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지음(亡國之音)
망국지음(亡國之音)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으로,
저속하고 난잡한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亡 : 망할 망
國 : 나라 국
之 : 어조사 지
音 : 노래 음
출전 :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
망국지음(亡國之音)은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으로,
음란하고 사치스런 음악,
망한 나라의 음악,
사회를 어지럽히는 풍속 등의
뜻으로 쓰인다.
예기(禮記) 악기편(樂記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凡音者, 生人心者也.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情動於中, 故形於聲.
마음에서 감정이 생겨나,
그것이 움직이는 대로 소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聲成文, 謂之音.
소리를 글로 나타낸 것을 음악이라고 한다.
是故治世之音, 安以樂, 其政和.
따라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을 때는
화평하고 즐거운 음악이 생겨나니,
정치가 바르게 행해지기 때문이다.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원망하고 분노에 찬 음악들이 생겨나니,
그것은 정치가 바르게 행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악은
슬픈 마음이 일어나게 하니,
그 백성이 곤궁하기 때문이다.
桑問濮濮, 上之音, 亡國之音也.
복수에서 들려 오는 음악 소리는
망국지음이다.
또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던 도중 복수(濮水) 강변에 이르자,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멋진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영공은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잠시 넋을 잃고 듣다가 수행중인 사연(師涓)이란
악사(樂師)에게 그 음악을 잘 기억해 두라고 했다.
이윽고 진(晉)나라에 도착한 영공(靈公)은
진(晉)나라 평공(平公)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들은
새로운 음악이라고 자랑했다.
당시 사광(師曠)이라는
유명한 악사(樂士)가 있었는데,
그가 음악을 연주하면 학이 춤을 추고
흰 구름이 몰려든다는 명인(名人)이었다.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입궐한 사광(師曠)은
그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황급히 사연(師涓)의 손을 잡고 연주를 중지시키며
"그것은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亡國之音)이오." 이렇게 말했다.
위령공(衛靈公)은 본래 진평공(晉平公)에게
축하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는데,
악관(樂官) 사광(師曠)의 말을 듣고는
너무 당황해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사연(師涓) 또한 놀란 나머지 위령공(衛靈公)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진평공(晉平公)은 좋은 자리가 계속 되던 때에,
자국의 악사(樂士)가 갑자기 끼어 들어,
위(衛)나라 군주 일행의 체면을 구긴 것에
크게 노해 사광(師曠)에게 물었다.
"이렇게 듣기 좋은 곡을 너는 어찌하여
망국지음(亡國之音)이라고 하느냐?"
이에 영공(靈公)과 평공(平公)에게
사광(師曠)은 그 내력을 말해 주었다.
"그 옛날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는
사연(師延)이란 악사(樂士)가 있었사옵니다.
당기 폭군 주왕(紂王)은 사연(師延)이 만든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미(淫靡; 음란하고 사치함)한 음악에,
도취하여 주지육림속에서
음일(淫佚)에 빠졌다가,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나이다.
그러자 사연(師延)은 악기를 안고
복수(濮水)에 투신자살했는데,
그 후 복수에서는 누구나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국의 음악이라고 무서워하며
그곳을 지날 땐 귀를 막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사옵니다."
위령공(衛靈公)과 사연(師涓)은
이에 매우 놀랐고 연달아
사광(師曠)에게 그렇다고 말했다.
망국지음(亡國之音)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망국지음은 망국지성(亡國之聲)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란하고 사치스러워
나라를 망칠 음악을 말한다.
최근 일부 유행가의 가사에도
음란한 표현이나 욕설 등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주왕(紂王)의 음악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음악이라면
곧 망국지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고려(高麗) 공양왕(恭讓王) 때에는
아악서(雅樂署)를 두어 음악을 관장하고,
조선시대에는 장악서(掌樂署)를 설치하여
음악을 관장하기도 했다.
현재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국악원,
국립창극단 등을 비롯하여 각 시도 지역에까지
시립예술단이 조직 운영되고 있다.
그 만큼 한 나라의 음악은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중국 고대에 고금은
금(琴), 기(棋), 서(書), 화(畵) 4대
예술의 으뜸으로 꼽혔다.
고대 문인들에게 있어 고금은
수신양성에 있어 필수적인 악기였다.
혜강(嵆康)은 금부(琴賦)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악기 중에 금(琴)의 덕(德)이 가장 빼어나다.
소위 사대부가 금슬(琴瑟; 거문고와 비파)를
멀리할 이유가 없다(禮記 曲禮下).
군자는 의절(儀節)로 금슬(琴瑟)을 가까이하는 것이지,
쾌락을 위해 가까이하면 안 된다(左傳 昭公元年).
이상의 고대 문헌을 통해 보면,
琴(금)은 문인들의 마음속에서
숭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음악 예술의 도덕적 내포에 대한
심층적 이해에서 나온 것일 뿐 아니라,
중국 고대의 황제들은 모두
예악(禮樂)을 매우 중시했고,
그것을 치국안민의 방안으로 여겼다.
예기(禮記) 악본편(樂本篇)중 한 단락에서는,
왕도 실현의 중요 방침은 반드시
예악(禮樂)을 통한 교화를 위주로 하되,
형법이나 정령이 그것을
보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禮)로 민심을 다스리고,
악(樂)으로 민성(民聲)을 다스리며,
정(政)으로 정치를 하고,
형(刑)으로 그것을 통제한다.
예(禮), 악(樂), 형(刑), 정(政)
이 네 가지가 조화(調和)되어 어긋나지 않는다면
곧 왕도(王道)가 갖추어졌다고 할수있다.
사기(史記) 악서(樂書)의 한 단락을 보면,
순(舜)임금이 오현(五弦)의 금(琴)을 연주하고,
남방(南方)의 시가(詩歌)를 불러 천하를 다스렸다.
그 남방 시가(詩歌)의 작가가
순 임금 앞에서 그것을 연주하니,
순 임금이 기뻐하며 그것을 매우 좋아해,
음악과 천지가 하나 되어 백성의 민심을
얻게 되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다.
- 사자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