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의 이해
로마서(로마인에 보낸 편지) The Letter of Paul to the Romans(Epistle to the Romans) 신약성서의 6번재의 글. 바울이 로마의 신자에게 써 보낸 편지. 바울이 쓴 많은 편지 중 가장 중요하고, 또 유명한 것으로, 그의 신학 사상이 조직적으로 세워져, 당당히 서술되어 있는 귀중한 글이다.
1. 로마 Rome
‘영원한 도성’으로 불리운 로마시, 그리고 이를 수도로 하여 번영한 고대 제국, 즉 로마제국(The Roman empire)을 말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All roads lead to Rome’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로마는 고대제국에 있어서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서구의 중심지였다. 또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도성이다.
로마제국은, 본래 중부 이탈리아의 일각에 있던 일개의 소도시국가였는데, 차츰 사방으로 세력을 펴서, 마침내 지중해 세계 전체를 그 지배하에 두기에 이른 나라이다. 로마시의 위치는 이탈리아의 서안, 튜레니아해(Tyrrhenia)에서 티베르 강을 약 25km 거슬러 올라간 곳의 우안에 있는 도시였는데, 오늘날 이탈리아 공화국의 수도이다.
로마는 전설로는 BC 8세기(BC753)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되었다하여 이 해를 기원 원년으로 하는데, 실제로는 BC 600년 경 건국된 것으로 티베르강 하류에 군락을 이루어 살았던 라틴족 일부와 가까이에 집단을 이루고 있던 사비니족(Sabini)이 합쳐진 것이다. 라틴족이나 사비니족 모두 이탈리키 사람(Italici)에 속하며, 이 이탈리키는 인도 유럽 어족에 속하였으며 BC 1000 년 전후 북방에서 이탈리아 반도에 남하 이주한 족속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에 도리 민족(Dorians)이 남하 이주한 것과 거의 동시로서 같은 물결을 탔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로물루스를 최초의 왕으로 하는 이 소왕국은 일곱 대(代)를 거치는 동안 인접국을 병합하면서 그 영토와 위력을 더했는데, 마침내 타르쿠이니우스(Tarquinius, Lucius T. Superbus 전승에 의하면 최후의 왕, 재위 BC 534-10 그의 아버지 타르쿠이니우스는 5대째의 왕)이 귀족의 젊은 아내 루크레티아를 강간한 것이 직접의 계기가 되어, 이 왕은 로마의 귀족에 의해 축출되고, 이것이 로마의 공화정(BC 509)의 시초로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공화제의 시대에, 로마는 전 이탈리아를 영토로 하고(BC 270경) 마침내 당시의 전세계를 손에 넣었다.
로마가 처음으로 아시아에 접촉한 것은, BC 190년이다. 로마의 군대는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Antiochos 3 BC 242-187, 마케도니아 계 시리아 왕 재위 BC223-187). 대왕을 마그네시아의 싸움에서 격파하고, 소아시아에 있는 성들을 보호국으로 했다. 그 후의 로마는 평화적인 수단으로 다른 곳을 정복했다.
BC63년 품페이우스(BC 106-48,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장군)가 시리아를 로마의 속령으로 한 후 그에게 점령된 유대도 정식으로 이에 복속했는데, 한 때 자국민이 그 지배자로 되는 것을 허용했다. 그동안 서로 반목하는 당파가 국내에서 분립하고, 정치적인 분쟁이 생겨났다.
그 결과, 카에사르, 폼페이우스, 크랏수스의 제1차 삼두정치가 성립되었다. 크랏수스의 죽음과 내분에 의해 폼페이우스의 패배에 의해, 권력은 카에사르 1인의 것으로 되었다. 그러나 오래는 계속되지 못했다. 카에사르는, BC44년 정적(政敵)에 의해 살해되고, 내란은 다시 생겨났다. 이어서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 성경에는 아구스도) 레피두스의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되었는데, 정권은 결국 옥타비아누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스스로 황제를 선언하고,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사용, 로마 제국이 시작되었다(BC 31).
예수의 탄생은, 아우구스투스의 치세에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그 후계자 티베리우스(성경에서는 디베료) 황제 때였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는 클라우디우스(성경 글라우디오) 황제의 치세 때이고
(행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12:1-2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바울이 상소한 것은, 네로 황제에 대해서였다.
예수가 예언한 예루살렘의 파괴(마 24장, 막 13장, 눅 19:41-44, 21:5-36)는 후년 황제로 된 티투스(titus Flavius Vespasianus 39-81 재위 79-81)에 의해 AD 70년에 있었다.
로마제국의 영토는 최대의 때 동서 4,800km 남북 3,200km에 달하고 인구는 약 1억 2천만이었다. 과도한 팽창과 내부의 부패, 또 외적의 공격에 의해 약해지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AD 395년 테오도시우스의 황제의 사후 동서로 분열되고, 476년 마침내 오도아케르(게르만의 용병대장, 스키리아족 출신)에 의해 서로마제국은 멸망되었다.
로마에 그리스도교가 언제 선교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로마의 세계적 위치로 보아, 그 선교가 중요시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를 방문하고, 로마 교회의 설립자로 되었다고 한다. 또 바울은 로마에 가서, 선교에 힘썼다(행 28장).
그러나 로마제국내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진전에 반비례하여, 그리스도교에의 박해는 세차져, 베드로 및 바울은 그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은 로마제국의 권위와 정신적 통일 위해 황제 예배를 강조한 데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반한한데도 하나의 원인이 있었다. 박해는 로마황제 때, 격심해졌다(54-68년).
그는 자기의 악행에 대한 비난을 그리스도인에게 전가시키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의 신앙은 불타,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의 박해를 위시하여, 2-3세기에 걸쳐, 계속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마침내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승인 있었고, 국교로까지 되었다. 박해시대에 예배를 엄수한 장소인 카타콤(Catacomb 지하의 묘소)은 지금도 로마에 잔존해 있다.
2. 로마 교회
로마시에 있었던 이 교회는, 약간의 신도들이 세운 것인 듯 하다. 바울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로마의 성도의 집회는 그가 시작한 것은 아니다.
(롬 1:10-15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5:20-22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그것은 타인이 닦은 터 위에는 세우지 않는다는 사도 바울이 취한 원칙의 예외이다.
(고후 10;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기의 동역자가 세운 교회는 자기의 것으로 보고 있다. 누가, 언제, 그렇게, 로마의 교회를 일으켰는지는, 초대 교회사의 하나의 문제이다. 베드로를 창설자로 하는 전승은, 용인할 수 없으나, 이것은, 이 대사도가 언제인가 로마에 있었던 일이 있고, 또 거기서 순교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의 교회에 편지를 할 때, 베드로가 그곳에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 로마에 있었다면, 바울은 그것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고, 이 교회에 편지를 쓰는 일마저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로마의 교회는, 도시에서 도시로 시종 여행하고 있던 제국의 시민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증거와 활동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 전도는 ‘유대 사람들과 개종한 이방 사람들’(행 2:11) 에 의해 개시되었다고 생각 못할 것도 아니다.
이들 오순절의 증인들은, 후에 수리아의 안디옥, 에베소, 고린도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의 원조를 받아 집회를 크게 하여 갔으리라.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할 때에는, 그곳 그리스도인은 상당한 수에 이르렀던듯 하고, 교인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교회는 상당히 견고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저자
바울이 본서를 쓴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바울은 본래 유대교도로, 사울이었다. 소아시아의 길리기아주의 다소에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났는데(행 9:11,22:3),
그 이름을 사울이라고 했다(행 21:39, 7:58, 8:1).
베냐민족에 속하고,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아, 유대교 신앙으로 자랐다(빌 3:5).
다시 그는 예루살렘에 가서, 당시의 석학 가말리엘 아래서 율법에 대해 배웠다(행 22:3).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그 가문은 상당한 명문이었던듯 하다(행 22:28).
열렬한 유대교도로서 바리새파에 속하고, 율법에 기초한 엄격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빌 3:5,6, 갈 1:14).
그는 조상의 율법에 열심이었으므로(빌 3:5-6),
그리스도교인이 율법을 경시하고 성전을 무시하는 것에(행 6:13) 분함을 느껴, 그리스도교도 박해에 참가하고, 스데반의 처형에 입회했다(행 7:54-8:3; 9:1-2; 22:4-6; 26:9-13).
다시 그는 더 박해하기 위해 다메섹을 향했는데(행 9:1-2),
그 도상에서, 바울은 부활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서 회심하여, 박해자에서 충실한 이방인에의, 선교자로 대전향했다(행 9:11-9; 9:1-2; 22:4-6; 26:9-13).
다메섹에서 그리스도교인 아나니아로 부터 침례를 받고, 새로이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택함을 받았다(행 9:15).
그 후 아라비아에 가서, 3년을 있다가, 예루살렘에 상경(갈 1:17,18),
다시 10여년 후에 다시 상경했다(갈 2:1-10).
그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는지 분명치 않으나, 시리아, 길리기아 지방에서 전도에 종사한 것으로 생각되고(갈 1:21-24; 행 11:25-26),
또 예루살렘 상경은, 유대 지방의 기근을 돌보려, 바나바와 안디옥 교회에서 파견된 것이 동기로 생각된다(행 11:27-30).
다시 거기서 지도자 야고보, 베드로, 요한 등과 만남에 의해, 바울 등의 복음 선교가 확대되고, 이방인 전도의 승인이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갈 2:7-9, 예루살렘회의도).
그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방으로 3차의 전도 여행을 했다.
(제1차= 행 13:4-14;
제2차=행 15:40-18:22;
제3차=행 18:23-21:14).
그는 각지에서 유대인과 이교도의 박해를 받아가며, 많은 교회를 설립하고, 마지막에는 유대인의 박해를 받아,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 및 로마에 수감되었다.
그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으나, 성서의 기록과 기타를 종합하여, 한때 로마에서 석방되어 다시 전도 여행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AD 67년 경 네로의 박해로 인하여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다. 순교의 해에 대해서는, 61,62년 경을 말하는 이도 많이 있다.
그는 예수의 직제자는 아니었으나, 직접 예수의 계시를 받고, 열두제자보다 오히려 더 많이 일했다. 또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기초를 세운 점에서 그의 공헌한 바는 아주 크다. 신약의 중요한 부분은 거의 그의 편지이고, 로마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그의 신학 사상이 말해져 있어 귀중하기 그지 없는 것으로 되고 있다.
4. 집필동기와 목적
소아시아, 마게도냐, 아가야의 중요한 도시에서 전도한 바울의 간절한 소원은, 당시 세계적일뿐 아니라, 세계의 중심으로 알려지는 수도 로마에 전도하기를 숙원으로 했다(롬 1:10-13; 15:27).
복음의 근본진리(교의)를 옳게 로마 교인들에게 알게 하고 가르치려 의도했다. 바울의 로마서 집필 목적은, 편지 중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고, 그에게는 그 신학적 의도를 감출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신령한 은사를 얼마라도’(1:10-13) 그들에게 나누어 주기 원했다.
이제 그가 3차 전도 여행길의 고린도 체재 중, 로마행의 그 숙원이 성취될 듯한 정세로 되었으므로, 먼저 로마의 신자에게 미리 편지를 보내어, 그들을 교육시키렴에서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 이 글을 써서 겐그레아의 여집사 뵈뵈로 하여금 가져가게 한 것이 본서이고, 본서는 유대주의의 그리스도인들과 싸우려는 것은 중요한 목적은 아니었다.
5. 본서의 쓴 때와 장소
본서가 바울의 제3차 여행의 고린도 체재 중에 집필된 것은, 행 19:21 이하 특히 20:2-3과 롬 15:25-29를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때는 56~59년 사이(그 중의 57,8을 특히 말하는 이도 있다) 앞으로 고린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서, 거기서 로마로 여행하려 하는 중에 있을 때이다.
집필의 때를 결정하는 실마리로 되는 것이 롬 15장에 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헌금’을 가지고 팔레스틴으로 배로 떠나려 하고 있고, 거기서 로마를, 또 소원은 스페인(서버나)까지 갔으면 하고 있다. 이것은 제3차 전도 여행의 결과 최후의 예루살렘 방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바울이 이 편지의 집필을 끝내고, 로마에 발송한 것은, 예루살렘에의 출발 전야였다. 바울의 생애와 그 활동의 연대는 확정지어져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최후의 예루살렘 방문의 시기는 AD 56년에서, 59년 사이로 신중하게 결정되어 있다. 이것은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가장 빠른 연대와 늦은 연대이다. 따라서 본서의 쓴 때를 56-58년 경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5. 본서의 특질
본서는 바울의 진작(眞作)이다(그의 다른 편지와 마찬가지로 구술한 것을 필기한 것이다). 또 그의 최대작이다. 학자 중에는 성서 중의 최대작으로 보는 이도 있고, 또 나아가서는, 일찍이 인류의 손으로 된 최대의 저작으로 보는 이도 있다. 그리스도론과 종말론에 대해서는 말하는 바가 불충분하지만, 복음의 진수를 조직적으로 또 극히 심각하게 설명해 보인 것으로는, 성서 중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본서는 바울의 4대 서신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다른 서신들처럼 특수한 문제를 취급하지 않고, 복음의 근본,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에 대해 가장 당당하게 논의하고 있는 글이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본서는 신학뿐 아니라, 철학에도, 정치에도, 깊은 영향을 또한 주었다. 특히 종교개혁자들은 로마서에 의해 싸우고, 그리고 저 로마 카톨릭의 유럽에, 새로운 교회와 시대를 창조한 것이기도 한다. 로마서는
‘신약 성서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모든 것 중 가장 분명한 복음이다’라고 루터는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로마서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그 이해에 의해 성소의 모든 보고(寶庫)의 입구에 들어간다’고 칼빈은 말하고도 있다.
어쨌거나 로마서는 바울서간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갈라디아서와 함께 세계적 그리스도교의 헌법으로 지목되고도 있다.
6. 본서의 중심 제목
이 편지의 중심제목은 ‘하나님의 의’이고, ‘이신득의(신앙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음,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이다. 이것은, 또한 갈라디아서의 테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체험적으로, 구체적으로, 아주 격렬한 일면성을 가지고 논해져 있는데 대하여, 여기서는 아주 침착하게 석의(釋義)적 신학적으로, 널리 문제를 취급하여 논술하고 있다.
7. 본서의 본문상의 문제
본서의 문제는, 이 편지 전체가, 사도 바울에 의해 일시에 기록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의 문서에 일찍부터, 혹은 후에, 그 문서에 추가했는지의 여부이다.
이 문제는 다음 네 가지 점에서 일어난다.
로마인서의 짧은 형식의 것이, 2-3세기에 유포되어 있었다. 본문사의 증거로서는, 14장으로 끝나 있는 사본이 있다. 그리고 키프리아누스(Cyprianus 200경-58, 카르타고의 주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경-222 이후 서방 교회의 신학자), 이레나에우스(Irenaeus 130경-200 경 교부, 신학자) 등은15장과 16장에서는 하나도 인용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짧은 텍스트가 서방 교회의 사본에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의 형태의 서간에는, 결말로 생각되는 곳이 몇 곳이 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어다, 아멘’(15:3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든 이에게 있을지어다, 아멘’(16:24),
‘지혜로우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이 영원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16:27).
짧은 편의 교정본에서는, 현행역의 16:25-27에 있는 송영이, 14장 말미에 있다. 이 송영은 바울의 보통 문제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어, 그 진작성이 문체의 면에서도 의심되어 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비교적 친한 이가 없는 데서, 16장의 개인적인 인사는 사정에 잘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그것은 오히려 에베소 교회에의 인사로 알맞다는 것이다.
이들 네 가지 반론에도 불구하고, 이 서간의 통일성은 결여되어 있지 않다. 본문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해결된다.
즉 이단(異端)자 마르키온(Marcion 초대 교회의 거짓 바울주의적 이단자, AD 154-166년 로마에서 활동)은,
15장을 복음의 전진에 있어서 유대교가 준비적 기능을 행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고, 최후의 2장은 고의로 삭제했다는 것이다. 예로 15:4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도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또한 15절에는 구약성서의 인용이 적어도 다섯이나 있고, 16장은 마르키온의 견해에 찬성도 반대도 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중요치는 않았다. 현행의 긴 편의 것이, 본래의 것으로서 용인된다. 14장으로 끝나는 단축된 편은, 구약 성서에 대한 편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 16장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대로 많은 관계를 지어두는 것이 바울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의미에서, 그 타당함이 수긍된다. 게다가, 에베소가 대부분의 바울서간의 집필지였다는 가정을 별도로서 해도, 로마는, 바울의 친구들에게 있어서 에베소와 한가지로, 거주하기에 알맞는 곳이었다.
우리들은 로마서가 당초부터 사도 바울이 일시에 써서 고린도에서 보내진 완결된 편지로서, 그 완전성을 잃지 않은 채, 현재의 형태로 전해##51275;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본문을 잘게 조각내어 버리는 학설은, 내용이 가진 통일성 앞에서 모두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8. 본서의 내용
먼저 인사가 있고(1:1-15), 다음으로 그는 1:16-17에 있어서,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의가 그 중에 계시되어 있는 것이고, 신앙으로 이것을 받아들일 때, 의롭다함을 얻고,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주제랄 수 있는 것을 해명하기 위해, 1:18-8:39의 주요 부문이 기록되어 있다.
1:18-3:20에 있어서, 신앙 이전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류의 장래가 기록되어 있다.
이방인은 그 불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방임되어 죄에 빠지고, 유대인은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졌으나, 그것을 지키지 않아 한가지로 멸망으로 정해져 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과 다른 구원의 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여시고,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에 의해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새 복음이 명시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이신득의’의 교의인 것으로서, 3:21-30에 전형적으로 말해져 있다.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율법적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3:28).
이 신앙의 복음은, 이미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 때에 분명해져 있고, 복음은 율법을 무효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립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3:31; 4:1-25).
바울은 다시 신앙과 소망, 신앙과 사랑과의 관계를 말하고(5:1-11),
사람에 의해 파괴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미하고 있다(5:12-21).
이어서 세계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는, 죄의 지배에서 떠나,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을 분명히 하고(6:1-7:6) 율법의 뜻에 언급하여,
그 순수노력의 결과가 실패로 끝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고(7:7-25),
그리고 최후로 구원된 자의 영에 있어서의 생활과 희망을 서술하면서 승리의 대확신을 가지고서 제1부를 마치고 있다(8:1-39).
제2부(9-11장)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구원에서 떠난 유대인의 최후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최후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이 구원된 때에는, 그들도 구원될 것이라고 말한다.
제3부(12:1-15:3)에 있어서는, 교회 내부의 제문제에 관련시키면서,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말하고 있다. 16장이 본래 로마서의 일부였느냐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인데, 이는 권말의 말로서, 바울 자신의 일 및 인사들을 기록하고(15:14-16), 드리어 송영으로서(16:25-27), 이 대서간은 끝나고 있다.
내용의 구별
본서를 크게 대별하면, 서언(1:1-17), 교리부(1:18-11:36), 실천부(12:1-15:13), 권말의 말(15:14-16:27) 등으로 된다.
내용분해
1:1-17 서언
(1:1-7) 인사
(1:8-15) 로마 방문의 희망
(1:16-17) 복음의 중심주제(주요제목)
1:18-8:39 신앙에 의한 의
(1:18-32) 이방인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2:1-16) 유대인도 심판을 면치 못한다
(2:17-29) 유대인의 모순
(3:1-8) 유대인의 항의
(3:9-20)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
(3:21-31) 신앙에 의해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
(4:1-25) 신앙의인의 복음은 아브라함의 예로도 분명하다
(5:1-11) 구원의 확실성
(5:12-21) 그리스도의 속죄의 영구적 효과
(6:1-14)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음과 생
(6:15-23) 죄에서의 해방
(7:1-6) 율법에서의 해방
(7:7-25) 율법과 죄와의 관계
(8:1-39) 성령에 의한 신앙 생활
-8:1-4 그리스도 강림의 목적
-8:5-11 육에 따르는 생활과 성령에 따르는 생활
-8:12-17 아들로 된 자의 도
-8:18-25 (만물) 구원의 완성의 희망
-8:26-27 성령의 중보
-8:28-30 하나님의 예정
-8:31-39 신앙에 의한 구원(승리)의 개가
9:1-11:36 이스라엘 문제
(9:1-5) 바울의 탄식(문제의 제출)
(9:6-13) 약속의 아들과 참 이스라엘
(9:14-29)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
(9:30-10:4) 이스라엘의 불신
(10:5-13) 구원의 복음
(10:14-21)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
(11:1-12) 그러나 이스라엘은 버려지지 않는다
(11:13-24) 이방인에의 경고
(11:25-32) 이스라엘은 최후에 구원된다
(11:33-36 송영
12:1-15:13 실천부
의롭다함을 얻은 자의 특질
(12:1-2) 헌신과 성화
(12:3-21) 공동생활에 있어서의 태도
(13:1-7) 국가 권위에 대한 태도
(13:8-10) 사랑은 율법을 완성한다
(13:11-14) 때가 가까와졌다
(14:1-15:6) 서로의 이해와 관용
(15:7-13) 유대인, 이방인, 함께 구원에 참여한다
15:14-16:27 맺는 말
(15:14-21) 바울의 전도와 전도 방침
(15;22-33) 금후의 전도 여행 계획
(16:1-2) 뵈뵈 소개
(16:3-16) 친구들에의 인사와 전언
(16:17-20) 권고
(16:21-23) 바울의 교우로부터의 인사
(16:24-27) 최후의 송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