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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8장 그리스도의 성품(품성)이란 1

작성자들꽃|작성시간26.06.15|조회수24 목록 댓글 0
인상깊은 구절
육신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으며 굴복할 수도 없는
데 그 육신적인 마음이 영적인 마음으로 거듭난다. 그렇게 된 마음은
‘오-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겨 하나이다. 당신의 율법이 내 마음
가운데 있나이다’라고 말한다. 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믿고 있는가! 그들은 정말 그 영적인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기를 즐겨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복음의 능력21] 8장 그리스도의 성품(품성)이란 1 –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라!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한 인용 구절을 읽으면서 끝났습니다. 제가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그의 육체 가운데 거했다.
바로 이렇게 하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모든 면에서 유혹을
받으셨으나 그분서 이 땅에 오시는 첫 순간부터 그 주위에 둘러싸고
있는 모든 부패로부터 더러움이 없는 상태로 설 수 있으셨다. 말씀하시기를
우리도 바로 그러한 신성에 충만함을 받는 입장이 될 수 없는가! 바로
이렇게 신성이 우리 마음 가운데 충만해짐으로만이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이긴 것처럼 우리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BC7, 907)


여러분, 베드로후서 1장에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다시 한 번
보십시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3 - 4)


자- 우리가 이 부패를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다고요? 그의 신성에
참여하는 자가 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찬 그룹, 뜨뜻미지근한 그룹, 뜨거운 그룹이 있는데
이 세 그룹 가운데 어느 그룹이 신성에 참여한 사람입니까? 뜨거운
사람들만이 신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 마음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들은
위로부터 능력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굴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어떠한 몸으로 오셨습니까?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형태로 오셨습니까? 아담이 타락한 후의 형태로 오셨습니까? 여러분,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 교회 안에서 투쟁이 많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잠깐 살펴봅시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2: 9 -11)


11절은 굉장히 중요한 절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 하시고”


여기에 어떤 사람들을 보시면서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까? 여러분,
거룩하게 하심을 받은 자들만이 그리스도의 형제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그가 공언하는 그 진리대로 살아 있는 대표자를
말한다. 이러한 참된 마음을 가진 추종자들 중에 이러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형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나신 것같이 똑같은 그런 경로에서 난, 근원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육신으로 태어났지마는 그의
마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참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형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진실로 거듭난 사람들이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오-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아브라함 자손이면
아브라함처럼 너희가 행할 것이다. 너희의 아비는 마귀다. 너희의 하는 일은
너희 아비 마귀에 관한 것을 행하느니라.” (요8:41)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내 형제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다른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였습니다. 여러분께서 거듭났을 때 여러분의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요1:12 -13)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형제들입니다. 그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2:14 -17)
 

자-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떤 본성을 취하셨습니까? 아담이 타락하기
전입니까? 아닙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거룩한 마음이 있었고
거룩한 육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거룩한 육체가
없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예수님께서 타락한 육체, 죄 된 육체를 타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녀들처럼 혈육에 함께 속하셨다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의 자손들이 가진 그런 혈육과 같은 것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형체 그대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육체는 똑같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타락하신 육신적인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육신적인 마음을 가지고 오셨다는 말씀은
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게 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과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거룩해진 사람은 새로운 마음과 새 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게 된 자들처럼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 그렇게 하신 것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그 원래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BC7, 926)


여러분,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그 새로운 마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 8)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그것은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말씀하시기를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그 원래의 마음을 인간에게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주셨던 그 본성과 같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이
거듭날 때에 그의 마음 가운데 어떤 일이 생깁니까?


육신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으며 굴복할 수도 없는
데 그 육신적인 마음이 영적인 마음으로 거듭난다. 그렇게 된 마음은
오-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겨 하나이다. 당신의 율법이 내 마음
가운데 있나이다’라고 말한다. 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믿고 있는가! 그들은 정말 그 영적인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기를 즐겨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


바로 이러한 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면에서 그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은 말합니다. “오- 너는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 오- 예수님께서
이기신 것처럼 승리를 거둘 수가 있다. 예수님이 너의 모본이 되신다.”
여러분,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뜨뜻미지근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마음이 아직 없거든요! 그들은
새로운 마음도 없습니다. 그들은 거듭난 상태가 아닙니다. 그들은
거룩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제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어린아이에게 “자! 예수님처럼
되라! ” 그렇게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 아이에게 부당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아이들을 위해서 성령을 받도록 늘 기도해 주지 않고서는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성령 없이 어떻게
예수님처럼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을 성령의 영향 아래 항상 두어야 합니다. 그때만이 그 아이들이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9: 8)


이것은 육체적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만이 그 후손들이라고 인정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와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만이
예수님께서 이기신 것처럼 이기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보다 더 많은 시험을 예수님께서 당하셨습니다.
자-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 또 한 말씀을 읽겠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히2:11)
하신다.”(GC 477)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6 -29)


자- 예수님께서 어떠한 본성을 가지셨습니까? 아담이 타락하기
전입니까? 아닙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입니까? 아닙니다. 오- 아담이
타락한 후의 입장에서 오셨으면서, 그 마음은 원래 입장으로 회복게 하신
그러한 입장으로 오신 것입니다. 바로 거듭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이
예수님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형제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입장이지마는 거듭난 사람들과 같은
입장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
’ (히4:15)으셨다.  사단은
발걸음마다 그분을 공격하고 그분에게 가장 심한 유혹을 제시해주기
위하여 언제나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벧전2:22)셨다. 그분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고
그분의 온전한 거룩함에 비례하여 고통을 겪으셨다.” (5T 422)


 그러한 식으로 우리도 승리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응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유혹을 받으면서 고난을 당합니다.
유혹을 받으면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 유혹에 굴복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받을 때 고난받는다는 뜻이
그런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노하도록 유혹을 받을 때, 분노하는 대신 원수를 사랑해
주십시오. 또 다른 어떤 면에서 방종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바로 그
육체의 유혹에 대해서 죽으십시오. 그렇게 할 때 고난당한다는 뜻이 바로
그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가진 성정의 극심한 모든 세력을 가지고 있었을
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단 하나의 행동으로도 정결하고 또한 고상하며
우아하지 않는 행동으로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셨다.”(HP 155)


여러분께서 느끼시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느낄 가능성이 예수님께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것을 느낄 힘을 다 가지고
계셨습니다. 많은 죄악이 우리가 느끼는 느낌을 통해서 오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성경은 정욕이라 말합니다. 그것은 감정의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증오, 분노, 질투, 투쟁, 미움 이런 것들을 전부 다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것에 다 굴복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4:1,2)


예수님께서는 급한 성격이나 아니면 분노의 말을 할 수 있는 지점까지
시험을 당하셨으나 한 번도 당신의 입술로 죄를 범치 않으셨다.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온유하고 인내함으로 만나셨고 또한 괴롭히는 사람들
곧 그가 목수 작업장에 있을 때에 같이 일하는 동료로부터 그가 조롱을
당하셨을 때에 그렇게 대응치 않으셨다. 분노하심으로 반박하시는 대신에
그는 다윗의 아름다운 시편을 노래하시곤 하셨다. 그때 그 뒤에 있는 모든
사람도 같이 따라서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BC7, 936)


여러분, 예수님께서 합창단을 보내서 원수를 막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승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굴복할 때
원수 마귀는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의탁하시며”(벧전2:21-23)


여러분, 우리가 우리 스스로 싸우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을 더 신뢰할
것 같으면 우리도 놀라운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못하는 자들에게 우리도 선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에 고난받을 각오만 되어 있으면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모든 도움을 우리도 가질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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