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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尹
요약 성(姓)의 하나. 문헌에 150여 본관이 전하나, 오늘날 계통이
자세히 전하는 본으로는 파평·해남·칠원·남원·해평·무송·함안 등이 있다.
윤씨의 대종을 이루는 파평 윤씨는 고려 태조를
도와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윤신달을 시조로 삼고있다.
그의 4대손인 관이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1107년 정벌군의 원수가
되어 여진을 평정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오른 뒤 영평현(영평은 파평의
다른 이름) 개국백에 봉해짐으로써 손들이 파평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함안파·남원파·덕산군파·문정공파 등으로 크게 분파하여 계통을 이어오고 있다.
남원 윤씨, 신령 윤씨, 현풍 윤씨, 야성 윤씨는 그 뿌리가 파평 윤씨이다.
해남 윤씨는 윤존부를 시조로 삼고 있고, 무송
윤씨의 시조는 윤양비, 양주 윤씨의 시조는 윤숭으로 전한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인구순위 8위이다.
개요
문헌에 150여 본관이 전하나, 오늘날 계통이
자세히 전하는 본으로는 파평(坡平, 坡州)·해남
(海南)·칠원(漆原)·남원(南原)·해평(海平)·무송(戊松)·함안(咸安) 등이 있다.
파평 윤씨
윤씨의 대종을 이루는 파평 윤씨는 고려 태조를 도와
삼국통일에 공을 세우고 벽상공신으로 삼중대광 태사
(三重大匡太師)에 오른 윤신달(尹莘達)을 시조(始祖)각주1) 로 삼고있다.
그의 4대손인 관(瓘)이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1107년 정벌군의
원수(元帥)가 되어 여진을 평정한 공으로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 지군국중사(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 門下侍中
判尙書吏部事 知軍國重事)에 오른 뒤 영평현(鈴平縣, 영평은 파평의 다른 이름)
개국백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파평을 관향(貫鄕)각주2) 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함안파(咸安派)·남원파(南原派)·덕산군파(德山君派)·
문정공파(文定公派)·신령파(新寧派)·대언공파(代言公派)·
봉록군파(奉祿君派)·판서공파(判書公派)·야성파(野城派)·
전의공파(典儀公派)·소정공파(昭靖公派)·원평군파(原平君派)·
소도공파(昭度公派)·판도공파(版圖公派)·소부공파(小府公派)·
대위공파(大尉公派) 등으로 크게 분파하여 계통을 이어오고 있다.
남원 윤씨
남원 윤씨의 시조 윤위(尹威)는 윤관의 증손으로 1176년
(명종 6)에 등과하고 1200년(신종 3) 호남안렴사(湖南按廉使)
가 되어 남원의 반적(叛賊)을 평정한 공으로 남원군(南原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남원을 본관으로 삼아 파평윤씨에서 분관했다고 한다.
일
설에는 그가 국자감사업(國子監司業)을 위해
외방에 나가 서경유수로 있다가 죽으니 남원에서
그의 덕을 흠모하여 그를 남원 땅에 장사지내기를
원하므로 자손들이 대대로 그곳에 살며 남원을 관향으로 일컫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한편 고려시대에 함안의 인심이 흉흉하여
조정에서 여러 차례 차사(差使)를 보냈으나 번번이
죽음을 당하므로 특별히 윤돈(尹敦)을 보내어 군수(郡守)로 삼았다 한다.
윤돈은 나중에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오르고 함안백에 봉해졌다.
남원 윤씨의 시조 윤위의 손자인 윤돈이
함안백에 봉해진 것을 연유로 그의 아들 가운데
희보(希甫)의 후손들이 함안에 세거(世居)각주3) 하면서
윤돈을 시조로, 함안을 관향으로 하여 남원 윤씨에서 분적했다고 한다.
함안 윤씨의 시조를 윤돈이 아닌 윤희보로 전하는 설도 있으며,
〈만성보〉·〈조선씨족통보〉 등에는 윤희보를 윤돈의 아들이 아닌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신령 윤씨
조선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정랑을 지낸
신령윤씨의 시조 윤자임(尹自任)은 〈국조문과방목〉
에 윤신비(尹莘卑)의 아들로서 본관이 파평으로 나타나
있으므로 분적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신령을 관향으로 삼고 있다.
현풍 윤씨
〈국조문과방목〉에는 현풍 윤씨의 시조로 전하는
윤보은(尹輔殷)이 1660년(현종 1)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박사를
지냈으며 본관이 파평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현풍 윤씨도 파평 윤씨에서 분적한 것이다. 〈조선
씨족통보〉에는 현풍 윤씨의 시조를 윤보은이 아닌 윤형(尹衡)으로 전하기도 한다.
야성 윤씨
야성 윤씨도 그 뿌리는 파평 윤씨이다.
시조 윤혁(尹赫)이 본래 파평 윤씨였으나
고려 충숙왕의 부마가 되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에 오르고 야성군(野城君, 야성은 경북 영덕에 있던 지명)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야성을 관향으로 삼아 대를 잇게 되었다고 한다.
해남 윤씨
해남 윤씨는 윤존부(尹存富)를 시조로 삼고 있다.
시조에 대해서는 대략 고려 중엽의 인물로 전해올 뿐 관력(官歷)이나 행적이 전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때문에 윤존부의 8세손이며 고려 공민왕 때 사온직장영동정을
지낸 광전(光琠)을 중시조(中始祖)각주4) 로 삼아 대를 잇고 있다.
광전의 현손 효정(孝貞)이 해남으로 옮겨가 크게 세를
누리면서 비로소 해남을 관향으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해남 윤씨는 중시조 광전의 두 아들 단봉(丹鳳)과 단학(丹鶴)을
파조로 하여 각각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와 소윤공파(少尹公派)의
2대파를 이루고 여기에서 다시 사정공파(司正公派)·집의공파(執義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참의공파(參議公派)·적순공파(迪順公派)·진사공파(進士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정릉공파(定陵公派)·어초은공파(漁樵隱公派) 등으로 분파되어 대를 잇고 있다.
칠원 윤씨
칠원 윤씨의 시조는 신라 때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냈다는 윤시영(尹始榮)으로 전한다.
그러나 아들 황(璜) 이래로 계대를 실전하여 고려초에
호장보윤(戶長甫尹)을 지낸 거부(鉅富)를 중시조로 하여 대를 헤아리고 있다.
해평 윤씨
해평(海平, 경북 선산에 있는 지명)을 관향으로 하는
해평 윤씨는 고려 고종과 원종 때의 윤군정(尹君正)을 시조로 삼고 있다.
1257년(고종 4) 원주의 안열(安悅)이 고성(古城)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권찬(權贊) 등과 함께 토벌에 나서 공을 세우고 우복야(右僕射)를 거쳐,
수사공 상서좌복야 판공부사(守司空 尙書左僕射 判工部事)에까지 올랐다.
그의 손자 석(碩)이 충숙왕 때 원나라의 행성(行省) 설치를 막은 공으로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진 것을 연유로 후손들이 해평을 관향으로 일컬어왔다.
무송 윤씨
무송 윤씨의 시조는 윤양비(尹良庇)로 전한다.
고려 예종 때 등과하여 보승낭장(保勝郎將)·호장동정(戶長同正)을 지냈다 한다.
그의 선대는 후당(後唐) 때 오계(五季)의 난을 피해
우리나라에 와 무송 땅에 정착하여 후손들이 이곳에서 세거하게 된 것으로 전해온다.
그러나 윤양비 이전의 여러 대가 전하지 않아
윤양비를 시조로 하고 무송을 관향으로 삼아 계대하여 왔다.
여주 윤씨
여주 윤씨는 무송 윤씨에서 분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조 윤달신(尹達莘, 또는 尹達)은 무송 윤씨의 시조 윤양비의
후손으로서 조선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충주판관을 지냈다고 한다.
양주 윤씨
양주 윤씨의 시조는 고려시대에 도첨의정승을 지낸 윤숭(尹崇)으로 전한다.
일설에는 고려시대에 판전의시사를 지낸
윤덕방(尹德方)이 시조라고도 하는데 〈만성보〉
에는 윤덕방을 윤숭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기도 한다.
예천 윤씨
예천 윤씨는 고려시대의 추밀원부사 윤충(尹忠)을 시조로 하한다.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예천에 세거하면서 예천을 관향으로 전해오고 있다.
영천 윤씨
영천 윤씨의 시조는 〈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와
같은 문헌에서는 조선 태종 때 등과하여 낙안군수를 지낸 윤무(尹務)로
기록하고 있으나, 그의 선조 윤절생(尹切生, 고려 때 호장을 지냄)을 시조로 전하는 가승이 있다.
해주 윤씨
해주 윤씨는 〈증보문헌비고〉에서 그 선대가 서흥(瑞興)에 오래 세거했다
하여 서흥 윤씨라고도 했다는데 시조가 윤중부(尹重富)로 지중추부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밖의 본관들
한편 조선 태종 때 등과하여 호조참판을 지낸
윤통(尹統)을 시조로 하는 경주 윤씨, 군기감을
지낸 윤번(尹璠 또는 尹蕃)을 시조로 하는 평산윤씨,
고려시대 추밀원부사 윤희관(尹希琯)을 시조로 하는 덕산
윤씨, 중종 때 등과하여 진해현감을 지낸 윤취(尹就)를 시조로
하는 청주 윤씨, 고려시대 합문지후를 지낸 윤유정(尹維禎)을 시조로
하는 기계 윤씨, 대장(隊長)을 지낸 윤세보(尹世寶)를 시조로 하는 고창 윤씨,
전객시령 윤정화(尹挺華)를 시조로 하는 죽산 윤씨 등이 있다.
현황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성씨 및 본관 집계결과에 따르면, 인구수 102만 547명으로 성씨 중에서 인구순위 8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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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성(姓)의 하나. 문헌에 150여 본관이 전하나, 오늘날 계통이
자세히 전하는 본으로는 파평·해남·칠원·남원·해평·무송·함안 등이 있다.
윤씨의 대종을 이루는 파평 윤씨는 고려 태조를
도와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윤신달을 시조로 삼고있다.
그의 4대...
한자가 만들어진 재미있는 원리 손으로
권위(權威)를 나타내는 지팡이를 잡고 있는
형상으로, 권위 있는 사람, 통치자, 지휘자, 관리자를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