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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스크랩] 내 인생의 지우개

작성자카일룸|작성시간16.10.13|조회수47 목록 댓글 0

                   내 인생의 지우개(51:9~19)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이도록 방치한 후 나단이 찾아와서 그의 죄를 지적할 때 자신의 죄를 아파하며 기도한 회개시(悔改詩)입니다.

이번 주 제자훈련 큐티의 본문이기도 하며 금주에 있는 대속죄일을 앞두고 이 시를 깊이 묵상하며 설교 준비를 하다가 다윗의 마음을 생각하며 시를 지어봤습니다.

 

-가위와 지우개-

 

내 마음 한 켠에 지우개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슬픈 마음, 미워하는 마음, 나쁜 생각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지우개.

 

철없는 아이가

장난치며 제멋대로 그린 낙서처럼

내 마음의 하얀 도화지 위에는 지워 버리고 싶은

낙서들이 가득하기만 하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날들보다 지은 죄들이 더 많고 많은데……

 

       내 마음과 내 영혼의 노트에 가득 찬 죄악들을

                 그리고 상처들을

지우개 하나 있어 다 지워버렸으면 좋겠다.

 

나에게 가위 하나 있었음 좋겠다.

가위로 오려내고 싶은 일들과 기억들이 너무나도 많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과 날들 그리고 잘못된 인연들

싹둑 싹둑 다 잘라내고 도려 낼 수만 있다면..

나에겐,

정말 잘라내고 싶은 날들과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 마음의 지우개,

내 마음의 가위 하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우리에게는 모두 지우고 싶은 일들이 많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가위로 싹둑 오려내고 잘라내고 싶은 사건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다윗도 그의 생애 가운데 밧세바와의 사건은, 정말로 지우고 싶고 오려내고 싶었던 죄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그런 지우개와 가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루 하루 살아갈 때 후회 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의 더럽고 어두운 부분을 지우개 보다 더 깨끗하게 지워 주셨고, 가위보다 더 확실히 도려내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하여 지워야 할 죄들이 있고 오려내야만 할 일들을 계속하기에 거기에서 우리는 절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복되어 짓는 죄는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어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 인간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아셨고, 우리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인간들은 역사이래로 계속하여 스스로 구원 받는 길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 종교요, 인본주의 철학입니다. 세상의 종교나 철학이나 가르침은 지식과 윤리와 도덕에서 머무릅니다. 나를 알고 선한 행동과 구제를 통하여 죄를 해결할 수 있고, 천국에 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본인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완벽하게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지은 죄보다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또 참선을 했다고 좋은 세상에 갈 수 있다고 자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인정해 주어도 자신 안에 얼마나 많은 죄가 있고 무기력한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사실은 그 율법대로 살지 못할 것임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인간의 노력과 방법으로는 구원 받을 자가 없다는 인간의 한계성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알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줄 생각하고 율법을 지키려 몸부림쳤습니다.

번번히 무너지는 자신들을 보면서도 그들은 율법에 구원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해야 할 것은 자신의 한계성이었습니다. 자기 자신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주 중에(12 혹은 13) 대속죄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속죄일을 제정하신 이유는 율법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와 무기력감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용서만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시대에 유대인에게는 속죄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큰 제사장이 되시고, 단번에 자신을 대속양의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고백을 통하여 죄의 원인과 죄의 아픔과 회개의 교훈을 받습니다.

       첫째: 새롭게 창조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10)

다윗은 자신의 죄를 지워 달라고 간구하며 울부짖었습니다.

1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9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다윗은 계속하여 죄를 지워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 만이 내 안의 죄와 죄책감을 지워 주시는 지우개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특별히 다윗은 죄의 근원과 원인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간구하기를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세요 하면서 애원했습니다.

20절을 봅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20).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 <창조>는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히브리어 <바라>입니다.

<바라>라는 동사는 단순히 만들다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만들다라는 의미는 이미 존재해 있는 재료를 변형시켜 무언가를 만든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창조<바라>는 전무한 상태에서 존재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인간과는 무관한 단어로 창조 즉 <바라>는 주어가 하나님 일 때만 쓰여지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바라)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윗도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윗의 이 간구에서 한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밧세바를 범한 죄는 우발적으로 저지른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인을 했기에 살인자가 아니라 살인자이기 때문에 살인자라는 말이 있듯이 다윗의 이 말은 내가 본래 음란한 자이므로 음행을 저질렀다는 말입니다. 내가 본래 살인자이기에 우리야를 죽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런 죄악으로 가득 찬 마음을 완전히 다시 창조하고 싶다는 절규입니다. 마치 컴퓨터를 다시 포멧을 하듯이 아담의 죄로 인한 죄악 된 마음이 아닌 새로운 마음으로 창조하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태어날 때부터 내 마음 속에는 음란이 있었고 살인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 고백은 우리의 고백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내 마음을 짓눌러도 그 때뿐이고 다시 고개를 쳐드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매만 보고 판단합니다. 가지만 보고 판단합니다. 가지를 아무리 자른다 해도 원 뿌리가 있으면 언젠가는 또 싹이 나고 가지가 자라고 열매가 맺히듯이 우리 안에 죄의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그 뿌리는 곧 싹을 틔우고 가지가 자라며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번번히 지었던 죄를 반복하게 됩니다. 내게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 뿌리는 뽑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종교와 사람들은 이것을 극복해 보려고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며 도를 닦으며 수행을 합니다. 그러한 것으로 죄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으로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억누를 뿐입니다. 다만 감추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자신의 무기력감과 인생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 했습니다. 우리는 죄의 뿌리를 뽑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가 장차 변화된 몸으로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영화의 단계로 들어가 그 때에 그 죄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제 아무리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죄의 뿌리는 그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죄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을 구해야 하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지금 얼마나 괴로웠으면 하나님!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라고 기도했겠습니까? 다윗은 우발적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간음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간음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다시 창조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둘째: 정직한 영을 새롭게

10절에서 다윗은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 라고 정직한 영을 구했습니다.

정직한 영이란? 하나님의 성결한 영 즉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올 때만 나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새로운 마음이란?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청결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 즉 신의 성품이며 청결한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팔복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그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58)라고 했습니다.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청결한 마음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영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을 날마다 인정하고 환영하고 의지하고 내 마음의 중심에 거하도록 구해야 합니다. 성령이 일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뿌리가 활동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가 잠시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갖지 못하고 나태해 있을 때 마귀는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음란의 뿌리를 치솟게 함으로 그는 거기에서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있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고 성령님을 모셔야 할 이유와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하나님의 택한 자를 미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청결해야 합니다. 마귀가 나를 충동질하고 죄를 지어 마음껏 나를 유린하도록 길을 열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 하나님과 늘 교제해야 합니다. 마귀가 오는 길을 차단해야 합니다.

                  셋째: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11)

11절에서 다윗은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11)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이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고 내게 있는 성령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죄가 가져오는 두 가지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쫓아내시고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고, 가인이 쫓겨났습니다. 죄는 항상 우리가 자리한 곳에서 쫓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난 이유가 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의 삶의 장막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높은 곳에서 끌어내림을 당하게 됩니다.

쫓겨난 자의 특징은 유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는 결국 삶의 자리를 빼앗고, 유리 하며, 방황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는 사울 왕의 비극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세운 왕이었고, 능력 있는 왕이었지만 그가 거듭된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고 그로 인하여 그의 집은 한 순간에 무너지고 그의 왕위를 다윗 자신에게 주신 것을 그는 직접 체험한 자입니다.

죄를 짓는 자의 종말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죄의 종말은 하나님 앞에서의 추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파괴력을 올바로 알고, 죄를 짓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늘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항상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는, 죄를 지으면 성령 하나님을 거두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쫓겨남의 원인은 죄이며, 죄는 결국 하나님과 나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성령의 떠남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삶이 필요합니다.

항상 강조하는 말씀이지만 회개는 내가 지은 잘못을 단순히 나열함에 있지 않습니다. 죄가 가져오는 결과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죄의 결과를 내가 안 것만큼 우리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자기 반성과 상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16,17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돈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함 받는데 소나 양으로 번제를 드려서 될 것 같으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은 죄를 헌금을 함으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돈으로 드리기만 하면 해결될 죄라면 부자들이 천국에 제일 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은 그러한 헌금이나 제물로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상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상한 마음이란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아파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죄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고 근심시키며, 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 알고 그럼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 아파하는 아픈 심정을 말합니다.

그러한 회개가 올바른 회개이지 단순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지은 죄를 원고 읽듯이 나열하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다윗은 상한 마음으로 진정한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넷째: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12)

다윗은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를 자세히 보면 그가 용서함 받고 구원의 기쁨을 회복해야 하는 원인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13절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그리고 15절입니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다윗은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될 때 그는 나와 같이 범죄하는 죄인들을 가르쳐서 주님께 돌아오게 하며, 입으로 주를 찬송하여 주님을 전파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고 합니다.

지난 주에 나팔절 설교에서 나팔절은 지크린 테루아[זִכְר֥וֹן תְּרוּעָ֖ה; ] 나팔을 부는 기념일 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는 지크린 테루아입니다. 나팔을 불어 지난날을 기억하게 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다윗이 지금 구하는 것이 바로 지크린 곧 기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신 것을 <기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그의 남편에게 지은 죄를 영원히 기억하며 기념이 되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이 일이 기념이 되어 범죄자들에게 알려서 그들을 주님께로 이끌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념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요? 전도에 있어서 불신자를 전도할 때 가장 호소력 있는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이나 신앙 연륜 아니라 내가 경험 한 예수입니다. 불신자들에게 들려줄 기념이 될 만한 일, 범죄자들에게 감동을 줄만한 기념이 될 만한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기념이란? 부흥회 때 은혜 받고 그 기념으로 헌금을 얼마나 했는지, 강대상을 내가 사놓고, 피아노를 사놓은 것, 교회 차량을 구해 바쳤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불신자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념이란? 내가 용서함 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게 된 기념이 될 만한 간증, 그리고 신앙생활 하면서 받은 은혜의 기념이 될 만한 간증을 말합니다.

다윗은 용서함 받는 이 사건을 통하여 범죄자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고, 찬양을 하면서 주를 전파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회개이며, 고백입니까? 지금 이 시간 다시 우리의 과거를 기억해 봅시다. 내 인생에서 지우개가 필요하고 가위가 필요한 것을 절대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주님 앞에 나아가 다윗과 같은 회개를 합시다.

지금은 회개의 시간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회개를 요청하는 때입니다. 회개가 필요한 때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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