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주적북한 김일성 인민군이 남침하여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을 아십니까?
1950년 6월25일 남짐한 인민군이 남침 3일만에 28일 오전 8시경 주적북한 인민군 제9 땡크여단이 서울 점령후 서울대병원을 점령한후 인민군들이 교수.의사. 간호사.환자. 간병하는 보호자들 가릴것없이 학살을 자행했다
서울대병원 학살 추념식을 거행하기전에 병원 현충탑에 대하여 알릴 것 이 있다
1963년 7월 29일 한국일보가 전국 반공애국유적을 부활운동의 일환으로 충혼탑을 세운 것이다
인민군의한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은 세간에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다 서울대병원에서 매년 6월5일에 현충탚앞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2014년 통합해서 매년 6월 28일 전.후로 추념식이 열리고있다
무려 1000여명이. 학살당했는데 이상하게 세간에 알려지지 않아서 이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인민군이 병원을 점령하려하자 병원 경비를 맡고있던 국군 1개소대와 부상병 가운데 총을 들수있는 군인 80여명이 병원 뒷산으로 올라가서 저항했다
국군 소대는 남모소위가 부상병은 민 모중사가 지휘했다
인민군들은 병원으로 들어와 부상당한 장병들 수백명의 환자들과 같이 치료 받고있었다
인민군들은 닥치는데로 총을 난사해 학살하였다
그러나 않되겠는지 국군부상병들을 한 병실에 몰아넣고 총을 난사해 학살 하였다정신병동 소아과 어린이들까지 무차별 학살하였다
그리고는 인민군부상자들을 병원에 들여보내서 치료를 받게했다
구사일생 간호사 한명이 생존하여 조카 한테 병원 학살 이야기를 하였다고한다
최 룡씨 증언에 의하면 당시 인민군 앞잡이들은 전쟁전에.교수들이 주접북한으로 월북했다고 했다
이들은 인민군 군관이되어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국군부상자와 반공셩향의 의사와 간호사들을 분류해주며 학살을도와 자행했다
최 룡씨는 본인의 이모님을ㆍ부터 학살사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최룡씨는. 그당시 병원에 의료진 40%가 남로당(일명남조선노동당)이었다고한다며 이들은 인민군으로 처음 들어온뒤 완장을차고 다른 의료진에게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해 9월28일 서울수봅후 병원은 학살 현장을 정리하는데 당시 수습한 유골이 1000여구 였다고 소개한 최 룡씨는 이가운데 국군이 적어도 400~500 여명은 되지않겠나 하는 것이 이모님의 주축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남로당의사들은 다른 의료진들에게 서울대병원 학살에 대하여 절대 함구하고 이야기 하지 말라는 협박도 했다고한다
당시 우리정부는 서울대병원 학살사건뿐만 아니라 서울시내 전역에 진입한 인민군 좌익세력의 도움으로 군인. 경찰. 공무원 교사들과 가족들을 찾아내 집단학살을 한다는 소식을 입수했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당시 관외 중이던 "보도연맹" 조직원들을 제거했다
인민군들이 우리자유대한민국 국민들을 무차별 학살 하지 않했다면 "보도연맹사건" 이 6.25 전쟁당시 최초의 민간인 학살 사건 이라고 한다
인민군들은 군인.경찰. 교사들.의 가족들은 민간인으로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인민군의 만행을 두고 사단법인인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은 ×명확한 전쟁 범죄× 라고 규탄한다
우리가 서울대병원 학살이라 부르는 인민군의 만행은 단순한 학살이 아니라 ☆전쟁범죄. 반인류범죄☆ 라는 것이다
포로와 부상병을 학대하거나 임의로 살해하는 것을 금지하고 전쟁터에서는 환자와 병자를 무조건 보호하고 치료해 줘야 한다는 제네바협약을 위반 했다는 것이 박선영 이사장의 지젝이다
박 이사장은 ☆흣히 6.25 전쟁을 잊혀진 전쟁☆ 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우리가 전쟁을 잊어버린 것 이라며 최근까지 6.25 전쟁을 두고 전쟁이라늣 표현뿐안 아니라 그 숫자까지 잊어버리라고 국가가 강요했다고 개탄했다
박 이사장은 그러면서 ♧역사는 기록하는자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록을 하지않고있고 희미한 기억마져 지워가고있다 면서 가해자는 이미 밝혀있다
이제라도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1950년 6 월 25일 부터 만 3년 1개월간 인류 전쟁중 가장 맗은 국가가 참전한 세계전쟁으로 기록되어있다
사상자만 400만명. 세계전쟁사중 네번째로 피해가 큰 참혹한 이 전쟁으로 공산주의 세계화가 저지 되있고 세계. 자유 0민주주의 진영이 지켜진 구원의 섭리 사적의 의미를 지닌 6.25 전쟁이다
이 6.25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한반도는 이 희생스로 지구촌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한민족은 지금까지 그고통을 감내하고있다
그러나 세계는 물론 당사국 한국세서조차 6.25 이 전쟁을 외곡된채 잊혀디고있다
단 한번도 그 실상과 의미가 전 세계에 알려지지 못 했던 아직도 끝나지않은 전쟁 그당시 살았던 사람들 기억속에만 남아 가슴아프게 잊혀저 가고있는 6.25. 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인ㅅ. 일요일은 때이른 태풍 엘사가 한반도 전역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오는 첫 새벽에 스탈린의 꼭두각시 김일성의 붉은군대무리가 선전포고도없이 자유진영. 자유대한민국 의 전선인 38 도선을 넘어 폭격과함께 남침하였다
우리의 자유대한민국 어린 아들들은 맨중석 붉은피와 목숨으로 적들의 폭격과. 총탄을 막아내야했다
우리의 어린 아들들은 조국과 인류평화를 지키려고 그 총탄을 맨몸으로 막으며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르며 한명 한명 쓰러져갔다
그렇게 참혹한 상처를 입고 구사일생으로 사선을넘어 간신히 병원에 후송된 우리 아들들은 총탄에. 팔 다리가 잘려 나갔다
잘린 다리를 질질 끌며 쏟아지는 내장을 부여안고 형용할수 없는 고통속에 어머니만 부르는 부상병들을 이민군들이 학살 되었다
인민군들은 저항하는 군. 경찰. 민간인들을 석탄10t 더미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생매장시켰다
여름이라 시신이 썩으니 인민군들은 우리 사람들시켜서 시신을 창경궁앞 차도에 싸놓고 기름부어 불질렀다
이는 6.25. 전쟁 몇달전 스위스 제네바협약에 맺은 부상병. 조난자. 포로. 일반주민등의 보호를 목적으로하는 국제법규를 위반한 명백하고 중차대한 전쟁 범죄이다
서울대병원 현충탑에 있는글
1950 련. 6월 28일
여기에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시민이.
맨 처음 울부짖는 소리었노라
여기 자유서울로 들어오는 이 언덕에
붉은 군대들이 침공해오던날
이름도 모를 부상병 입원환자
이들을 지키던 군인 시민 투사들이
참혹히 학살되어 마지막 조국을 부른소리 남겼노라
그들의 넋은 부를. 길이 없으나 길게 빛나고 불멸의 숲속에 편히 쉬어야 하라
겨례여 다시는 이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말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