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해석학 및 개론 -하-

작성자염찬호|작성시간19.12.12|조회수209 목록 댓글 0

 

     . 열왕기 상하

 

  명칭 : 고대 히브리어 정경에는 열왕기서가 상하 구분없이 한 권으로 되어 있었다. 책의 첫 머리에 나오는 단어나 구()를 따라 책 명을 삼는 관례로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책의 명칭을 "왕들"이란 뜻의 "멜라킴"(     )이라 한다

 

        1. 열왕기 상하 개관

 

  . 솔로몬 통치(왕상 1:1-11:43)
    A. 다윗의 최후 정리와 아도니아의 진압(1:1-2:11) 
    B. 솔로몬 통치의 시작(2:12-46)
    C.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결혼한 후에 지혜를 간구함(3:1-28)
    D. 솔로몬의 국가 통치(4:1-34)
    E. 솔로몬의 성정 건축(5:1-7:51)
    F. 성전 봉헌식과 하나님의 약속이 수여됨(8:1-66) 
    G.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 스바의 여왕(9:1-10:29) 
    H. 솔로몬의 배교와 몰락(11:1-45)
  . 다윗 계열 왕국의 초기 왕들(12:1-16:28)
    A. 르호보암의 어리석음, 여로보암의 반역(12:1-14:31)
    B. 유다의 아비야와 아사(15:1-24)
    C. 이스라엘의 나답, 바아사, 엘라(15:25-16:14)
    D. 이스라엘의 시므리와 오므리(16:15-28)
  . 유다와 이스라엘의 동맹 시대(16:29-왕하 9:37)
    A. 아합과 엘리야, 갈멜 산의 시험(16:29-18:46)
    B. 길르앗 라못에서 아합이 죽기까지의 아합과 엘리야(19:1-22:53)
    C. 이스라엘의 아하시야(왕하 1:1-18)
    D. 엘리사에게 기름부음과 엘리야의 승천(2:1-25)
    E. 여호람과 요호사밧이 모압을 대적함(3:1-27)
    F. 엘리사의 이적들, 나아만이 깨끗케 됨(4:1-5:27)
    G. 벤하딧의 전쟁, 사마리아의 구출(6:1-7:20)
    H. 하사엘과 예후에 대한 엘리사의 임무, 이세벨의 죽음(8:1-9:37)
  . 이스라엘의 쇠태와 멸망(왕하 10:1-7:20)
    A. 예후의 오므리가() 멸절 및 바알 숭배자들(10:1-36)
    B. 유다의 아달랴와 요아스(11:11-12:21)
    C. 이스라엘의 여호와하스(13:1-25)
    D. 유다의 아마샤와 아사랴(웃시야)(14:1-22;15:1-7)
    E. 여로보암 2(14:23-29)
    F.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들: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15:8-31)
    G. 유다의 요담과 아하스(15:32-16:20)
    H. 사마리아의 멸망, 반 정도 회개한 이방인의 재거주(17:1-14)
  . 사마리아 멸망 이후의 유대인의 왕조(18:1-25:30)
    A. 히스기야와 산혜립(18:1-19:37)
    B. 히스기야의 병, 갈대인의 사자에게 자기의 부를 과시함(20:1-21)
    C. 악한 왕 므낫세, 그이 아들 아몬(21:1-26)
    D. 요시야의 개혁(22:1-23:30)
    E. 마지막 왕들과 예루살렘의 멸망(23:31-25:21)
    F. 그달리야의 암살, 여호야긴에 대한 선대(25:22-30)

 

       2. 연대기의 문제

 

  앗수르의 자료들 속에 동시성(synchronisms) 또는 동시대적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히브리 왕조들의 연대기에 많은 빛을 비추어 주었다. 중요한 것은 B.C. 893년에서 666년까지의 그 제국의 역사에 속하는 앗수르 지명의 기원에 관한 이름의 명부(Assyrian eponym lists)이다
  틸레는 남쪽 왕국과 북쪽 왕국 사이에는 달력계산의 차이가 있었음을 입증했다. "비계승년"이라는 연대계산 제도는 왕이 즉위한 역년(歷年)의 나머지 기간을 그의 통치의 첫 해로 계산했다. 이 계산도는, 왕이 전 해의 마지막 날 왕위에 올랐을지라도 그 하루가 통치의 한 해로 계산되었다는 점과 또한 새해의 시작인 그 다음날이 통치 제2년의 시작이라는 점을 의미했다. 그러나 계승년 제도에 의하면, 왕이 즉위한 그 해는 전혀 통치 연대로 계산하지 아니했고 다만 그의 통치의 첫 해는 그 다음 새해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유다의 경우에 있어서는, B.C. 930년의 왕국분열 시대로부터 850년 경에 이르기까지 계승년 제도가 지켜졌다.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시대까지는 비계승년 제도가 북왕국에서 지켜졌다. 아마샤의 시대로부터 예루살렘 멸망에 이르는 유다의 마지막 시기에는 계승년 제도로 환원되었다. 북왕국에 있어서는, 930년에 비계승년 제도가 시작되어 800년 경까지 계속되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로부터 사마리아의 멸망에 이르기까지는(B.C. 
                                              
798-722) 비계승년 제도가 계승년 제도의 계산법으로 바꾸어졌다. 그러므로 유다에서는 여호사밧 제10년으로 계산된 햇수가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사밧 제11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보다 더 큰 혼란은, 북왕국에서는 종교개혁 첫 달인 니산월(Nisan) 혹은 아빕 월(Abib)에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다 왕국에서는, 매우 일관성 있게, 모든 역사 속에서 티스리 혹은 에타님을 세속력의 첫 달로 사용하였으며, 또한 이런 기초 위에서 모든 날짜와 통치 연대를 계산하였다. 이러한 상위점이 생긴 이유를 단정짓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연대계산에 있어서 1년이라는 차이가 있는 경우를 참작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사실은연대기는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은 계속해서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수주의 학자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페인(Payne)은 남북 왕국의 분열 연대를 930년으로 보고 있는데 비해, 틸레(Thiele)는 그 시기를 931년으로 계산한다. 항상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있어야만 하며 또한 새로운 증거가 나옴에 따라 적당한 조정이 있어야 한다
  유다 후기 역사에 대한 보다 최근의 작품은 와이즈만(D.J. Wiseman)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제목은 "영국 박물관에 있는 갈대아 왕들의 연대기"이다이 책에서 발견된 토판들은 B.C. 620년과 566년 사이의 일련의 분명한 연대들을 나타내 준다. 그 토판들은, 느부갓네살의 아버지인 나브폴라살(Nabopolassar)이 바벨론에서 앗수르 군대를 격파한 후에 6261123일에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음을 말해 준다. 니느웨의 멸망 후 612년에 앗수르의 왕이 된 앗슈루발리트 2세는 610년에 하란(Haran)에 있는 그의 방어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시야가 전사했던, 므깃도의 전투는 609년에 일어났고, 같은 해이거나 아니면 그 다음 해인 608년에 여호야김은 느브갓네살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느고(Necho)의 도움을 받아 통치를 시작했으며, 598년에 죽었다. 느부갓네살이 애굽과 앗수르의 연합군을 격파했던 그 유명한 갈게미쉬(Carchmish) 전투는 6055월이나 6월에 일어났었다. 나보폴라살은 605816일에 죽었으며 느부갓네살이 그의 후계자로서 97일에 바벨론의 왕이 되었다. 601년 바벨론 군대는 애굽 국경지역에서 애굽 군과의 고전 끝에 일시적으로 패배하였다(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실은, 여호야김이 그의 통치 말년에 위험을 무릅쓰고 바벨론에 반역하였던가 하는 점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루살렘을 597315일 혹은 16일에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했다. 같은 달에 시드기야가 임명된다. 결국 예루살렘은 느부갓네셀의 제 3차 침략 기간인 5876월에 멸망했다
  이러한 토판들은, 597년의 예루살렘 정복을 느부갓네살 제 8년이라고 하는 열왕기하 24:12과 그것을 느부갓네살 제7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 예레미야 52:28 사이의 모순을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갈게미쉬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갈대아 대군을 홀로 통솔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서쪽지방에서는 이미 그가 사실상의 왕이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열왕기하를 기록한 유대 역사가는 그의 최초의 통치 연대를 605년이나 604년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비계승년 제도를 사용하던 바벨론에서는 그의 통치가 604년이나 603년 이전에는 공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이 경우에 바벨론의 공식적 계산법을 따랐음이 분명하다.

 

 

 

 21 선지서 개론 

 

          오바댜서, 요엘서, 요나서

 

  
          1. 선지서 개론
 
  히브리어 성경의 전문용어에 의하면, 전선지서들(former prpphets)에는 이미 우리가 다룬 여호수아서, 사사기, 열왕기 등의 네 권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책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취급하지만, 그들은 선지자적 관점에서 기록되었으며, 또한 어쩌면 저자 자신의 직업이 선지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장과 다음 여섯 장에서 다루어지는 책들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후선지서로(latter prophets)로 분류된다
  
         2. 히브리 예언의 성격  
  
  예언이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기 위한 인간이라는 대변자를 통하여 말씀이 구두나 혹은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홍해를 건넌 것이나, 구리뱀 사건 등의 사건들도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들은 메시야 시대의 모형적 성취를 차례로 가리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나타내주는 모형들을 지니고 있다. 아론의 제사직임이나 성막의 그 자체, 성막에 포함되는 여러 자료들 및 제사의식들이 포함되므로, 넓은 의미에서는 구약의 많은 부분이 예언적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들의 메시지는 역사 속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었지만 그들의 말이 보존되지 못한 사람들이 상당수가 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윗 시대의 나단과 갓의 경우이며, 그 후에는 스마야, 아히야, 엘리야, 엘리사 및 기타 많은 사람들의 경우이다. 그들의 메시지는 말로써만 전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구술 선지자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 메시지는 당시 이스라엘의 생존 위기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것들은 정경 선지서와 똑같은 의미, 똑같은 차원에서 오는 세대에 대해 영속적인 중요성을 지니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계시가 계속되는 시대와 관련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에는 성령께서 저자들을 영감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메시지를 기록하게 하신다. 그래서 이 책들은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서 우리에게까지 보존되어 온 기록들이다.

 

        3. 예언적 직임의 성격 

 

  "예언하다"라는 히브리어 니바(nibba' n b ' niphal )라는 단어는 소환하다. 알리다, 부르다 등을 의미하는 악카드어 동사 나부(nab )에 그 어근이 연관된 것처럼 보인다. 함무라비 법전의 서판에 보면 바벨로 왕은 자신을 니비트 벨(nibit B l, 바알이라 불림)이라고 했으며, 니비우(nibi , 임명함)라는 신들은 그를 땅 위에 있는 그들의 통치자로 삼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nibba'라는 동사는 신 자신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하여 부름 받거나 임명받은 자를 뜻했음이 분명하다. 불리움 받은 자, 나비(n bi ), 즉 선지자라는 독특한 단어는 이 동사에서 나온 것이다. 선지자는 자기 
                                              
자신의 견해를 남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임명된 전문가가 아니며, 그는 하늘에서 온 사신으로서 하나님에게로부터 인간에게로 전해져야 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칭호는 하나님의 사람(이쉬 엘로힘,          )이었다. 이 명칭은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또한 그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며 그 분과의 개인적 교제를 기뻐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조명하시고 말하도록 인도하실 때만 말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칭호 선견자(  zeh, 호제, 혹은 r 'eh, 로에)이다. 이 명칭의 의미는 선지자는 물질세계의 거짓된 모양이나 외관에 속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안목으로 문제점들을 사실 그대로 본다는 의미이다. 선지자는 선견자로서 특별한 환상이나 주님의 주시는 외부의 계시를 받았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영적 실재를 전할 자격을 지닌 자들이었다

 

         4. 히브리 예언의 기능

 

  선지자의 기능은 단순히 장래 일을 미리 말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었다. 구약 선지자들의 사역으로는 다음 네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규정될 수 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의 공로나 힘 또는 인간적 동맹세력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의 자비하심과 구원의 능력만을 의지하라고 자극할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이나 가나안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에 모세가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이스라엘에게 권했던 것처럼, 8세기의 위대한 선지자들은 그들의 동포에게 앗수르나 애굽 등과의 인간적 동맹의 원조를 의뢰하지 말고 주의 구원의 능력을 철저히 의뢰하라고 권고했다.
  선지자는 그의 백성에게 몇 가지 사실을 상기시킬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 , 안전과 축복은 언약을 신실히 지키는 것을 조건으로 삼는다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신실성은 교리적 확산 뿐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겠다는 그들의 의지의 진실한 순종을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순종이 없이는, 아무리 많은 제사나 예배도 만족케 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하자면, 구원의 신앙은 거룩한 행위를 포함한다. 예를 들면,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1:13-18).   선지자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갖도록 격려했다. 때때로 경건한 왕들에 의해 시작되거나 혹은 선지자들에게 의해 자발적으로 진행된 부흥에의 노력은 전체 인구의 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백성의 대다수는 완고한 불순종의 태도에 머물러 있곤 했다. 그러나 완고한 자세는,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의 경고에 의하면, 언약의 백성을 마침내 약속의 땅에서 추방하도록 까지 하는 하나님의 종국적 진노를 야기할 뿐이었다
  히브리 예언은, 성취된 예언을 객관적으로 확인함으로써 하나님의 메시지의 권위를 확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명기 18장에서는 참 선지자의 여부는 그의 예언의 성취여부에 있다고 기록하였다. 품절된 밀가루를 아주 싼 값에 구입할 정도로 밀가루 값이 24시간 이내에 하락되리라는 엘리사의 주장을 조롱했던, 열왕기하 7장에 나오는 비웃는 장관의 경우에서처럼 때로는 그러한 성취가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나기도 했었다. 다른 경우에는, 예언이 주어졌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 저편에 있으리 만큼 먼 미래에 성취된 것도 있었다.     

 

     . 오바댜서

 

  구약성경 중 가장 짧은 이 책은 오바댜가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의 기록연대를 보수주의 학자들은 B.C. 848-840년 경이 될 것이라고 하는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585년으로 택하고 있다. 파이퍼(Pfeiffer)같은 사람들은 이 책을 두 가지 다른 자료로 구분하는데 그 중 나중 부분은 포로기간이 아니면 B.C. 539년의 바벨론 멸망직후에 기록되었다고 했다.  
                                    
          1. 오바댜서 개관

 

  . 에돔의 멸망이 도래함(1-9)
    A. 난공불락의 셀라가 함락됨(1-4)
    B. 성읍이 약탈당하고, 유린되며, 버려짐(5-9)
  . 에돔이 심판 당하는 이유 : 이스라엘에게 악행을 함(10-14)
  . 주의 날이 임함(15-21)
    A. 에돔에게 임박한 심판(15-16)
    B. 이스라엘의 미래적 구원(17-20)
    C. 궁극적 메시야 왕국(21)

 

          2. 저작 연대

 

  어떤 학자들은 이 책의 저작 연대를 예루살렘 멸망의 뒤이은 시기로 잡는다. 라븐(J.H. Raven)이나 데이비스(J.D. Davis) 등과 같은 학자들은 그 연대를 아하스 시대(B.C. 743-728)로 추정하기를 좋아하며, 이 책의 역사적 언급을 에돔과 블레셋의 손에서의 패배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견해의 중대한 난점은, 오바댜 11절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군사정복 기간 중에 있었어야만 할 그런 예루살렘의 함락과 약탈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구절이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유다의 적들이 예루살렘에 쳐들어가서 귀중품들을 노획했다. 그 도시가 노략될 때, 여러 약탈자들이 약탈을 하기 위해 자기에게 주어질 지방을 결정하려고 제비를 뽑았다. 이러한 기록은 B.C. 587-586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가해졌던 그 도시의 철저하고도 영속적인 멸망과는 거의 조화되지가 않는다. 더구나 ASV에서 바로 번역된 것처럼 13절은 침략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다시 한번 공격받게 되는 다른 경우를 예상하고 있다.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585년설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만약 예루살렘이 이미 페허더미가 되었다면 이러한 글들은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습격하기는 했으나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은 어떤 군사적 행동과 더욱이 에돔이 어떤 역할을 맡았음이 분명한 어떤 교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 모든 상황들과 유일하게 조화되는 기록된 사건은 이 침공이 여호람 시대로 여겨진다
  585년설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오뱌댜 1-9절을 읽고 그것을 그에 목적에 따라 적용시켰다고 하는 강력한 증거로 인하여 힘을 상실하고 만다. 예레미야서 49:7-22을 보면 하나님의 초기 사자들의 예언에 크게 의존했던 일련의 신탁들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오바댜는 예레미야에게서 빌여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감정을 예레미야의 경우보다 더 간절하고 빠르게 표현하며 부분적으로는 보다 무겁고 무뚝뚝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오바댜의 문체의 모난 부분들을 매끄럽게 다듬으므로 써, 예레미야는 자신이 원본을 만든 자가 아니라 각색한 자였음과 또한 각색한 자로서 자신은 모든 주의 경고들을 보다 명료하고 명백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 요엘서
 
  요엘(Joel)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이다. 요엘 선지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에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이 심판의 날은 그 나라에 경제적 타격을 줄 황폐케 만드는 메뚜기에 대해 상징되고 있다. 이 재앙은 모든 불신세력에게 공평히 임할 마지막 파멸의 때를 가리키고 있다.

 

                                             
            1. 요엘서 개관
 
  . 여호와의 날의 모형으로서의 메뚜기 재앙(1:1-2:11)
    A. 메뚜기 떼의 엄청난 습격(1:1-7)
    B. 이 침략은 미래의 인간침략자를 나타냄<앗수르인과 갈대아인>(1:8-20)
    C. 보응의 날로서의 여호와의 날(2:1-11)
  . 회개에의 요청(2:12-19)
    A. 진실한 마음의 회개와 또한 외형적 형태의 회개(2:12-15)
    B. 모든 계층과 나이를 포함하는 전 국가적 회개(2:16-17)
    C. 주의 자비가 회복되리라는 약속<요아스 통치 시대에 분명히 성취됨>(2:18-19)
  . 축복의 소나기에 대한 약속(2:20-32)
    A. 북방에서 오는 이스라엘 침략자들의 무시무시한 전복(2:20)
      산헤립
      마지막 날에 세계의 세력판도 
    B. 메뚜기 재앙과 가뭄 후에 여호와께서 비를 주심(2:21-27)
    C. 이 비는 마지막 날 성령 부어주심을 암시함<유월절에 시작됨>(2:28-32), 
  . 여호와의 날에 있을 하나님의 최후 승리(3:1-21)
    A. 불신자들에 대한 최후의 살육, 마지막 독재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3:1-12)
      유다를 억압하는 페니시아와 블레셋에 대한 심판을 예시함(3:1-13)
      마카비 시대에 승리를 예시함(3:14-16)
    B. 모든 구속받은 자를 포함하는 예루살렘의 천 년 동안의 승리와 평화(3:17-21) 

 

          2. 저작 연대

 

  요엘의 예언은 여러 비평학파, 자유주의자들 및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9세기에서 4세기 사이의 것으로 줄곧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내적 증거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면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섭정하는 기간인 요시야 왕의 유년 시절, 830년 경이 가장 합리적인 연대이다
  이 예언서의 어조가 암시하고 있는 통치형태는 섭정통치와 가장 잘 조화된다. 왕에 대한 언급은 없고, 장로들과 제사장들이 제사장들이 국가를 지도할 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왕하 11:4에 보면, 요아스는 7세에 왕위에 올랐으며, 그의 숙부 여호야다는 요시야의 통치 후반부인 자신의 사망시까지도 유다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모스와 요엘 사이에는 빌어온 것이 나타나는 뚜렷한 증거가 있다. 예를 들면, 요엘 3:18과 아모스 9:13"산들이 단 포도주에 떨어지며"라는 약속을 담고 있다. 요엘이 아모스에게서 인용한 듯 보이지만, 본문의 가리키는 바는 전혀 다른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요엘 3:16에서 발견되는데 예언적 강론의 중심부에서 그는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라고 말한다. 이와 똑같은 구절이 아모스의 예언 초두에 나타나는데, 아모스는 그것을 자기의 첫 설교를 발전시키는 일종의 본문으로 사용했었다고 추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근거 위에서 살펴볼 때 요엘은 아모스 이전 시대, 755년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분명하다.
  보다 더 결정적인 주장은 유다를 위협하는 적군에 대한 저자의 언급 속에서 발견된다. 앗수르인이나 갈대아인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유다의 적들이 페니시아인, 블레셋족, 애굽인 및 에돔족이라고 언급되어 있다(3:4,19). 이것은 앗수르나 바벨론이 위협하지는 않았으나 애굽과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들이 강대했고 공격적이었던 시대를 가리킨다. 요아스 시대에도 애굽의 세력은 여전히 두려운 것이었고, 르호보암 시대에는 시삭(Shisak)이 나라를 황폐케 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노략했다. 그리고 아사의 통치 시대에는 에티오피아 왕조의 오소르콘 1(Osorkon )가 보낸 장군인 제라(Zerah, 925-829)의 무서운 침략이 있었다. 요아스 조부, 여호람의 시대와 여호사밧의 시대에서도 에돔족과 블레셋족이 유다를 침입하여 예루살렘을 강습했는데 성공하기까지 했다(왕하8:20-22, 대하 21:16-17). 요아스 시대 이후의 어떤 시대에도 유다가 이러한 원수들과 직면한 적은 없었다. 갈대아 시대 이후에는 애굽이 침략세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지 못하였다는 사실도 첨부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애굽이 독립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힘을 지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바사와 헬라 시대의 저작 연대설의 가능성을 배제시키는 것으로서 보인다
  이 예언서의 저작 연대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B.C. 835년이 내적 증거와 보다 가깝게 일치한다. 어떤 왕이 유다의 왕자에 올라 다스린다는 언급이 없으며, 통치의 책임이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있다는 암시와 또한 이웃 나라들이 유다의 대적들로 언급되는 등, 이러한 요소들은 요아스의 유년 시절을 가리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 요나

 

  요나(Y n h)라는 이름은 '비들기'라는 뜻이다. 이 선지자는 열왕기하 14:52에서 여로보암 2(739-753)가 넓은 지역을 정복하리라고 예언하는 사람으로 언급되는데, 이 예언은 그와 같은 열렬한 애국자에게는 매우 잘 어울리는 예언이다. 그의 고향은 북방 이스라엘에 있는 스불론 지파의 가드헤벨이다. 이 선지서의 주제는 이방인이 회개한다면 하나님의 자비와 동정이 그들에게까지 베풀어진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참 신앙을 그들에게 증거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의무이며 이 임무를 게을리 하면, 요나 자신처럼 그 나라도 재난과 징벌의 깊은 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선지자적 관점에서 볼 때, 요나가 큰 물고기 뱃 속에 사흘 동안 들어가 있었던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지내심과 부활의 모형이 된다(12:40).  

 

         1. 요나서 개관

 

  .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요나(1:1-3)
  . 요나의 도망과 하나님의 추적(1:4-17)
  . 구원을 요청하는 요나의 기도(2:1-10)
  . 하나님의 명령이 새로워지며, 니느웨에서 이행됨(3:1-9)
  . 요나가 니느웨의 회개를 슬퍼함과 여호와의 반응(3:10-4:11)

 

         2. 저작 연대

 

  자유주의 비평가들은 요나서의 저작 연대를 B.C. 430년 경으로 추산하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에서의 여호와 예배에 참여하는 일에 사마리아인들이 제외되었으며 또한 편협한 배타주의의 압력으로 인하여 모든 이방민족의 아내들이 이혼 당했던 그 시절의 에스라나 느헤미야 등의 유대지도자들의 "좁은 국수주의"에 반대하기 위하여한 토막의 준역사적 이야기를 비유로 만들어낸 것이 요나서라는 전제 때문이다. 좀더 자유스런 견해가 그 나라에 요청되면 그 시대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보다 우주적 이상을 지닌 어느 무명의 저자에게는 가장 시기적절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430년설은 이스라엘 종교사가 일관성 있는 사상으로 발견했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요나서에 대한 이러한 견해에 따라 그 비유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된다. 요나 자신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나타내며 바다는 이방인을 나타내고 큰 물고기는 갈대아 시대의 바벨론을 뜻하며 요나가 물고기 뱃 속에 삼일간 있었던 일은 바벨론 포로를 나타낸다. 요나가 이방인에게 대한 전도의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유일한 참 신앙을 증거하며 편협한 배타주의의 거추장스런 한계선을 내버려야 할 책임이 유대인에게 주어져 있었다는 것도 5세기 유다에 있어서는 역시 하나님의 ㅤㄸㅜㅅ이었다. 요나의 마음을 그렇게도 슬프게 했던 박넝쿨이 갑자기 시들었던 기
                                             
적적 사건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스룹바벨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되어 진다
  본문을 좀더 면밀히 검토해 보면, 기사의 여러 가지 특징들은 우화적 형식과는 거의 조화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만약 큰 물고기가 바벨론을 나타낸다면 니느웨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욥바를 떠나는 배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그 배가 이 풍유와 조화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70년의 포로 기간을 나타내기 위하여 3일이 선택되어야만 했던 이유 또한 분명치 않다.

 

            3. 진정성에 대한 역사적 반론

 

  앗수르 시대에 살았던 히브리 저자가 앗수르의 왕을 단지 "니느웨의 왕"의로만 언급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앗수르 시대가 지난 오랜 후 시대에 살았던 저자만이 그러한 용어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니느웨 왕"이라는 요나서의 용법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만족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기록들을 보면(악카드어, 히브리어, 헬라어 혹은 라틴어를 막론하고) 니느웨를 언급한 적이 있는 고대 저자들 가운데서 니느웨가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몰랐던 저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B.C. 430년 경에 살았던 저자가 니느웨의 왕이 앗수르의 왕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 고지식한 것이다
  또 주장하는 내용은 3:3에서 니느웨가 과거시제 "성이었고"로 말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 도시가 없어진지가 오래되었다거나 아니면 그 저자가 "그 도시는 큰 성이었다"(was being, tihyeh)고 말했으리라는 것이다. 저자가 이와 같이 미완료시제(tihyeh, 티에)를 사용함으로써 니느웨 성의 크기를 표현했다는 것은 쉽사리 인식이 된다. 그러나 이때 저자의 특별한 목적은 그 성이 이미 전부터 큰 성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 완료시제인 "이었다"(h yetah, 하에타)였다
  니느웨의 엄청난 크기에 대해서는 기사 속에 믿어지지 않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저자는 그 성이 크기 때문에 그 성을 지나가는데 사흘이 걸린다고 말한다(3:3-4). 그러나 주의 해야할 점은, 본문이 말하는 것은 요나가 그 성을 통과하는데 쉬지 않고 사흘 걸린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전도하면서 그 성을 통과하는데 사흘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길 모퉁이에서 설교하는 일은 메시지가 전해져야 할 장소마다 꽤 긴 시간 동안 멈추는 것을 요구한다. 8세기에 60만 명이나 되는(4:11) 많은 사람이 살고 있던 도시에서 이 임무를 완수하는데 사흘이라는 기간은 결코 긴 것이 아니다. 여기에다가 도시 외곽에 본래부터 있었던 상당수의 인구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작고도 먼 나라에서 온 무명의 외국인의 권고에 응하여 니느웨와 같은 이방인의 도시가 그렇게 빨리 회개했었다고 하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모든 주민들은 베옷을 입고 그들의 짐승들에게까지도 애통하는 표시를 하라고 하는 왕의 조서는 아주 불합리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도 역시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방인들로부터 그렇게 쉬운 반응이 있었다는 것은 아주 기적적인 일로 여겨야 하지만 그러나 그 기사가 분명히 말해 주는 것은 모든 일의 배후에는 전능자 하나님의 뜻과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될 때, 인간에게 확신을 가져다주는 성령의 능력을 누가 제한하겠는가? 만약 니느웨 성 사람들과 가축을 포함하여 전 도시를 삼키게 될 큰 파멸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짐승들까지도 통회의 표시를 하도록 한 것보다 더 적절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4. 언어학적 논쟁

 

  요나서에 대하여 포로 후 시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본문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소위 아람어풍(Aramaisms)에 습관적으로 호소한다
 1:5에는 히브리어에서 일반적으로 배를 의미하는 단어인 오니아(    , 'oniyyah)와는 달리 스피나(sepinah)가 나타난다. 스피나는 아람어에서는 흔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기서만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것은 덮다(to cover)라는 동사 사판(s pan)에서 유래된 것이 분명한데, 이것은 페니시아인의 비문들과 구약성경에서 가끔 나타난다. 이 표현은 본래 덮개 있는 배 혹은 갑판 있는 보트를 의미하는 것이며 아람 사람들이 가나안에서 그것을 빌어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우리가 결론 내려도 될 것이다
  1:6에는 기억하다를 뜻하는 동사 아샤트(' sht, 힛필형)가 나온다. 아람어에서는 이 동사가 엘리판타인 파피리(Elephantine Papyri)처럼 초기에 나타난다. 이것과 관계 있는 명사 에세트(' shet)가 아가서 5:14에서는 노리개라는 의미로 나타나고, 아쇼트('ash t, 단수로는 'asht t)는 욥기 12:5에서 생각, 의견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수리아어나 아람어에서는 요나서에서 사용된 의미, '기억하다'라는 의미로는 그 동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관계접속사 쉐(she)4:10에서는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1:7에서는 브셀미(beshellem , 누구로 인하여)라는 두 복합어로 나타난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은 아람풍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쉐(she)는 절대 아람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히브리어는 그것을 아람어 관계사 디(di)처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관계사 디(di), 기독교 이전 아람어에서는 이유를 의미하는 전치사 브(be) 다음에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쉐(she)는 드보라의 노래(5:7)에서처럼 사사시대와 같은 초기에 나타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노래가 북방 갈릴리 주민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주목해야 할 또 한가지 사실은 페니시아인의 비문에는 세( e)가 매우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과 요나의 배에 탄 선원들은 페니시아 태생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화 속에 이 관계자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요나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합리주의 자들의 강력한 반대를 생각해 볼 때,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들을 언급하는 것이 적합하다. 12:40-41에서 그리스도는 현대 비평주의에 의해 신화적인 것이라고 가장 직접적으로 거부받는 두 가지 사건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요나가 고기뱃 속에 있었다는 것과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는데 있어서 그의 설교의 효과성에 대한 것이다. 12:40에서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만약 요나의 이야기가 한낱 꾸며낸 이야기라면, 그리스도가 금요일부터 부활절 아침까지 무덤에 있었다는 것도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다음은 마태복음 12:41을 보면,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 하였음이어니와 요나 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명백한 것은 예수 당시의 사람들이 옛날 니느웨에 살던 성경도 모르는 이방인의 수준에도 못 미쳤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불 신앙을 꾸짖으셨던 것이다. 만약 그러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실제로 회개하지 않았다면, 여기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비진실이며 그의 책망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된다.    

 

          5. 본문의 완전성

 

  합리주의적 근거에 의존하여 아이스펠트(Eissfeldt)는 요나서를 두 가지 전설을 혼합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 중의 하나(1-3)는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을 다루며, 다른 하나(4)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대하여 요나가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이다. 사람을 삼켰다가 그것을 다시 토해내는 물고기의 이야기가 다른 문학작품에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그는 이 사건을 오직 전설적인 것이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는 전설로 기록된 모든 사건들이 실제적 사건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입증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근본적으로 아이스펄트의 반론은 기적이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전제에 근거한 것이다. 선험으로 인한 추론은 先驗 그 자체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러나 선입관 없는 문학비평에 근거해 볼 때 요나서의 배경이 되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밝혀낼 수 있는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다.  
                                              

 

 

22 아모스서, 호세아서, 미가서

 

 

      . 아모스서

 

  아모스라는 이름의 뜻은 "짐을 들어올리다"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표제의 뜻은 본서의 저자가 남유다 사람으로서 패역한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사역이 그에게는 실로 무거운 짐이었으나 이를 인내와 담대함으로 훌륭히 수행해낸 사실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아모스서 개관

 

  . 여러 나라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1;1-2:16)
    A. 전조 : 진노의 날이 가까웠음(1:1-2)
    B. 비인간적인 죄악으로 인하여 이방 이웃나라에게 입힌 심판(이 모든 나라들이 화재와 파멸을 당함, 1:3-2:3)                                                     다메섹(1:3-5) 가사(1:6-8)      두로(1:9-10)

      에돔(1:11-12)      암몬(1:13-15)      모압(2:1-3)
    C.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한 죄로 인하여 언약의 두 나라에 임한 진노(2:4-16)
      하나님을 떠나 거짓 교사들을 좇는 유다도 화재로 파멸을 당함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와 근친상간, 하나님께 대한 감사 없음, 의인을 박해한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도 파멸을 당하게 됨.
  . 이스라엘의 범죄와 하나님의 경고(3:1-6:14)
    A. 이스라엘의 전적부패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심판(3:1-15)
      특권이 클수록 책임도 큼(3:1-3)         아모스가 하나님의 사자라는 신임장(3:4-8)
      가난한 자를 억압하며 사치하고 방종한 이스라엘의 죄악은 황폐와 인구멸절의 벌을 받          게 됨(3:9-15)
    B. 목이 곧아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도전(4:1-13)   
      쾌락과 물질을 추구하며 육욕 적인 예배형식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함(4:1-5)
      심판이 도래한다는 재앙에의 경고가 무시됨(4:6-13)
    C. 비탄과 마지막 호소(5:1-27)    D. 쾌락을 추구하는 상류층이 포로될 운명(6:1-14)
  . 이스라엘에 운명에 대한 다섯 가지 환상(7:1-9:10)
    A. 황충 억제됨(7:1-3)    B. 억제됨(7:4-6)    C. 다림줄모두가 납작해짐(7:7-9)
    D. 늦 여름 괴일끝이 가까움(8:1-14) 
    E. 벧엘의 부서진 성전 : 이스라엘이 이방인처럼 취급됨(9:1-10)
  . 회복에의 약속(9:11-15)
    A. 준비 : 신약 시대(9:11-12)
    B. 천년왕국의 완성(9:13-15)

 

                                             
            2. 저자

 

  이 책의 저자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 정도 떨어진 드고아 출신의 선지자 아모스에 의해 기록되었다. 아모스는 원래 뽕나무를 재배하고 가축을 돌보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7:14) 벧엘로 이주하여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였다(7:13). 그러나 당시 여로보암 세가 거주하였던 우상의 중심지 벧엘에서 자신의 설교가 심한 반발에 부딪히자 유다로 돌아와서 자신의 예언을 기록하였다. 한편 아모스 선지자는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율법과 역사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소유하고 있었던 자임을 알게 된다

 

            3. 자작 연대 
 
  아모스의 사역은 여로보암 2(B.C.793-753)의 통치 후반부에 가까운 760-755년 경이라는 것이 구약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일치되는 견해이다. 이 왕은 군사적 성공이라는 측면에서는 찬란한 공적을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북방 왕국의 범위를 931년에 세워졌던 경계선에 이르기까지 회복하는 위업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리품을 통하여 상당히 많은 부가 유입되었고 또한 다메섹이나 북쪽 혹은 북동쪽에 있는 공국들과 유리한 상업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부의 증가와 함께 하류층 사람들의 몫은 줄어들고, 부유한 귀족들에게는 물질주의와 탐욕이 더욱 표면화하게 되었다. 그들은 파렴치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했고 시회적으로 그들보다 이래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냉소적으로 무시했다. 7계명의 규정을 무시하던 일반 대중은 가정의 존엄성을 침식했으며 또한 종교적 형식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달래려고 하는 위선적 시도의 죄를 범했다
  본서는 아모스가 벧엘에 대하여 설교하던 연대를 "지진 전 2"(1:1)이라고 자세히 말해 주는데, 이것은 이후에도 기억되었던 웃시야 시대의 심한 지진이다(14:5). 불행이도 이 지진의 때가 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지만, 그러나 죄우간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예비적 징조로서는 도움이 된다. 아모스가 전한 심판에의 경고는 분명히 성취되었다. 1:1의 기사는 아모스가 자기의 메시지를 말로 전하고 나서 적어도 2년 동안은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음을 가리켜 주기도 한다

 

           4. 본문의 완전성

 

  자유주의 비평가들은 아모스서의 진정성을 인정하며, "선지서들 중의 가장 초기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열 다섯 절은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분류되어 왔다. 이것은 일정한 고발형식을 지니고 있는 1:9-12을 포함한다("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파이퍼는 아모스의 역사적 상황을 죄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고발을 했을 뿐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었던 것이라고 보았으며 그러므로 이러한 모습을 혼란시키는 구절들은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주장들이 이스라엘 사상의 역사적 발달이라는 특수한 이론에 근거한 것이지, 본문 그 자체의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5. 오경과의 접촉점들
  아모스 2:7 "부자가 한 젊은 여자에게 다녀서"라는 구절은 종교적 매춘에 관한 언급이 분명한데, 이것을 신명기 23:17-18에서 명백하게 금지되어 있다. 아모스의 청중들은 이전의 율법이 정죄하지 않는다면 이 행위를 죄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율법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와 아모스 때에 승인을 받은 것으로서 아모스 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작성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아모스 2:8"전당잡은 옷"을 밤새껏 지키는 자를 비난하는데(22:26에서 금지된 행위), 그것은 채권자가 저당 잡은 물건 위에서 잠자는 죄악이다(24:12-13).                                               

  아모스 2:12은 나실인의 헌신에 대한 언급인데, 이것은 민수기 6:1-12에서만 발견되는 규정이다
  아모스 4:4"삼 일마다 드리는" 십일조를 말하는데, 이것은 이방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구약성경에서는 신명기 14:2826:12에서만 규정되어진 내용인데, 소산의 십일조를 여호와께 드릴 것을 말하고 있다
  아모스 4: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수은제로 드리며……" 이것은 율법레의기 2:117:13(이것은 P구절이다)에 의해 금지된 행위이다
  아모스 5:23은 아모스 시대의 제사의식에는 노래가 수반되었음을 보여주는데, 역사서에서는 이 의식을 다윗 왕으로 인한 것으로 말한다. 만약 P가 아모스 시대 이후에 작성되었다면, 모세의 규정에 이러한 행위를 포함시키기 위해서 제사의식에서 음악적인 면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오경 전체 어디를 보아도 제사에 음악이나 노래가 동반되었다는 언급이 없다
  많은 비평가들이 소위 포로 후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제사용어가 아모스 시대에 마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아모스에 의해 자주 그리고 자유롭게 언급되고 있다
     4:5의 낙헌제(    , 느다바, 참고, 7:16-18;22:18, 15:3, 12:6-7 ),
     5:21"성회"(    , 아사라, 참고, 23:36, 29:35),
     5:22 한 절에 한꺼번에 나오는 "번제", "소제", "화목제"는 율법의 여러 구절에서 조화적으로 또는 따로 자주 언급된다(7:11-14; 8:1-32).

 

     . 호세아서

 

  호세아(H sh a')'구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명 2인으로서 북방왕국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Hoshea)와 실제로 똑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이 두 이름을 구분하기 위하여 영어성경에서는 이 소선지서의 이름을 항상(둘째 음정에 h가 없이) Hosea 라고 쓴다.
  본서의 주제는 북방 왕국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신하고 또한 사회윤리와 개인윤리가 크게 부패해 그들의 죄를 진지하게 항의하는 것이다.    

 

         1. 호세아서 개관

 

  . 선지자의 훈련(1:1-3:5)
    A. 국가의 형벌과 회복을 상징하는 그의 가정생활(2:1-2:1)
      음란한 성향이 있는 고멜과의 결혼(1:2)
      자녀들 :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1:3-9)
      은혜의 종국적인 승리(1:10-2:1) 
    B. 그의 가정적 비극,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계시(2:2-23)
    C. 고맬에 대한 그의 태도, 명령과 계시(3:1-5)
  . 선지자의 가르침(4:1-14:9)
    A. 국가의 타락과 그 원인(4:1-6:3)
      심판의 결정과 판결의 선언(4:1-19)
      제사장, 백성 및 왕에 대한 경고 : 신당의 함정(5:1-15)
      회개에의 권유(6:1-3)
    B. 국가의 타락과 그 형벌(6:4-10:1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소송진술(6:4-7:16)
        a) 변덕, 살인 : 피를 거둠(6:4-11)
        b) 계속되는 반역, 간음 및 술취함으로 인하여 긍휼의 막혀짐(7:1-10)
                                              
      심판이 선고됨(8:1-9:17)
        a) 광풍을 거두며 세상을 열렬히 사랑함(8:1-14)
        b) 이스라엘이 포로 되며 쇠퇴해짐(9:1-17)
      반복 및 호소 : 빈 포도나무(10:1-15)
    C. 여호와의 사랑(11:1-14:9)
      변덕스런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불변적 사랑(11:1-11)
      포로 : 완강히 반역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유일한 방도(11:12-12:14)
      지도적 원리와 포로의 종국적 결과(13:1-16)
      회개에의 최후 호소, 궁극적 축복의 약속(14:1-9)
         
            2. 저작권과 본문의 진정성

 

  호세아 선지자는 북방 왕국 이스라엘의 백성임이 분명하다. 그는 사마리아 통지 자를 "우리 왕"(7:5)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다는 부수적으로 언급될 뿐이며, 주된 관심은 열 지파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저자의 말투는 유다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수리아의 아람어 사용 지방에 가까이 있는 북쪽 이스라엘을 연상케 해주는 사투리를 보여준다. 호세아의 아버지의 이름(브에리)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의 가정은 사회적 지위가 있었다. 그의 예언이 제공해 주는 내용을 떠나서는 다른 어떤 전기적 항목들도 알 수 없다.

 

            3. 저작 연대  

 

  이 책에 나오는 예언들 중 어느 부분은 여로보암 2세의 죽음 B.C. 753년 이전에 주어진 것이 분명한데, 1장은 이스라엘의 상징적 의미를 예후 왕조의 비참한 최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752년 살룸이 여로보암의 손자 스가랴를 암살했을 때 성취된 것이다. 한편, 5장은 므나헴 왕(752-742)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7장은 1, 2십년 늦은 시기로 추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애굽으로 하여금 앗수르와 싸우게 하려는 정부의 표리부동한 정책을 비난하는데, 이러한 정책이 호세아 왕(732-723)의 통치 이전에 이스라엘에 의해 행해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적어도 25년 이상 전파되었던 설교를 발췌 결합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무방하다. 아마 마지막 편집은 호세아의 설교사역이 시작된지 30년이 지난 해인 725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4. 고멜의 문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야기되는 난점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제사장에게는 특히 금지되었고 또한 전체 이스라엘에게도 언짢았던 그러한 일을 하나님께서 거룩한 사람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셨을까? 윤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보수주의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이러한 경험은 사실이 아니며 일종의 폭넓은 비유일 뿐이라고 했다. 이 이론을 위하여 어떤 학자들은 고멜이라는 이름이 '완성' 즉 죄의 완성을 뜻하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 디블라임은 제사제물의 우상적인 형태인 건포도 떡(3:1)을 의미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나은 해결책은 호세아가 그때 고멜과 결혼했다는 것과 공공연하게 품행이 단정치 못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만약 호세아 더 나중 시대에 그의 메시지를 전했었다면, 그는 자신의 가정적 비극을 회고했을 것이며 또한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와 손길로 여겼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녀의 미래적 음란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지만 그 여자와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권고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는 명령과 동일한 것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 명령이 이 말 그대로 선지자에게 임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 미가서
  미가(Micah)라는 이름은 미가야후(M -k -Y h )가 줄어진 형태이다. 이 뜻은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인가" 하는 의미이다. 메시지의 기본 주제는 구원적 신앙의 필수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의와 주권에 기초하고 있는 사회 개혁과 실제적 거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적 신앙이 대체적으로 결핍되었기 때문에 북방 왕국과 남방 왕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형벌이 끝난 후에 그 나라는 다시 회복될 것이며 종국에는 메시야가 임하실 것이다.

 

          1. 미가서 개관 

 

  . 우상숭배한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1:1-16)
  . 특수한 조서 : 상류층에 의한 압박(2;1-3;12)
  . 하나님의 은혜의 궁극적 승리(4:1-5:15)
  . 배은 망덕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논쟁(6:1-16)
  . 신실한 남은 자들에 대한 언약의 성취(7:1-20)
    A. 야만적 이기주의와 치욕적 부패가 만연함에 참 이스라엘이 슬퍼함(1:1-6)
    B. 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비를 여전히 의뢰함(7:7-10)
    C. 교회 시대와 천년왕국을 통한 그리스도의 승리(7:11-20)

 

          2. 미가서의 저작성  
   
  미가는 남방 왕국의 백성으로서 예루살렘 서쪽 약 20마일 지점에 있는 갓 근처의 모레셋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으며, 우리가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은 그의 가문이 비천한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의 설교사역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무도한 귀족과 부자에 의해 착취를 당했던 농부와 평민들의 고통에 특히 관심을 쏟았다는 점이 의미 깊다. 미가는 생애의 많은 부분을 예루살렘이라는 수도에서보다는 시골에서 보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그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이사야의 경우와 같이 국제 정치와 깊은 접촉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북방 왕국의 몰락에 대하여 한 장(6)을 할애하였다

 

          3. 저작 연대

 

  기록 연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추측해본다. 미가가 남유다의 요담(B.C.743-716), 아하스(731-716), 히스기야(715-687) 등 세 왕의 재위 기간 동안 선지자로서 활동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게 볼 때 미가의 선지 활동 기간은 최대 약 60년 간으로 볼 수 있다. 미가서 6장에 이스라엘에게 전파한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이 최후 순간의 회개를 통하여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으므로, 적어도 722년의 사마리아 함락 이전에 미가가 그의 사역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해도 무방하다. 그의 설교 사역이 끝난 시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확실
                                             
한 증거가 없다. 26:18-19에 보면, 히스기야의 통치기간 동안 그의 열렬한 경고는 진지하게 받아졌으며, 정부의 후원 아래 일어났었던 개혁 운동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본서의 기록연대는 선지자 예언 활동 후반기 B.C.700년 경으로 볼 수 있다.

 

           4. 본문의 완전성

 

  비평가들은 6,7장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이스라엘 역사의 후기에 속하는 구절들에서만 나타나는 사상과 동기를 담고 있다는 이유이다. 이 두 장은 포로기간 후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모인 것과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크게 멸망할 것을 예언하면서 메시야의 주권 하에서 이방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궁극적 승리가 있을 것을 말한다. 벨하우젠은 7:7-20까지도 포로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신명기적 이사야서와 동시대의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러나 드라이버를 비롯한 보다 온전한 그의 몇몇 후계자들은 이 구절들에게 주어진 그러한 후기 연대의 필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모든 반 초자연주의자들은 4:10의 진정성을 부인하는 데서는 의견을 같이한다. "또 바벨론 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이와 같은 예언들은 초자연적 계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8세기가 이 구절을 기록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 일은 인간을 넘어서는 시야를 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곧 살펴보겠지만, 이사야 40-66장이 8세기 저자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 때문에 이 구절을 미가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23 이 사 야 서()

 

 

 

  이 선지자의 히브리어 이름은 예사-야후(Ye a'-Y h )로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매우 적절하게도, 이사야의 메시지 기본 주제는 구원이란 인간의 능력과 육체의 선행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인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사야서는 기독론을 아주 자세히 설명하기 때문에 "복음적 선지서"라고 적절하게 불려진다.  

 

          1. 이사야서 개관

 

  . 힐책과 약속의 부분(1:1-6:13)
    A. 첫째 설교 : 반역이 심판과 은혜를 대항함(1:1-31)
    B. 둘째 설교 : 미래의 영광을 위한 현재의 징벌(2:1-4:6)
    C. 셋째 설교 : 완고한 나라에 대한 심판과 포로(5:1-30)
    D. 넷째 설교 : 선지자가 하나님에 의해 정결케 되고 소명을 받음(6:1-13)
  . 임마누엘에 대한 부분(7:1-12:6) 
    A. 첫째 설교 : 세상 지혜로 임마누엘을 거부함(7:1-25)
    B. 둘째 설교 : 신속한 구원은 오실 구속 자를 예시함(8:1-9:7)
    C. 셋째 설교 : 교만한 사마리아에 대한 냉혹한 포로의 운명(9:8-10:4)
    D. 넷째 설교 : 사악한 제국(앗수르)은 정복되고 영광스런 제국이 도래함(10:5-12:6)
  . 하나님의 심판 : 각 나라에게 지워진 짐들(13:1-23:18)
    A. 바벨론(13:1-14:27)                B. 블레셋(14:28-32)          C. 모압(15:1-16:14)
    D. 다메섹과 사마리아(17:1-14)       E. 구스(18:1-7)               F. 애굽(19:1-20:6) 
    G. 바벨론, 두 번째 집(21:1-10)       H. 에돔(21:11-12             I. 아라비아(21:13-17)
    J. 예루살렘(22:1-25)                   K. 두로(23:1-18)
  . 일반적인 심판과 약속에 대한 첫째 부분(24:1-27:13)
    A. 첫째 설교 : 보편적인 죄에 대한 보편적인 심판(24:1-22)
    B. 둘째 설교 : 구원자, 승리자 및 위로자 이신 주께 대한 찬양(25:1-12)
    C. 셋째 설교 : 유다의 위로를 기뻐하는 노래(26:1-21) 
    D. 넷째 설교 : 압제자에 대한 형벌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보호(27:1-13)
  . 이스라엘의 불신자에 임할 고통에 대한 부분들(28:1-33:24)
    A. 첫째 설교 : 이스라엘에 있는 술주정뱅이와 냉소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28:1-29)  
    B. 둘째 설교 : 하나님을 속이려 하는 눈먼 영혼들에 대한 심판(29:1-24)
    C. 셋째 설교 : 인간을 신뢰하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30:1-33)
    D. 넷째 설교 :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으로 인한 구원(31:1-32:20)
    E. 다섯째 설교 : 간악한 사기꾼에 대한 벌과 그리스도의 승리(33:1-24)
  . 일반적인 심판과 약속에 대한 둘째 부분(34:1-35:10)
    A. 첫째 설교 : 이방 세계열강의 명망(34:1-17)
    B. 둘째 설교 : 궁극적인 하나님의 구속의 축복(35:1-10)                                          
  . 히스기야에 대한 부분(36:1-39:8)
    A. 유다에 대한 심판이 비켜짐(36:1-37:38)
    B. 유다 왕에 대한 심판이 비켜짐(38:1-22)
    C. 소유물로 인한 왕의 교만에 대한 심판 : 바벨론 포로(39:1-8)
  . 위로의 부분(40:1-66:24)
    A. 평화의 목적(40:1-48:22)
    B. 평화의 왕자(49:1-57:21)
    C. 평화의 계획(58:1-66:24) 

 

         2. 이사야서 저작권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는 고귀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출신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국제 관계의 업무에 대해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생의 대부분을 예루살렘에서 보내면서 거기서 국내외 적인 사건들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는 외국 세력과의 어지러운 동맹관계를 맹렬히 비난했는데, 그것은 정부와 백성이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육체의 힘을 의뢰함으로 실패가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죽을 때까지(698년 혹은 696) 이사야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인기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히스기야를 통하여 수행되었던 종교개혁 기간 동안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컸었다. 그러나 성전의 환상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경고하신 것과 같이(6:9-10)그 나라는 대체적으로 그의 영적인 메시지에 대하여서까지도 귀머거리가 되었다. 소수의 열심 있는 신자들을 제외하면, 그 시대를 향한 그의 메시지는 거의 실패했었다. 히스기야의 타락한 아들, 므낫세 시대에는 앞 시대에 있었던 엄격한 여호와 예배를 강하게 반대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당시의 정책에 관한 한 이사야는 자기의 모든 노력이 무너졌음을 보기까지 살았다. 영적인 면에 있어서 그의 동족은 아하스 시대보다도 더욱 더 절망적으로 부패한 상태였다.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므낫세가 통치하는 동안 이사야의 관심은 점차적으로 예루살렘 정복, 바벨론 포로 및 그 너머 있는 회복에로 맞추어졌다. 옛 전통에 의하면 그는 므낫세의 통치 기간 중 어느 때에 톱으로 켜져서 순교하였다고 한다(11:37). 이사야 37:37-38에 산혜립의 죽음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는 B.C.681년 산혜립이 죽을 때까지는 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 합당하다.       

 

         3. 이사야서의 구성에 대한 비평적 이론들

 

  18세기 후반의 자연신론(deism)이 발달함에 따라, 초자연적 확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미래사건을 예견하는 이사야서의 상당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책이 단순히 인간적 기원의 책으로 취급되었다면, 이러한 성공적인 예언은 그것이 성취된 후에 기록되었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성취되었던 때에 기록되었으리라고 설명해야함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이었다. 우리는 이사야서 비평역사를 4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요한 도에더라인(Johann C. Doederlein)은 이사야 40-66장의 저작연대를 6세기라고 하는 조직적 논증을 출판한(A.D. 1789) 최초의 학자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주전 8세기의 사람인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함락(B.C. 587)이나 70년간의 포로를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40장 이후에 나타나는 포로된 유다에 대한 위로의 글들은 그가 쓴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700년 경의 어느 사람이 593년 바벨론을 정복하고 또한 유대인 포로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를 허락했던 고레스 대왕의 등장을 예언한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고레스의 사역이 예견됐을 뿐 아니라, 이사야 44:2845:1이 두 본문에서는 고레스의 이름이 언급되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이 예언들의 저자는 고레스가 국제적 인물로서 처음 등장하는 시기(B.C. 550년 경)와 그의 확정되는 제국 안으로 바벨론을 멸망시킨 그 사이의 어떤 때에 바벨론에 살았던 무명의 어떤 유대인이었음이 분명하다. 540년 경 바벨론에 살았던 이 허위저자는 비평가들에게 "신명기적 이사야"(Deutero-Isaiah)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바벨론의 미래가 중요함은 제1이사야서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는 근거에서, 보수주의 학자들은 제2이사야서에 대한 포로 시대 연대설을 반대하기 때문에, 이사야서의 전반 39장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라이프치히(Leip-zig)의 아랍어 교수였었던 에른스트 로젠무엘러(Ernst F.K. Rosenmueller, 1768-1835)는 도에더라인(Doederlein)의 입장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 다음의 논리적 단계를 취했다. 만약 8세기의 저자가 바벨론의 중요성을 예언해 주는 40-66장의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비슷한 예언을 13장 및 14장 등과 같은 제 1 이사야서의 많은 부분들도 역시 역사적 이사야의 것이라는 점이 부인되어야 하며 그것은 포로기의 무명 선지자의 것으로 여겨야만 한다. 이러한 바벨론적인 부분들을 논리적으로 제거하는 일은 다른 구절들, 심지어 신적 예언이 문제시되지 않은 구절들에 대해서도 이사야의 저작성을 의문시하게 된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진정한 8세기 이사야서의 부분들은 수 백 구절로 줄어들고 말았다.     
  이러한 논쟁이 이루어지는 중에, 소위 제2이사야서라고 하는 많은 구절들은 바벨론에서의 저작설과 조화될 수 없음이 점차로 분명해지게 되었다. 지리, 식물 및 동물에 관한 언급들은 수리아나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저자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이에 대한 증거를 주장하면서, 괴팅겐(G ttingen)의 버나드 듐(Bernard Duhm, 1847-1928) 교수는 세 명의 이사야 설을 제안했는데, 그들 중 누구도 바벨론에서 살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40-55(2이사야서)540년 경 레바논 어느 지역에서 기록되었으나, 페니시아인지 수리아인지 분명치 않다. 56-66(3이사야서)450년 경 에스라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기록되었다. 그러나 듐이 계속해서 주장한 바에 의하면, 이 세 가지 이사야서 속에는 유대 역사의 후시대로부터 마지막 편집이 이루어졌던 1세기에 이르는 기간 사이에 추가된 삽입부가 있다고 했다. 죠지 아담 스미스(George Adam Smith)는 자신의 주해용 이사야서 주석에서 이 비평학자를 지지했다. 이사야서 전체에 대한 B.C. 2세기의 사본이 발견됨에 따라 듐이 1세기 삽입설은 지지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음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브라운리(Brownlee)를 비롯한 최근의 몇몇 학자들은 이사야서 66장 전부가 통일성의 강한 증거들을 보여준다는 견해에 이르고 있는데, 이것은 소위 이사야 학파를 신봉하는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지지자에게 의해 질서 있게 조직적으로 정리됐음을 시사해 준다고 한다. 이 입장에 의하면, 제자들의 무리가 8세기 선지자의 말을 다음에 기억하여 이어지는 세대에서 추가되다가 마침내 3세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 학파의 유능한 전문가에 이르러 모든 자료를 잘 짜여진 문학적 걸작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4. 자료구분에 대한 비평적 논증
  주재와 소재의 상위성
  알렉산더(J.A. Alexander)가 그의 주석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사야서에는 인간의 일반적인 예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저자의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미래에 대한 예언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이사야서의 내용을 거부하는 사람은 문장의 어투, 문체, 숙어와 역사적, 고고학적 언급 그리고 수사학적 특성, 도덕적 어조 및 종교적 기풍 등에서 나온 구체적 증거를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해야 한다. 이러한 증거들이 발견되고 소개됨으로써 그가 유지하려했던 앞의 가정은 왜곡된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690년 경 이사야가 직면했던 역사적 상황은 바벨론의 멸망보다 150년 앞서서 고레스의 이름을 예언하는 이상한 징조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제공해 준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다는 종교와 윤리 면에서 너무 쇠퇴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나라의 완전한 백성의 포로 됨을 주장했을 정도였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율법과 훈계적 징벌의 약속대로 행하시려고 했다면, 파멸과 포로 외에 다른 방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백성이 먼 땅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되면, 자연적으로 그들의 조상의 땅으로 돌아올 희망은 없어지게 되었다.     

토레이와 다른 몇 사람들은 고레스에 대한 두 가지 언급은 본문에 진정으로 속하지 않고 나중에 삽입된 것이라고 하며 제거하려고 하는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본문상의 증거는 그러한 삭제를 전혀 허용치 않을 것이다. 엘리스는 이사야 44:26-28의 점층법적인 구조를 지적하면서, 고레스라는 이름이 제거된다면 이 구절은 완전히 무너지며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한다. 이 구절에서 가장 큰 강조점은 미래를 예언하며 또한 예언한 것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은 모든 예언적 언어의 근간이 되는 신적 권위에 대한 객관적 확인을 하도록 삽입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사실은 바벨론 중심적인 장들(40-48)은 이사야서 전반부에서 미리 준비되지 않고서는 나타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Young)이 지적한 대로 1-39장은 "계단을 이루고 있다. , 그것은 사람들을 점차적으로 앗수르 시대로부터 갈대아 시대로 이끈다. 이 둘은 합쳐서 전체를 이룬다. 왜냐하면 앞 부분은 뒤에 대한 준비이며, 뒷 부분은 앞의 완성이다." , 이사야 시대의 분위기는 포로에 위협으로 꽉차 있었다. 사마리아는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산혜립은 701년에 예루살렘까지 정복하기 위해 주권을 확립했다. 신중한 목적 하에서 이사야는 38장과 39장을 36장과 37장 이후에 두는데, 이것들은 701년에 일어난 사건들을 서술한다. 그 까닭은, 38장과 39장은 다가올 바벨론 포로에 대한 이유를 말해주기 때문인데, 그것은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자에게 자기의 부를 자랑한다는 그의 교만이다. 그래서 그래서 39장은 갈대아의 포로라는 불길한 예언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 이전의 장들에도 그 나라에 도래할 포로에 대하여 많은 암시가 있다(참고, 3:24-26;5:5-5;11:13;24:11-12;27:13;32:13-18). 이러한 모든 구절들을 후기의 삽입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논점을 교묘히 피하지 않고서는 8세기 이사야가 포로의 도래를 미리 알았다고 하는 사실의 증거들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바벨론적 관점이 두 이야기설 주장자들이 주장하는 제 2 이사야서를 통해서는 광범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 봐야 한다. 48장 이후에는 포로와 회복에 대한 분명한 암시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많은 설교자들은 므낫세 시대에 유대에서 유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지는 상황에 대한 설교이다. 알렉산더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결국 본서가 바벨론 포로 및 회복 등에 대해 얼마나 자주 언급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들을 자세히 열거해 본다면, 여러 해석자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받아온 사람들을 놀라게 해줄 것이다."다시 말하자면, 2 이사야서의 주장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하기가 쉬운 6세기에 대한 언급들을 찾으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바벨론 이라는 이름이 1-30장에서 보다 40-66장에서는 덜 언급된다는 점도 사실이다. 통계적인 계산에 따르면, 바벨론이 후반부에서는 4번 나타나지(43:14; 47:1; 48:14, 20), 1-39장에서는 9번 혹은 12번 이상 나타난다
  2 이사야서가 팔레스타인에서 기록되었다는 내적 증거. 이사야 40-66장은 바벨론의 지리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있지 않으나, 팔레스타인의 지리에 대해서는 매우 익숙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백향목, 디르사 나무 및 상수리 나무 등과 같은 팔레스타인 고유의 나무들이 언급되고 있다(41:19;44:14). 저자의 지리적 관점은 팔레스타인이 분명하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의 명령을 바벨론에 보낸다고 했다(43:14). 저자는 유다의 성읍들이 여전히 서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유다의 성읍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40:9을 살펴보라. 이 구절은 시온을 비롯한 유다의 다른 성읍들이 갈대아의 침략으로 인하여 황폐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저작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음을 가정하고 있다. 62:6도 마찬가지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희 성벽 위에 파수군을 세우리라."
  만약 그 성읍들이 그대로 서 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다고 이 예언서의 저자가 가정하는 것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58:6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구절은 포로가 되어 갈대아의 압제 하에서 신음하던 백성에 대한 말로는 매우 이상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직까지 그들 자신에 땅에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법정을 지니고 있었음이 매우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만 사회의 하류층이 손해를 당하도록 법을 집행하는 범법자에 대한 그릇된 재판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2 이사야서가 포로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증거. 최근의 학자들은 제 2 이사야서를 팔레스타인이나 혹은 레바논 북부 지역에서 기록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40-66장은 후기, 즉 포로 혹은 포로 후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도 역시 내적 증거의 자료에 대해서는 설명 못해 준다는 점이 여전히 지적되어야 한다.
  첫째, 8세기 이사야 시대에 만연했던 수많은 죄악들이 제 2 이사야서의 저자가 살던 시대에도 여전히 널리 퍼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1:15에서는 피흘림과 폭력을 이렇게 비난한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그리고 이런 죄악들은 59:3,7에서도 다음과 같이 여전히 비난받고 있다.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니라…… 그 발은 행악 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이 두 책에서 선지자는 유다 에게 자행되던 만연한 거짓, 불의 및 압제에 대하여 통렬히 비난한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늑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탈취하는 자는 화있을진저"라고 하는 10:1,259:4-9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비슷한 고발이 나타난다.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1,2이사야서에서는 모두 그 나라 종교생활을 혐오할 만한 위선으로 묘사한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니라" 29:1358:2,4을 비교해 보라.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하기를 즐겨하며……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더구나 이 책의 두 부분에서는 유대인들이 신성시하는 숲에서 흥청대는 비밀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말한다. 1:29"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57:5, "너희가 상수리 나무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종교 의식적인 매춘 뿐 아니라 므낫세 시대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행해지던 가증스러운 습관인 몰렉과 아드람멜렉에게 자녀를 희생으로 드리는 언급이다(왕하 21:6, 대하 33:6). 또 한편 이사샤 57:7은 이러하다. "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그리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포로 이전에는 번성했으나 그 이후에는 없었던 예배형식인 산 꼭대기의 예배에 대한 암시가 분명하다. 그리고 62:2-4은 이러하다."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이러한 일들은 선지자가 이 말들을 기록할 당시에 계속 행해지던 사악한 악들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

 

 

 

   24 이 사 야 서 ()

 

 

          1. 소위 언어와 문체의 상위성
  오경 비평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서를 난도질하는 자들은 저자의 차이를 주장하기 위하여 드물고 또한 독특한 단어 및 구절들의 목록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증거가 정당한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고 취급되어져야 한다. 단순히 단어의 나열로써는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게 된다. 네겔스바흐(N gelsbach)는 이렇게 지적한다. "왜냐하면 진짜라고 인정되는 이사야서 속에는 이사야서 특유의 새롭고 독특한 사상과 단어가 나타나지 않은 곳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1이사야서와 제2이사야서 사이의 문체상의 유사점은 많고도 분명하다.무엇보다 가장 뚜렷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명칭이 이사야서 전반에 걸쳐 자주 나타나는데, 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오직 5회만 나타날 뿐이다. 이 명칭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qed  h Yi r ' l, 케도쉬 이스라엘)인데, 이것은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예언들을 지배하는 중심 되는 신학적 강조점을 나타낸다. 통계적 계산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이 명칭은 1-39장에서 21, 40-66장에서 14번 나타난다. 구약에서 이 명칭이 나타나는 또 다른 곳은 시편 71:22; 89:18 및 예레미야 50:29; 51:5 등이다. 실제로 이사야서가 이 명칭을 창안했든 아니했든 간에, 이것은 그의 모든 저작에 대한 일종의 권위 있는 보증서가 되었다. 그래서 이것은 전체 작품의 통일성에 대해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 2이사야서는 제1이사야서와는 다른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그 문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체가 매우 비슷하게 나타난 곳이 있는데 이는 후기의 저자가 앞의 저자의 제자이거나 모방자임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들은 사실로부터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그 이론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보수주의 자들은 이 두 이사야서 속에 같이 나타나는 구절은 적어도 40-50구절이 된다고 하며 또한 그것은 동일한 저자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한 구절들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1;20; 40:5; 58:14에서 나타난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43:13)"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14:27)과 매우 비슷하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35:1051:11에 나온다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11:12)"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56:8)과 비슷함
  "이것이 여호와의 보수할 날이오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 하실 해라"(38:8)"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62:2)는 아주 닮았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11:6-965:25에 나타난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를 흐를 것임이라"(35:6)"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41:18)과 매우 비슷하다.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11:2)"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61:1)와 아주 유사하다.
  35:8에서 우리는 사막을 관통하는 우리는 사막을 관통하는 여호와의 대로(大路)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사상이 40:3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1:11,14)"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43:24)와 매우 비슷하다
  지적되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2이사야서와 8세기 선지자 미가 사이에는 문학적 유사성이 많고 또한 뚜렷하다는 점이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리니……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52:12)"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2:13).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 죄를 고하라"(58:1)"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3:8).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49:23)"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7:17).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41:15-16)"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철 같게 하며…… 여러 백성들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4:13).
  이사야가 미가의 영향을 받았는지, 미가가 이사야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그들이 서로의 설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성령께서 그들을 움직여서 같은 시대에 같은 말로써 하나님의 메시지를 표현하게 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그들은 일반적으로 같은 분위기와 견해를 표현하고 있으며, 거의 같은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호세아 13:4을 언급할 수 있다. "나 밖에는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 문장이 제2이사야서 후반부에서는 43:1145:21에서 두 번 나타나는데, 서로가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호세아는 이사야 직전에 살았기 때문에 젊은 선지자가 나이든 선지자에게서 신중하게 빌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2. 소위 신학사상의 상위성

 

  41장에서 53장까지의 여러 구절에서 언급되는 여호와의 종의 신분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합리주의자들은 그들의 철학적 전제 때문에, 고난의 종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그 종이 누구인가 하는 최근의 연구를 살펴보면, 최근래의 대부분 반 초자연론자들은 고난받은 종이란 유대 국가와 동일한 것이라고 하는 현대 유대주의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은 메시야에 대한 언급인 "종의 노래"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난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러한 해석 형태로 이사야 53:4,5, 8,9을 해석하게 되면, 이스라엘이 그들 자신의 죄를 대신 담당했으며 그 종 대신에 이스라엘이 매를 맞았고, 이스라엘 나라는 재판관 앞에서 입을 열지 않았고 또한 모든 유대 종족은 법적 살해를 당했으며 어느 부자와 함께 장사 지내었다고 해석되게 된다

 

           3. 이사야 4066장의 진정성에 대한 부가적 증거들

 

  신약 성경은 제 1,2 이사야서의 저자를 한사람이며 단일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약의 많은 인용문들은 단지 전통적인 그 제목에 따라서 이사야서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이사야서는 인물을 분명히 암시하는 다른 언급들이 있다
  12:17-18"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라고 하면서 이사야 42:1을 인용한다.
  3:3"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고 이사야 40:3을 인용한다.
  3:4"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라고 하면서 이사야 40:3-5을 인용한다
                                              
  사도행전 8:28에 보면, 에티오피아의 내시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 특히 이사야 53:7-8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빌립과의 대화 속에서(8:34) 묻기를,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라고 했다.
  로마서 10:16은 아사야 53:1을 인용하여 "이사야가 가로되……"라고 말한다.
  로마서 10:20은 이사야 65:1을 인용하여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라고 말한다
  가장 결정적인 신약의 인용문은 요한복음 12:38-41이다. 38절은 이사야 53:1, 40절은 이사야 6:9-10을 인용한다. 그리고 나서 영감 받은 사도는 41절에서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논한다. 분명히 이것은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성전환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개인적으로 보았던 그 선지자가 틀림없는데, 이 환상은 이사야 53:1에서 도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라고 진술되었다. 만약 이사야 6장과 53장을 기록한 저자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2이사야설의 주장자들은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굳게 단언한다), 영감 받은 사도가 오류를 범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두 이사야설의 주장자들은 신약성경 속에 오류가 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심지어 구약성경이라는 영감된 책의 저작권과 같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서까지도 그들은 동일한 회의를 던진다.
  2이사야 설에 있어서 가장 만만찮은 난점은 그 저자의 이름이 보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8세기 이사야가 아니라 제2이사야의 이름이 잊혀졌다는 것은 전혀 생각조차 할 수없는 일이다. 구약성경 전체 중에서 제2이사야서의 예언보다 더 장엄한 구절의 예언은 없다고 하는 것은 분석적 비평가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탁월한 천재의 명성이 그렇게 빨리 사라져서, 70인경이 번역되던 B.C. 3세기 경에는 그의 이름이 완전히 잊혀지기까지 되었단 말인가? 이사야의 글에 대한 성경 외의 최초의 언급은 시락의 지혜서 49:17-25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저자는 다음 사실을 언급한다. "그는(이사야) 시온에서 슬퍼하던 자들을 위로했으며…… 또한 마지막 때에 될 일과 이전에 이루어졌던 감추인 일을 나타내 보였다" 여기에서 "위로"라고 사용된 바로 그 단어가 70인경이 이사야 40:1을 번역할 때 사용되었다. 제자가 그의 스승을 그렇게 능가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러면서도 무명인물로 남아 있었다고 하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어떤 세계문학에서 비교될 수 없는 거짓말 같은 가정인데, 이 절단하는 이론의 주장자들은 이 가정에 몰두했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사실이 있다. , 예언적 작품에 대하여 고대 히브리인들이 지켰었던 거의 불변적인 법칙은 어떤 예언적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선지자의 이름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바댜와 같이 짧은 작품 속에도 저자의 이름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의해 강조된다. 만약 히브리인들이 선지자의 메시지를 진정한 주의 대변자의 권위 있는 선언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그들의 그 선지자의 신분을 중요시했기 때문이었다. 영이 지적한 바와 같이, 무명의 저술 선지자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의 정신에 크게 반대된다.
  또한 가장 짧고도 특출하지 않은 소선지서들이라도 그 메시지와 이름이 기억되었다고 한다면, 그 나라가 나은 가장 탁월한 선지자의 이름이 후세에 남겨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40-66장의 저자의 이름은 참으로 보존되었으며, 그 이름은 8세기 이사야 그 자신이라고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25 나훔서, 스바냐서, 하박국서

 

 

      . 나훔서

 

  나훔(N   m)"위로"라는 뜻이다. 본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거룩인데, 반역하는 불신자들에 대한 보응과 그의 백성에 대한 긍휼을 수반하는 거룩이다. 신자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앗수르 세력을 파멸시키시는 그의 거룩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변호를 보고 기뻐한다고 묘사된다.       

 

          1. 나훔서 개관
 
  .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찬송(1:1-2:2)
    A.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과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선하심(1:2-11)
    B. 도래하는 유다의 회복(1:12-2:2)
  .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예언(2:3-3:19)
    A. 그 성의 보좌와 멸망(2:3-13)
    B. 니느웨 멸망의 이유(3:1-19)

 

          2. 저자의 출생지       

 

  나훔은 엘고스(Elkosh)출신이라고 기록되었으나, 이 성읍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경합하는 이론들이 있다.
  제롬(Jerome)은 엘고스를 갈릴리에 있는 엘게시(Elkesi) 혹은 엘카우제(El Kauze)와 동일시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가버나움과 동일시했는데, 이는 가버나움(Kepar-N   m)은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엘고스는 그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라 나중에 개명되었을 것이다. 매우 희박한 추측에 근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앗수르의 모술(Mosul) 근처에 있는 알쿠스(Alqush)와 동일시했다. 도한 다른 사람들은 엘케세이(Elcesei)라고 했는데, 위 에피파니우스에 의하면 그것은 예루살렘과 가사 중간지점인 시므온 지역의 벧 가브레(Bet Gabre) 아래쪽에 있는 유다 마을이었다. 아이스렌(Eiselen), 라븐(Raven) 및 영은 이 네 번째 추측을 지지하는데 동의한다. 왜냐하면 본문의 내적 증거가 시사하는 바에 의하면 저자는 유다 왕국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3. 저작 연대

 

  나훔서는 앗술바니팔 군대 이전의 더배의 멸망을 661년에 일어난 사건, 즉 과거의 사건이라고 언급하기 때문에, 이 예언은 그 이후에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반대로, 니느웨의 멸망은 미래의 사건으로 예언된다. 그러므로 본서는 B.C.612년 이전에 저작되었음이 분명하다. 다른 학자들은 그 예언의 성취에 더 가까운 연대를 택하는데, 그것은 625년 혹은 620년이다. 이러한 성취된 에언을 사건후의 예언이라고 설명하는 합리주의 비평가들은 자연히 그 연대를 612년 후로 추정한다.                                            
           4. 나훔의 메시지

 

  나훔 2:6은 매우 정확한 예언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니느웨의 주요 성벽이 대홍수에 휩쓸려 무너졌으며, 이러한 방어제의 붕괴는 그 성을 포위하고 있던 메대와 갈대아로 하여금 무난히 그 성을 습격하도록 했다고 후기의 역사는 기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훔이 앗수르 수도의 멸망을 바랐다고 하면서 우스꽝스런 입장이라고 반대하며, 그것을 국수주의적 광신주의와 복수심에 불타는 원한의 표현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선지자가 지니고 있던 입장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아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이다. 그의 열렬한 소원은 여호와께 자기의 거룩을 이방인 앞에서 입증하심을 보는 것, 즉 모든 속국을 그렇게 오랫동안 무자비하게 짓밟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그 제국의 무정하고 잔인한 압제에 대적하여 여호와의 거룩이 입증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앗수르의 철저하고도 본보기 적인 멸망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은 결국 무력이 정의가 아님과 아무리 강력한 이교도일지라도 여호와의 공의로운 진노 앞에서는 전혀 무력함을 배울 수 있다.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멸망 사실과 그 방법을 그렇게 놀라우리 만큼 정확하게 예언하실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주권을 고대 세계에 가장 잘 입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 스바냐서

 

  스바냐(     )"여호와께서 숨겨 주신 자"라는 뜻이다. 그의 주제는, 어떠한 반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는 여전히 그의 모든 세계를 굳게 지배하신다는 것과 불순종하는 유다 에게 무서운 징계를 가하시며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나라들을 완전히 멸하심으로 가까운 장래에 그의 지배권을 입증하신다는 것이다. 적당한 때의 회개만이 이 진노를 유예시킬 수 있다.

 

         1. 스바냐서 개관

 

  . 예상되는 주의 날(1:1-3:7)
    A. 유다의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1:1-2:3)
    B.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2:4-15)
    C. 예루살렘의 죄로 인한 재난(3:1-7)
  . 미래 왕국의 설립(3:8-20)
    A. 나라들에 대한 심판(3:8-13)
    B. 기뻐하는 남은 자와 메시야 왕국(3:14-20)

 

         2. 스바냐서의 연대와 저자

 

  스바냐는 구시의 아들이며 히스기야의 현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히스기야는 바로 히스기야 왕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연대기적 내용을 따르면, 사실상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예루살렘을 "이곳"(1:4)으로 말하며, 그 지형에 대해 친숙하게 아는 듯이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예루살렘에 살았음이 분명하다. 아마 그는 요시야 시대 초반, B.C.621년 부흥운동 이전에 그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윤리적, 종교적 상황은 매우 저급했었는데, 그것은 므낫세와 아몬 시대의 악한 영향 때문이었다(3:1-3,7).
  일부 합리주의 비평가들은 2:4-153:18-20의 진정성을 의문시하며 이 구절들을 포로 후기의 것으로 추측했다. 그들의 그러한 연대추정의 주요한 기준은 히브리 종교사상이 진화론적 과정 속에서 단계에 따라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가 하는 이론이다. 아이스펠트와 몇몇 학자들은 모압과 암몬에 대한 심판(2:8-11)에 대해서 포로 후기 연대를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그 심판들은 오바댜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레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구절은 그것과 나란히 놓여 있는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경고와 매우 잘 조화가 된다.      

 

          3. 스바냐의 메시지

 

  스바냐는 B.C.630년 경 카우카수스(Caucasus) 지역에서부터 급습해 와서 메대와 앗수르로 몰려온 스쿠디아인들(Scythians)의 갑작스럽고 파괴적인 침략에 대해 언급하는 것처럼(1:10-18) 보인다.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그들이 수리아를 휩쓴 후에 애굽을 위협했기 때문에 프사메티쿠스 1(Psammetichus )는 그들은 돈을 주고 내어보냈다고 한다. 호전적인 유목민에 대한 이러한 징벌은 유다가 유린당하게 되는 여호와의 날이 다가옴을 이스라엘에게 통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블레셋도 하나님의 심판을 겪게 되며(2:4-7), 암몬과 모압 및 구스와 앗수르와 같이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들짐승만이 거하는 황량한 광야가 되게 된다(2:17). 이러한 무서운 모든 경고와 함께, 모든 나라에게보다는 주로 남은 자들에게 전해졌던 다음과 같은 회개에의 호소가 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2:3).  이 호소는 요시야의 동조자들에게 호응을 얻는데, 므깃도의 전투(B.C.609)에서 그들의 영웅이 불시에 죽은 후에 그들은 유다의 힘을 유지할 수가 없었지만 이 회개에의 호소에 호응했다.
  3:13에는 이스라엘의 궁극적 축복의 약속에 대해 천년왕국적 의미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미래의 시대는 전세계적인 신앙의 시대이며, 모든 나라 사람들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일심으로 여호와를 섬길 것이며 같은 신앙의 말을 할 것이다(3:9-10). 

 

      . 하박국서 

 

  하박국( abaqquq)이라는 이름은 "껴안은 자", "매달리는 자"라는 뜻이다. 이 선지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약속성취를 방해하는 분명한 난관들에 직면한 신앙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 난관들은 하나님의 계속되는 계시를 통하여 해결하려고 고심하고 또 해결하게 된다. 그리고 선지자는 즐거운신뢰의 찬송으로 끝을 맺는다.

 

         1. 하박국서 개관

 

  . 신앙의 문제(1:1-2:20)
    A. 하나님께서 사악함을 왜 저지하지 않고 허용하시는가?(1:1-12)   
      유다에서 압제가 저지되지 않음(1:2-5)
      하나님의 징계로서의 갈대아인(1:6-12)
    B. 악한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승리하는 것을 하나님은 왜 허용하시는가(1:13-2:20)
      갈대아인의 무자비한 잔인성과 어리석은 우상숭배(1:13-17)
      하나님의 응답을 겸손하고 충실하게 기다리는 신자(2:1-4)
      갈대아인의 다섯 가지 죄로 인하여 그들을 치시는 심판(2:5-9)
      그의 땅 위에 계속되는 하나님의 주권(2:20)
  . 모든 의심이 해결됨 : 신앙의 기도와 흔들리지 않는 신뢰(3:1-19)
    A. 부흥을 위한 기도(31-2)
                                             
    B. 미래에 대한 분명한 상징이 되는 주의 급속한 심판(3:3-16)
    C. 신자는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그의 거룩하심의 변호를 받음(3:17-19)

 

         2. 저자와 저작 연대

 

  하박국은 여호야김 시대에 사역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갈대아인들의 존재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무서운 존재라고 언급되기 때문이다(1:6-10). 이것은 B.C.612년의 니느웨 멸망 이후 시대와 가장 잘 조화되는데, 어쩌면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승리를 얻었던 B.C.605년 이후일지도 모른다. 갈대아인의 팔레스타인 정복에 대한 예언은 매우 빨리 성취될 것은 예정하고 있었다고 결론 내려도 무방하다. 하박국 1:2-4은 유다 귀족들의 가난한 자에 대한 탐욕스런 착취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시야의 죽음(B.C.609) 이후 시대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박국이 B.C.607년 혹은 606년 경에 그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일부 비평가들은 1:2-4이 유대 본국의 압제자들에 대한 언급이라는 것을 싫어하고, 그들을 애굽인과 동일시하거나 심지어 앗수르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1:2-4의 본문에 이방침략자들이 언급된다는 증거가 없고, 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한 재판정의 속임수는 국내적인 죄악을 말한다.
  일부 비평가들의 생각에 의하면, 포로 전기의 사람 하박국이 비록 1장과 2장의 저자였다고 하더라도 1장과 2장의 자료는 후기의 어느 편집자가 재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비평가들은 3장은 선지자의 말이라기 보다는 찬송이며 또한 첫 절과 마지막 절에서 음악 용어가 언급된다는 근거에서 3장에 대한 하박국서의 저작권을 한결같이 의문시한다. 이와 같은 근거 위에서 파이퍼는 3장의 연대를 B.C.3,4세기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윗 시편에 나오는 음악용어는 후기의 것이며 또한 아모스 6:5을 비롯한 구절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기에 음악이나 노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하는 정당성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이 찬송을 쓰고 그것을 노래하는 일에 매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하는 성경의 전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음악 용어가 후기 저작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또한 하박국이 주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찬송을 지을 수 없었다고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비평가 자신들도 쉽게 지적하듯이, 선지서 들의 많은 부분은 성격상 주로 시이다. 일부학자들은 쿰란 동굴에서 나온 하박국서 주석에는 제3장이 빠져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매우 중시했다. "그 두루마리에서 이것이 빠진 것은 이 이론과는 모순되지만 그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3장이 유다 계약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증명되지 못한다. 이 찬송은 다른 장들에서 사용되었던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하박국서 주석이 완성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70인경은 3장 모두를 싣고 있는데, 70인경의 이 부분이 하박국서 주석보다 더 오래된 것인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3. 하박국서의 메시지
  
  하박국의 예언은 특이하다. 강포와 패역이 만연한 상황 속에서 왜 하나님은 속히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고 의인들을 구원치 않는가 하는 신앙적 물음에 대해 하박국 선지자의 두 가지 질문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 형식을 빌어 답해 줌으로써 악인의 대한 심판에 필연성과 믿음으로 사는 의인의 구원의 확실성을 극명히 증거해 준다. 하나님은 갈대아인의 죄를 알고 계시며, 마침내 그들에 대한 심판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을 영광스럽게 변호하실 것이다. 이러한 의심들이 모두 사라지자, 하박국은 거룩한 기쁨의 찬양을 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공의를 변호하시고 그의 주권을 온 세상에 나타나셨던 과거 순간들, 출애굽 가나안 정복 그리고 사사시대를 회상했다.        
     

 

                                             
   26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애가서

 

 

     . 예레미야서

 

   예레미야의 히브리어 이름은 (       , Yirme-Y h )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서의 주제는 유다 백성들이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서야 포로로 잡혀가는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호도니 경고가 있다. 사회에 모든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변명할 여지없이 죄 속에 빠져있다고 책망한다. 유다가 회개치 않은 한 바벨론 포로는 불가피하다. 온 나라가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징벌로서 갈대아인들의 멍에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야, 의로운 가지에 의해 이스라엘이 구원될 날이 올 것이므로 참 이스라엘은 혈육의 팔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1. 예레미야서 개관

 

  . 요시야와 여호야김 시대의 에언들(1:1-20:18)
    A. 선지자의 소명과 사명(1:1-19)
    B. 나라의 죄와 무감각(2:1-3:5)
    C. 북에서(갈대아인들)재앙이 쏟아질 것에 관한 예언(3:6-6:30)
    D. 바벨론 포로의 위협(7:1-10:25)
    E. 깨어진 언약과 허리띠의 표징(11:1-13:27) 
    F. 가뭄, 미혼 선지자의 표징, 안식일에 관한 경고(14:1-17:27)
    G. 토기장이 집의 표징(18:1-20:18)
  .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시대에 있었던 후기 예언들(21:1-39:18)
    A. 시드기와 예류사렘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채찍으로서의 느부갓네살(21:1-29:32) 
    B. 미래의 메시야 왕국(30:1-33:26),개인주의의 교리(31:1-40) 
    C. 시드기야의 죄와 레갑인들의 충성심(34:1-35:19)
    D. 선지자의 두루마리를 태우는 여호야김(36:1-32)
    E. 포위 중 옥중에 있는 예레미야(37:1-39:18)
  . 예루사렘 멸망 후에 관한 예언(40:1-45:5)
    A. 유다의 남은 자 사이에서 사역(40:1-42:22)
    B. 애굽에 피난간 자 사이에서 사역(43:1-44:30)
    C. 바룩에 대한 격려(45:1-5)
  . 열방을 책망하는 예언들(46:1-51:64)
    A. 애굽(46:1-28)        B. 블레셋(47:1-7)   
    C. 모압(48:1-47)         D. 암몬, 에돔, 다메섹, 아라비아, 엘람(49:1-39)           E. 바벨론(50:1-64)
  . 역사적 부록(52:1-34, 유다의 멸망과 포로)
                                               
          2. 저자의 약력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 B.C.626년 그가 20세 되던 해에 그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그의 인생의 대부분을 아나돗이라고 하는 그의 고향 땅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가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해마다 유대의 종교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나타났다. 그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풍부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친척 중 한 사람이 부도를 낸 후 재산이 몰수되었을 때 그것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다시 살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시야 치하 때 정부로부터 어떤 어려움도 당하지 않고 왕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요시야 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사망하자 비장한 애가를 불렀다. 그렇지만 에레미야는 다른 동료 제사장들과 친척들로부터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언약을 배반한 백성들을 책망하고 세상적인 방법대로 사는 그들을 정죄하였기 때문이다
  요시야가 죽은 후 우상숭배자들과 친애국파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예레미야와 그가 주장하던 모든 메시지에 치명적인 어려움이 닥쳐오게 되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수의 장로들과 왕자들이 예레미야를 돌보지 않았다면, 그는 큰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에레미야 7-10장 사이에 있는 그 유명한 성전의 설교에서 그는 "대 규탄"을 했기 때문에 체포당하게 되었으나 장로들로 말미암아 피할 수가 있었다. 그 이후로 그는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금지되었다. 그래서 그는 바룩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을 때마다 백성들에게 선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글이 여호야김 왕의 손에 들어갔을 때 난로 가에서 서기관이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찢어서 태우고 말았다. 후에 여호야김 왕의 후계자인 시드기야가 국수주의적인 귀족들의 영향을 받아 예레미야를 감옥에 넣게 되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항복을 해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를 반역자로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남몰래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갈대아인이 B.C.598년에 침공한다는 에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예레미야가 깊은 토굴에 갇혀 죽게 되자 그를 죽음에서 건져내고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위험한 지경에서 보호해 주었다.      
  느부갓네살이 폭풍처럼 도시를 뒤엎을 때 에레미야는 바벨론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왜냐하면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느부갓네살 왕에게 복종하도록 강권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는 백성들과 함께 머물기로 작정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 외의 게릴라들과 편당들이 무리들을 위해 사역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달랴가 꾐에 빠져서 죽임을 당한 후에는 팔레스타인에 남아서 느부갓네살의 분노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나일의 땅에 가서 피해 살기를 원하는 유대의 남은 자들 때문에 애굽으로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애굽에서 예레미야는 수년 동안 더 예언하다가 아마 그곳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것 같다.    

 

          3. 예레미야서의 역사

 

  여호야김이 불태워 버린 예레미야 예언의 원본 외에도 그 후대의 판이 있었음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 후대 판은 우리가 지금 맛소라 사본에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더 앞서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70인역으로부터 알 수 있는데 사실 70인역은 맛소라 사본보다 이 더 짧다. 그것은 또한 장의 배열에 있어서도 다르다. 마소라 사본의 46-51장까지가 70인역에서 25장 바로 뒤에부터 있으며 그것도 역시 배열 순서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맛소라 사본의 예레미야 33:14-2670인역에서는 빠져있다. 아마 이 초기의 판은 선지자가 살아 있었던 동안에 출판되었던 것 같고 애굽에서 배포되었던 것 같다. 에레미야가 죽은 후에 바룩이 그 선생의 설교를 모두 모아서 더 논리적인 순서로 일목요연하게 배열하였던 것 같다. 맛소라 사본은 의심할 여지없이 예레미야 사후의 바룩판을 보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36:32은 두 번째의 임시 판이 여호야김의 치하 때 출판되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음을 주목하라. 또한 예레미야는 이 초기의 설교에다가 
                                                                  
시드기야 치하 때와 그 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주님으로부터 받았던 메시지를 첨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4. 예레미야서의 진정성

 

  대부분의 합리주의적 비평가들을 예레미야서의 어떤 부분들이 예레미야 자신과 그의 비서 바룩에게 속하였음을 부인한다. 그 저작권을 반대하는 몇몇 구절들을 열거하자면,
  10:1-16 : 이유는 이 부분이 포로 중에 있는 유대인들을 제 2 이사야서의 어투로서 우상숭배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17:19-27 : 이유는 이 부분이 에스겔서와 제사법전, 즉 예레미야서 보다도 조금 후대의 작품들과 유사하게 엄격한 안식일 준수하기 때문이다.
  30, 31: 이유는 이 부분이 포로 후 시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기대와 에스겔 18장에 있는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51: 이유는 41절에서 바벨론을 아트바쉬(Athbash) 용법으로 쉐샥(Sheshakh)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바쉬 용법은 후대의 문학적인 기교로 간주되고 있다. 아트바쉬는 하나의 암호로서 히브리어 알파벳 중 맨 끝에 있는 것이 첫번째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끝에서 두번째 있는 것이 앞에서 두 번째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을 제시하는 암호이다. 따라서 바벨(B-b-L)KJV에 있는 바와 같이 쉐샥(Sh-sh-k)이라는 암호 이름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후대의 작품으로 몰아붙이는 모든 기준들이 증명되지 않은 가설 위에 서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예를 들자면 오경의 P문서 외 제 2 이사야서가 포로 후 시대의 것이라든가 또한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점진적으로 발전했다는 가설 등이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사이에 큰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는 가설 역시 정당화시키기 어렵다. 왜냐하면 성경 기록에 따르면 이 두 선지자는 동시대에 사역을 하였고 예레미야의 후반기에는 최소한 같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31:29-30은 에스겔 18:2-3과 아주 유사하다. 아마 에레미야가 지나가면서 했던 말을 에스겔이 받아서 확대된 설교의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5. 기타 역사적인 문제점들 

 

  29:10에 있는 70년간의 포로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서 이 70년을 어떻게 계산해야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유다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B.C.586년 경이다. 539년에 바벨론은 바사에 정복되었고 그로부터 1,2년 이내에, 536년 경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유다로 돌아가고자 하던 사람들이 발길을 내딛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586년은 536년은 50년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기간을 설정해야 한다. 느부갓네살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것은 B.C.605년이었고 그 때 상당수의 포로들(다니엘, 사드락, 아벳느고, 메삭)을 잡아갔기 때문에 이 연대가 시작년으로 보여질 수 있다. 따라서 536년은 약 70년 약 70년이 되는 해이다. 또다른 가능성은 느부사라단 장군이 586년에 성전을 파괴한 것을 70년의 시작년으로 보고 그 포로기간이 제 2 성전이 완전히 재건된 해, 516년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두 가능성 중에 스가랴 1:12은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하는 듯하다.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성읍들을 긍휼이 예기치 아니 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70년이 되었나이다." 이것을 말할 때를 약 B.C.519년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천사들까지도 70년이 아직 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 19:10의 은혜의 약속은 성전이 재건되기까지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지난 102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비평가들이 43:9-1344:30에 있는 에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는지에 대해서 회의를 표명했다. 거기에 따르면 애굽 북쪽이 느부갓네살 왕 치하 때 갈대아인들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된다는 내용이다(29:9-20). 비록 요세푸스가 고대사10.9:5-7에서 이것에 
                                              
대 하여 명백한 기록을 제시하고 있지만 헬라의 역사가들은 이와 같은 침공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요하난은 그가 건져낸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만나라는 장소에 이르렀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50년 느부갓네살 치하 23년에 느부갓네살은 수리아를 침공하고 그곳을 정복한 후 암몬과 모압으로 더불어 전쟁을 치룬 후 이 모든 열국들을 자기의 무릎 아래 꿇게 한 후 그는 애굽을 점령하기 위하여 기수를 남쪽으로 돌리고 기 당시 통치하던 왕을 죽인 후 다른 사람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그는 거기에 있는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서 바벨론으로 데려옴으로써 히브리 민족의 멸망을 가져왔다." 많은 권위 있는 학자들이 요세푸스의 진술이 단순히 히브리어 성경을 지지하기 위하여 꾸며낸 것으로 처리해 버리곤 했다. 그러나 옥스포드의 탐슨(R.C. Thompson)은 이렇게 말하였다. "핀치(Pinches)가 처음으로 출판한 바벨론의 역대기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이 그의 치하 제 37, B.C.567년에 애굽을 침공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가 어디까지 쳐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몇몇 바벨론의 남은 자들이 애굽의 피라미드 근처에서 작은 바벨론을 세웠다는 전통이 있는데 그 도시는 아우그수투스 시대에 중요한 기지로 있었으며 그의 군대가 그곳에 어떤 표식을 남겨 두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ANET에는 영국 대영 박물관에 있는 단편 바벨론 원문이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 "3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미찌르(Mi-sir) 애굽을 향해 진군하였다." 루블 박물관에 있는 네쉬호르(Nes- or) 비문에 또다른 고고학적인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네쉬호르는 호프라(Hophra: 애굽어로는 Ua -ib-Ra) 치하에 남부 애굽의 관리로 있었던 사람이다. 이 전기적인 기록에서 그는 애굽을 침범한 아시아의 군대와 북편 백성들이 나일 계곡을 따라 에티오피아까지 진군하였으며 신들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다행스럽게 후퇴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증거를 통해서 볼 때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쳐들어갔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며 그 침공이 아주 심각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예레미야 애가서

 

  상당히 작은 이 소품의 히브리어 표제는 1;1에 나타나는 단어인 에카(' kah, 슬프다)이다. 이 책의 주제는 죄악 많은 유대에 임한 재앙과, 거룩한 도시와 주님의 성전에 임한 처참한 멸망을 애도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선지자는 매맞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길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의 은혜를 간구해야 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1. 예레미야 애가서 개관   

 

  . 황폐하고 버려진 예루살렘(1:1-22)
  .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 회개만이 유일한 소망(2:1-22)
  . 하나님의 옛 은혜를 생각하며 애통함(3:1-66)
  . 시온의 옛 영광과 현재의 재난(4:1-22)
  .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회개하는 민족(5:1-22)

 

  첫 네 장이 아크로스틱(acrostic) 형식으로 기록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1, 2, 4장은 각각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하여 22절로 구성되어 있고, 3장은 한 알파벳을 세 절로 이어 66절로 구성되어 있다.  

 

         2. 저작권  
  이 책은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진술하지 않고 있으나 예레미야가 이 책을 썼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반적 전통이다. 이 전통은 70인역과 아람어로 된 요나단의 탈굼 표제에 반영되어 있
                                              
. 오리겐과 제롬과 같은 초대교회 교부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예레미야가 저자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현대의 비평가들은 내증에 근거하여 이 전통을 부인한다. 예레미야의 이 두 예언이 문체가 너무나 다르고, 두 서너 가지의 역사적인 암시들을 볼 때 이것이 예레미야 시대 보다 훨씬 후대의 상황과 사건을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반면에 B.C.586년의 예루살렘 멸망 외에 다른 어떤 후대의 사건이 이와 같은 비극적인 애가를 짓도록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 의문시된다. 만약 예레미야가 저자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을 쓴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예레미야와 동시대의 사람이어야 하며 갈대야 정복자들에 의해서 시온이 겪은 그 처참한 비극을 목격한 자라야 한다. 문체와 어투에 있어 애가서와 예레미야서 사이에 괄목할 만한 유사성들이 많이 있다. 예레미야의 저작권을 받아들이지 않는 드라이버(S.R. Driver) 같은 사람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고통받은 시온의 처녀 딸"(1:15, 8:21). 선지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1:16a; 2:11, fpa9:1,18b). "사랑하는 자 가운데 위로하는 자가 없다"(1:2)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너를 잊고 너를 찾지 아니하니"(30:14).이 두 문장을 비교하라. 둘 다 하나님의 심판의 포도주 잔을 의미하고 있다. 애가서 4:21은 에돔에 대해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보라 이 잔을 마시지 않을 자도 마시지 않지 못하겠거늘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면하지 못하고 반드시 마시리라"(49:12).     
  두 저자 사이에 관점이 다르다는 것에 근거한 논리는 건전한 성경해석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예로서 애가 4:17에 있는 바와는 달리 예레미야는 에굽이 유다를 도울 것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애가 4:17에 곡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애가 4:17은 애굽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애가 4:17에 따르면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았도다." 이 구절에서 저자는 자기 개인의 소원을 말하는지 혹은 이스라엘 나라를 의미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저자는 여기서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표현한 것 같지 않다. 또한 비평가들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도구로서 사용하고 있음을 믿었는데 애가 3:59-66은 갈대아인이 하나님의 복수의 몽둥이를 실컷 맞아야 할 합당한 원수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충돌이 있다고들 주장한다. 그러나 이 두 관점이 서로 충돌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이 확실히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악한 동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복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27 에 스 겔 서

 

 

  히브리 이름 예헤즈케엘(Ye ezeq 'l)"하나님께서 강건케 하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에스겔 예언의 주제는 예루살렘 멸망과 바벨론 포로가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백성을 다시 바로 잡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완전히 배도에서 돌아가게 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조치였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때가 오면 여호와께서 그가 때렸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뿐 아니라 새 성전에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가 다시 이룩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1. 에스겔서 개관 

 

  . 선지자의 부름과 사명(1:1-3:27)
  . 예루살렘 멸망전의 유다에 대한 예언들(4:1-24:27)
    A. 5년에 받은 메시지(B.C.593-592, 4:1-7:27상징과 설교로서 멸망을 예언함)
    B. 6년의 받은 메시지(B.C.592-591, 8:1-19:14)
    C. 7년에 받은 메시지(B.C.591-590, 20;1-23:49)
    D. 9년에 받은 메시지(B.C.590-589, 24:1-27에스겔의 아내,이스라엘에 대한 애곡이없음)
  . 이방열국에 대한 예언(25:1-32:32)
    A. 암몬, 모압, 에돔, 그리고 블레셋(인근 국가들,25:1-17)
    B. 교만한 상업적인 물질주의의 상징인 두로와 시돈(26:1-28:26) 
    C. 자만으로 가득찬 우상숭배의 상징인 애굽(29:1-32:32)
  . 멸망 후의 재건과 회복에 관한 예언들(33:1-48:35)
    A. 새 왕국의 건설에 대한 단계들(33:1-39:29)
    B. 최후의 왕국과 후일의 성전(40:1-48:35)

 

         2. 저자의 약력

 

  에레미야와 같이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다. 에스겔의 아버지의 이름은 부시(Buzi)로서 느부갓네살이 B.C.597년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간 것을 생각할 때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던 것 같다. 에스겔은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B.C.592년에 시작하게 된다. 그는 그때에 약 30세였다(1:1). 그의 행복했던 결혼 생활은 그의 아내가 B.C.587년 갑자기 죽음으로써 끝나고 말았다(24).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 사이에 설교자로 활약하였고 종종 장로들과 일반 백성들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의 메시지에 대하서 실제적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3. 에스겔서의 진정성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대성

 

  이 책이(에스겔서) 6세기의 선지자 에스겔이 쓴 것을 부인하는 데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중심된 근거를 제시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한 선지자가 미래의 축복에 대한 약속을 쓴 사람일 수 없다. 에스겔
                                             
은 어둠과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였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에게 그 어떤 왕의 실오라기 같은 빛도 던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론 : 대부분의 구약의 선지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참람한 심판을 예언하면서도 또한 그 후에 있을 회복과 은총을 부어주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모스서, 호세아서, 미가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스겔서의 저자는 바벨론에 사는 사람의 관점보다도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의 관점을 가지고 글을 썼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예루살렘의 거민의 복지를 위하여 상징적인 예언을 실제적으로 하게 되는데 만약 그가 약 1,000마일 이상이나 되는 갈대아 땅에 살고 있었다고 하면 그들을 향하여 예언인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반론 :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목전에서 상징적인 행동을 했다는 힌트나 암시가 전혀 없다. 반면에 오히려 그의 청중들이 바벨론에서 그와 함께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시민들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왕하 24:14에서 우리는 여호야김 왕이 B.C.597년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왕자들과 군인들과 같이 갔으며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서 간 숫자는 만 명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예루살렘에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에스겔이 상당수의 예루살렘 사람들 앞에서 설교했다는 것도 무리가 되지 않는다.          
  
         4. 에스겔서와 성결법전 사이의 상충점

 

  에스겔서에 있는 규칙들은 D문서와 H문서와도 다르고 P문서와도 다르다는 사실을 부인할 여지가 없다. 에스겔서에는 십일조와 장자가 태어났을 때 바쳐야 할 예물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오순절과 그것에 관한 규례 뿐 아니라 제단을 올라갈 때 피해야 할 구체적인 규례들이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방금 언급한 이 모든 문제들은 신명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에스겔서가 P보다 먼저 쓰여졌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사용된 원리가 에스겔이 D보다 먼저 쓰여졌다는 것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결론을 갖게 된다. 에스겔이 P에 제시한 바와 동일한 제사제도를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 번제와 속죄제, 화목제, 의식적으로 정하고 부정한 것에 대해서 명백히 구별하는 것들, 이 모든 규례들은 이 희생제도가 독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왔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것을 됫받침해 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성전의 치수이다. 에스겔서 마지막 부분에 있는 성전의 치수는 제사 법에 있는 것과도 다를 뿐 아니라 열왕기상 6,7장에 언급된 솔로몬의 성전 치수와도 전혀 다르다. 에스겔서에 있는 차이점이 초기의 저작권을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기준을 일관성 있게 적용해 볼 때 에스겔이 솔로몬의 성전보다도 더 일찍 있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때 결국 우리는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결론을 보게 되며 저들의 기준이 만족스럽지 않음을 시인하게 된다.

 

         5. 에스겔 40-48장의 성취에 관한 문제     

 

  이 장들은 미래의 팔레스타인이 그 도시와 성전과 함께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길고도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이것을 읽는다고 하면 여기 아홉 장에 걸친 예언이 책의 앞 부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자적으로 의도되었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게 된다(예를 들자면 26-28장에 있는 두로와 시돈의 심판이것은 그 이후에 역사에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문제는 40-48장에 제시된 그 계획이 언제 성취되었는가 하는데 있다. 만약 여기에 구차적으로 제시된 바에 따라 성전이 세워지지 않는다고 하면 선지자가 제시하고 있는 거룩한 도시도 없을 것이고 12지파가 땅을 분배하는 것도 없을 것이므로 우리는 성경의 이 부분이 거짓 예언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해석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에스겔 예언의 결론은 미래에 실현될 하나님 왕국이 선지자
                                             
에게 아주 익숙했던 형태로 제시된 것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 그의 시대에 그가 이해했던 형태로 주어진 것이다. 그것들의 본질적인 진리는 새로운 시대 곧, 그리스도인 시대에 구현될 것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개요로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다."(21:1-22).
  에스겔 40-48장을 신약교회에 적용시키는 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 생기는 몇 가지 문제점을 피해갈 수 있다. 이것은 특히 피의 제사를 드리는 규칙을 다루고 있는 몇몇 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적용되는데, 그것은 갈보리에서 구원을 완성한 이후 시대는 결코 적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만약 희생제사 자체가 속죄적 의미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갈보리 이후에는 이와 같이될 수가 없다(이것 역시 모세의 법으로 입혀져서 제시되어 있다). 히브리서에서는, 특히 10:4같은 구절에서 그 어떤 동물의 피 희생도 속죄를 위해 필요하거나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히브리서는 주 예수의 대속행위가 영원한 효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구약에 나타난 아론의 제사직과 레위기에 명시된 희생의 법을 다 완성하고 제거했다고 밝힌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생각해 볼 때 본서의 저자는 이 장에 대해 수정된 문자적 해석을 하는 것이 비유적인 해석을 하는 것보다 문제가 적다는 견해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구체화시키는데 있어서는 세심한 조심을 해야 하지만, 전체적인 개인을 볼 때 천사가 에스겔에게 전달한 그 모든 약속이 다가오는 새 시대에 영광스러운 지상의 왕국으로 성취되며 구속의 드라마가 종결되어 갈 것이다. 이 장에 언급된 희생제물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모든 시대에 완전한 대속을 주었기 때문에(10:12) 화해적 성격이나, 속죄적 성격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님은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규례로서 성찬식을 제정하셨고 그것을 그가 다시 올 때까지 지키도록 구체화시켰다. 전천년설에 따르면 천년 왕국은 그가 재림한 후에 시작이 될 것이다. 만약, 교회 시대에 성례가 계속 지켜진다면 천년 왕국 시대에 새로운 형태가 왜 지켜질 수 없겠는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미래에 일을 천년 왕국의 새로운 상황과 규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초림한 후 신약 시대에 도래할 하나님의 왕국의 형태와 상황에 대해서 판단하기가 어려웠던 만큼 우리가 천년왕국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영거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구별해 버린 것은 지지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에스겔 40-48장이 천년왕국에서 성취된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를 명백하게 구별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없으며 이 장에서 언급된 말일에 있을 왕이나 통치자(44:3;46:2) 등을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시킬 이유도 없다. 여기에 있는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서 다스리게 될 부섭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8 다 니 엘 서()

 

 

  다니엘이란 이름은 D niyy 'l 로서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 다니엘서의 주제는 살아 계신 한 분의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거역하는 세계의 열강을 부수시며 그를 진실 되게 믿고 있는 언약의 백성들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구하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1. 다니엘서 개관

 

  . 남은 자의 훈련과 시련(1:1-21)
    A.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온 자들(1:1,2)
    B. 왕을 섬기기 위해 유대의 소년들이 훈련을 받음(1:3-7) 
    C. 다니엘이 처음으로 받은 순종의 시험과 그의 믿음의 도전(1:8-16)
    D. 잇따른 상급 : 지혜를 더하며 직위가 올라감(1:17-21)
  . 느부갓네살의 꿈과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계획(2:1-49)
    A. 세상의 지혜를 초월한 꿈의 숙제(2:1-13)
    B. 다니엘의 해석을 위한 시도와 하나님의 계시를 바라는 기도(2:14-23) 
    C. 꿈을 되찾게 하는 다니엘과 그의 해석(2:24-45)
    D. 잇따른 하나님께 대한 영광과 다니엘의 승진(2:46-49)
  . 황금의 우상과 극렬한 풀무불(3:1-30)
    A. 우상을 세우며 국가 종교를 강요함(3:1-7)
    B. 신실한 세 친구의 고찰과 시편(3:8-18)
    C. 언도 집행(3:19-23)
    D.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과 네 사람(3:24-27)
    E. 느부갓네살이 두 번째로 하나님께 순복함(3:28-30)
  . 느부갓네살이 받은 경고의 잇따른 겸손(4:1-37)
    A. 세상의 지혜로 설명되지 않는 경고의 꿈(4:1-7)
    B. 꿈 해석 자로 인정된 다니엘(4:8-18)
    C. 다니엘의 해석과 교만한 왕에 대한 경고(4:8-18)
    D. 말로 다할 수없는 왕의 치욕(4:28-33)
    E. 왕의 회개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승인(4:34-37)
  . 벨사살의 잔치와 성전 기명을 더럽힌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5:1-31)
    A. 하나님의 거룩한 기물을 교만하게 잘못 사용한 벨사살(5:1-4)
    B. 벽에 쓴 글씨와 왕의 공포(5:5-9)
    C. 무기력한 세상의 통치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간청함(5:10-16)
    D. 교만한 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멸망의 선언(5:17-28)
    E. 다니엘의 존귀와 벨사살의 죽음(5:29-31)
  . 사자 굴에서 : 세상의 악으로부터 보호받는 신자들(1:6-28)
    A. 질투의 음모 : 모든 기도를 금하는 칙령(6:1-9) 
                                             
    B. 기도 중에 붙잡힌 다니엘과 칙령의 시행(6:10-17)
    C. 그의 기적적인 구원과 원수에 대한 심판(6:18-24)
    D.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다리오의 간증(6:25-28)
  . 인자의 승리(7:1-28)
    A. 짐승(바벨론의 사자, 메대 바사의 곰, 헬라의 표범, 로마의 무서운 짐승, 7:1-8)
    B. 하나님의 왕국과 메시야 등극(7:9-14)
    C. 천사가 다니엘에게 꿈을 해석함(7:15-28)
  . 헬라가 바사를 정복함과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등장(8:1-27)
  . 70이레의 환상 :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9:1-27)
  . 지속적인 기도의 승리(10:1-21)
  ?. 안티오커스 치하에서 첫번 박해 : 마지막 박해의 모형(11:1-45)  
  ?. 환난과 하나님 백성의 최후의 승리(12:1-13)  

 

 

 

         2. 다니엘의 저작권
 
  다니엘서를 사건 후의 예언으로 간주하는 학자들이 제출한 수많은 반박에도 불구하고 6세기에 살았던 다니엘이 이 작품 전체를 편집한 사람임을 부인할 만한 적절한 이유가 없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590년대의 느부갓네살의 통치로부터 530년대 고레스 왕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그가 정부에서 일하던 중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담아 둔 비망록을 그의 마지막 생애에 다 모은 것이다. 바사의 전문 술어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이 비망록들은 바사의 용어가 아람어에 이미 침투될 때 이 비망록을 편집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3. 마카비 시대의 위경이론

 

     다니엘서의 후대설에 대한 논거

 

  유대인의 정경은 다니엘서를 예언서에 두기보다, 케투빔, 혹은 성문록에 둔다. 이것은 이 책이 모든 정경에 포함된 선지자들 후대에 기록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포로 후 시대의 말라기서와 "3 이사야서" 후까지로 본다. 그러나 케투빔에 있는 문서들 중에 어떤 것들은 상당히 오래된 것인데, 말하자면 욥기나 다윗의 시편이나, 솔로몬의 글 등이다. 그러므로 케투빔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후대의 것임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더구나 요세푸스는 이미 제 5장에서 본 바와 같이 A.D. 1세기에 다니엘서가 구약성경의 두 번째 부분에 있는 선지서에 포함되었음을 언급하였다. 맛소라학파들이 이것을 새롭게 편집한 이유는 그들이 볼 때 다니엘은 선지자로 임명되거나 기름부음을 받은 적이 없다는데 근거하였다
  시락의 아들 예수가 다른 모든 선지자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해도 다니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한 바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B.C.170). 그러나 에스라와 같이 다른 중요한 저자들에 대해서도 언급되지 않았음을 이미 말한 바 있다. 또한 비평가들은 시락의 아들에 따르면 요셉과 같은 사람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경력은 요셉의 구체적인 특징들이 다니엘에게는 전혀 없다. "요셉과 같이 태어나서 그의 형제들의 통치자가 되고 그 백성들이 거처가 되며 그의 뼈가 주께 귀한 것으로 여겨진 사람이었다."
  다니엘서에 있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부정확성들은 그 저자가 묘사하고 있는 사건들보다 훨씬 이후에 살았음을 전해준다고 알려져 왔다. 예를 들면, 다니엘 1:1에서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 제 3년에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것으로 진술되어 있는데 반하여 예레미야 46:2은 느부갓네살의 원년이 여호야김 4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갈대아의 정복자가 유다를 침노한 그해, 그의 아버지가 죽음으로 인해 왕이 되었으므로 다니엘과 예레미야 사이에는 1년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그렇지
                                             
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연대를 계산할 때 등극하기 전 해의 첫 달부터 왕의 통치연대를 잡는다. , B.C.605년은 B.C.608년에 등극한 여호야김의 제 4년째이다. 그렇지만 바벨론 사람들은 첫 통치연대를 다음에 오는 새해로부터 시작한다. , 니산월 1일부터 시작한다(히브리 종교력에 따르면 첫 달임). 그러므로 605년은 갈대아 환산법에 따르면 여호야김 3년의 해이다
  비평가들은 다니엘서에서 지혜로운 사람 혹은 점치는 사람의 한 계층이 갈대아인으로(Kasdim) 언급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의 동족을 자칭하는 이 인종학적 용어가 훨씬 후대로 내려오기까지는 점쟁이 계층을 시사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느부갓네살 당시에는 그것이 단지 인종학적인 암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 다니엘서의 저자는 신 바벨론 제국이 완전히 몰락하여 거의 잊혀진 기록이 되었을 만큼 훨씬 후대에 썼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론은 본문의 자료에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이 작품이 저자가 명백하게 카시딤을 느부갓네살의 종족을 자칭하는 인종적인 용어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다니엘 5:30에서 벨사살은 갈대아인의 왕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가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이론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실을 바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우리는 카시덤에 대한 이중의 용법을 다른 곳에서 찾아와야겠다. 헤도로투스는 갈대아인에 대해서 언급할 때 그들이 수도를 장악하자마자 정치적으로 볼 때 바벨론의 중요한 직책들을 신속하게 다 잡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갈대아인"은 벨 마르둑의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일찍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윌슨은 악카드어의 카스두(Kasdu), 혹은 칼두(Kaldu)가 수메르의 칭호인 갈두에서 나온 것으로서 점술사가 예언하는 천문적인 도판을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음을 제시했다. 윌슨은 갈두를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바벨론의 사마쉬 슈뮤컨(Shamash Shumukin)의 제 14년에 쓰여진 토판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많은 수메르의 칭호들이 갈이란 요소와 연결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다니엘서의 후대설에 대한 문학적, 언어학적 논증

  다니엘서의 아람어 부분에 있는 외래어들, 다니엘의 아람어 부분에 있는 수많은 오래어들은 6세기에 쓰여진 것보다 훨씬 후대에 쓰여졌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게 되었다. 바사 계통의 언어가 15개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그것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바사 문서에서도 실제적으로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것들이 다니엘서 안에 있으므로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을 다루는 그런 장들 역시 갈대아 시대에 작성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 되었다. 이 주장이 자유로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모르나 보수주의 학자들은 다니엘서가 최종적인 형태에 있어서 바사가 바벨론을 다스리기까지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니엘서 자체가 다니엘이 수 년 동안 바사의 통치 밑에서 일을 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바사의 용어를 쓰지 않을 특별한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 또한 그가 사용하는 바사의 용어들은 대부분 정치와 행정에 관한 것으로서 그것들은 B.C.530년에 바벨론에서 아람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다니엘서 3장에는 최소한 3개의 헬라어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다니엘서가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근동 아시아가 정복당한 후에 쓰여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들을 한다. 이 세 단어는(3:5) 헬라어,        ,           ,          등 이 세 단어들은 플라톤 시대까지(B.C.370) 악기의 뜻으로는 현존하는 헬라어 어떤 작품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을 통해 이 단어 자체가 헬라에서 사용된 것을 B.C. 4세기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체는 지금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중요한 헬라의 문학작품들은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으므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헬라어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니엘서의 아람어 초기설에 대한 증거들, 다니엘서에 아람어가 오래된 것임을 증거해 주는 괄목할 만한 특징은 수동태가 나타날 때 안에 있는 모음이 가끔 변화시키는 것이다. , 수동태를 나타낼 때 가장 표준된 방법(접두어 hit- 혹은 'et-) 대신에 성경의 아람어는 호팔(hophal) 형식을 취하고 있다(예를 들자면, ne at 에서 나온 hon at, seliq 에서 나온 h bad, 'alal 에서 나온 'abad hu'al 등이다). 호팔(사역형 수동태)형식을 이렇게 사용한 예가 사해 사본에서 발견된 아람어 문서 가운데서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들 중 어떤 것들(예를 들자면, 창세기 아포크리폰<Apocryphone)과 같은 마카비 전쟁보다 1세기 이후 것일 수가 없다). 어떤 형태들은 다니엘서를 쓴 히브리 유대의 서기관들도 그와 같은 형태를 사용하지 않고 'et- 타입의 수동태를 사용할 뿐이다. 만약 히브리어가 수동태에 있어서 안에 있는 모음을 만드는 제기가 되었다고 하면 그것이 탈굼에 있어서도 나타났어야만 될 것이다

  성경의 아람어가 엘리핀타인의 파피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다니엘서 제 2장에서 7장 부분을 3세기 이전의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로울리까지도 성경의 아람어가 엘리판타인과 팔미레네 비문에 있는 아람어 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결정적인 결론에 대해 수락하고 있다. 사샤우(Sachau)는 엘리판타인 파피리 언어가 본질적인 특성에 있어서 성경 아람어와 동일하다고 진술했다

  이미 우리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다니엘서의 히브리어에는 바사의 정부 용어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바사가 다스리던 때에 쓰여졌음을 시사한다. 헬라어의 영향이라고 할 만한 언어는 전혀 흔적도 없다. 에클레지어스티커스(B.C.200-1800의 것으로 추정됨)의 히브리어 본문을 살펴볼 때, 만약 다니엘서가 그 당시에 쓰여진 것이라고 비평학자들과 함께 생각한다고 하면 다니엘서의 히브리어와 유사한 것을 많이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에클레지어스티커스는 지혜문학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니엘서의 뒷 부분에 있는 내용과 그 문체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클레지어스티커스는 랍비 문학의 언어적인 특징을 지닌 것으로서 다니엘서와 보다 후대의 현상을 나타낸다

  쿰란의 자료들을 살펴볼 때 히브리어로 쓰여진 작품들 가운데서(제자 규범,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의 전쟁, 감사 시들) 그 어느 것도 다니엘서에 있는 히브리어와 같은 특징을 제시해 주는 것은 없다. 또한 아람어로 쓰여진 창세기 아포크리폰과 다니엘의 아람어 부분 사이에서도 어떤 유사점을 찾을 수 없다. 창세기 아포크리폰 B.C.1세기 것으로서 최소한 읽을 수 있는 다섯 개의 아람어 칼럼을 보여준다. 만약 다니엘서가 마카비 시대에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거의 동시대에 쓰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아포크리폰은 다니엘서 2-7장에 있는 아람어 부분과 비교해 볼 때 문법과 어휘에 있어서 수많은 유사점들을 마땅히 제시해 주어야 한다. 더구나 아비가드(N. Avigad)와 야딘(Y. Yadin)은 그것이 B.C.3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포크리폰의 언어가 일반적으로 궁중 아람어도 아니고 특히 성경 아람어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다니엘서에는 동방 방언의 특징이 있는 반면 아포크리폰은 서방의 특징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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