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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탄강 1128년 나중에 두번째 경희궁 입구문 興化門 원래 입구에서 흥화문찍고 경희궁내 인증샷들과 동영상 기대하세요[[[[경희궁, 그 외곽길을 걷다.]]]

작성자용연봉강재사랑|작성시간20.05.11|조회수98 목록 댓글 0

개인도보후기 경희궁, 그 외곽길을 걷다.

청파 서상덕 추천 0 조회 182 20.04.13 00:47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카페 도보 10회 이상 참가 우수회원의 개인 도보 여행 사진 올리는 곳입니다.

경희궁, 그 외곽길을 걷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2m 거리 유지를 하며 걸을 수 있는

비교적 한적한 길을 찾아 걷다보니, 우연찮게 조선 5대 궁궐 중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복궁을 2주 남짓 동안 답사, 운이 좋게도 너무나 호젓한 '고궁 걷기'이었기에,

그 매력에 오늘은 5대 궁궐 중, 한 군데 남은 [경희궁]을 마지막으로 찾는다.


[경희궁(慶熙宮)]은 광해군 9년(1617)에 착공, 1620년에 완공,

5대 궁궐 중 서쪽에 위치 서궐(西闕)로 불리며, 흥화문(東-정문), 흥원문(東), 숭의문(西),

개양문(南), 무덕문(北)의 5대문을 두고, 정전인 [숭정전], 편전인 [자정전], 침전, 대비전,

동궁, 궐내각사, 후원 등 100여채의 전각을 건립, 인조(16대)이후 철종(25대)에 이르기까지,

임금들의 사랑을 받은 궁궐이었으나, 경복궁 중건(1865 ~ 1867, 흥선대원군 주도) 당시

상당수 전각이 헐려 자재로 사용되고, 일제강점기 때 또 다시 많은 피해를 입은 궁궐이다.

일제강점기, 전각들은 매각되거나 이전되고, 일본인 중학교(경성중학교)를 세우면서

궁궐의 자취와 향기 마저 잃게 된다.  해방 이후 서울중고등학교가 사용하다가,

1980년 서울고등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후, 1988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현재 흥화문,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을 복원한 상황이지만,

궁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엔 아직 요원하다.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입장료가 없다.


오늘 걷기의 들머리는 구세군회관(흥화문 옛터), 금천교 ~ 서울역사박물관 ~

주차장 ~ 숭정문 ~ 방공호 ~ 운동장 ~ 자정전, 태령전 담장 ~ (산길 숲길 오솔길

걷기) ~ 흥화문 ~ 돈의문 박물관마을 ~ 월암근린공원 ~ 서울역사박물관 어정뜰 ~

성곡미술관을 거쳐, 구세군회관을 날머리로  걷기 마무리.


♣ 조선 궁궐 이야기 ♣


1. 경복궁 (정전 勤政殿) [北闕]

★ 조선 건국(1391년) 후, 1394년 착공 1395년 준공된 조선의 법궁.

(중국 자금성(紫禁城 - 明, 淸의 궁전)은 명나라 영락제가 1406에 착공, 

  1420년에 준공, 경복궁이 자금성을 본따 지었다는 얘기는 터무니 없다.)

★★  임진왜란(1592 ~ 1598)때 燒失된 후,    270여년간 방치되다가,

    흥선대원군에의해 중건(1865~1867)되어, 1868년 고종 이어(移御).

★★★    1910년 일제 강제 병합 후, 상당수의 전각을 허물고, 1917년

                창덕궁 화재로 다시 일부 전각을 허물어 창덕궁 재건에 사용.

★★★★    또한, 일제는 정문인 광화문을 옮기고, 근정전 앞쪽에 조선

      총독부 청사를 건축, 궁궐의 위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만행을 자행.

(해방 후, 조선총독부 건물은 중앙청 청사로, 그후 한동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용하다가, 1996년 완전 철거.)


2. 창덕궁 (정전 仁政殿) [東闕]

★    1404년 태종이  건립한 제2의 궁궐, 조선 전기 경복궁과 양궐 체제.

  임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된 조선 후기에는 정궁으로 경희궁과 양궐체제.

★★ 임진왜란, 인조반정 이괄의난으로 소실되었으나, 최우선적으로 재건

★★★  건국 초기부터 그 멸망까지, 조선시대 내내 존재했던 유일한 궁궐.

★★★★ 5대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1997)


3. 창경궁 (정전 明政殿) [東闕]

★ 1418년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상왕의 거처를 위해 건립.

★★ 1483년~1484년, 성종이 궁역을 크게 확장, 수강궁에서 창덕궁으로.

★★★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으로 화재 피해를 입었으나 광해군 때 복구.

★★★★일제강점기, 궁내에 동, 식물원 조성, 창경원으로 유원지화로 수난.

★★★★★  1983~1986년 서울대공원 조성과 함께, 일제 잔재 청산, 복원.


4. 덕수궁 (정전 中和殿) [西闕]

★ 임진왜란(1592~1598) 후 몽진에서 돌아온 선조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소실되어 월산대군(성종의 형)의 저택을 개조하여 [정릉행궁]으로 사용.

★★광해군 원년(1609) 창덕궁 중건 후 창덕궁으로移御하면서  경운궁으로 승격.

★★★     인조반정(1623) 후, 인조는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하고,  원 주인에게

 돌려주어,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후, 1897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궁시까지

       274년간 궁궐의 기능이 없었음. 1904년 덕수궁 화재, 1907년 고종 강제퇴위.

     (1907년 순종황제는 창덕궁으로 옮기며,  경운궁에 머무를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경운궁을  덕수궁(德壽宮)으로 궁호를 지어 올린다.)

★★★★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덕수궁의 권역은 1/2로 축소 되고, 구름다리로

        연결되던 경희궁과의 거리가 한없이 멀기만 하다. 언제쯤이나 복원될까 ???


5. 경희궁 (정전 崇政殿) [西闕]

★ 광해군 9년(1617)에 착공하여 1623년에 완공된 이궁(離宮)으로 조선 후기

      창덕궁과 양대 궁궐 체제로 제2의 궁궐로서의 보완 기능을 일정 부분 담당.

★★ 해당 부지는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원종으로 추존 - 광해군의 이복동생)의

      저택이었으나, 王氣가 흐른다 하여 몰수하고, 별궁인 경덕궁(慶德宮)을 건립.

★★★  1760년(영조36년), '慶德'이 정원군의 시호인 '敬德'과 발음이 같다하여

    경희궁으로 고침. 1865년 경복궁 중건 당시 상당수 전각을 헐어 자재로 사용.

★★★★ 일제 강점기, [흥화문]은 이토 히로부미 사당인 장충동 박문사로 이전,

  정전인 [숭정전]은 일본사찰인 대화정조계사에 매각, 현재의 위치(동국대학)로

    이건되어 불교 법당 [정각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射亭인 황학정은 사직단

         위로 移建, 왕과 왕비의 침전이 있던 자리에는 지하 전신국 겸 방공호 설치.

★★★★★ 광복 후에도  서울고등학교의 존재로 잊혀진 궁궐이었으나,  1980년

               서초동으로 학교가 이전 후, 그나마 일부 복원, 2002년 궁궐로서 개방. 

★★★★★★ 서울시는 경희궁터가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경희궁터에 서울시

    교육청(1981), 서울역사박물관 등을 건립, 경희궁의 복원을 어렵게 하고 있다.


<< [숭정문] 모서리에서 지금까지 390여년간 영욕의 현장을 지켜본 느티나무 >>

빨간 점선은 원래의 경희궁 터, 거의 반 이상 줄어들었다.

서궐도

조선의 5대 궁궐

오늘의 경희궁 주변길 걷기 출발점,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 있었던 구세군회관

구세군회관 건물 모퉁이의 [흥화문 터] 표지석

[禁川橋] 궁궐 출입시, 몸과 마음을 깨끗히 정화하고 잡귀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금천이 흐른다. 


금천교에 서면, 2002년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이 앞을 막고 있다.

2025년 이전계획이 있다고는 하나, 어찌 이렇게들 단견(短見)일까!

운현궁에서 기증한 석물들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의 묘소에서 옮겨온 문인석

코로나19로 박물관은 어차피 휴관, '기쁨과 행운을 준다'는 해치, 해돌이와 해순이

[광화문]의 콘크리트 구조 부재

[광화문]의 추녀와 선자연

경복궁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부재

여장(女墻 - 성위에 덧쌓은 낮은 담장)과 우물천장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가는 길, 2016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이 있던 자리.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




명자나무 꽃


경희궁 숭정문(崇政門)으로 오르는 길, 왕이 걷는 길과 신하가 걷는 길이 구분되어 있네.

종지나물 꽃

수령 390년의 느티나무, 둘레 380cm, 높이 19m, 뒤의 전각은 숭정전 권역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길

숭정문 앞 발굴조사, 공사 진행이 엄청 더디다. 좌측  '서울특별시교육청' 건물도 경희궁터.


봉황이 새겨진 답도.

코로나19로 인해 전각 내부 출입금지이니, 좌우로 그리고 마당으로 오가며 걷기 운동


숭정문 우측으로 방공호 지나서 운동장으로 걸을 생각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경성 중앙전신국 피폭에 대비, 지하 통신시설 구축 및 방공호 건설.(寢殿 권역)

정전인 [숭정전] 권역


일제가 일본 사찰에 매각, 현재 동국대 법당으로 사용중인 원래의 [숭정전]건물.

※ 이전 복원을 검토했으나, 건물이 낡고 내부에 불교식 치장 등 훼손으로 포기.

옛 서울고등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길

편전인 자정전(資政殿)의 회랑

자정전

운동장의 은행나무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


자정전과 태령전의 뒷담

편전인 자정전(資政殿) 권역

영조의 어진을 모신 태령전(泰寧殿) 권역


쉼터에서 체조도 하고 ~~~, 휴식도 즐기고 ~~~.

자정전 화계(花階), 태령전 서암(瑞巖)과 화계(花階), 이 서암에 왕기(王氣)가 서려 궁터로~~~.

경희궁 궁내 산길 숲길, 호젓한  산책로가 이리저리 연결, 멋진 걷기 코스가 재미를 더한다.






길가의 민들레

태령전 돌담길

[태령전]에서는 영조 어진(御眞)과 서암(瑞巖)을 둘러보아야 하는데 ~~~.


사진 가운데, 추녀 아래로 돌출해 보이는 서암 아래 암천(巖泉)이 흘러나오는데 ~~,

원래 왕암(王巖)으로 불리다가, 숙종이 '상서로운 바위'라 하여 서암(瑞巖)으로 명명.


태령문

따사로운 봄햇살에 눈이 부시다. 이 또한 크나큰 행복 !!!

화계(花階)와 그 아래로 서암의 일부가 보인다.

달콤한 휴식후, 다시 길을 나선다.

한적한 길을 떠나는 아쉬움에, 다시한번 태령전 담장길도 뒤돌아보고 ~~~.

[영렬천(靈冽泉)], 바위틈에서 물이 나오며 늘 마르지 않고 매우 차가우며 '초정'이라고도 불린다.

사진 가운데 새겨진 '靈冽泉' 글씨는 선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렬' 字는 '찰렬'.

흥화문(원래 東門이지만, 현재는 200여m 떨어진 위치에 南門으로 복원)으로 가는 길

경희궁터 발굴조사 범위가 매우 넓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곳곳에 산길 숲길이 유혹한다.

서울특별시 교육청 청사 입구, 왜 경희궁 터에 이런 대형 건물들을 건축했을까?????

공연히, 발굴현장을 흘깃거려본다.

우측, 멋쟁이 모과나무

호젓한 산책로는 계속 손짓을 해대고 ~~~, 행복한 비명 !

라일락 향이 그윽하다. 꽃은 짙은 자색, 연보라색, 흰색이며 꽃말은 '친구의 사랑' '우애'

라일락은 흰꽃 보다 짙은 자색이나 연한 보라색이 더 흔하다.

나무가지가 묘하게도 다른 나무가지를 관통, 이런 것도 연리지(連理枝)일까.


[수수꽃다리] '조선정향나무'라고도 하며, 라일락과 유사하나 키가 작고 북한지역에 많이 자생.

1947년 군정청 근무 미국인이 가져가 개량한 '미스킴 라일락'을 전세계에 수출. 우리도 역수입.

정원 관상용으로는 키가 작고 수형(樹形) 만들기가 라일락보다 좋아 인기.

흥화문 부근에 있는 '서울중고등학교 터' 표지석

쉼터 가는 길

공중엔 벚꽃과 구름과 파란 하늘과 ~~~.

땅엔 민들레 냉이 꽃다지 제비꽃 ~~~.

까치도 날고 ~~~.

새문안로에 접해, 남향으로 복원된 [흥화문(興化門)], 언제쯤 제자리를 찾아갈까.


수령 200년이 넘는 [팽나무], 종로구청은 어이하여 소재지를 '경희궁공원'이라 표기 했을까.

일제에 의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공원화한 일 때문일까,  '경희궁공원'의 '공원'이 거슬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예방수칙 안내 현수막

흥화문에 도착하니 교통순찰대가 도열, 무슨 행사가 있나?

단층 정문이다. 이궁(離宮)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

현판은 당대의 명필 [이신]의 글씨로 '글씨가 빛을 발한다' 하여 '야주개(夜照峴)대궐'이라 불렀다.


※ 흥화문의 수난,  1932년 일제가 장충동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쓰기 위해 뜯어간다. 광복 이후 박문사는 철거되고, 그 자리에 영빈관에 이어,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계속 사용되다가, 1988년 경희궁 복원 사업으로 옮겨 왔으나 원래의 자리에는

    구세군빌딩이 자리잡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현재 위치에 남향(원래는 동향)으로 이전 복원.


※ 5대 궁궐 정문(正門) 이야기 ※

5대 궁궐의 정문은 경복궁(光化門), 창덕궁(敦化門), 창경궁(弘化門), 경희궁(興化門)인데,

[덕수궁(경운궁)]은 [大漢門]으로 "化"字 돌림이 아니다.  원래, 중화문 남쪽 (현재 서울시

서소문별관 자리)에 있던 [仁化門]이 정문이었으나 헐린 후, 東門이었던 경운궁의 大安門이

정문 역할을 하다가, 후에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 [인화문]이 헐린 연유는 확실하지 않다.



경희궁의 정문이 이궁(離宮)이라 단층일 수도 있겠지만, 창덕궁을 좋아하지 않았던

광해군이, 길지(吉地)라는 인왕산 자락에 '인경궁'을 건설하던 중, 이복동생 정원군

(인조의 아버지, 원종으로 추존)의 집에 왕기가 서린다는 얘기에 이를 제압하기 위해

      '경덕궁'을 짓기로 하고 동시에 두 곳의 궁궐 건립을 추진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물자도

    부족하고 ~~~, 정비가 아닌 후궁(공빈 김씨) 태생인데다, 그것도 차남으로 형 임해군이

있고, 나이는 어리지만, 정비(인목왕후) 태생인 동생 영창대군도 위협이 되고 ~~~,

(영창대군, 임해군 모두 각각 강화도 유배 후 죽임을 당함.) 어쨌거나 경덕궁 건립을

서둘러 1620년 완공은 하였으나, 경덕궁으로 이어(移御)하지 못한 채, 인조반정으로

 1623년 광해군은 쫓겨나고, 원래의 주인인 정원군의 장남인 인조 차지가 된다. 거참!


또 하나,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왕기(王氣)가 서려있다는 경희궁의 거의 대부분 전각을

 헐어 경복궁을 중건한 일로 인하여 조선, 대한제국의 기(氣)가 쇠(衰)하였을까. 경희궁

몇 안되는 전각 외곽길을 이리저리 걸으며, 논리적이지 못한 다소 엉뚱한 생각까지 ~,



어쨌거나, 코로나19가 하루속히 사라지기를 ~~~ !!!



경희궁 옛터인 주변 마을길을 걷는다. 궁궐이 제 모습으로 복원되는 그날을 꿈꾸며,  ♥



[돈화문 박물관마을 걷기], 흥화문 옆 [교통순찰대] 골목으로 들어선다.

코로나19로 작가갤러리 등 거의 휴관 중

발길 닿는대로,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 좌측은 이해로 골목놀이, 우측은 카페 '다화(茶花)'


산아제한 포스터 '1974년은 임신 안하는 해'  73년 90만, 75년 79만명 출산.(작년 30만출산)

생각나는 표어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선 선 선", '도시는 선(線)이다' 옛날에는 표어 짓기를 자주하곤 했다.

'맨발의 청춘'일 때 ~~~ ~~~, 그때가 좋았지.

'미워도 다시한번' 눈물도 쏟아내고 ~~~.

비좁은 골목길안, 여관, 여인숙도 ~~~.

'고샅고샅' '시골마을의 좁은 골목길마다'라는 뜻이라네. 참 정감어린 아름다운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사. 본명 김점동(1877 ~ 1910), '에스더'는 세례명, 남편 성이 朴씨


태극기 깃대를 잡는 포즈를 취하라는데, 웬지 쑥스러워서 ~~~.

송월길을 따라, 월암근린공원에서 휴식

다시 새문안로 도로 따라 '느티나무길' 걷기.

느티나무 쉼터


향나무와 비슷한 '눈향'과 어우러진 쉼터 의자.


흥선대원군의 장남 흥친왕(고종의 형)의 신도비.

서울역사박물관 뒤뜰

가을철, 탐스런 감을 주렁주렁, 풍성함을 선사하는 감나무 세 그루,

'어정(御井) 뜰'  고려시대의 오층 석탑으로 분위기를 살리고 ~~~.

경희궁 창건 시, 광해군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 어정(御井).

다시 되돌아 나간다.

흥선대원군의 손자, 증손 등의 신도비.

콩배나무 꽃, '장미과 배나무속'으로 가을에 돌배보다 작은 1.5cm전후의 열매가 열린다.


[전차 381호] 1930년경부터 1968년 11월까지 청량리 ~ 서대문 간 운행한 전차.

(전차 최초 운행은 1899년 5월 17일이며 1960년대 초반까지는 대표적 교통수단.)



금천을 건너며~~~, 정치1번지라 그런가, 4.15총선 출마 후보자가 11명이나 되네.

경희궁길로 접어들어 '성곡미술관'까지 갔다오기로. 여기도 예전엔 경희궁터이었는데 ~~~.


특이한 돌담이 눈길을 끈다.


[성곡미술관], 미술관은 휴관하더라도 조각공원과 카페는 열었으리란 짐작이 어긋났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숲과 조각 작품의 조화, 카페에 앉아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면!  

후문 입구, 느티나무가 서있는 '카페 느티'에서 차 한잔. 내부 인테리어가 다양한 북카페.

[이야기를 잇는 한글 가온길] '가온'은 '중심, 가운데'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이란다.

광화문에서 한글학회, 주시경집터 등 한바퀴 돌고, 집현전이 있었던 경복궁 수정전까지 걸어야지.

지도를 따라 걸으며, 열여덟 군데의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 또한 쏠솔할거고 ~~~.

새문안 교회


내가 좋아하는 암송 詩, 박목월님의 <나그네>. 광화문역 부근 로얄빌딩 앞.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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