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유혹을 어떻게 승리하는가? 2부
한 번은 제 딸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언제 이기적이지
않는 마음을 느끼는 거예요? ”라고 물었습니다. “너는 절대로 그런 마음을
느낄 날이 없을 거다. 네가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너는 마음에 이기적인
유혹을 항상 받게 될 거야. 너는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네 죄의 본성이 변화될 때까지 너는 이기심을 항상 느끼고 살 거야. 네가
거룩한 육체를 예수님께 받을 때까지는 느낄 것이야.”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 비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서 본성적으로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 딸은 그런 식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딸이 더 어려운 시험을 겪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너는 항상 그런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네가 그런 유혹을 선택해서 굴복할 필요가 없어. 네가 이기적인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너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할 수가 있어. 너를 도와 달라고
주님께 기도해라.”
우리는 다른 어떤 문제에서도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훌륭하고 좋을지라도 사단이 제안하고 이끌어
올라오는 그런 생각들과 감정들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우리가
품지를 않으면, ‘오- 내가 그런 나쁜 감정이나 생각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것이 가증스러운 것으로 여겨 떨쳐 내버릴 것 같으면, 그 영혼은
더러움으로 얼룩진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유혹이 어떤 종류의
것일지라도, 불결한 생각들이 품어지면 그런 것들은 그런 말이나 행동으로
옮겨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잘못된 생각들이 들어올
때 여러분이 그것을 원하고 받아들이면, 여러분은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전혀 행동화하여 옮기지
아니하였을지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여기 또 하나의 좋은 구절이 있습니다.
“잠시라도 단 한순간이라도
그대들은 사단의 유혹이 그대들의 자신과 조화가 되는 것처럼 인정하지
마라. 그대들이 마귀에게서 돌아서는 것처럼 그것들에게서 금방
돌 아서라.”(OHC 85)
여러분이 완전히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여러분이 자진해서 일부러
마귀의 영역 가운데 들어가서 TV에서 악한 것들을 볼 때에 여러분은
그것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압니다.
또 어떤 것을 읽을 때도 그런 것들을 압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그것을
보지 말고 읽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지 여러분이 그것을 읽고
봅니다. 여러분이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에 마귀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
부분에 여러분을 더 심하게 유혹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진해서 마귀의
영역에 걸어가면 마귀는 그 유혹을 점점 더 강하게 가질 권한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혹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계속하여 가져올
것입니다.
오- 여러분이시여, 제가 그것을 압니다. 제가 오래전에 그것을 한 번 했기
때문에 압니다. 저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
가운데 이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면 제가 그것을 떠날 것입니다. 저는
사단의 영역에 제가 자진해서 걸을 마음이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우리는 바로 처음부터 죄를 피해야 한다. 모든
감정과 욕망은 이성과 양심에 굴복되어야 한다.”(5T 177)
“양심이란 여러분의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다.” ( 5T 119)
여러분을 넘어지지 않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양심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대들의 생각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하고 그대들의
감정은 이성과 신앙의 지배 아래 놓여야 한다. 그대들의 상상력은 함부로
날뛰고 제지나 규율 아래서의 어떤 노력 없이 제 마음대로의 길을 가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이 잘못되면 감정도 잘못될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과 감정이 합하여 도덕적 품성을 이룬다.”(5T 310)
여러분이 지금 아무런 생각과 감정이 없으시다면 여러분은 무엇입니까?
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심장이 뛰고 있지만 감정과 생각이 없으면,
여러분은 단순한 육체입니다. 바로 어떤 의미에서 그 생각과 감정이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이 합쳐져서 여러분의 성품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두뇌에 무엇이 저장되어 있는가! 그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나쁜
습관들이 컴퓨터에 지금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습관 같으면
그런 것들이 여러분의 감정과 생각들을 올바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두뇌 기억 장소)
그러나 그런 것들의 속에 기록된 기록이 아니고, 여러분이 의식적으로
느끼는 지금의 생각들과 느낀 감정들이 바로 여러분의 도덕적인 성품이
된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것으로 우리가 하늘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로운 몸으로 재창조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다시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도덕적인 품성입니다. 여러분
자신만이 생각과 감정이 잘못되게 하는 데서 지킬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앉아 있어도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감정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교회 안에 앉아 있다고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예수님께 굴복하는 경험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덤으로 들어갈 때에 무덤 속에서는 더 이상 여러분의
마음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 내가 화가 난 심정을 가지고 무덤에 들어가도 내가 기도하고 회개할 것을 주님께서
아시니까 어쨌든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죽기 전에 회개할 모든 기회를
다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선택으로 여러분이 멸망되든지 구원을
받든지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완전하기를 요구하신다.”
잘못된 생각이나 감정을 가지고 누가 하늘에 갈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여러분의 품성이 아닙니까! 바로 여기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인
품성의 완전이 요구되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마5:48)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잘못된 감정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애의 모든 부분에서 어떻게 올바로 살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방법론보다 우리 마음의 품성 완전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도덕적·영적
완전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약속되어있다.”(AA 478)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오늘 여러분의 영혼을 예수님께
굴복시키고 여러분의 모든 잘못된 생각과 감정을 “주님, 내 잘못된 감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 분노가 여기 있습니다. 내 증오가 여기 있습니다. 내
원망이 여기 있습니다. 내 쓰라린 감정이 여기 있습니다. 주님, 내가 더 이상
원치 않사오니 이것을 가져가 주십시오.”하고 주님께 드리면 하나님의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여러분을 모든
죄로부터 정결하게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정신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재창조함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십자가 위에 있던 한 강도처럼 여러분은 하늘을 위해서
준비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도덕적인 품성이 그때에 완전해지고 잘못된
생각과 감정이 씻은 바 되었기 때문에 바로 그것이 우리의 완전한 생각과
마음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완전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주 앞에 굴복하시면 여러분은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감정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완전입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제가 한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히4:15)
사단은 매 발걸음마다 그분을 공격하고 그분에게 가장 심한 유혹을 제시해 주기
위하여 언제나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셨다. 그분은 ‘시험을 받아 고난 당하셨’고
그분의 완전한 거룩함에 비례하여 고통을 겪으셨다.”(벧전2:22)
여러분, 유혹을 받으면서 어떻게 고난을 당합니까? 여러분이 유혹을
받을 때 여러분이 그 시험에 굴복치 않고 여러분의 죄의 본성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고난인 것입니다. 바로 육체 가운데서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든 정욕의 힘을 다 가지고 계셨을지라도
그는 결코 유혹에 굴복하여서 순결하거나 고양하게 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행동은 단 하나도 행하지 않으셨다.”(HP 155)
그가 인간의 정욕의 모든 힘을 다 가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정욕이라는 말은 꼭 나쁜 말은 아닙니다. 정욕이란 여러분의 “감정의
힘”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힘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악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런 감정의 모든 힘을 이쪽 편이든지
저쪽 편이든지 할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된 감정에 한 번도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자주 원망을 받으셨습니다. 집안일이든지,
어린아이들에 대한 일이든지, 뭐든지 잘못되면 원망을 받았는데, 그때
어머니께서는 찬송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다시
고양되고 행복해졌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참된 신앙의
길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때에도 저의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때마다
찬미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예수님을 진짜 발견했을 때에 오- 저의
어머니는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마가렛아, 정말
주님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 이 노래가 내게 정말 진실 된 것이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벧전4:1,2)
“그리스도께서 그때 우리를
위하여 육체로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이는
육체로 고난을 받은 자는 죄로부터 단절되었음이니 이는 그가 육체 안에서
자기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 함이라.” (참고 KJ V)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범죄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2:21-23)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짓지도 아니하셨고 입에는
속임수도 없으셨으며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셨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신을 의탁하셨느니라.” (참고 KJ V)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복수를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