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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논단

바리세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열심당, 서기관, 산헤드린, 제사장

작성자손수연|작성시간11.07.20|조회수1,426 목록 댓글 0

B. 종교적 상황

1. 바리새파 (Pharisees)

 

  바리새파는 첫 기독교 공동체(共同體) 시대에 평민, 법률가, 서기관, 제사장 등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등장한다. 그들의 주된 목표는 순전히 종교적 목표인 변화된 세계에서 율법(律法)을 성취하고 “조상들의 유전”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복음서, 사도 바울의 글들, 요세푸스의 일반적 기록에서 그려진 모습이며 스승에게서 제자에게 전해 내려온 해석의 전승과 “학파”가 바리새적 유대교의 중심적인 종교적기관이 되었는데, 그것은 고대(古代)시대의 철학적(哲學的) 발전에 있어 학파들의 기능과 유사하였다.

 ‘바리새파’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확실치 않다. 이것은 그 집단이 스스로를 지칭하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적들이 먼저 사용한 것으로서 아마도 “분리된 자들”, 또는 “분리주의자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기원이나 기독교 이전 시대의 발달에 대한 지식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조상들의 유전” 갈라디아서 1장 14절, “내가 내 동족(同族) 중 여러 연갑(年甲)자(者) 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祖上)의 유전(遺傳)에 대하여 더욱 열심(熱心)이 있었으나” 라고 부른 이 교육적 전통은 이미 여러 세대 동안 존속해 오던 것이 서기 1세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요세푸스가 바리새파를 철학적인 종파(宗派)로 설명한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랍비의 글들이 보여주듯이, 바리새파에서는 많은 헬라 철학의 용어(用語)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바울은 동료 바리새인들과 헬라어로 논쟁했음이 분명하다.

 바리새인들과 후계자들(랍비 유대교)의 율법 해석은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서 유법의 성취를 가능하게 하기를 원했다. 그들의 해석 방법은 할라카 즉 사람이 행하는 방법 이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변화된 조건 아래에서 각 계명을 성취하는 것에 대한 주장들과 반론들로 이루어진다. 이 해석 방법은 고대 성경은 새로운 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도록 쓰여 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헬레니즘 정신과 일치한다.

헬레니즘은 영어로 Hellenism, 그리스인을 의미하는 헬라어 hellen 에서 유래된 말이다. 역사적으로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에서 로마가 애굽을 병합한 13세기 30년까지 약 300년간 그리스 문명, 사상을 일컫는 말이다.

 헬레니즘은 헤브라이즘과 함께 서양문화의 고대(古代) 조류이며, 기독교 형성의 모체(母體)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공동 관심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결속된 단체였으며, 그들의 유일한 제도적 결속(結束)체는 철학 학파들처럼 젊은 남자들에게 교육을 제공한 학교였다. 학교라는 기관은 랍비 유대교의 특징으로 남았다.

 바리새 주의가 지닌 헬레니즘적 요소(要素)는 개인주의이며 바리새인들이 헬라적 특성을 유대교 신앙에 적용시켜서 발전시킨 마지막 요소는 신비주의였다.

바리새파는 하시딤(경건한 자들)의 계승자들로 BC 168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안티오쿠스 3세의 아들로 셀류코스 왕조의 8번째 통치자 BC 175-163).의 유대교 금지 당시 율법을 진실하게 지켰던 자들로 기도와 회개, 구제를 표어로 내걸었던 엄격한 율법주의(律法主義)자 들 이었다.

 

 누가복음 5장17절,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各)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律法) 교사들이 앉았는데 병(病)을 고치는 주(主)의 능력(能力)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누가복음 6장 2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安息日)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누가복음 5장 30절,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書記官)들이 그 제자(弟子)들을 비방(誹謗)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稅吏)와 죄인(罪人)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누가복음 11장 39절, “주(主)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只今) 잔(盞)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貪慾)과 악독(惡毒)이 가득 하도다”

누가복음 11장 43절, “화(禍)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會堂)의 높은 자리와 시장(市場)에서 문안(問安) 받는 것을 기뻐하는 도다”

 

 바리새파는 수는 적었지만 명성은 매우 높아서 유대 백성들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復活)교리를 강조하여 의인의 상급과 악인(惡人)의 멸망을 가르쳤다. 율법주의가 기본 사상이었고, 스스로 율법을 행함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다가 하나님의 의에 굴복치 않았다.

안식일 문제로 예수와 충돌하였고(마12 : 1-13 ; 눅 14 : 1-6), 율법의 실천을 가능하도록 바리새파의 서기관들은 해석학적 기교를 발휘했다. 바리새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요인들은 율법주의(legalism)와 국가주의(nationalism)정신과 하시딤의 발현이었다. 이들은 예루살렘 멸망 직후에 유대교의 연속성을 유지시켰다.

 

 

2. 사두개파(Sadducees)

 

  사두개파는 헤롯 시대와 로마 시대에 대제사장(大祭司長)들을 배출한 제사장 가문(家門)을 지칭하는 명사(名詞)로서 “사두개인” 이라는 명사가 등장한다. “사두개인”이라는 명사(名詞)는 “사독인”이라는 명사와 동일한 것일 것이며, 사독의 합법적 후손(後孫)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보여주고 있다. 사두개인들은 성문법에 기록된바 성전과 종교에 관한 규정들이 정확하게 성취되는데 대한 보장을 원했다. 율법(律法)을 해석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으며, 율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상급(賞給)과 형벌(刑罰)은 세상에서의 삶에만 관련하여 설명한다. 상급과 형벌은 인간의 행동에 대한 즉각적인 결과이며, 운명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두개인들이 천사(天使)와 영(靈)의 존재를 부인 했다는,

사도행전 23장 8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復活)도 없고 천사(天使)도 없고 영(靈)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와 일치된다.

  사두개인들은 구전(口傳) 전승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기록된 율법 안에 분명히 기록되지 않은 신학적(神學的) 개념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솔로몬 당시 제사장 사독, 열왕기상 2장 35절, “왕(王)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냐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軍隊) 장관을 삼고 또 제사장(祭司長)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일파로 여겨지는 사두개파는 지도계층의 제사장들과 부유한 귀족층, 돈 많은 상인들, 정부관리들, 기타 특수층으로 구성되었다.

이 파는 권력집단과 결속해 부(富)를 누리며 민중(民衆)의 고통은 생각지도 않고 사회적 고위층을 고수하려는 단체로서 헬레니즘을 받아들이는 선구자(先驅者)가 되었다. 이들은 토라만을 인정하며 운명(運命)을 전혀 믿지 않았다.

누가복음 20장 : 27절, “부활(復活)이 없다 주장(主張)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미래(未來)의 심판(審判)을 부정했다.

이들과 바리새파의 분열로 하스모네가 왕조(王朝)가 몰락되었고 그 후에도 그들 간의 격심한 알력은 예수 당시까지 계속 되었다.

3. 에세네파(Essenes)

 예수의 생존(生存)시 팔레스타인에 있던 유대인의 종파(宗派)로 모든 것을 공유하며 엄격한 행동 규칙을 지키는 단순한 생활을 하였고 모세를 크게 존경했다.

에세네파는 필로(유대인 학자이며 철학자로 BC 20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했으며 유대인의 오랜 학문적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부유한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었다. 필로는 AD 50년까지 살았으며, 철학서, 오경주석, 역사적 변증서 등을 남겼다.) 요세푸스, 힙폴리투스와 플리니와 디오 크리소스톰의 글에서 나타나는 언급을 통해 알려져 왔다. 그러나 사해 사본들의 발견 및 최근 에세네인들의 정착(定着)지였던 키르벳 쿰란( 영어로 Khirbet Qumran 에세네 수도원의 유적지로 사해 공동체의 중심지 였으며 키르벳 쿰란은 사해 서쪽 연안, 여리고 남쪽 13.6Km 지점에 위치 해 있음이 밝혀졌다.) 의 발굴을 통해서 그들에 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쿰란에 있던 종파(宗派)가 고대(古代) 기록에서 언급되는 에세네파와 동일하다 그리고 예루살렘 종교의 헬라화에 대한 반대를 제기하여 마카비 반란을 낳게 만든 하시딤 에서 발전되어 나왔다. 이 공동체는 자신을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요 마지막 때의 새로운 언약의 백성이라고 이해했으며 공동체의 종교적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에세네파의 특성으로 예를 들어 중요한 축제들이 안식일과 겹치지 않도록 고안된 태양력의 도입 그리고 개인의 도덕적 행실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진실하고 신실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모든 규정과 의무는 『종규 지침서』(Maunal of Dicipline) 에 기록 되었다. 이 글은 영구적으로 쿰란에서 생활한 에세네파의 정식 구성원인 독신 남자들에 관한 것이다. 그 공동체의 규칙을 담고 있는 또 다른 책인 『다메섹 문서』(Damascus Document, 중세시대 사본들을 통해서 알려져 있었다. 대체로 결혼하여 세상에 머물러 살았던 회원들을 위해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에세네 공동체는 메시아적 개념이 눈에 뜨인다. 메시아적(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기름부음을 받은) 인물들을 기대한다. 종말론적 선지자, 다윗의 가문 출신의 메시아 왕, 아론 가문 출신의 메시아 제사장이 그들이다.

그들의 종말론적(終末論的) 지향은 삶의 모든 면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참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미래를 기대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성전 이었다. 개인적인 가난과 공동체 생활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분이 없는 메시야 시대를 대변한다.

에세네 인들의 성서해석은 풍유적이 아니라 종말론적이었다. 그 예가 쿰란에서 발견된 주석서들이다. 그들은 각각의 성경 구절을 가까운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특정한 사건과 연관시켰다. 이 공동체의 신학은 헬레니즘시대의 묵시적 개념, 특히 하시딤의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에세네 인들은 공동체(共同體)의 정결을 보존하려고 노력했으며,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들로 자신의 종교 체험의 맥락에서 발생하는 개인적 신앙의 문제들을 강조했다. 이 종파의 찬송가는 인간의 삶이 덧없고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음을 찬양했다.

또한 경건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불멸(不滅)에 대한 믿음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요세푸스는 이러한 믿음을 에세네파의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로마가 쿰란을 파괴한 후, 에세네파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에세네파는 은둔적인 종교집단으로 금욕주의를 실천하며 검소한 공동생활을 했으며, 안식일을 엄격히 준수하고 율법에 충성하며, 토라 해석에 있어서는 바리새파보다 더 엄격했다. 성찬과 침례를 행했으며, 구원의 때가 도래함과 영혼(靈魂)불멸(不滅)의 교리를 믿었다. 에세네 사상은 제사장 운동이었고 율법의 내용 속에 도덕적 내용을 침투시키려고 노력했다.

예수님 당시에 이들의 수효가 사천 명에 달했고 세상과 분리되어서 극히 제한된 교류가 있었다.

 

4. 열심당(Zealot )

 

  열심당(the Zealots)은 로마통치에 반항하던 매우 과격하고 호전적인 유대인 반항(反抗)자들을 가리키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용어(用語)로 예수의 제자 중 시몬 베드로와 구별하기 위해 가나안인 시몬을 열심당 시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누가복음 6장 15절,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유다의 극단적인 애국적 국수적 단체이다.

열심당을 의미하는 아람어 “셀롯”이란 단어이며 “열심 당원”은 “호전적, 민족주의적, 반 로마적인 정책을 옹호는 자”이다.

  복음서 기자들 중에서 오직 누가만이 “셀롯이라 하는 시몬” 곧 “열심당원이라고도 하는 시몬”(새 번역) 이라고 말함으로써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 열심당원 이었음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종교적인 의미로 “율법이나 하나님께 대해 매우 열심이었던 사람”을 뜻했을 수도 있으며, 누가는 실제로 사도행전 21장 20절에서 “율법에 열심히 있는 자”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사도행전 22장 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城)에서 자란

가말리엘의 문하(門下)에서 우리 조상(祖上)들의 율법(律法)의 엄(嚴)한 교훈(敎訓)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熱心)히 하는 자(者)라”말씀 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란 말을 쓰고 있다.

신(神)을 위한 열심을 가진 자들로서 마카비가의 참된 정신적 후손들로 간주 된다.

사도행전 1장 13절, “들어가 저희 유(留)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이들은 하나님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도 기꺼이 희생하며 신정(神政)주의적 혁명운동을 일으켰다.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며, 로마황제(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일체 거부(拒否)했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행위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A. D. 70-77, 1차 유대 전쟁 중 로마와의 싸움에서 매우 활동적이었다.

열심당의 로마에 대한 반란은 A. D. 73년 5월에 마사다의 마지막 요새가 함락 당함으로 끝났지만 이들의 정신은 지속되었다.

 

 

5. 서기관(Scribe)

 

  율법(律法)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유대인들의 지식층(知識層)으로 율법을 주석하는 일이 그들의 전문업이었다. 산헤드린의 주요 구성원이 되기도 하였다.

 

마태복음 26장 57절, “예수를 잡은 자(者)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書記官)과 장로(長老)들이 모여 있더라”

 

  서기관들은 성경 필사본자로서 모세 율법에 정통했던 이유로 율법(律法)학자로도 불렸다. 성경 중간사 시대에 이들의 영향력이 증대되어 예수 당시 괄목한 모습을 들어냈다.

율법학자, 마태복음 22장 35절, “그 중에 한 율법(律法)사가 예수를 시험(試驗)하여 묻되”,

교법사, 누가복음 5장 17절,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各) 촌(村)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敎法)사들이 앉았는데 병(病)을 고치는 주의 능력(能力)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랍비, 마태복음 23장 8절 ,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稱)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先生)은 하나 요 너희는 다 형제(兄弟)니라” 라고도 했다. 그들은 율법의 보존, 옮겨쓰기(전사), 주석에 전념했다.

율법의 신성함을 보존하기 위해 그들은 광범위하며 복잡한 교육체계들을 점차 발전 시켰는데, 그것이 장로들의 전승이다. (마 15 : 2-6 ) 그 당시 모든 지시와 훈령들이 서기관(書記官)의 손으로부터 나왔다. 초대 교회를 핍박하였다.

 

사도행전 4 장 5절, “이튿날에 관원(官員)과 장로(長老)와 서기관(書記官)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사도행전 6장 12절, “백성(百姓)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衝動)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公會)에 이르러”

바리새파, 사두개파 등 모든 종파(宗派)에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파의 서기관들이

마가복음 2장 16절,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罪人)과 세리(稅吏)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弟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누가복음 6장 7절,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證據)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安息日)에 병(病)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누가복음 5장 30절,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誹謗)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누가복음 19장 47절,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聖殿)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서기관(書記官)들과 백성(百姓)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그들은 민중(民衆) 사이에 가장 폭넓은 세력을 지녔고 ‘랍비’란 칭호가 붙었다.

마태복음 23장 7절, “시장(市場)에서 문안(問安)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稱)함을 받는 것을 좋아 하느니라” 이들은 율법을 살피고 율법의 가르침을 발견할 의무와 율법(律法)보존(保存)의 사명을 가졌다.

헤롯 왕조 시대의 가장 뛰어난 서기관들은 힐렐( Hillel, 탈무트의 현자로서 구전 율법의 발전에 공헌한 지도적 학자, CLP성경사전, 1436. 참조)) 과 샴마이 였다.( A. D. 10). 당시에 서기관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아카데미는 없었고 스승과 제자 관계가 있었을 뿐이었다. 율법사(律法)는 구약율법의 전문가로서 직업적 신학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서 매일의 생활에 적용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6. 산헤드린(Sanhedrin) 과 헤롯당(Herodians)

 

  산헤드린은 재판권(裁判權)을 가지고 있는 귀인의 집단으로 그 기원은 여호사밧 왕 시대로부터 유래되었다.(역대하 19 : 5-11)

산헤드린(Sanhedrin)은 유대인의 최고법정으로 71인의 회원(會員)으로 되어있었는데, 대제사장을 배출하는 사제 귀족이나 귀족적(貴族的) 장로들 즉 사두개인 및 서기관들로 구성되었다. 예루살렘이 멸망(AD 70년)하기까지 사회와 종교 분야의 일들을 처리했다. 특히 순수혈통의 유대인만이 산헤드린에 속할 수 있었다.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은 로마통치 아래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을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政治)체계를 소유하고 있었다. 유대교 전승에 의하면 사형(死刑)선고가 산헤드린에 의해 가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유대총독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헤롯당(Herodians)은 헤롯 왕정과 로마법을 지지하는 유대인들로,

마태복음 22장 16절, “자기(自己) 제자(弟子)들을 헤롯 당원(黨員)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道)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外貌)로 보지 아니하심 이니이다”

 

기록되고 있으며 예수를 반대하기 위해 바리새인과 연합했던 당파였다.

마가복음 3장 6절,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 꼬 의논 하니라”

 

마가복음 12장 13절,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責)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는 헤롯 왕조의 여당으로 로마의 지배에 만족하면서, 로마총독 대신에 헤롯 왕조의 통치자들이 지배자(支配者)가 될 것을 바라던 자들이었다. 이들은 헤롯과 그의 아들들의 정책에 찬성했다. 예수의 공생애시기(A. D. 28-30)에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유대는 로마총독이 관할하였다.

 

7. 제사장(祭司長)

 

  히브리어로 ‘코헨’ 영어로 Priest (priesthood) 성직(聖職)에 임명(任命)되어 종사하는 사람으로 제사장의 헬라어는 ‘거룩’을 의미하는 단어와 관계가 있다.

 

제사장은 이방 종교 이든, 사도행전 14장 13절, “성(城) 밖 쓰스 신당(神堂)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花冠)들을 가지고 대문(大門)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祭祀)하고자 하니”

 

성경의 종교이든, 베드로전서 2장 5절,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神靈)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祭祀)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祭司長)이 될 찌니라”

 

베드로전서 2장 9절, “오직 너희는 택(擇)하신 족속(族屬)이요 왕(王) 같은 제사장(祭司長)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所有)된 백성(百姓)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奇異)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德)을 선전(宣傳)하게 하려 하심이라” 종교의 사역자 였다.

 

그 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후손들을 지명하여 제사장이 되게 하였다.

출애굽기 28장 1절, “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대제사장은 제사장을 감독하고 속죄제를 드렸으며 (레위기 4장), 속죄일에 속죄제를 드렸으며 (레위기 16장),

 

민수기 27장 21절, “그는 제사장(祭司長)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爲)하여 우림의 판결(判決)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子孫) 곧 온 회중(會衆)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라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었다.

신약 성경에서는 모든 성도가 제사장임을 가르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활동을 분담하며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

대제사장의 가문(家門)은 그 지방의 귀족층이었고 부자였다. 반면 지위가 낮은 제사장들은 권력과 금전적인 혜택도 적게 누렸다. 헬레니즘 시대 초기의 대제사장들은 전통의 보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헬레니즘의 영향에 대해 꽤 개방적이었다.

 

히브리서 3장 1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兄弟)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道理)의 사도(使徒)시며 대제사장(大祭司長)인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5장 5절,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榮光)을 취(取)하심도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날 낳았다 하셨고”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懇求)하시는,

히브리서 7장 26절, “이러한 대제사장(大祭司長)은 우리에게 합당(合當)하니 거룩하고 악(惡)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罪人)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에 대해 예고하시고,

누가복음 9장 22절, “가라사대 인자(人子)가 많은 고난(苦難)을 받고 장로(長老)들과 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서기관(書記官)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누가복음 22장 54절,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쌔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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