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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산책

예수님의 선교 정신

작성자하늘소망|작성시간26.06.14|조회수21 목록 댓글 0
예수님의 선교 정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선교 사업을 바라보셨던 눈으로 선교 사업을 바라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시점에 마귀로부터 선교 사업에 얽혀 있는 명예와 자기 만족에 대한 시험을 받으셨다. 그분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굶주렸다. 굶주려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마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 4:3. 예수님은 마귀가 제안하는 수단과 방법을 거절하였다. 예수님은 돌들을 사용하여 자신도 배부르고 배고픈 수억의 인간들을 당장에 배부르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굶주림을 채워주는 것은 일시적인 사업이었다. 구원의 역사는 영원에 이르는 것이어야 한다. 억만 개의 빵이 있다고 해도 인류의 구원을 이룰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진리의 말씀만이 참 양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의 제안을 이렇게 거절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예수님은 인간의 육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영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다음에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올라 갔다. 눈 아래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마귀는 다시 방법과 수단을 제안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리라.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 마 4:6. 마귀의 제안은 이런 것이었다. “예수, 당신의 현재 모습과 배경으로는 이 수많은 군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당신의 진짜 능력과 재능의 참 가치를 알아주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몸을 저 아래로 던져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고 또한 기적을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십시요. 그러면 군중들은 당신의 능력에 압도되어 놀라움으로 당신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과 진리는 기적이나 위협적인 공갈로 전해져서는 안된다. 일단 군중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그 다음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자기를 속이는 일이다. 그러한 종류의 방법과 수단은 구원의 도를 전하는 데에 있어서 무가치한 것이다.
사단의 시험이 계속되었지만, 예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는 말씀으로 단호히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구제를 못할지라도, 그리고 압도하는 기적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채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생애를 마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스라엘과 세상 앞에 분명하게 나타나지 못하더라도, 예수께서는 복음과 진리에 합당한 길 이외의 다른 모든 방법과 수단은 거절하였다. 물론, 5천명에게 떡을 나누어 준 것처럼 가끔?기적을 사용하신 적이 있지만, 그 때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군중의 우매함을 꾸짖으시고 그들을 쫓으시거나, 그 자리를 급히 떠나심으로 그들을 피하셨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이나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사람들을 흩어 보내시는 동안 즉시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하시고” 마 14:21,22. 예수님의 그러한 생애는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따라서 세상의 명망은 하나도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으며, 그는 악인으로서 또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서 처형당했다. 때때로 하나님의 의는 사람들을 화나게 만든다. 천사가 예루살렘에 사는 헤롯왕과 유대교회 지도자들 대신에 베들레헴에 있는 천한 목동들에게 나타나서 구세주의 탄생을 알렸을 때에 유대 지도자들은 시기와 질투로 분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애비없는 자식으로서 말구유에서 태어나게 하심으로써, 마귀와 인간이 높이 평가하는 모든 명성과 방편과 수단을 거절하셨다. 예수께서는 단 하나의 교회나 크리스챤 학교도 세우지 못했으며, 어떤 놀라운 선교기관도 설립하지 못했다. 다만 겉으로 보아서 형편없이 보이는 열두 명의 제자를 길렀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선교 사업의 전부였다. 철저하게 실패한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완전한 성공이요 승리였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애를 통하여 사람들 앞에 완전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 보이셨기 때문이다. 선교 사업이 실패했다고 안절부절하는 목사나 신부나 선교사가 있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실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회 주차장에 꽉 찬 자동차를 보면서 자족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성직자가 있는가? 혹시 그리스도의 실패와 그대의 성공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라.

나는 지금 선교 사업이나 자선 사업의 무가치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불교나 어떤 다른 종교보다도 자선 사업에 왕성한 의욕을 가진 종교이다. 선행 자체에는 가치나 공로를 두지 않으면서도 선행을 격려하고 일으키는데에 있어서 가장 힘이 있는 종교가 기독교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선 사업과 의료 선교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자선 사업이 빵을 나누어 주는 데서 끝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의료 사업이 병을 고치는데서 끝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리스도의 자선 사업이 단순히 5천명에게 떡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끝났다면, 그리고 그분의 의료 선교 사업이 단순히 문둥병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만으로 끝났다면, 기독교회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은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의를 굳게 세우셨다.


그리스도는 인기와 명망과 수단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진리 자체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어야지, 진리와 복음을 멋있게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서는 안된다.
의면 의이고, 불의면 불의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의와 불의를 섞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는 안된다. 유명 연예인을 앞세워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교회당의 장엄한 건축물로 신도들을 모으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마귀가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두번째로 유혹할 때에 사용했던 덫에 걸린 사람들이다. 또한 사람을 모으기 위하여 기적을 사용하는 자 역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불경하는 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방법과 수단을 거절하심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진실과 정직의 참 가치를 알려 주셨다.

만일 그리스도가 대정치가로 사셨다면 어떠했을까? 그분은 시이저를 압도하면서 당시의 로마제국을 통일하고 노예 제도를 폐지하며, 중국의 요순 시대를 훨씬 능가하는 태평성대를 이 땅 위에 건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길은 하나님의 의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분의 목적은 지상낙원의 건설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선교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주제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교 사업에는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방편과 수단들이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수단과 방편과 핑계가 허용된다면, 기독교회에서 순교자란 나올 수 없다. 수단과 방편과 핑계가 허용된다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 안에 들어 갈 필요가 없었다. 수단과 방편과 핑계가 허용된다면,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단과 방편과 핑계가 허용된다면, 십자가의 죽음과 치욕은 없었을 것이며 인류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성공을 위해서 선교 사업을 하지 말고, 철저한 실패를 각오하고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수단과 방편을 거절한 결과로 인해서 선교 사업이 실패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실패한 자는 의의 왕국에서 주춧돌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자만이 선교 사업을 하면서 자유와 평안과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선교 사업은 의의 꽃이요 열매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사업은 자연스럽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의 수단과 방법에 의해서 맺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맺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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