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드리는 예배 때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펌글(바비킴)
저는 1991년부터 예수전도단에서 찬양인도를 시작 했습니다.
악보를 외운곡이 없어서 여러 찬양집을 펴놓고 인도하기 시작 했습니다.
처음엔 어설프고 힘도들고 매끄럽지도 못하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기름부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
오늘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찬양인도를 할때 가끔 회중들이 깊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을 볼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멘트를 할까? 교제를 할까? 기도를 할까? 말씀을 볼까? 등등..
무엇인가 회중들에게 강조하게 됩니다.
결국 말이 많아지고 찬양이 지속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 혼자 예배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함께 예배하게 할 것인가라는 두가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찬양 인도자들은 사람앞에 하나님 앞에 항상 깊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싶어합니다.
자기 자신도 지성소에 들어가고 함께하는 회중들도 함께 지성소에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늘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성령충만하고 거룩해야 할 것입니다.
찬양인도자는 하나님과 회중들 사이에서서 중보자의 역할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만큼 찬양인도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며 뼈를 깍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때문에 예배가 될 수 있고 한 사람 때문에 예배가 무너질 수 도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요 그 한 사람이 여러분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
회중들이 예배 가운데 반응하는 것이 밋밋하고 무뎌질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찬양인도자 자신이 너무 은혜를 받아 회중들의 상태를 보지 못하고 혼자 앞서 나갈때도 있습니다.
회중들은 멍하니 그 찬양인도자를 볼때가 있죠.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하고 말이에요.....
이럴 때 찬양인도자는 배가 산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더욱 더 긴장하여 방향키를 잡아야 하는 중책에 빠지게 됩니다.
저 역시 회요모임과 많은 집회를 인도하면서 그리고 책과 feed Back을 통해 얻은것, 무엇보다 말씀을 보며 기도하면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이 있습니다.
“예배는 함께하는 것 입니다”
예배때 회중들의 반응이 밋밋할 때, 그 때에는 찬양인도자가 회중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예배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더욱더 열정을 다해 온힘과 뜻과 정성으로, 그 예배의 현장 속에서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예배를 풀어주시도록 내어 드리고, 인도자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본인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성령님이 예배를 주관하시도록, 준비한 찬양곡을 꼭 해야겠다라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거룩함과 겸손함 속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님이 새 찬양(방언)을 주실 것이며 내면 깊은 부분에서 영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속에서 치유와 회복과 예언이 일어날 것이며 꿈과 환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요. 겸손이 있을때 성령님이 일 하십니다.
찬양인도자는 자신이 지성소로 들어가기전에 회중들의 반응를 살펴보고, 회중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 자신이 깊이 들어가고 싶더라도 회중들이 함께 반응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있는 그리고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찬양을 인도한다는 것은 개인예배를 드리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개인 예배가 무너지게 된다면 그 또한 회중 예배 때 흘러나갈 것이 없을 것입니다.
회중 예배와 개인 예배는 비례 합니다.
개인 예배가 부흥 될 때 회중 예배는 그야말로 성령의 역사로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면 성령님이 쉬고 계시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님은 일을 하십니다.
겸손함과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산 제사로 자신을 드리면서 회중들이 함께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영적 예배인도자가 될 것입니다.
영적예배 회복과 부흥을 위해 헌신하는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넘치길 기도 합니다.
저는 1991년부터 예수전도단에서 찬양인도를 시작 했습니다.
악보를 외운곡이 없어서 여러 찬양집을 펴놓고 인도하기 시작 했습니다.
처음엔 어설프고 힘도들고 매끄럽지도 못하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기름부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
오늘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찬양인도를 할때 가끔 회중들이 깊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을 볼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멘트를 할까? 교제를 할까? 기도를 할까? 말씀을 볼까? 등등..
무엇인가 회중들에게 강조하게 됩니다.
결국 말이 많아지고 찬양이 지속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 혼자 예배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함께 예배하게 할 것인가라는 두가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찬양 인도자들은 사람앞에 하나님 앞에 항상 깊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싶어합니다.
자기 자신도 지성소에 들어가고 함께하는 회중들도 함께 지성소에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늘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성령충만하고 거룩해야 할 것입니다.
찬양인도자는 하나님과 회중들 사이에서서 중보자의 역할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만큼 찬양인도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며 뼈를 깍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때문에 예배가 될 수 있고 한 사람 때문에 예배가 무너질 수 도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요 그 한 사람이 여러분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
회중들이 예배 가운데 반응하는 것이 밋밋하고 무뎌질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찬양인도자 자신이 너무 은혜를 받아 회중들의 상태를 보지 못하고 혼자 앞서 나갈때도 있습니다.
회중들은 멍하니 그 찬양인도자를 볼때가 있죠.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하고 말이에요.....
이럴 때 찬양인도자는 배가 산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더욱 더 긴장하여 방향키를 잡아야 하는 중책에 빠지게 됩니다.
저 역시 회요모임과 많은 집회를 인도하면서 그리고 책과 feed Back을 통해 얻은것, 무엇보다 말씀을 보며 기도하면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이 있습니다.
“예배는 함께하는 것 입니다”
예배때 회중들의 반응이 밋밋할 때, 그 때에는 찬양인도자가 회중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예배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더욱더 열정을 다해 온힘과 뜻과 정성으로, 그 예배의 현장 속에서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예배를 풀어주시도록 내어 드리고, 인도자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본인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성령님이 예배를 주관하시도록, 준비한 찬양곡을 꼭 해야겠다라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거룩함과 겸손함 속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님이 새 찬양(방언)을 주실 것이며 내면 깊은 부분에서 영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속에서 치유와 회복과 예언이 일어날 것이며 꿈과 환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요. 겸손이 있을때 성령님이 일 하십니다.
찬양인도자는 자신이 지성소로 들어가기전에 회중들의 반응를 살펴보고, 회중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 자신이 깊이 들어가고 싶더라도 회중들이 함께 반응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있는 그리고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찬양을 인도한다는 것은 개인예배를 드리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개인 예배가 무너지게 된다면 그 또한 회중 예배 때 흘러나갈 것이 없을 것입니다.
회중 예배와 개인 예배는 비례 합니다.
개인 예배가 부흥 될 때 회중 예배는 그야말로 성령의 역사로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면 성령님이 쉬고 계시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님은 일을 하십니다.
겸손함과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산 제사로 자신을 드리면서 회중들이 함께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영적 예배인도자가 될 것입니다.
영적예배 회복과 부흥을 위해 헌신하는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넘치길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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