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만찬에 나타난 예수와 유다의 차이 다 빈치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에 얽혀 있는 뒷 이야기는 매우 흥미스럽고 또 많은 교훈을 준다. 화가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에 있었던 두가지 사건은 사람이 자신의 선택과 의지의 활용 여하에 따라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증이다. 올바른 생각과 잘못된 생각, 올바른 사상과 잘못된 사상, 그리고 올바른 선택과 잘못된 선택이 우리 자신의 생애에 어떤 영향과 감화를 주는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교훈이 “최후의 명작”을 그리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최후의 만찬湛?이태리의 저명한 화가인 레오날도 다 빈치에 의해 그려졌는데, 그 그림은 완성되기까지 7년이 걸렸다. 그림에 나오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의 모습은 모두 그 당시 사람들을 모델로해서 그려졌다. 다 빈치는 예수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모델을 제일 먼저 선택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위대한 걸작을 그리기로 결정한 후에 수백명의 젊은 청년들을 만나 보면서, 그들의 얼굴 모습에서 무죄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으며 상처가 없고 죄로 인해 찌들어진 모습이 전혀없는 그런 얼굴을 찾으려고 애썼다. 여러 주일을 애써서 찾은 결과 19살 된 젊은 청년이 예수의 초상을 그릴 모델로 선정되었다. 6개월 동안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에 있어서 주인공 예수를 그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후 6년동안 다 빈치는 계속해서 그 작품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다. 열두 제자들을 위한 모델들이 하나씩 하나씩 선택되었다. 모든 인물들이 완성되었고, 마지막으로 유다의 모습이 그려질 공간만이 남게 되었다. 유다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은 삼십량, 오늘날의 계산으로 $16,96의 돈으로 그의 주님을 배반한 제자였다. 여러 주일동안 다 빈치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배반한 자의 성격을 묘사할만한 사람, 사납고 굳어진 얼굴, 범죄적이고 외식하며 속이고 탐욕의 상처로 얼굴이 얼룩진 사람을 찾기 위하여 이태리 전국을 뒤졌다. 유다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을 찾아가 보았지만, 결과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어느 날, 극심한 실망에 빠져 있던 다 빈치에게 한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것은 로마의 감옥소에 사형 집행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살인수가 있는데, 그 사람이야말로 다 빈치가 찾고 있는 사람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 빈치는 즉시로 로마 형무소를 찾아 갔고 그 사형수는 감옥에서 잠시 놓여 태양의 밝은 빛 아래서 다 빈치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서 다 빈치는 검게 탄 얼굴, 긴 덥수룩한 수염과 빗지않은 머리칼이 그의 얼굴을 덮어버린 사람, 악의가 넘치고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듯한 배반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드디어 이 위대한 화가는 그가 그릴 유다의 성격을 대표할만한 사람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 황제로부터 특별한 허락을 받아 이 죄수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밀란으로 옮겨졌다. 몇 달 동안 이 죄수는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다 빈치 앞에 앉아서 천재적인 화가가 구세주를 배신하고 팔아먹은 자의 얼굴을 열심히 화면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의 끝마무리를 마치던 날, 사형수를 지키던 간수에게 이제 그림이 끝났으니 이 죄수를 다시 돌려보내도 좋다는 말을 했다. 간수들이 죄수를 끌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 그가 갑자기 간수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다 빈치에게 달려와 크게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오! 다 빈치여 나를 자세히 보십시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십니까? 다 빈치는 자신의 고도로 훈련된 예리한 눈으로 육개월 동안 계속해서 쳐다보아 왔던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번 더 자세히 살펴본후에 “아니오, 나는 당신이 로마의 감옥에서 내 앞에 오기 전까지 내 일생에 한번도 본적이 없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죄수는 그의 눈을 하늘로 향하여 “오, 하나님, 내가 어쩌다가 이런 모습으로 전락되었나이까?” 라고 절규하였다. 그리고는 곧 그의 얼굴을 다 빈치에게 돌리면서 울부짖기를 “레오날도 다 빈치여! 나를 다시 한번 보십시요. 내가 바로 당신이 칠년전에 예수의 모습을 그릴 때 이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사람이요.” “최후의 만찬”의 그림에 얽힌 이 이야기는 실제이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과 그릇된 생각, 그리고 인생에 대한 빗나간 견해가 인생 전체를 파멸로 몰아 넣을 수 있다는 교훈이 이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다. 오늘 어떤 선택과 어떤 사상과 어떤 신앙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내일의 나의 생애가 꼴지워지고 형성되는 것이다. 죄악 많은 이 세상에서 고결한 성품과 죄에 물들지 않은 생애로 인하여 에수의 형상을 그릴수 있을만큼 아름답고 무죄한 모습을 소유하고 있었던 청년이 부절제와 죗된 생각과 타락의 길을 걸어간 후에 이 세상 역사의 가장 비열한 배신자로 알려진 인물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로 변하는데 불과 칠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악에 대항하여 선을 선택하라. 미움에 대하여 사랑을 선택하라. 거짓에 대항하여 진실과 정직을 선택하자. 그러한 마음과 생애는 우리의 모습과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사하는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랑을 주고 이자를 받으세요. 사랑 받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랑은 주는 것만큼 돌아온다. 내가 남에게 준 사랑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내가 먼저 그들에게 준 사랑을 돌려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매우 좋은 거래를 가져다 준다. 사랑을 나누어 주면 언제나 그것에 해당하는 이자를 받게 된다. 내게서 나간 사랑이 일단 다른 사람을 거쳐서 다시 내게로 돌아올 때에는 처음 나간 것 이상의 사랑이 돌아온다. 어떤 때는 이자가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돌아 오고, 어떤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은근하게 돌아 온다. 사랑이 부족하면 구두쇠가 된다. 사랑을 요구하기만 하고, 나누어 주지 않는 사람은 마침내 사랑의 구두쇠가 된다. 구두쇠는 자신이 나누어 주지 않은 것은 생각지 않고, 남이 자신에게 주지 않는 것을 불평한다. 주지 않은 것은 생각지 않고, 받지 못하는 것을 서럽게 생각하는 것이 구두쇠의 특징이다. 이것이 사랑 결핍증에 걸려 있는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세이다. 슬프게도 사랑의 구두쇠는 불평과 외로움 속에서 춥게 지내다 인생을 마치게 된다. 사랑은 돈과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때마다 이자가 붙는다. 사랑은 결코 손해 보는 법이 없다. 사랑은 언제나 넉넉한 이윤을 남긴다. 그래서 사랑을 나누어준 자는 언제나 그 마음이 두둑해지고, 얼굴에는 미소와 만족이 나타나게 된다. 사랑을 나누어 주는 데에는 돈이 필요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무한히 나누어 줄 수 있다. 사랑을 받은 자만이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풍성하게 나누어 줄 수 없다. 부모의 사랑을 만끽한 아이가 그 사랑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되돌려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느끼고 받는 사람은 그 사랑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되돌려 준다. 사랑은 감추어 둘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그것을 거저 받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아무런 아까움도 미련도 느끼지 않고 후하게 나누어 줄 수 있다. 이렇게 나누어 준 사랑은 언제나 높은 이자를 물고서 다시 내게 돌아오니 어찌 내가 사랑을 나누어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사랑은 원수의 머리 위에 부끄러움의 숯불을 올려 놓고, 악마의 마음 속에 수치를 던져 넣는다. 사랑은 구두쇠의 전대를 풀어 헤쳐 놓는다. 사랑은 불평의 입을 막고 너그러운 자비의 입을 열어 놓는다. 사랑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내쫓고,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불러 들인다. 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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