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팡겔리아 - 알림, 발표, 약속 - 에 대한 신약성경에서의 의미와 신약성경에서의 사용용법과 용례

작성자염찬호|작성시간18.12.16|조회수66 목록 댓글 0

ejpaggeliva(1860, 에팡겔리아)

알림, 발표 announcement, 약속 promis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에팡겔리아(Demosth. 이래)는 에팡겔로(ejpaggevllw, 1861)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a) '알림, 선언, 보고'.

(b) 국가가 어떤 것을 언급할 때는 '명령'을 뜻한다.

(c) 법률에서 '고소의 통지, 판결 언도'를 뜻하는 전문 용어이다.

(d) '약속', 약속에 있어서 말과 행동 사이에서 긴장이 느껴진다. 따라서 약속은 종종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된다.

(e) '돈의 약속'은 특별한 유형의 약속이며 이런 의미에서 '기부' 혹은 '증여'의 개념이 생겨났다(국가의 종교 의식이나 통치자들의 즉위 때 그들에게 주는 선물, 사제 지망을 입증하는 선물을 약속하는 사제들).

 

(f) 헬라시대에서 우리는 또한 축제의 "선포"를 뜻하는 특별한 용법을 발견한다. 모든 예들 중에서 오직 한가지 예만이 신의 약속에 대해 사용되었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에팡겔리아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약속'이란 의미를 나타낸다(4:7; 56:8; 9:6 ).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에팡겔리아는 신약성경에서 5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누가의 기록에서 에팡겔리아.

 

23:21에서만 사람의, 곧 천부장의 언질을 나타낸다: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그 외에 에팡겔리아는 항상 하나님의 약속을 뜻한다. 에팡겔리아는 약속뿐만 아니라 약속한 것의 성취 모두를 의미한다.

 

7:17에서 아브라함은 약속의 수령자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26:6이하에서 조상들에게 한 약속은 메시야에 관한 약속이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그리스도는 그것을 성취하셨다(13:23; 13:32).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준 바대로(1:4) 메시야는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24:49; 2:33). 기독교인들은 죄가 용서되고 성령이 부어진 성취의 시대에 살고 있다(2:38-2:39).

 

 

(b) 바울서신에서 에팡겔리아.

 

율법과 약속. 바울은 율법과 약속의 관계를 고찰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죽은 자를 일으키시거나 무에서 창조해내시기까지 하는 분이시니(참조: 4:17), 약속하신 것을 능히 행하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4:20 - 4:21).

 

그러나 그 약속들이 성취되었을 때 그 약속들은 우리가 행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 및 행동과 마땅히 관련된 것이다(4:16).

 

약속을 율법과 묶는 것은 우리의 위법과 그 결과인 심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4:13).

 

만약 약속이 율법에 의존한다면, 약속은 더 이상 약속이 아니다(3:18). 언약의 약속은 율법에 앞선다. 율법은 생명을 주지 못하며(3:21) 오직 죄인들을 행위에서 믿음으로 인도하는 일만 할 뿐이다(3: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들은 고후 7:1에서처럼 명령을 지닌다. 이 약속들은 신자들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 약속들이 신자들의 행위를 결정한다.

 

약속의 수령자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약속의 수령자이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4:13).

 

유대인들은 메시야적 구원의 약속을 맨 먼저 받은 자들이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9:4).

 

이방인들은 이 약속에 대하여 외인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2:12).

 

예수님은 유대인이다(15:8). 그렇지만 이 약속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유대인들로부터 열방들에게 확대된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이신 한 씨 안에서(3:16이하; 3:6)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4:16). 그리스도를 덧입거나 그 안에 있거나 그에게 속한 사람들은 약속에 따라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상속자가 된다(3:27 - 3:29).

 

약속의 내용. 약속의 내용은 유업으로서의 메시야적 구원, 생명, 성령, , 그리고 아들 됨이다(4:13이하; 3:14이하; 9:8; 1:13). 모든 약속들은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고(3:14), 성령을 담보와 보증으로 주시고 인치신(1:13 - 1:14) 하나님의 긍정(the yes of God)이신(고후 1:20)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c) 히브리서에서 에팡겔리아.

 

히브리서 기자는 다른 관심을 지닌다. 그가 고찰한 바와 같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 이삭, 사라, 족장들, 선지자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주어졌다(6:12 - 6:13; 11:9, 11:11, 11:33; 4:1이하). 개별적인 약속들, 예를 들면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은 그들을 위해 성취되었으나, 궁극적인 약속들은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6:15에서 아브라함에 대하여 "저가 약속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언급은 단지 부분적인 성취에 불과하다(이삭의 출생).

 

궁극적으로 그 약속은 복음의 견지에서 해석되어지고 있는데, 요컨대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한 구원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참조: 4:2).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히 11:39에서 그리스도 전에 왔던 구름과 같은 많은 증인들이 기다렸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족장들이 외국인과 나그네로서 멀리서 보고 환영한 메시야적 구원으로 수렴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11:13).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새 언약은 보다 나은 약속들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8:6). 인용된 약속들은 예레미야 31장의 약속들이다. 이 약속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취되었다: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9:15).

 

이 약속들의 최종적 성취는 아직도 미래에 속하여 있으나(10:36) 우리는 이미 에스카톤("마지막")에 살고 있으며(참조: 1:2), 우리는 불신앙으로 인하여 약속들을 잃지 않도록 "이미""아직 아니" 사이의 긴장을 견뎌내야 한다(4:1이하). 하나님의 편에서, 약속들을 최종적으로 성취하려는 그의 뜻은 불변하며, 그는 맹세로 약속의 성취를 보증한다. 이 사실들은 믿음 안에서 우리를 강하게 한다(6:12이하).

 

(d) 베드로후서에서 에팡겔리아.

 

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한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조롱자들이 생겨났다: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 3:4). 그 대답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같이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예언의 말씀은 확실하다(참조: 벧후 1:19이하)는 것이다.

(참조: Walter Bauer; J.Schniewind; G.Friedrich; E.Hoffmann).

                                                                                                 - 바이블렉스 9.0에서 내용 발췌 -

옮긴이  염    찬  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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