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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4장 죄에 대하여 죽으라! 1

작성자들꽃|작성시간26.06.05|조회수19 목록 댓글 0
 4장 죄에 대하여 죽으라! 1 -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1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사단이 통치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연약함을 가진 무력한 어린 아기로 오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인간으로서 누구나 당하는 인생의 위험을 겪고 또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싸워야 할 싸움을 실패와 영원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을 허락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아담의 모든 자녀와 같이 유전법칙이 끼쳐 온 결과를 받으셨다.” (DA 49)
 
왜 하늘의 왕께서 그렇게 되셔야 했을까요? 다음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자로서 우리의 죄와 비애의 짐을 담당하셔야 했다.
무죄하신 자가 죄의 수치를 느껴야 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자가 분쟁과
함께 살아야 했고 진리가 거짓과 함께, 깨끗함이 누추함과 함께 거해야
했다. 범죄로 생긴 모든 죄악, 모든 불화, 모든 누추한 정욕은 그의 마음에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DA 111)


우리는 가끔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순결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죄에 대해서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봅시다.


주님께서는 30여 년 동안의 지상 생활 기간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번민으로 그 심령이 매우 상하셨다. 말구유로부터 갈바리에 이르기까지의
행로는 비애와 슬픔으로 그늘져 있었다. 주님께서는 슬픔의 인간이셨으며
인간의 비애를 잘 아셨던 분으로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아픔을 견디셨다. … 완전한 증오심으로 죄를 미워하심으로 주님께서는 온
세상의 죄들을 영혼으로 끌어 들이셨다.”(1SM 322)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악들을 어디로 끌어 모으셨다고요? 그분
자신의 영혼 속으로 그 죄를 다 안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죄악의 그 고통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바로 나의 죄! 여러분의
죄! 여러분, 그것을 정말 이해하십니까? 그것이 무슨 뜻인지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죄에 대한 범죄 의식이 그 놀라운 무게를 가지고 세상의 구세주의
거룩하신 영혼을 압박하였다. 아담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가진 악한 생각,
악한 말, 악한 행동은 당신 자신께 징벌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주님께서
인간의 대치물이 되신 까닭이다.”(1SM 322)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저 죄로 여겨만 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 그 자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영혼 속에 죄악들을 거두어
들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지은 죄, 또한 짓게 될 죄, 다른 사람들이 지었을
모든 죄악을 다 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그렇게 취하신 것을
우리가 믿지 못하면 우리의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겠다는 것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비록 범죄 의식이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나 주님의 심령은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찢어지고 멍이 들게 되었으며 우리로 당신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죄를 모르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1SM 322)
 
 
이 내용은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그 죄를 지신 것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믿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진짜 의로운 자로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의로운 자로 그저 여겨 주신다고 그렇게 믿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그 자체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정신 곧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을 창조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 마지막 시간 동안에
사람이 죄에 대하여 대항하기를 애쓸 때에 경험해야 할 그 최상의 경험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죄에 굴복하므로 얼마나 나쁘게 될 수 있는가를
인식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 예수님께서는 텔레비전을 모르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그 많은 죄악을 어떻게 아셨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악한 것들을 다
인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우리가 그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죄 그 자체가 되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그 무서운 결과를 느끼셨는데 그것은
전 인류의 죄악들이 그분을 눌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영광의 구주께서는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서 운명하고 계셨다.
그분의 귀중한 생명을 거두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들뜨지
않으셨다. 모든 것은 숨이 막힐 듯이 침울했다. 그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분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자아내게 한
것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 당하는 자
중에 제 일인자이셨으나 그분의 고통은 죄의 유해성을 느끼는 데서 오는
고통, 인간이 죄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죄의 흉악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죄가 인간의 마음에서 너무나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나오려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아셨다.”(DA 752)
여러분, 이것은 그저 세상에 있는 악한 죄악들의 세력으로부터 나오는
것 그것 뿐만은 아닙니다. 바로 이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죄악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므로 성령에
의해서 완전히 주관 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인간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고 수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DA 752)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심장을 파열 시켰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신 경험 그것뿐만 아니고 예수님께서 제공하는
것을 인간들이 받지 않는 것 때문에 심장이 터지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세력으로부터 떨어져 깨뜨려지기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사단은 맹렬한 유혹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쥐어짜듯이 괴롭혔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가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자기의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가 더
이상 탄원하지 않게 될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온
인류의 대속자인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DA 753)
 
여러분이시여, 우리 백성 앞에 예수를 높이십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2)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각 사람을 다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가져가시기를 원하십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죄를 덮어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죄를 가지고
가셔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내시기 위해 오신
것이지,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이 죄인인 것을 느끼지 못하면 주님께서 구원하시지 못합니다.
자- 그러면 구원의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저항하지 아니하고 주님과 함께 시간을 가질 때 주님께서
두 번째 단계를 역사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말씀하시기를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 하시리라.”
 
여러분, 저는 항상 무엇에 대해 조금만 잘못했을 때도 금방 죄에 대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조금만 거짓말을 했거나 속였거나
조금만 잘못하면 제 마음 가운데 죄책감이 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변상하고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 마음 가운데 평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참으로 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의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물론 선한 일은 많이
했습니다. 저는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저를 주관하고 있었을까요?
여러분,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주관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그것에 큰 확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성가심 당하고 화를 냈을 때에 항상
그들을 원망하고 핑계했습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을 변명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말씀을 연구한 다음에 “아! 내가 주님을 얼마나 많이 실망케
해드렸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의 의가 제 마음 가운데 없었습니다.
제 옷은 그저 더러운 누더기였습니다. 저는 심판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받는 길에 서 있는지
멸망의 길에 서 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의에 대해 깨닫게 하시고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 그러한 단계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런 깨달음을 받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제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렘 3:13)


여러분, 과거에 제가 어떻게 했습니까? 제가 성가심을 받거나 화내거나
했을 때 제가 제 죄를 깨닫고 인정했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원망했나요? 여러분,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기는 참 쉽습니다.
참된 회개라고 하는 것은 그의 죄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고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SC 40)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영혼을 겸비하게 낮추고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용납을 받는 첫 번째 계단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다.”(SC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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