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전지책(萬全之策)
만전지책(萬全之策)
만전을 기하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아주 안전하거나 완전한 계책
또는 조금도 허술함이 없는
아주 완전한 계책이라는 말이다.
萬 : 일만 만
全 : 온전할 전
之 : 어조사 지
策 : 꾀 책
[출전 ]
○한비자(韓非子) 식사편(飾邪篇)
○후한서(後漢書) 유표전(劉表傳)
조금도 허술함이 없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실패의 위험이 없는 아주 안전하고 완전한 계책을 말한다.
또 '만전을 기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최선을 다하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만전지책이란 적절한 선택, 적절한 시간,
적절한 방법 등이 함께 갖추어진,
조금의 실수도 없는 가장 안전한 계책을 가리키는 것이다.
만전(萬全)이란 가장 안전함을 가리키는 말로
사기(史記), 한비자(韓非子) 등 중국고전
여러 곳에서 두루 쓰이고 있다.
후한서(後漢書) 유표전(劉表傳)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아직 조조(曹操), 유비(劉備), 손권(孫權)이
확고하게 자리 잡기 전 이야기로,
북방에서 패자가 되기 위해 조조와 원소(袁紹)가
관도(官度)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원소가 사람을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 보내
도움을 청하자 유표는 돕겠다고
대답은 하였으나 돕지는 않았다.
유표는 조조도 역시 돕지 아니하면서
머뭇거리며 천하의 변화를 살피고자 하였다
이때 유표의 신하인 종사중랑(從事中郎)인
남양(南陽)사람 한숭(韓嵩)과
별가(別駕) 유선(劉先)이 유표에게 말하였다.
“지금 호걸들이 견주어 다투고 있습니다.
두 영웅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천하의 권력은 장군에게 달려 있습니다.
만약 어떤 것을 이루려 한다면
그들이 약해진 틈을 타고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장군은 형편이 좋은 쪽을
구별하여 따라야 합니다.
어찌하여 십만의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앉아서 성패를 살피고,
도움을 청하여도 기량을 보여 도와주지 아니하고,
유능한 사람을 보아도
편들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면 양쪽의 원한이 반드시 장군에게 모이게 되니,
두려워하여 중립을 지켜서는 안됩니다.
조조는 용병에 뛰어나고 또한 유능한 어질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그를 따르고 있으니,
그의 기세는 반드시 원소를 물리칠 것입니다.
그러한 뒤 병사를 옮겨 강한(江漢)으로 향하면
장군이 막을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지금은 형주(荊州)를 들고
조조에게 의탁하는 것보다
훌륭한 계획은 없습니다.
조조는 분명히 장군을 많이 고맙게 생각하여
오랫동안 복을 누리고 후 손에게 전해질 것이니,
이것이 만전지책,
즉 가장 완전한 계책입니다.
유표는 결단력이 부족한 데다
객장(客將)으로 와 있는,
유비 등 조조 적대파의 반대에 부딪쳐
한숭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관도 싸움에서 조조는
천신만고 끝에 원소를 멸망시켰고,
이어서 형주는 조조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또한 한비자(韓非子)의
식사(飾邪; 사악함을 다스리다)편에도
만전지책(萬全之策)의 내용이 있다.
거울을 흔들면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고,
저울을 흔들면 무게를 정확하게 달 수 없다는 것은
바로 '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전의 어진 군주는
도(道)를 행동규범으로 삼았고,
법(法)을 근본 원칙으로 삼았다.
근본이 잘 다스려지면 군주의
명예와 지위가 존귀해지지만,
근본이 어지러워지면
군주는 명예와 지위를 잃게 된다.
지혜와 능력이 뛰어난 모든 사람들은
이유가 있으면 행하고,
이유가 없으면 하지 않는다.
이처럼 지혜와 능력은 편향적인 것이라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없다.
도와 법은 추호의 착오도 없이 완벽하지만,
지혜와 능력은 놓치는 것이 많다.
저울대를 걸어놓아야
무게의 균형을 알 수 있고,
그림쇠를 놓아야 원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완벽한 도(道)이다.
현명한 군주는 백성으로 하여금
도(道)를 기준으로 하게 하여,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성과를 거둔다.
그림쇠를 버리고 기교에 맡기고
법을 버리고 지혜에 맡기는 것이
바로 미혹되고 혼란스럽게 하는 길이다.
어리석은 군주는 백성들에게
지혜를 기준으로 하게 하여,
도(道)를 모르기 때문에
힘만 들고 아무런 성과도 없다.
만전지계(萬全之計)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순신(李純信) 장군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사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연전연승(連戰連勝)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겠느냐고 물으면,
귀선(龜船; 혹은 귀갑선)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결은 귀선(龜船)이라는
천하무적의 특별한 함선이 아니고
만전지계(萬全之計)이다.
만전지계는
첫째 매사에 적극적,
둘째 매사에 미리 준비,
셋째 군진(軍陣)의 민주적운영,
넷째 군진의 과학적운영,
다섯째 위민행정(爲民行政)의 실천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다섯 가지를
철저하게 이행하였고 그 결과 임진왜란 때
빛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최적화를 추구하는 이순신의 성격은
늘 만전(萬全)을 기하는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무관(武官)의 길에 들어
곧잘 만전지계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순신의 만전지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만전(萬全)을 기하는 성향을 통해 볼 때
이순신은 무원칙한 행위를
싫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관 초기 이순신은 북변지역에서
몇 차례의 전투를 경험했다.
그 가운데 녹둔도(鹿屯島) 전투의 전말을 보자.
이순신의 만전지계는 오히려 전투에서
더욱 구체성을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순신은 조산보(造山堡)
만호(萬戶; 종4품 무관직) 겸 녹둔도
둔전관(屯田官)의 직임을 맡고 있었다.
이순신은 이원적인 담당업무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 우선 당면 문제점을 분석했다.
경계 책임지역을 둘러본 이순신은
배정된 병력으로 두곳을
무난히 방비하기 어렵다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곧바로 상관인 이일(李鎰)에게
경비강화 방책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일은 적은 병력을 가지고
그대로 임무를 수행하라고 하며
이순신의 계책을 묵살했다.
이순신은 거듭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했으나
이일의 무책임하고
소극적인 답변이 거듭될 뿐이었다.
때문에 이순신은 자신이 주장한 계책의 내용과
그간의 사안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그리고 주어진 여건을 토대로
여진족(女眞族)의 남하를 예의주시했다.
마침내 여진족이 대거 밀어닥쳤다.
이순신은 수적인 열세를 다소 덜기 위해
우선 군사들을 높은 곳으로 이동시킨 뒤,
낮은 곳의 적을 바라보며
적의 접근을 견제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 퇴로를
헤아려 미리 총통화기를 배치했다.
이윽고 여진족들은 철수하기 시작했고,
이순신은 예상되는 퇴로에 복병하여
그들에게 일대 타격을 가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를 밟아
적을 격퇴한 셈이다.
이순신은 그같은 자신의 작전 순차를 이후에
응기결책(應機決策)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시기에 맞게 방책을 짜
위기를 벗어남을 뜻한다.
- 사자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