자는 그대로 반복하며, 이전에 배운 것과 당일 배운 것을 모두 외웠다. 사실 어린 원자가 유교교리를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므로 사부가 가르치는 대로 한문의 음과 뜻을 따라서 외우기만 했다. 그러다 원자가 여덟 살 전후에 세자(世子)에 책봉되면 강학청은 서연(書筵)으로 바뀌어 서연관으로는 영의정이 사(師), 좌의정과 우의정 중 1명이 부(傅), 종1품의 찬성 1명이 이사(貳師)로 임명되어 실제로는 조선사회를 움직이는 관료 수뇌부의 집합체였다.그러나 삼정승은 공무로 인하여 세자교육에 전념할 수 없기에 대체로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전임관료들이 담당한다. 세자시강원의 전임관료는 종3품 보덕, 정4품 필선, 정5품 문학, 정6품 사서, 정7품 설서 등의 각 1명으로 모두 5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문과에 합격한 실력자들로 30대에서 40대 정도의 참상관들이다. 그리고 세자와의 인연 때문에 대개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관료사회를 주도하였다. 세자는 우선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효를 배우고, 차기 왕으로서 요구되는 식견과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을 받는다.교재로는 주로 소학·효경·논어·맹자·중용·대학·대학연의·상서·주역·예기·춘추좌전·통감강목 등이 이용된다. 세자는 기상한 후 웃어른들에게 문안을 다녀온 뒤 오전공부에 들어가는데, 이를 조강(朝講)이라고 하였다. 이때 먼저 전에 배운 것을 확인하기 위해 책을 덮고 배운 것을 암송해야 했다. 만약 세자가 제대로 암송하지 못하면 호된 질책이 뒤따랐다. 이어 교수관이 교재의 본문에 나오는 글자의 음과 뜻을 풀어주고, 그 문장의 의미를 해설한다. 또한 세자는 의문이나 잘 모르는 사항이 있으면 질문을 하고, 교수관이 여기에 대답한다.이러한 질의응답이 끝나면 학습한 문장을 교수관이 낭독하고 세자가 따라서 낭독한다. 이렇게 아침 공부가 끝나면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낮 공부를 시작하는데, 이를 주강(晝講)이라고 하였다. 수업방식은 조강(朝講)과 같았으며, 저녁에는 저녁 공부인 석강(夕講)이 이어진다. 그러다 선왕이 승하하고 세자가 보위에 올라 임금이 되어서도 제왕학은 계속된다. 이것을 경연(經筵)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연도 세자 때의 서연과 같이 하루에 세 차례씩 하였고, 명칭도 조강·주강·석강이라고 하였다.그러나 임금은 국무를 처결하는 일이 바빠서 하루에 세 번씩 하는 경연을 모두 소화하기는  힘들었다. 따라서 보통은 조강만 하거나 아니면 주강만 하고 끝내는 경우도 많았다. 경연의 진행방식은 세자 때와 비슷하게 진행되지만 경연관은 서연관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우선 최고권력자 임금이 참석하므로 삼정승과 승지들 및 홍문관의 관료들이 겸직관으로 참석했다. 이외에 학덕이 뛰어난 학자들이 초빙되기도 하여 왕조시대의 경연관은 가장 명예로운 벼슬로서 여러 가지 특별대우를 받는 청화직(淸華職)이였다.경연에서는 학문을 토론하다 말고 종종 현안문제들이 논쟁점으로 제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문제점이 부각되고, 보통은 토론을 거쳐 해결방안이 제시되었다. 따라서 경연은 명색이 학문 토론장이었지만 실제는 정치 토론장과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이처럼 전통시대의 왕은 왕이 되기 이전부터 제왕학을 연마하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했다. 이는 전통시대 우리의 조상들이 훌륭한 왕을 만들기 위해 들인 노력과 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 찬선(贊善)
조선 후기 세자시강원에서 세자를 가르치던 벼슬. 정3품 당상관(堂上官)으로서 시강원의 책임자였는데 재야유현(在野儒賢)들이 많이 등용되었다. 찬선은 1646년(인조 24년) 5월에 김상헌(金尙憲)의 건의에 의하여 정4품 익선(翊善: 뒤에 進善으로 고침), 정7품 자의(諮議)와 함께 증원되어 김집(金集)이 최초로 여기에 임명되었다. 찬선등 시강원 벼슬은 유림 가운데서 임명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조선후기 유림으로 임명하던 관직으로는 성균관에 증원된 제주(祭酒)와 사업(司業)을 들 수 있다. 찬선의 증원은 세자교육을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찬선 명단 : 윤봉구, 윤증

 

진선(進善)
조선시대의 관직.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4품 관직. 정원은 1명이다. 1646년(인조 24년)에 찬선(贊善)· 익선(翼善)· 자의(諮議)와 함께 더 두게 되었는데, 뒤에 1648년에 익선을 진선으로 고쳤다. 송시열(宋時烈)이 처음으로 여기에 임명되었다. 조선후기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3명 또는 1명의 후보자를 천망(薦望)해서 임명하였으며, 다른 관청의 관원이 겸임할 수도 있었다.

 

진선 명단 : 윤봉구, 윤선거, 윤원거, 윤증

 

좨주 명단 :윤증, 윤전, 윤휴

 

조선조 경연관 초선록(재야학자로서 경연관에 초빙된 인물)

 자료 : 전고대방 5간본  

왕조

성 명

본관

아 호

관 직

성 명

본관

아 호

관 직

선조

성 혼(成 渾)

창녕

묵 암

판 서

정인홍(鄭仁弘)

서산

내 암

영의정

인조

김장생(金長生)

안방준(安邦俊)

송시열(宋時烈)

선우래(鮮于淶)

유 즙(柳 楫)

광산

죽산

은진

-

진주

사 계

은 봉

우 암

돈 암

백 석

참 판

학 자

좌의정

사 업

자 의

장현광(張顯光)

김 집(金 集)

송준길(宋浚吉)

조 속(趙 涑)

인동

광산

은진

풍양

여 헌

신독재

동춘당

창 강

우참찬

판중추

좌참찬

진 선

효종

이유태(李惟泰)

권 시(權 諰)

윤선거(尹宣擧)

이유겸(李有謙)

경주

안동

파평

우봉

초 려

탄 옹

노 서

만 회

참 판

우 윤

불 취

참 의

서원리(徐元履)

허 목(許 穆)

윤 휴(尹 鑴)

정 유(鄭 維)

달성

양천

파평

-

화 곡

미 수

백 호

-

참 판

우의정

우찬성

장 령

현종

윤원거(尹元擧)

정 양(鄭 瀁)

신석번(申碩蕃)

파평

연일

평산

용 서

포 옹

백 원

진 선

장 령

불 취

윤순거(尹舜擧)

이 상(李 翔)

정도응(鄭道應)

파평

우봉

진주

동 토

타 우

무 첨

장 령

참 판

자 의

숙종

박세채(朴世采)

이동규(李同揆)

정시한(丁時翰)

이현일(李玄逸)

이세필(李世弼)

이희조(李喜朝)

김창흡(金昌翕)

이 간(李 柬)

반남

-

나주

재령

경주

연안

안돈

전의

현 석

-

우 담

갈 암

구 천

지 촌

삼 연

외 암

좌의정

승 지

학 자

우참찬

군 수

대사헌

불 취

불 취

윤 증(尹 拯)

송기후(宋基厚)

이기홍(李箕洪)

권상하(權尙夏)

박 심(朴 鐔)

유후장(柳後章)

박광일(朴光一)

김 간(金 榦)

파평

은진

전주

안동

-

풍산

순천

청풍

명 재

문도재

직 재

수 암

-

주일재

손 재

후 재

우의정

불 취

불 취

불 취

자 의

-

학 자

우참찬

경종

정제두(鄭齊斗)

영일

하 곡

우참찬

채지홍(蔡之洪)

인천

봉 암

좌 랑

영조

한원진(韓元震)

박필주(朴弼周)

윤봉구(尹鳳九)

김원행(金元行)

민우수(閔遇洙)

윤동수(尹東洙)

이태수(李泰壽)

윤동원(尹東源)

이봉상(李鳳祥)

이양원(李養源)

유언집(兪彦鏶)

청주

반남

파평

안동

여흥

파평

전주

파평

전주

전주

기계

남 당

여 호

병 계

미 호

정 암

경 암

-

일 암

설 천

-

대 재

학 자

우찬성

판 서

불 취

대사헌

승 지

자 의

집 의

지 평

장 령

참 의

심 육(沈 錥)

민익수(閔翼洙)

어유봉(魚有鳳)

송명흠(宋明欽)

송능상(宋能相)

권진응(權震應)

신 경(申 暻)

조석문(曺錫文)

박필부(朴弼傅)

김양행(金亮行)

청송

여흥

함종

은진

은진

안동

평산

창녕

반남

안동

저 촌

숙야재

기 원

역 천

운 평

-

직 암

-

성 암

지 암

불 취

장 령

승 지

찬 선

집 의

자 의

참 의

영의정

참 지

참 판

정조

김이안(金履安)

김종후(金鐘厚)

김정묵(金正黙)

송환기(宋煥箕)

이직보(李直輔)

안동

청풍

광산

은진

연안

삼산재

본 암

과 재

심 재

중 주

목 사

자 의

지 평

우찬성

우참찬

송덕상(宋德相)

민이현(閔彛顯)

조 림(曺 霖)

홍계능(洪啓能)

송치규(宋穉圭)

은진

여흥

창녕

남양

은진

과 암

관생와

신 재

신 계

강 재

판 서

장 령

불 취

진 선

불 취

순조

김일주(金日柱)

김직순(金直淳)

오희상(吳熙常)

경주

안동

해주

-

죽 암

노 주

참 의

집 의

불 취

이우신(李友信)

송계간(宋啓幹)

덕수

은진

수 산

추 양

자 의

불 취

헌종

홍직필(洪直弼)

송달수(宋達洙)

남양

은진

매 산

수종재

판 서

참 의

김인근(金仁根)

송래희(宋來熙)

안동

은진

-

금 곡

장 령

대사헌

철종

김병준(金炳駿)

성근묵(成近黙)

임헌회(任憲晦)

안동

창령

풍천

-

과 재

고 산

참 의

찬 성

참 의

조병덕(趙秉悳)

이민덕(李敏德)

양주

덕수

숙 재

동 산

참 판

불 취

 

 

 

 

 

 

 

 

합 계 88

[출처] 조선조 경연관 초선록|작성자 협성 이재윤 

 학자로서 경연관이 된다는 것은 곧 임금의 스승이 된다는 뜻이 되어 인신(人臣)으로서 큰 영예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러한 선조를 둔 것을 종중과 후손들이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각 종중은 나름대로 왕조 실록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삼아 역대 선조 중 경연관이었던 분들을 다투어 열기하고 있으나, 출판물로서 공식화된 자료는 전고대방(典故大方)으로 조선조 선조조 이래 철종대까지의 88명의 기록인데 왕대(王代)와 성명(姓名) 위주로 된 자료를 ‘본관, 관직, 아호, 시호’ 등을 더 넣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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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청마 | 작성시간 14.01.05 좋은 자료를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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