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호흡이 약해지면 건강이 약해지고, 호흡이 멈추면 생명이 끝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호흡처럼 중요한 것이지만, 그 기도는 어디까지나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이방인들이나 이교도들이 하는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1세기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이고 영성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도 영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은 불신자들도 영성의 발전이나 영혼의 깨어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도 요가나 명상, 호흡 기도, 마음 수련 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혼합주의 영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타종교의 영성을 많이 수용해서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로마 카톨릭의 혼합주의 영성이 개신교에도 많이 수용되어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신교에 속한 많은 사역자들과 단체들이 영성을 외치면서 다양한 영성 훈련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시하는 영성 훈련 프로그램을 유심히 살펴보면 카톨릭이나 타종교의 영성 훈련 프로그램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관상 기도와 호흡 기도입니다. 관상 기도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이미 많은 비판의 글이 올라와 있기 때문에 저는 호흡 기도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 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박해와 핍박 때문에 순교하거나 카타콤에 숨어서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의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중동의 사막 지역으로 가서 기도와 금식과 노동을 하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 로마 카톨릭이 세속화의 길로 접어들어 부패하고 타락하자 영적인 갈망을 품은 많은 성도들이 사막의 수도원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막은 영성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거의 도시처럼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막에 살던 성도들 가운데 지도자 격이었던 사막 교부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 때문에 다양한 기도훈련 방법들을 연구하고 적용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사막 교부들은 힌두교의 구루(영적 스승)들로부터 매우 놀랍고 효과적인 기도 훈련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막 교부들은 몇 년에 한 번 정도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체험했는데 힌두교의 구루들은 기도를 할 때 마다 부처도 만나고 예수도 만나는 등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힌두교의 구루들은 요가를 수행할 때 사람의 몸에 있는 차크라(생명 에너지 집적소)를 열고 쿤달리니(원초적인 생명 에너지)가 깨어나도록 하기 위해 호흡 기도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또한 만트라(기도나 명상 때 외우는 짧은 단어나 주문)를 소리 내어 반복하거나 호흡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반복함으로써 영계가 열리고 황홀경 속에 들어가는 것을 구루들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힌두교의 구루들로부터 호흡 기도를 배운 사막교부들은 "끼리에 엘레이손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과 같은 예수 기도를 만트라로 사용하면서 호흡기도를 함으로써 예전에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영성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막교부들은 예수 기도와 호흡기도를 통합해서 사용함으로써 기도를 할 때마다 예수를 만나게 되고 놀라운 황홀경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몇 년에 한 번 정도 하나님을 체험했는데 호흡 기도를 사용한 후부터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예수를 만날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 가지 의구심이 있는데, 그것은 힌두교의 구루들이나 사막 교부들이 호흡 기도를 하면서 만났던 예수가 과연 우리가 믿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미혹케하는 영을 만났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 등장하는 거인처럼, 우리가 원할 때 아무 때나 불러들일 수 있는 그런 이교도적인 신이 아닙니다.)
사막 교부들이 힌두교의 구루들로부터 배운 호흡기도는 예수기도와 결합되어 발전되었고 이것은 카톨릭의 수도승들과 신비주의자들에게 계속해서 전승되었습니다. 이러한 호흡기도는 관상기도와 함께 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테레사, 성 프란시스 등 중세 시대의 유명한 수도사들을 통해서 계속 발전되었고 [하나님의 임재 연습]으로 유명한 로렌스 형제, [순례자의 길]에 등장하는 러시아 청년 등을 통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리차드 포스터, 릭 워렌, 헨리 나우웬과 같은 분들이 관상 기도와 함께 호흡 기도를 강조하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미국 스프링아버대학교 영성신학 교수이고 레노바레 운동의 창시자인 리차드 포스터는 자신의 저서 [기도 : 마음의 진정한 집을 찾아서]에서 호흡 기도를 권장합니다. 그는 토마스 머튼으로부터 호흡 기도를 배웠는데, 토마스 머튼은 로마 카톨릭의 신부였고, 선불교에 심취했던 사람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선불교에서 호흡 기도를 배웠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습니다. 선불교에 심취했던 머튼은 "나는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던 종교 다원주의자였습니다.
토마스 머튼의 열렬한 제자였던 리차드 포스터가 쓴 [기도]라는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유명해졌고,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책이 팔렸습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그러한 배경을 잘 모른채, 영적인 성장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리차드 포스터의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새들백교회 담임 목사인 릭 워렌은 자신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 11일차 "하나님의 친구 되기"에서 하나님의 친구가 되려면 호흡 기도를 해야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38일차 "월드 크리스찬 되기"에서 호흡기도 훈련을 통해서 세상을 움직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릭 워렌도 동성애를 지지하고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신이라고 주장하는 크리슬람 운동(기독교와 이슬람교를 통합하는 운동)에 앞장서는 종교 다원주의자입니다.
예일대와 하버드에서 20년동안 영성 신학을 가르쳤던 헨리 나우웬은 하버드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데이 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장애우들을 돌보다가 세상을 떠난 아름다운 인격과 지성, 그리고 영성을 소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영적 발돋음]에서 호흡기도를 '마음의 기도'라고 소개하며 기독교인들에게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성의 발전을 위해 호흡기도를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헨리 나우웬은 기독교인이 아니고 카톨릭 예수회 신부이고 동성애자이며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자였습니다.
호흡 기도의 역사적인 기원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힌두교의 구루들에 의해서 최초로 사막 교부들에게 소개되었고, 그것이 로마 카톨릭의 신비주의 수도사들을 통해서 발전되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 뉴에이지 영성가나 종교 다원주의자들에 의해서 개신교 안에 침투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영성 사역자들이나 단체들이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른 채 호흡 기도를 성도들에게 추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많은 성도들이 무분별하게 비성경적이고 이교도적인 영성에 휩씁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너무 지나쳐, 성경을 벗어난 이교도적인 영성 훈련 방법을 수용했던 사막 교부들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호흡과도 같이 중요한 것이지만, 성경 말씀을 벗어나 타종교의 기도 훈련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악한 영의 역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호흡처럼 중요한 것이지만, 호흡으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부르면서 호흡으로 간절히 기도해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 역사하게 됩니다. 호흡 기도를 통해서 체험한 영적인 경험은 마귀의 속임수이고 기만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호흡 기도와 같은 비성경적이고 이교도적인 기도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호흡으로 기도하지 않고, 우리 말로 기도하거나 방언으로 기도해도 충분히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호흡기도를 강조하는 분들은 창세기 2장 7절과 요한복음 20장 22절 말씀을 성경적 근거로 인용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20:22)
그런데 위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이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숨(호흡)을 내보내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인간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와 충만케하시는 사역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위의 성경구절은 호흡 기도의 성경적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성경 해석은 매우 교묘하게 성경을 이용해서 타종교의 영성을 끌어들이는 술책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고후6:14-16)
성경적으로 검증해보고, 교회사를 통해 살펴봐도 호흡 기도는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매우 교묘하고 이교도적인 영성 수련 방법입니다. 그러한 기도훈련 방법은 거듭난 그리스도인,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헛된 속임수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8)
교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열매를 살펴봐도 처음에 호흡 기도가 힌두교와 카톨릭을 종교 다원주의적으로 혼합했던 것처럼 호흡 기도를 강조했던 토마스 머튼, 헨리 나우엔, 리차드 포스터, 릭 워렌 등의 영성가들이 대부분 종교다원주의자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레이 윤겐은 자신의 저서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라는 책에서 관상기도나 호흡기도는 모두 기독교와 비기독교를 혼합한 뉴에이지적인 기도 방법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기도를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호흡기도는 시작도 잘못되었고 그 열매도 매우 잘못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호흡기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성가들이었고 아름다운 인격과 영성을 소유했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동성애와 종교 다원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비성경적이고 위험한 호흡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이교도적인 관상기도나 호흡기도를 지속적으로 하면 악한 영들에게 공격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과 교회사를 통해서 분명하게 검증된 기도의 방법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계신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1-22)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