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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작성자염찬호|작성시간20.01.11|조회수171 목록 댓글 0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왕국이 둘로 갈라지다

솔로몬 왕은 말년에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고 결혼동맹으로 맞아들인 후궁들의 우상숭배를 묵인함으로써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다. 하나님은 솔로몬 사후에 나라를 둘로 쪼개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926년 40년간을 통치했던 솔로몬 왕이 죽고 난 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 그때 북쪽의 부족들이 강제 노동과 세금 감액을 요구하며 특히 ‘지도자란 국민의 심복이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요청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르호보암 왕이 이스라엘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자, 그들은 여로보암을 모셔다 그들의 왕으로 추대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에게 부역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항거하다 이집트로 도피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이듬해 신의 말대로 두 왕국으로 갈라진다. 이로써 북쪽은 나머지 열 개 지파가 독립해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세운 ‘이스라엘 왕국’이 되었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벤자민 지파로 구성되어 르호보암이 이끄는 ‘유다 왕국’이 되었다. 왕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다 지파의 이름을 따 유다 왕국이라 불렀다. 유다란 “하나님은 찬송 받을지어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왕국 여로보암은 ‘이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 다닌다면, 그들 마음이 다시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나를 죽이고 르호보암을 다시 왕으로 삼게 될 것이다’라는 우려를 했다. 그는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전 방문을 막기 위해 아예 바알 신을 뜻하는 두 개의 황금 송아지 상을 만들어 예루살렘 북쪽 벧엘과 단에 하나씩 세우고 제단을 만들었다. 명백한 우상숭배였다. 하느님과의 계약인 십계명 가운데 첫째 계명인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와 둘째 계명인 ‘우상을 섬기지 말라’를 동시에 어긴 것이었다.

전쟁이 200년간 계속되다

그 뒤 형제 국가인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은 크게 싸운다. 르호보암의 뒤를 이은 유다 왕국의 아비아는 40만의 군대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80만 대군을 물리쳤다. 이스라엘 왕국은 이 전쟁으로 50만 명의 희생자를 냈고, 종교 중심지였던 벧엘과 몇 성읍들을 빼앗겼다.

그 뒤 유다 왕국의 아사 왕은 이집트와도 전쟁을 치른다. 이집트의 1백만 대군과 병거 3백 대를 맞아 싸운다. 이는 아사 왕의 군대 58만 명과 비교할 때 두 배에 가까운 숫자였다. 아사 왕은 골짜기에 진을 치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결국 아사 왕은 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며 블레셋까지 점령했다.

아사 왕 36년에는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공격해 왔다. 이때 아사 왕은 북쪽의 다메섹(아람) 왕에게 금은을 모아 보내며 원병을 요청했다. 다메섹의 이스라엘 공격에 결국 바아사는 철군했다. 그러나 이는 아람이 그 뒤에도 이스라엘을 수시로 괴롭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3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람 후손들인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원수로 지낸다.

그 뒤 유다 왕국은 여호사바 왕 때 가장 강성했다. 그의 군대는 유다 지파에서 세 개 군단, 벤자민 지파에서 두 개 군단이 조직되어 1백만 명이 넘었다. 당시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나 남쪽 유다 왕국이나 다 군사강국이었다. 이후 2세기 동안 두 나라는 이러한 분열된 형태로 유지되었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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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 구세주를 예언하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앞일을 점지해주는 의미의 예언자라기보다는 합리와 정의에 입각한 바른 소리를 신앙의 힘으로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시대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예언자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prophetes’다. 이는 예언자의 기본성격을 암시하는 말로 ‘미리 말하는 이’의 뜻을 가진 ‘pre-phetes’가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pro) 말하는 자라는 의미다. 이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대변자로 부패한 왕권과 사회에 대해 경고와 질책의 말을 전했다.

기원전 8세기의 이사야는 선지자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이사야는 ‘야훼는 구원이다’라는 뜻의 이름이다. 그는 남쪽 유다 왕국의 왕족으로 기원전 759년경부터 아시리아가 예루살렘을 향해 쳐들어올 때까지 60년 간 4대 왕에 걸쳐 예언했다. 그는 국제정치의 역학구조를 꿰뚫어보고 역사의 발전 방향을 정확히 내다보았다. 이사야의 예언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총체적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종교가 파멸되고 궁극에 메시아의 새 시대가 올 것을 예언했다. 이사야는 《신약》의 초석을 놓은 《구약》의 완성자다.

이사야가 다룬 주제들은 ‘경고, 회개, 평화’로 이는 ‘구세주 사상’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인간이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사회 정의로 부의 추구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이사야〉 5:8)고 ‘경고’했다. 그의 둘째 주제는 ‘회개’다. 신은 뉘우치는 인간을 항상 용서한다. 죄 많은 자들은 참회해서 부와 권력이 아닌 거룩함을 추구하라고 채찍질했다. 세 번째 주제는 ‘평화의 시대’라는 이상이다. 이사야는 미래에 관한 비전을 제시했는데 명확한 인물상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네 번째 주제는 ‘구세주 사상’으로 메시아의 새 시대가 올 것을 예언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라파엘로, 〈선지자 이사야〉(1511~1512)
라파엘로, 〈선지자 이사야〉(1511~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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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는 기마부대와 철제무기를 앞세운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동서 교역로를 장악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기원전 743년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북시리아 왕국들을 정복하고 동부 지중해 상권을 장악했다. 그 후 이집트를 정복할 계획을 세우고 대군을 동원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침공했다. 이스라엘 왕국이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전쟁은 무려 10년을 끌었다. 그만큼 이스라엘도 강했다. 그 기간에 아시리아에서는 세 명의 왕이 교체되었다. 결국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한다. 이스라엘 왕국의 존속 기간은 불과 209년이었다.

아시리아는 그들이 믿는 태양신 아수르의 이름에서 유래된 나라다.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한 아시리아는 반란을 막기 위해 귀족들은 아시리아로 포로로 끌고 갔고 나머지 상류층 이스라엘인 약 2만 7천 명은 북동쪽 변방으로 추방했다. 이로써 이스라엘 왕국의 십 지파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우상숭배라는 계약위반은 이렇게 가혹한 형벌로 마무리되었다.

이스라엘 왕국 멸망 이후의 유대 지방
이스라엘 왕국 멸망 이후의 유대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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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혼혈, 사마리아인

아시리아는 멸망한 이스라엘 왕국 지역에 아시리아인들을 이주시켰다. 그대로 잔류한 이스라엘 하층민들에게 이방인들과 피가 섞이도록 하는 혼혈정책을 썼다. 이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과 종교적 전통은 말살되어 갔다. 그리하여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혼혈인 ‘사마리아인’이 등장하게 된다. 바리새파 유대인들은 이들을 잡종이라고 멸시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22XX39100010

 - 대한에스라 성서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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