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해석학 및 개론 - 중 -

작성자염찬호|작성시간19.12.12|조회수266 목록 댓글 0

15  창 세 기()

 

 

 이 장에서는 만물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창세기 안에서 특별히 문제시 되는 구절들을 집중적으로 토의하는데 목적을 둔다

 

        1. 아담의 역사성과 타락  

 

  우리가 아담과 이브(에덴동산에 있는 뱀)에 대한 기사를 문자 그대로 역사로 다룰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히 신화나 우화로 여긴다. 가상적인 이야기로서 인간의 도덕적인 타락을 드러내고자 기록된 것으로 그들을 본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역사적, 과학적, 혹은 철학적 기초 위에서 절정적이고 명백한 반박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이것에 대한 비판들은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논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로마서 5장의 권위를 결국은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들어오고 그 한사람으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 온 인류가 한 아버지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생각지 않고는 로마서 5장이 허구가 된다. 여기에서 아담은 그리스도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그리스도가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하면, 아담 역시 그러해야 한다. 또한 바울은 창세기 2장의 기사와 창세기 3장에 있는 유혹과 시험의 사건을 문자적인 역사로 여긴다. 디모데전서 2:13-14에서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않고 여자가 꾀임을 받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하였다. 또 한 가지 가능한 것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참된 기사가 구전에 의해서 모세 시대까지 전수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영감된 그 기록이 문자적인 아담과 이브에 대해서 말해 주며 그 기사가 신화적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알란 리차드슨과 같은 현대 저자들은 창세기 1-11장에 있는 설화 자료들을 신약성경의 비유에 비교하였다. 예수님의 비유는 특징적인 서론을 가진다. "하나님의 왕국은 이와 같다."항상 거기에는 듣는사람에게 설명되어야 하는 교리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이 있었으며, 그 가르침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 에화를 쓰곤 하였다그러나 창세기 1-11장에 있는 설화와 족보는 전혀 이같은 구조를 지니지 않았다. 그 어느 곳에서도 세상과 인류의 시작을 어떤 유사한 것과 같다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비유는 그 자체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항상 어떤 다른 것으로부터 유추를 가지고 나온다. ,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왕국과 같다"든지 "'우주적 홍수는 우주적 홍수와 같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비유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으므로 리차드슨의 해석은 지지될 수가 없다.

 

          2. 노아의 방주와 홍수     

 

  창세기 6-8장에 있는 "대홍수"에 관해서 벨하우젠은 벨하우젠은 그럴듯한 근거하에 이것을 JP로 나누었다는 것을 이미 지적 했다. 세계적인 대변혁이 있었다는 증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홍수가 세계적 성격을 지녔다. 레오나드 울리가 우르에서 발견한 두터운 홍수 퇴적층은 B.C. 4000년대(B.C. 3800)로 추정되었으나 그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홍수 퇴적층은 스테폴 랭돈이 키쉬(Kish)에 발견한 거수 하나밖에 없다또다른 키쉬, 슈류팍, 우르, 라기쉬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은 고고학적인 유적과 퇴적층의 흐름에 따라 판단할 때 1000년 후에 범람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 같다아직까지 위에서 언급한대로 B.C. 380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퇴적층을 발견한바가 없으나 키쉬에서는 B.C. 2800년대의 지층까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죠지 라이트(George F. Wright)는 그 당시 인류가 유프라데스 지역에 제한되어 있었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전멸했기 때문에 홍수는 유프라데스 유역에만 제한되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비추었다. 또한 그는 애굽과 팔레스타인, 시실리, 프랑스, 영국의 지질학적인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창세기 6:17에는 이렇게 해석되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죽으리라" 지리학적인 모든 영역들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또 창세기 7:9에는 "천하에 있는 모든 높은 산"(ASV)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찌 중동지역에만 해당되겠느냐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난 세기의 프란츠 델리취(Franz Delitzsch)나 금세기의 루폴드(H.C. Leupold)와 같은 신중한 주석가들은 창세기 7장을 단순히 한 지역에 국한된 홍수로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Ramm)의 요약에 따르면, 우주적인 홍수를 반박하는 엄청난 과학적 문제들이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 상봉을 덮으려면 현재 지구상에 있는 물의 8배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많았던 물이 없어지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이는 그것이 빠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물이 어떻게 없어졌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는 그 많은 물들이 대기 속으로 증발했다거나 땅의 지하로 빠져나갔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모든 식물들이 1년간을 소금물 속에 침수되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 있을 가능성은 아주 적다. 바닷물과 빗물이 아주 희석하므로 물론 염두가 낮아졌겠지만 치사량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모든 바다의 생물들도 거의 멸망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오베르류에서는 원추형의 화산암 흔적과 재를 발견하였는데, 그것들은 홍수보다도 수 천 년 이전의 사건이었는 데도 홍수에 의해서 씻겨 졌거나 어떤 영향을 받은 증거도 없다
  아마 의 문제점들은 특별하신 하나님의 창조적 및 재창조적 사역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 문제는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있음직 하지 않다. 의 난제는 별 어려움이 안된다. 화산 폭발이 노아 홍수 이전에 있었다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정된 연대는 그 이전일 수가 없다. 혹은 화산암과 재가 물에 의해서 쉽게 처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홍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주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지구의 양쪽 반구(hemispheres)에 있는 여러 흩어진 장소에서 땅이 깊이 금이 간 것을 찾아낸 것이다. 예를 들면, 레윙클(A.M. Rehwinkel)은 그의 책 홍수에서 이 거대한 지구에 금이 간 자리들 가운데 어떤 곳은 상당히 높은 곳이고, 어떤 곳은 그 깊이가 140-300피트 정도나 되는 곳인데 여기에서 아주 이질적인 포유류 동물들을 찾았다고 한다. 완전히 뼈를 가진 동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 동물들은 이 구덩이에 산채로 죽었던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뼈들에게서 풍화작용의 현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들이 방해석(方解石)에 의해서 굳어졌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물 밑에 간직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어떤 학자들은 홍수로 말미암아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온 인류가 멸망했는지에 대해서 문제를 야기시켰다.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함, , 야벳의 후손들을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종족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동물 군들을 살펴볼 때,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이미 오래 전에 분리되었음을 시사해 줌으로 그곳의 사람과 동물들을 방주에 있었던 사람과 동물들과 일치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이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노아의 가족들은 오직 거룩한 땅, 즉 근동, 중동 및 지중해 연안에 있는 사람들의 조상이라고 한다. 이 제언은 성경의 증거를 비추어 볼 때, 3가지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로, 홍수 기사에 시사된 바와 같이 전 인류를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충돌이 된다. 창세기 6:7을 보면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또한 17절에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여기에서 히브리어 'ere  를 지구라기 보다는 땅으로 번역한다 해도 전 인류를 멸하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둘째로, 창세기 기사에서는 홍수를 보내는 그 이유가 인류의 죄악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준다. 창세기 6: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11절은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며(히브리어, wattishsh   t 패괴), 강포(  m s 상처를 입히는 폭행)가 땅에 충만한지라." 오스트렐리아와 극동 아시아의 조상들이 중동에 있는 사람들 보다 도덕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홍수 심판에서 면해준 것 같지는 않다. 성경은 모든 인류가 정죄 아래 있다고 명백히 선언한다(, 3:19,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신약 복음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팔레스타인에 가까운 나라들과 먼 나라들을 구분하여 어느 쪽이 더 높은 도덕성을 지녔다고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다.    
  셋째로, 우리는 전 인류가 홍수 때에 전적으로 모두 다 멸망하였다는 신약성경의 명백한 확증을 가지고 있다. 베드로후서 3:6, "그때 있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고 한다. 베드로후서 2:5과 비교하라. "엣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 마태복음 24:38-39에 보면, 그리스도 자신도 노아의 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또 하나의 대단히 중요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지구에 있는 여러 민족들 사이에 퍼져 있는 홍수에 대한 구전과 기록된 전통이다.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수메르인, 바벨론인, 앗수르인들은 히브리인들과 유사한 전통을 즐겼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홍수 이전의 문화가 꽃피었던 곳에 가까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팀베우스에 기록된 바, 애굽의 전설이나 마네로의 역본은 그 지형적인 설명이 비옥한 삼각주에 아주 유사하다. 류칼리온과 피라의 헬라 전통은 근동 아시아에서 빌려온 것 같다. 아파미아에 있는 노아의 전통 역시 그들의 주화에 방주를 새긴 것을 볼 때 이 대홍수 사건을 반영해 준다
  비평가들은 방주가 모든 동물들을 싫기에는 너무 작았다는 것 때문에 이 기사가 신방성이 없다고 한다. 한 규빗이 24인치라고 할 때 방주는 길이 600피트, 넓이 100피트, 높이 60피트의 규격이다. 그것이 상자모양으로 만들어 졌다고 할 때 그 용량은 3,600,000 피트 자승이 되며, 혹은 2,000마리의 차에 해당된다. 현재로서는 양보다 더 큰 육축으로서는 290종이 있다. 양보다 작고 토끼정도의 크기의 육축은 757, 토끼보다 더 작은 것은 1,358종이 된다. 이 종둘이 한 쌍씩 이 방주 안에 편안히 들어가고도 사료를 위한 충분한 공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 많은 수의 동물을 수 개월 동안이나 먹인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약 홍수가 오직 메소포다미아와 아랄카스피안(Aral-Caspian) 저지에만 국한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 모든 종류의 동물 중 그 대표들을 보존하라는 명령과 상충되게 된다. 홍수가 세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간 것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된다.

 

         3. 창세기 10장에 있는 열국들

 

  언어학적인 관계를 살펴볼 때, 창세기 10장에 나타나 있는 여러 열국들의 족보와 고대 근동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는 괄목할 만한 불일치가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가나안이 함의 후손으로 6절에 소개되었으나 B.C. 2천년대의 가나안 인들은 서부 셈계 방언을 말했다고 한다(히브리어는 이것의 한 지류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인종관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독일계의 비시고트(Visigod)인은 스페인 어를 쓰게 되었고, 오스트로고트는 이탈리어를 쓰고, 독일계 프랑코족은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프랑스어를 로르만인들은 영국에서 영어를 쓰게 되었다이와 같이 B.C. 2천년 대에(3000-2001)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함족들이 그들의 언어가 무엇이든 지간에 셈어를 쓰는 이웃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또한 가나인 들을 함의 후손으로 소개한 것은 모세 시대의 히브리인들에게 보존되었던 정확한 역사적 전통에 근거한 것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가나안 인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시대로부터 셈어를 썼기 때문에(참고, 31:47) 가나안 인을 셈족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또다른 하나의 문제점은 스바(Sheba)(7) 함과 셈(28)의 후손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마 틀림없이 스바인들은 원래 함의 후손이었으나 점진적으로 남부 아라비아에 있는 셈족 이웃들과 혈연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주로 셰계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7절과 28절은 둘다 옳다.      
  8절과 10절에서 구스는 바벨론의 니므롯의 아버지로 소개되었으나 그의 이름은 에디오피아와 연관되어 있다(참고, 11:11, 30:4, ASV 난외주). 이 나라는 애굽인들에게 K; 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아마 퀴쉬(K sh)로 불리었을 것이다. 6절에서는 그를 함의 아들로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아프리카 지역임을 말해 준다. 이와 반면에, 아라바아의 알 암란(Al Amran) 부족은 에덴에 있는 제비드(Zebid) 지역을 퀴시(K sh)로 부른다. 또한 바벨론 근처에는 키쉬(Kish)로 불려지는 중요한 도시가 있는데 여기서 니므롯(Nimrod)이 나왔을 것이다. 이 모든 증거들을 종합하여 엉거(Unger), 힘계() 구스인은 원래 남부 메소포다미아에 살았는데 여기에서 니므롯은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거기에서 구스인들은 아라비아에 있는 예멘 지역까지 뻗치게 되고, 그 후 홍해를 건너 에디오피아(현대의 수단)를 침입하여 그들의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바사인들이 카르다고를 점령하여 속국으로 만든 것이라든가, 노르웨이 출신의 노르만 인들이 프랑스의 노르만디, 영국의 색슨, 시실리의 무슬림을 정복한 것보다는 더욱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B.C. 7-6세기에는 헬라인들이 시실리와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거주하였다. 어떤 권위 있는 학자들은 창세기 10장에 있는 구스가 애굽의 중간 왕국 때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의 경계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별로 알려지지 않은 큐수(Kushu)족이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조그만 부족이 창세기 10:7에 언급된 모든 나라들(대부분은 아라비아 반도에 거주함)을 위협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원래 바벨론 저지에 살고 있었던 구스인들이 아니었다고 하면 어떻게 니므롯의 배경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이 장에 있는 이름들과 악카드 비문에 나타난 것과의 사이에 아주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다. 야벳의 후손으로서 고멜은 기미리아(Gimirriya), 혹은 기미라이(Gimirrai)로 동일시되었고, 그들은 코카서스 주변에서 내려와 소아시아를 정복하고 갑바도기니아에 거주하였다. 마다이(Madai)는 메대의 조상이었고 헬라의 야반(Javan)이었다. 두발(Tubal)의 후손은 타비리(Tabari)였는데 그는 약 B.C. 1100년에 디글랏 빌레셀 세와 싸웠고 메섹의 후예는 무슈키(Mushke)로서 9세기에 살멘에셀 3세와 전쟁을 하였다. 그들은 다 동부 소아시아에 살고 있었다. 마곡의 후손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었는지 현존하는 기록은 없다. 더라스(Tiras)에 관한 한 그는 투트세노이(Tursenoi), 티레니아(Tyhrrenis)인의 조상으로 알려진 것 같다. 그는 에게 지역에 처음으로 거주하게 된 펠라스기아(Pelasgia)인 이었다. 고멜계통의 아스그나스(Ashkenaz)는 아스쿠스(Ashkaz), 혹은 스키디안(Scythin)으로 확인되었는데, 그는 북쪽으로부터 코카서스를 거쳐 근동 아시아에 침략했고 앗수르인과 바사인과 헬라인들에게 무서운 숙적이었다. 리밧(Riphath)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고, 도갈마(Togarmah)는 잠정적으로 남서부알메니아에 있는 테가람마(Tegarama)로 확인되었다. 야반 계통의 엘리사(Elishah)는 알라샤(Alashia)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일반적으로 구브로와 동일시된다. 그것은 또한 깃담으로 알려졌다. 달쉬스는 사르디나에 있는 지명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고 또한 스페인하고도 연결된다. 로다님은 아마 소아시아 북쪽에 있는 트로이 근처 지역인 다르나니와 연결되는 것 같다. 다르나나는 다르나니아 인들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역대상 1:7에 있는 평행 3절에 나타나는 바 로다님으로 쓰기를 좋아한다. 이들은 분명히 로데 셈에 있는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4. 아브라함과 창세기 14
 
  아브람(Abram) 이란 이름은 B.C. 2000년대 초기의 쐐기문자 기록에 나타난다.
  우르와 하란은 B.C. 21세기에 아주 번창한 도시였다
  세겜과 벧엘은 그 당시에 사람이 살고 있었고 그와 같이 요단 계곡에도 많은 사람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었다
  창세기 14장에 기록된 침입 국의 왕 이름들이 그 당시 인물과 일치하며,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레스타인까지의 원정은 방대한 것이었으며, 그 당시 엘람의 힘이 국제 세계에 드러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려고 하던 방법은 2000년대의 헷족속의 법과 일치한다. 엉거와 페인은 아브라함이 22세기에 태어나고 팔레스타인에 이민 온 것은 21세기 였으며 그 당시는 우르의 제 3왕조 때였다(B.C. 2070-1960)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함무라비가 시날 왕, 아므라벨 왕(14:1)과 동일한 인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가 아브라함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최근에 B.C. 1700년을 함무라비 통치의 중간시기를 잡는 학설이 나왔다.

 

          5. 요셉과 힉소스      

 

  요세프스(A.D. 90)로부터 힉소스 왕조가 애굽을 다스리고 있을 때 요셉이 바로의 궁전에서 일했다고 전해진다. 힉소스는 주로 셈족의 배경을 가진 자로서 아시아의 침입자들이었다. 그들은 유목민 집단으로서 처음에는 북부 애굽에서 살기 시작하여 점점 무서운 힘으로써 남부 애굽까지 지배권을 뻗쳐가게 되었다. 멤피스를 정복한 후 수도로 정하였고, 15왕조와 제 16왕조를 세웠다. 마네토(B.C. 250)는 그들이 약 500년을 지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들이 150년 이상을 다스리지 않았을 거라는 증거들을 찾아내었다. 그들은 아마 B.C. 1900년 경에 애굽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B.C. 1730년 경에 애굽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성경의 연대기에 따르면(출애굽 연대를 B.C. 1445년으로 잡고 애굽에 거주한 것을 430년이라고 할 때) 요셉이 총리대신으로 일하고 있을 때 야곱이 애굽으로 들어간 연대를 약 B.C. 1870년 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힉소스 왕조가 일어나기 전 94140년 사이로 잡을 수 있고, 요셉은 제12왕조 시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와 같은 요소들은 요세프스의 전통이 신빙성이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한다. 힉소스인과 히브리인들은 둘다 가나안어를 쓰고 아시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상호간의 깊은 연대 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마네토 기록에 따르면 가장 초기의 통치가 중한 사람의 이름은 살리티스(Salitis)인데 그 이름은 셈어로 샬리트(shallit, 통치자)와 너무나 큰 유사성을 가진다. 셈계의 이름이 북부 애굽에 있는 몇몇 도시 이름에 나타난다. 예를 들면 숫곳(12:37), 바알스본(14:2), 믹돌(14:2) 등이다. 따라서 바알스본이란 이름은 북쪽의 주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창세기와 출애굽기 1장의 본문은 요셉을 환영한 바로가 셈계통의 사람이 아니라 본토 출신의 애굽인이라고 명백히 사사한다
  첫째로, 애굽을 다스리던 왕조는 아시아 출신의 그 외국인들을 멸시하였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을 잔치석상에서 영접할 때 그는 그의 식탁의 손님으로 초대하기보다 그들끼리 않도록 하였다. 창세기 43:32에 따르면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힉소스의 통치자들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그들은 이미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을 다스리고 있었고 또 그쪽 출신이었으며 애굽을 다스릴 때로부터 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굽에 이민을 온다든가 방문한 다른 셈계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이 구절에 제시한 바 같이 인종적인 편견을 가졌다기 보다 뜨거운 환영의 자세였을 것이다
  둘째로, 요셉 시대에 애굽을 다스리던 사람들은 목축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창세기 46:34은 이렇게 말한다.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이다." 
                                             
이 와 같은 사실은 애굽의 여러 문서들을 통해 충분히 확증되었다(그들은 그들의 항아리에 소는 그리지만 양은 결코 그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힉소스 출신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힉소스는 후대의 애굽인들에 의해 "목축하는 왕들"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 당시 보좌에 앉은 자는 본토 출신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들이 바로 앞에서 호감을 살려고 그들이 양치는 자들이란 것을 빼고 소를 소유했다고 강조했다(46:31-34).
  셋째로, 죤 리(John Rea)가 소개한 바 같이 출애굽기 제1장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애굽의 제 18, 혹은 제 19왕조라는 일반작인 가정과 절대로 조화될 수 없는 자료들을 제시한다. 이 증거들을 우리가 고려하기 전에 제 18왕조가 시작될 때 아모스 왕이 모든 힉소스 인들을 애굽에서 쫓아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그들을 팔레스타인에 있는 샤류헨 섬까지 추격하였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이스라엘인들은 힉소스 인들의 친구요, 동맹 자이기 때문에 왜 그들도 쫓겨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어떤 근거 하에서 아모스 하의 민족주의적 애굽인들이 힉소스 인과 히브리인들 사이에 구별을 두었는가? 힉소스가 오랜 동안 다스리던 동안 이스라엘인들은 힉소스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갖고 애굽인들에 대해서는 좋은 태도를 가졌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넷째로, 출애굽기 1:8-10까지 있는 바로의 말은 본토 애굽출신 입에서 나온 말 같지 않다. 만약 이스라엘인이 애굽인 보다 많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힉소스 출신의 무사계급보다 많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왕이 생각한 것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 시기에 정부의 원수와 힘을 합하리라는 것은 이스라엘인이 애굽인 아닌 사람들과 힘을 합할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서 어렵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센 땅이라는 격리된 곳에서 애굽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여기에서 말한 자가 힉소스인이었다면 그 왕이 의미했던 바가 우리에게 이해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 때문에 애굽 사람들과 너무나 친하게 되었기 때문에 연합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은 힉소스 왕조였을 가능성이 짙다. 그리고 그가 히브인들로 하여금 그의 건축작업을 위하여 노예로 삼고 일을 시켰을 것이다
  다섯째로, 이 마지막 대목에 관련된 것으로서 우리는 출애굽기가 1:11에 언급된 라암세스의 도시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본문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와 같이 라암세스에서의 강제 복역은 모세 출생 이전에 있었다. 이것은 다음 장까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출애굽이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가정하는 바와 같이 B.C. 1290년에 일어났으며 모세가 그 당시 80세였다고 하면, 그는 1370년에 탄생한 것이 되거나 혹은 제19왕조의 라암세스가 애굽의 보좌에 앉기 전 약 60년 정도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일한 성 가운데는 라암세스 2세의 이름을 따라 세워진 도시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타니스 도시가 제18왕조 사이에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로운 점이 있다. 따라서 히브리어 기록의 정확성을 가정하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비둠과 라엠세스를 건축하게 한 것은 애굽의 제18왕조 초기가 아닌 힉소스 왕조였다는 것이다.   
  
                                            
          

16 출 애 굽 기

 

 

명칭 : 히브리어 웨엘레 쉐모트(         , We lleh shem t) 그 뜻은 "그리고 이것들은의 이름들이다"라는 의미이다. 이 명칭은 출애굽기 1;1의 첫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출애굽기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번식케 하셔서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속박의 땅에서 구속하시며, 한 국가의 단위로 그들과 은혜언약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그가 아브라함과 맺으신 옛 언약을 어떻게 성취시키겠는가를 연관시켜 설명한다

 

          1. 출애굽기 개관
  . 하나님의 일을 위한 하나님의 사람의 훈련(1:1-4:31).
    A. 모세의 배경 : 잔혹의 박해(1:1-22)
    B. 왕자 됨과 초기 교육, 처음 40(2:1-14) 
    C. 연단과 두 번째 40(2:15-25)
    D. 호렙 산의 소명(3:1-4:31)   
  . 승리의 은혜 : 속박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백성(5:1-18:27)
    A. 열 가지 재앙(5:1-11:10) 
    B. 구원의 여섯 가지 유형(12:1-13:22)
      유월절 : 갈보리의 상징(12:1-13:22)
      홍해를 건넘 : 신앙에의 돌입(세례, 14:1-15:27)
      하늘에서 내린 만나 : 생명의 떡(성찬, 16:1-36)
      갈라진 반석 : 생명의 물(17:1-7)
      르비딤 : 세상에 대한 승리를 맛봄(17:8-16)
      장로들을 세움 : 신앙의 교제를 위한 조직(18:1-27)
  . 성결의 보증(19:1-31:18)  
    A. 언약의 약속 :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 순종, "거룩한 나라, 특별한 백성"(19:1-25)    
    B. 언약에 합당한 거룩한 삶의 기본 원리들 : 십계명(20:1-26)
    C. 타인에 대한 행위에서의 거룩한 삶(언약의 책) : 3대 절기(21:1-23:33)
    D.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제하는 가운데서 거룩한 삶(성직과 제사의 형태 및 성막의 구조,            24:1-31:18)
  . 인간의 실패와 죄에 대한 회개(32:1-33:23)
    A. 반역, 배교, 우상 숭배 :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짐(32:1-35) 
    B. 회개, 징벌 및 모세의 중보기도(33:1-23)
  . 죄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 제자를 통하여 계속되는 용서(34:1-40:38)
    A. 은혜 언약에 재확인과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34:1-40:38)
    B.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은혜의 방편들 : 안식일과 성막(35:1-19)
    C.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려는 회중의 서약(35:20-39:43)
    D. 주께서 받으시는 예배의 형태(40:1-38)

 

                                              
            2. 모세의 어린 시절
   
  투트모스(Thutmose, B.C. 1539-1514) 세의 통치기간에 태어난 모세는 그의 부모가 3달을 숨겨 키우다가 애굽의 학정에 못 이겨 아기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변에 버리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바로의 딸이 발견하게 섭리하신다. 바로의 딸 핫셉슈트(Hatshepsut)는 모세를 물에서 건졌다하여 이름을 "모세"라하고 그를 양자로 삼아 왕자로 키우게 된다. 모세는 40년 동안을 애굽의 궁정에서 모든 학술(기하학, 천문학, 철자법, 문법, 역사, 의학 등) 을 배우게 된다.

 

            3. 애굽의 체류한 기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체류한 기간은 430년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가나안과 애굽에 거주한 기간을 포함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출애굽의 가간이 215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며 그러므로 요셉의 일생을 힉소스 시대로 만들게 된다. 그러나 215년 이론이 신빙성이 없음을 다음 몇 가지로 예를 든다
  첫째, 창세기 15:16에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의 예언이 있는데, 그의 후손이 외국에서 압제를 당한 후에 "4대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절은 이방의 압제자들이 4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고 하신 13절 바로 뒤에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에 100세에 낳았기 때문에 100세를 1대로 하여 4대가 된다
  둘째, 출애굽 세대에 있어서 눈에 띠는 여러 가계(家系)의 형태가 단지 3-4대만 연결되어 나타나지만(예를 들면, 6:16-20에 의하면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 10대 이상을 이루는 가계도 있다. 대상 7:25에는 요셉과 여호수아 사이에 9-10대 이상의 세대가 나타난다(에브라임레바레셉델라다한라단암미훗엘리사마여호수아). 열 세대가 단지 215년과 일치될 수는 없으며(특히 출애굽 이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긴 수명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그것은 430년의 기간과 아주 잘 맞는다
  셋째,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 가족 70-75명이 200만 이상의(2:32에서 군대의 603,550명이라는 점을 판단해 볼 때) 나라로 증가했다는 사실이 215년 거주설에는 불합리하다.       
  
          4. 출애굽의 연대

 

  열왕기상 6:1에 솔로몬 성전은 그의 재위 제4, 즉 출애굽 480년 후에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아멘호텝 2(Amenhotep , 1447-1421)의 재위 제3년인 1445년으로서 출애굽의 정확한 연대가 될 것이다. 또한 사사기 11:26에 기록된 입다(Jephthah)의 기록에서 발견되는데, 거기서 그는 길르앗 땅에 대한 자기들의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암몬 족속들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그 땅을 오랜 동안 소유해 왔었다는 사실을 그 족속의 침입자들에게 일깨운다.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지 삼백 년이어 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입다의 시대는 분명히 사울 왕의 시대보다 더 앞선 때였으므로 이것은 확실히 이스라엘 정복의 연대를 B.C. 14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이 연대에 대해서 더 분명한 확증은 사도행전 13:19-20에 나오는 바울의 설명에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멸하실 때에 그들의 땅을 450년 동안 기업으로 주시고, 이 일 후에 선지자 사무엘의 때까지 사사를 주셨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그 기간은 출애굽 그 자체(히브리인들이 출애굽할 당시)와 여호수아 영도 하의 정복과 사무엘의 생애 및 995년 경 다윗의 예류살렘 성 정복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 13장의 450년이 B.C. 1445년으로부터 995년까지를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애굽 연대를 현저히 후기로 잡는 것은 사도행전 13:19과 크게 모순된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5. 계약과 십계명

 

   십계명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그 계명의 규약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속행위로 설명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불순종에 대한 가장 엄중한 경고는 가장 풍성한 은혜의 약속과 결부되어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사랑의 뚜렷한 요소가 5경의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도 신명기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그러나 그것은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대한 신자의 사랑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참되고 생명력 있는 신앙의 필수적이고도 불가피한 행위로서 거룩한 삶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런데 그 거룩한 삶 그 자체로써는 구원을 줄 수 있는 공로가 되지 못한다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오는 십계명의 형식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 신명기 5:15에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주어진 부가적 동기부여이며, 10계명에서는 집보다는 아내가 먼저 언급된다. 신명기 5장은 모세가 백성들에게 향한 훈계적인 강론 가운데서 나타나며, 반면에 출애굽기 20장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다. 그러므로 후자가 정확하며 또한 본래적인 말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하다

 

        6. 성막의 영적 의미 
 
  출애굽기의 상당 부분이 성막에 대한 설계와 그 구조에 대한 여러 가지 조항을 기록하고 있다(25-28, 30, 35-40). 이러한 조항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관계가 있는 모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성소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의미 깊은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다
  (h   r, 하세르)의 바깥 벽은 폭 100규빗인데, 길이 50규빗으로 주변을 둘러싼다. 이 뜰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로 구별하며 또한 이방인들로부터 그들을 구분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동일한 원리가 나중에 솔로몬과 헤롯 성전에서 엄격하게 준수된다. 그 벽을 넘어 안뜰로 들어가는 모험을 시도한 어떤 이방인에게 죽음의 벌로 위협하는 헬라 비문이 발견되었다.
  성막 자체는 가로, 세로가 10규빗(1규빗은 45.5cm) 되는 큰 천막(' hel, 오헬)이었으며, 그것은 성소와 지성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졌다
  장막 바깥뜰과 휘장문(m s k, 마삭) 혹은 "바깥 휘장" 앞에는 큰 제단 혹은 놋으로 입힌 번제단이 있으며, 여기서 모든 제물, 즉 번제(zeb   m, 즈바힘)와 소제(min ah, 민하)가 바쳐지는데, KJV에서는 "소제"를 고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놋제단과 입구 휘장 중간에는 놋으로 만든 큰 세수대야인 물두멍(kiiyy r, 키요르)이 있는데, 여기서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손을 씻어야만 했다. 이것은 아마도 세례로서 신자들에게 설명되고 보증이 된 그리스도의 보혈의 정결케하는 능력을 상징했을 것이다. 성막은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다
  성소(q desh, 코데쉬)는 가로, 세로 각 20규빗, 10규빗인데, 거기에는 세 가지, 거룩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십계명, 만나를 담은 항아리,<16:33>, 아론의 싹난 지팡이<17:10>). 
  북쪽에는 떡상(shul  n wele em p n m, 슐헨 베레헴 파님, 임재의 떡)이 있는 데안식일마다 좋은 밀가루로 만든 새 떡 12개가 놓여졌다. 그것은 분명히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으며, 살아 있는 희생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한다
  남쪽에는 일곱개의 등잔으로 된 등대(men rah, 메노라)가 있었는데,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으며, 그는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환전한 사역을 수행하시며,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세상에 대하여 증거의 빛을 밝히도록 하신다(4).
  서쪽에는 금으로 된 작은 단이 있는데, 향단(mizba  miqt r, 미즈바 미칼)이라 하며, 이 단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 짖는 안 휘장 앞에서 분향하는 데만 사용되었다. 이 금향단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유효적인 기도를 상징했을 것이며, 또한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하기도 했다(8:3).
                                              
  안 휘장(p r ket, 파로케트)은 찢어져야만 했던(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처럼,27:51) 그리스도의 육체의 장막(10:20)을 상징했다.
  지성소(q desh  qod sh m, 코다쉬, 코다쉼)는 가로, 세로 10규빗으로서 그 속에는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다.  
  언약궤(         , 아론 하베리트), 이것은 길이 2.5규빗이며 넓이는 1.5규빗으로서 금으로 그룹 둘을 만들어 날개를 높이 펴서 서로 얼굴을 보게 덮개를 향하게 하였다.    
  속죄소(    , 카포렛) 이것은 속죄한다는 뜻의 kipp rp에서 나온 말이다. 특히 KJV"시은소"라고 번역했다. 대제장은 속죄 일에 여기서 피를 뿌리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앞에서의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했다(9:12). 그러므로 이 궤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으며, 이 궤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는" 하나님의 발판이었다(25:22, 80:1). 이 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16:33, 17:10)가 들어 있었다. 이것들은 나중에  그 속에 넣어진 것이 분명하다(9:4). 그러나 이 궤는 은혜 언약과 율법을 상징하는 십계명의 두 돌비를 담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사무엘 시대(삼상 6:19), 아니면 적어도 솔로몬 시대(왕상 8:9)에 그 궤 안에는 두 돌비만 남게 되었다.      

 

 

 

 17  레위기, 민수기  

 

 

      . 레위기

 

  명칭 : 히브리어 와이크라(Wayyiqr ', 그리고 그가 부르시고)로 책명을 정함. LXX"레위 지파에 관한 일"이란 의미로서 "류이티콘"(         )이라 한다

 

        1. 레위기 개관

 

   . 제사법(1:1-7:38)
      A. 번제(1:1-17)
      B. 소제(2:1-16)
      C. 화목제(3:1-17)
      D. "부지불식간"의 죄에 대한 속죄제(4:1-5:13)
      E. 속건제(5:14-6:7)
      F. 번제 및 제사장의 제사(6:8-23)
      G.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희생의 처리(6:24-7:27)
      H. 요제 및 거제(7:28-38)
   . 제사장의 헌신(8:1-10:20)
      A.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헌신(8:1-36)
      B. 대제사장 아론(9:1-24)
      C. 나답과 아비후의 불순종에 대한 심판(10:1-20)
   . 오염에서의 분리(11:1-15:33)
      A. 깨끗한 음식과 더러운 음식(11:1-47)
      B. 산모의 정결 규례(12:1-3)
      C. 문둥병에 대한 규례(13:1-14:57)
      D. 분비물로부터의 정결(15:1-32)
   . 속죄일(16:1-34)
   . 제사의 장소 및 피의 고결성(17:1-16)
   . 실제적인 거룩 : 부정(不貞), 불결, 우상숭배를 금지한 율법(18:1-20:27)
   . 제사장의 거룩과 제사장의 의무(21:1-22:33)
   . 거룩한 집회들 : 안식일,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23:1-44)
   . 헌신의 상징들과 신성모독에 대한 형벌(24:1-23)
   . 안식년과 희년(25:1-55)
   ?. 순종에 대한 축복과 불순종에 대한 저주(26:1-46)
   ?. 서원과 십일조(27:1-34)

 

        2. 레위 입법에 기본 원리
                                            
  레위기에서는 모세나 아론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38번이나 열거된다. 이 말은 그만치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셨다는 것과, 모든 제사 제도가 히브리인들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레위기 26장에는 이스라엘이 믿음에서 떠나 점차 배교하며,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것과 다시 귀환할 것(32-45)을 암시함으로써 차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고한다. 레위기 전반에는 5가지 기본 원리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구속받은 이스라엘은 거룩을 지켜야 한다. 대속의 속죄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데, 이는 죄인의 멸망해야할 생명을 대신하여 무죄한 생명이 피를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은혜로만 가능하다. 예배의식에 대한 모든 규례나 제사는 인간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거룩한 백성은 영적으로 여호와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결혼의 결속에 대한 모든 위배사항과 모든 성적 음란을 엄격히 금해야 한다. 그들은 더럽고 썩은 것에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부패하지 않거나 속히 부패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을 나타내었을 것이다. 이것은 누룩, , , 돼지고기, 여러 가지 재료로 섞어 짠 천(아마나 양털 등) 등을 제외시켰는데, 이러한 것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혼합시키는 것을 상징했다
  거룩한 해() 거룩한 숫자인 일곱으로 나타냈다. 그래서 일곱째 되는 날은 거룩한 안식일이며, 일곱째 되는 해는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이며, 칠 년이 일곱번 지난 쉰 번째 해는 희년으로 거룩하게 했다. 희년에는 저당된 땅을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했다. 유월절은 아빕 월(Abib)의 두 번째 일곱째 날인 제14일 밤에 지켜졌다. 무교절은 그 다음 칠 일 동안 거행되었다. 오순절은 곡식 단을 흔드는 제사를 지낸 후에 거행되었다(, 50일 째 날). 7월 즉 티시리 월(Tishi)은 세 가지 거룩한 관례로 인하여 특히 신성시되었는데, 그것은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이다. 초막절은 7일 동안 거행되고 마지막 집회를 위하여 제8일을 추가하였다.

 

           3. 히브리력의 세 가지 주요 절기 
   
  A. 유월절(pesa , 페사흐)과 무교절(ma   t, 마쏘트) (4-5)
   1. 유월절 : 아빕월(5) 15일 밤
     목적 :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함.
     의식 : 어린 양을 죽이고, 그 피를 우슬초로 인방에 뿌리며, 그리고 나서 그것을 가족과 함께 구워 먹는다
     모형적 의미 : 그리스도의 십자가(고전 5:7)
   2. 무교절 : 아빕월 제15일부터 22일까지(6)
     목적 : 출애굽의 고난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발효시키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헌신을 상징한다.
     의식 : 둘째 날(, 아빕월 제 16)에 단의 첫 열매를 바치는데, 그 단은 그 해에 추수한 보릿단이다. 또한 이 단과 함께 번제도 드리도록 규정되어 있다. 15일과 22일은 성회로 모이는데, 그것은 안식일이며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다
  B. 오순절 혹은 칠칠절(sheb ' t, 슈브오트) : 시반월(3) 6일 혹은 보릿단 바친 후49일째 날.
   1. 목적 : 추수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기 위함.
   2. 의식 : 성회로 모임. 요제를 드림(누룩을 넣은 밀가루로 만든 떡둘), 번제를 드림(어린양 일곱, 수소 하나, 수양 둘), 집회 시에 번제와 속죄제를 추가함(28:27).
   3. 모형적 의미 : 신약 교회에 성령께서 강림하심(2).
  C. 장막절 혹은 초막절(sukk t, 수코트) : 티시리 월(7) 15일부터 22일까지.
   1. 목적 : 광야를 방황한 것을 기념하며, 모든 추수를 마친 것을 즐거워하기 위해.
                                              
   2. 의식 : 15일과 22일에 성회로 모임, 번제를 드림(매일 수소 7-13마리, 수양 둘, 어린 양 열넷), 속죄제를 드림(수염소 하나), 초막에 거함, 한 손에는 에트로그 혹은 시트론을다른 손에는 룰랍(lulab) 혹은 과일 다발(무화과와 버드나무로 만든)을 들고 찬양함.

 

  

피 제사의 6가지 차이점                                                                                      

                                                                                          
                                                                                          
  . 민수기                                              
                                                                                          
  명칭 : 히브리어 베미드바트(Bemidb r, 광야에서)이며, LXX은 아리쓰모이(Arithmoi)이다.

 

       1. 민수기 개관
  
  . 시내 광야에서 시작되는 여행 준비(1:1-10:10)
    A. 군대의 계수와 행군의 위치 지정(1:1-2:34)
    B. 레위족속의 계수와 임무(3:1-4:49)
    C. 진에서 불결을 몰아냄 : 문둥병 규례, 손해 배상, 피소된 간부에 대한 재판(5;1-31)
    D. 나실인(전 생애를 헌신한 모형), 축도(6:1-27)
    E. 열 두 지파가 성막에 바친 예물들(7:1-89)
    F.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의 위임(8:1-26)
    G. 첫 유월절을 지킴(9:1-14)
    H. 구름 기둥과 나팔신호(9:15-10:10)
  . 시내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10:11-14:45)
    A. 여행의 첫 단계 : 행군이 시작되다(10:11-36)
    B. 다베라와 기브롯 핫다와에서의 불평(메추라기),칠십인 장로의 예언(11:1-35)
    C. 모세를 대적한 아론과 미리아메 대한 심판 : 미리암의 문둥병이 치료 됨(12:1-16) 
    D. 열 명의 장탐꾼의 보고 이후 가데스에서의 큰 반역(13:1-14:45)
  .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광야까지(15:1-21:35) 
    A. 소제와 속죄제의 규례, 신성모독자와 안식일 범한 자에 대한 죽음, 옷에 다는 술(15:1-14)
    B. 고라의 반역과 아론의 제사장 직임의 정당성(16:1-17:13)
    C. 레위족과 제사직무와의 관계, 제물과 가난에서의 그드르이 몫인 십일조(18:1-32)
    D. 부정한 것을 정결케하는 물(19:1-22)
    E. 미리암의 죽음, 반석을 두 번침, 에돔족이 통과를 반대함,아론의 죽음(20:1-29)
    F. 일곱번째 불평과 구리뱀, 모압 도착(21:1-20) 
    G. 첫 정복 : 시혼과 옥의 패배(21:21-35)
  . 모압 족속과 발람의 만남(22:1-25:18)
    A. 발락이 발람을 고용함(22:1-14)
    B. 발람의 세번의 축복과 이스라엘의 승리 예언(23:1-24:25)
    C. 바알브올의 죄(25:1-18)
  .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26:1-36:13)
    A. 정복 계획과 땅의 약속(26:1-27:23)
    B. 제사와 서원에 괸한 율례(28:1-30:16)
    C. 미디안 족속에 대한 복수(31:1-54)
    D. 르우벤, , 므낫세 지파에게 요단 이편의 분할 분배(32:1-42)
    E. 애굽에서 모압까지 여정 요약(33:1-56) 
    F. 가나안 분할 계획(34:1-36:13)

 

         2. 기본적 원리
  가나안을 정복한 젊은 세대는 그들의 부모의 경우보다 수가 더 적었지만 그들의 믿음이 모든 길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과 행군 질서에 복종했기 때문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는 말씀이 실나게 하는 것이다.
                                             
         3. 인구 계산의 신빙성

 

  합리주의자들은 민수기의 통계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라고 항상 반대 해왔으며, 그것을 흔히 제사장학파의 날조라고 취급하였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없는 가설은 그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진정성이 결핍된다민수기 1:46에 나오는 603, 550 이라는 수가 평균 다섯 명을 가진 처음의 603가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3,015명이라는 남자의 인구가 엄청난 숫자로 인하여 애굽 왕이 두려워했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출애굽기 1:9에 바로가 한 말이 나온다.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이 견해의 주장들은 엘렙('elep)"가족복합제"(family complex)"씨족"으로 이해하여 군대에 참전한 숫자를 다섯명이라기 보다는 오십 명까지 높였다. 그러나 이렇게 계산한다고 해도 사람이 거주하는 애굽의 삼각주 중앙에 사는 상당수의 인구에 가까스로 해당되는 30,150명의 전투력이 될 뿐이다. 더욱이 출애굽기 12:37과 같은 J문서의 구절조차 민수기 1:46 (600,000)과 거의 같은 수를 기록하며 또한 JE문서로 알려진 민수기 11:21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확실한 것은 출애굽기 38:25 에 기록된 100달란트 1,775세겔이라는 속전 1인당 반 세겔씩의 총계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민수기에 나오는 엘렙이 문자 그대로 천이 아니라고 주장할 만한 그 어떤 객관적인 본문해석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민수기에 기록된 인구조사가 군대의 수를 60만 보다 적은 수라고 하는 증거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양보하더라도, 그렇게 엄청난 이주민(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약250)이 시내 광야에서 40년간 살아 남을 수 있었으리라고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시내 반도가 현재보다도 덜 메말랐었다고 여긴다 해도(왜냐하면 출 17:8에 나오는 아말렉 족속과 같은 크고 강한 종족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그 엄청난 소떼와 양떼가 경작지가 없는 광야에서 양육된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합리적인 반대 주장에 대해 대답할 때, 이스라엘의 이주에 대한 모든 기사는 자연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물리적인 불가능이었다는 점을 명백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세의 역사를 회고하는 히브리 문학(78:24, 9:20 )에서와 같이그런 큰 무리를 지키심은 하나님의 기적적이며 초자연적인 사역이었음을 강조하게 된다. 만나를 내리시며(16:35),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17:6), 모든 무리에게 공급하기에 넉넉히 내려준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다른 어떤 기적과 같이 명백하고 확실한 기적의 기록이다.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는 절충할 수 없는 철학적 편견을 성경에다 강요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250만 명의 무리가 행군대열을 갗추는 데에 거의 온 종일이 걸릴 것이며, 그러므로 해가 질 때까지 한 마일도 전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민수기 33장 등에서는 그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상, 행진대열을 구성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의 길이는 전적으로 대열 그 자체의 형태에 달려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그들이 대로의 경계를 지켰었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는데, 이는 그들이 주로 사람이 살지 않은 땅을 거쳐 이동했기 때문이다. 각기 약 50만이 되는 네 개의 군단(10:14-20) 그들의 대열을 일제히 구성하고, 또한 4시간 내에(예를 들면, 오전 6시에서 10시까지) 행군준비를 갖추며, 그리고 다시 진을 치기까지의 4시간 동안에(거기에 또한 2시부터 6시까지의 4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족히 10마일을 가게 하는 데엔 아주 적합했을 것이다
  민수기 3:43에 나오는 처음 난 자의 수가 60만 명이 넘는 성인 남자에 비할 때 너무 많다고 하여 민수기 기록의 신빙성에 반론도 있었다. 사실상, 한 가족마다 남자나 40명 이상씩 있지 않은 이상 그렇게 큰 집단에 처음 난 자가 22,273명 이상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딜리취(Delitzsch)가 지적한 바와 같이(Pentateuch, 3:9-13), 이 주장은, 처음 난 자를 거룩히 하라고 요구했던 율법(3:46-47)은 소급해서 계산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그 본문에서는 출애굽 사건과 인구조사가 실시되던 때인 이 사건(13개월 후의)사이에서 태어난 자 외의 어떤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는 시사를 하지 않는다. 성인 남자의 수를 603,550명으로 잡는다면, 20-30세의 남자의 수는 약 190,000명 내외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해마다 새로 결혼하는 수가 평균 약19,000명이 되는 셈이다. 이런 숫자에 비추어 볼 때, 그들 중 대부분은 18개월 동안 두번 임신할 것이며, 즉 남자 22,000명을 초과하는 수가 태어난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또다른 반대주장이 있다. 민수기 11:31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추라기가 내렸다는 사실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2규빗 높이로 땅에 쌓인 메추라기의 양은 이스라엘의 70,000끼 분의 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어 성경본문이 말하는 내용을 전적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 본문은 메추라기가 2규빗 높이의 무더기를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고, 몰아치는 바람이 메추라기를 지면에서 2규빗(3피트)의 높이로 내려오게 하여 고기에 굶주린 이스라엘 백성이 쉽게 그것을 잡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한다
  문서설의 비평가들은 모세의 저작권에 대해 반론하기 위하여 많이 인용하는 "본문의 증거"에 대하여 한마디 말을 한다. 모세가 민수기 12:3을 자신에 대해서 기록했을리 없다는 것이다("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만약 모세가 참으로 온유했다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었겠는가? 이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 New Bible Commentary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성령의 영감 아래서 글을 쓰는 모세는 자신의 죄와 약함을 가장 분명한 말로 기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자신의 강한 점, 온유함 등을 또한 기록하지 않았다면 성경은 그 놀라운 객관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 절의 내용]은 이 장을 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델리취는 이렇게 주석 했다. "이 말은 당시의 모든 상황을 충분하고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 필요블가결하고, 또한 모세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성격에 대한 언급이므로 아주 객관적이며, 소명의 순간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그가 변질하지 않았음을 간절히 논술하는 기사이다." 그리고 나서 델리취는 계속해서 칼멧(Calmet)의 주석을 인용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자만심 없이 자신을 칭찬하듯이, 다른 곳에서는 겸손하게 자신을 나무랄 것이다."     

 

 

18   신 명 기   

 

 

 명칭 : 히브리어 하더바림(      , haddeb r m)"그 말씀들"이라는 뜻이며, LXX은 듀테로노미온(Deuteronomion)이라 하여, "2의 율법", 또는 "두 번째 율법수여"라고 하였다.

 

           1. 신명기 개관

 

  . 첫째 담화 : 역사적 서언(1:1-4:49)
    A. 호렙에서 모압까지의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인도하심(1:1-3:29)
    B. 새 세대가 율법 지키기를 훈계 받음(4:1-40)
    C. 요단 이편의 도피성에 대한 약속(4:1-40)
    D. 이담화의 역사적 배경(4:44-49)
  . 둘째 담화 : 이스라엘이 사랑해야 할 율법(4:44-26:19)
    A. 기본적 계명들(4:44-11:32)
      십계명과 후손에게 가르쳐야 할 하나님의 사랑(5:1-6:25)
      신실한 순종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계속적인 감사의 기억(7:1-11:32)
    B. 예배와 거룩한 생활에 대한 법규(12:1-16:22)
      참된 예배와 우상숭배를 막는데 필요한 규약들(12:1-13:18)
      음식, 안식일, 절기에 대한 규례들(14:1-16:22)
    C. 재판 : 특별한 범죄에 대한 처리(17:1-26:19)
      우상숭배로 인한 죽음, 상고절차, 왕의 책임(17:1-20)
      마술과 거짓 예언에 대한 벌(18:1-22)
      우연한 살인을 위한 도피성, 협잡과 위증에 대한 벌(19:1-21)
      전쟁과 공격에 대한 규칙들(20:1-20)
      시체 돌보기, 포로된 여인, 상속과 가정교육, 나무에 달린 시체처리(21:1-23)
      잃은 소유물에 대하여, 이성(異性)의 옷을 입지 말 것, 종자나 동물을 혼합하지 말 것         결혼, 순결, 몸조심, 정결에 대한 규례(22:13-24:5)                           (22:1-12)
      경제 및 사회정의에 관한 규례(24:6-25:19)
      관리업무, 성물, 십일조의 규례(26:1-19)
  . 셋째 담화 : 경고와 예언(27:1-31:30)
    A. 에발 산에서 율법이 기록되고 그 규례가 암송되어야 함(27:1-26)
    B. 국가에 대한 축복과 징계의 조건(이스라엘에 임할 미래심판의 예언)(28:1-68)
    C.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회고, 믿음에의 권고(29:1-30:20)
    D. 기록된 율법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위임함(31:1-20)
  . 모세의 노래 : 언약에 대한 이스라엘의 책임(32:1-30)
  . 마지막 임무와 고별(32:44-33:29)
    A. 모세의 마지막 권고(32:44-47)
    B. 모세의 죽음의 가까움을 알리심(32:48-52) 
    C. 이스라엘 각지파에 대한 모세의 마지막 축복(33:1-29)
  . 모세의 죽음과 그의 사망에 대한 기사(34:1-12)
                                             
             2. 신명기의 기본적 원리 

 

  모세는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의 마음에 율법을 진지하게 부과하려는 것이며,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진실하게 응하기를 그들에게 강력히 요구하려는 것이다. 다음은 특별한 강조점이다
  하나님의 영성(靈性)(4:12,15,16) 그의 유일성 및 통일성(4:35,39;6:4;7:9;10:17)이 설명됨.
  언약으로 맺어진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법률적인 관계라기 보다는 사랑의 관계이다(4:37;7:13;33:3).
  믿는 자에 대한 기본적인 요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 사랑은 그의 삶의 원동력이 된다(6:5;7:8;10:12,15;11:1,13,22;13:3;19:9;30:6,16,20).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죄는 우상숭배로서, 이것은 아주 엄하게 다루어지고 금지되었다(6:14,15; 7:4; 8:19,20; 11:16,17,20; 13:2-12;30:17,18).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들의 긴밀한 관계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야 한다(7:6; 26:19; 28:9). 이 거룩은 부정한 음식을 금하게 하며, 희생예배는 정해진 성소에서 행하도록 제한하였다. 또한 이 거룩은 이웃에 대한 사랑 및 가난한 자와 특권이 없는 자들9과부, 고아, 레위인, 외국인)을 돌보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언약에 대한 신실성에는 물질적 축복이 약속되었으나 언약에 대한 무시나 위반에는 물질적 재난, 손실, 궁극에는 포로의 형벌이 주어지리라고 했다(28-30).
  독특한 훈계가 이렇게 나타난다. "기억하라, 그리고 잊지 말라!" 옛것에 대치시키려고 "새로운 진리"에 대한 어떤 연구를 착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계시된 진리를 지키고 순종해야 하는데, 이는 모든 것이 절대자이시며 또한 변함없는 진리의 근원 되시는 분에게서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신명기의 모세 저작권

 

  신명기의 고등 비평에 대해서는 7장에서 이미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 거기에서는 신명기의 편집에 대해 문서설자들이 주장한 B.C. 621년 설은 벨하우젠의 시대 이후로는 많은 합리주의적 비평가들에 의해 불충분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이런 20세기의 학자들은 신명기의 기원을 요시야 통치 시대로 보는 드 베테(De Wette)의 이론이 본문 자체가 말하는 내적 증거와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 20여년 동안, 2천년대 후반 헷족이 지배하던 시대에, 피지배국의 왕들과 정복군주 사이에서 체결된 종주권 조약의 구조에 대한 방향으로 상당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메레디트 클라인(Meredith Kline)이 지적한 것처럼, 헷족 시대의 전형적인 종주권 조약서는 다음 사항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1:1-5), 역사적 서언(1:6-4:49), 법조 항들 혹은 주요 조항(5-26),  저주와 축복(27-30),  계승조약 혹은 언약의 연장 증거를 요청하며, 본문을 보관하여 회중 앞에서 조약을 정기적으로 읽는다(31-33). 2천 년대의 "언약양식은 하나의 출발점으로서는 더욱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B.C. 2천 년대의 거대한 제국의 멸망 후까지 남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약의 옛 형태는 통일 왕조 이후에는 더 이상 널리 알려지지 못하였다."
  보수주의 견해 : 신명기는 B.C. 8세기의 성경기록 선지자들(the writing prophets)이 나타나기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또한 히브리 왕조가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누어진 B.C. 931년보다 앞선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했던 거의 그 시대와 가장 잘 조화된다. 맨리(G.T. Manley)는 이 증거를 훌륭하게 검토해 왔는데, 본문 자체의 연대는 모세 후기의 기원설을 배제한다고 강력한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오늘 날과 같으니라"(kayy wm hazzeh)라는 표현인데, 예를 들면 2:30에 나타난다. 이 구절은 모세 시대  이후 많은 기간, 분명히 여러 세기가 경과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되어 왔다. 모세가 모압 광야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에게 연설할 때로서, 모세 시대의 마지막 때의 상황과 거의 일치한다. 두 번째, "이야기를 서술하는" 구절은 "요단 저편"으로서, 그것은 요단 계곡 동편을 말할 때 나타나는 말이다(1:1). 만약 이 책이 정말 모압 땅에서 기록되었다면, "요단 저편"(' ber hayyard n, 에벨 하야르덴)이라는 말은 가나안 땅에 대해서만 적합할 수 있다고 주장된다그것이 르우벤과 갓 지파의 땅인 길르앗의 동편에 대한 말이라는 사실은 본서의 저자가 유다나 이스라엘 땅에 살았음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추론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상, 에베르 하야르덴이라는 말은 요단 서편에 대해서도 때때로 언급되는데, 적어도 세번은 나타난다(3:20,25; 11:30). 이것은 모압 광야에 있던 모세와 같이, 동편에 거주하는 어떤 저자를 가리킬 것이다.     
  
        4. 8세기의 선지자들보다 신명기가 앞선다는 증거
  
  신명기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가장 특징적인 명칭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Yahweh the God)이다. 만약 이 책이 7세기나 그 이후에 기록되었다면, 이 책에는 그 앞 세기에 고전적 히브리 신학을 체계화시켰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과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의 신학적 용어가 방영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요시야와 동시대인 예레미야의 사역기간 중에 가장 유행되면 하나님의 명칭을 반영했어야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 통계는 전혀 그와 반대인 것을 보여준다. 호세아서에서는 엘로힘(     , 'el him)15, 여호와가 35번 나타나는데 비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는 겨우 네번만 나타난다. (2) 이사야 1-35장에는 "만군의 여호와""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는 매우 자주 나타나는데 반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는 겨우 세번만 나온다. (3) 예레미야는 독특하게 "만군의 주"(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가끔 신명기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사실은 포로 후기의 선지자인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만약 신명기가 포로 직전인 요시야 시대나 혹은 포로 후기인 에스라 시대에 쓰여졌다면, 이 두 시대에 유행하지 않던 하나님 명칭의 사용을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신명기에서는 매우 자주 언급되지만 포로 전후의 선지서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명칭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이 출야굽기 3: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에서 나타나고 출애굽기 15:218:4에도 나타난다

 

          5. 왕국의 분열보다 신명기가 앞선다는 증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여러 종족들을 언급한 방식이다. 만약 신명기가 B.C. 931년의 왕국분열 이후에 쓰여졌다면, 그러한 분열에 대한 언급이나 암시가 본문에 나타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러나 사실상 이스라엘 종족이 분열된 존재로 묘사되지만 모두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나라에 있었던 것이다(1:13,15; 5:23; 12:5,14: 29:10; 31:28). 이 구절들에게서 저자는 유다와 에브라임 사이의 분열을 인식하고 있었다고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6. 가나안 정복보다 신명기가 앞선다는 증거

 

  신명기에는 계층부분이 없으며, 사회적 상황은 바벨론의 경우에서 보다 훨씬 더 시골답고 농업적인 공동체의 상황과 조화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세의 입법은 깊은 종교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재판법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법으로 말해지며 이스라엘은 그것을 전심으로 준수해야 했다. 신명기 12-26장을 이루고 있는 346절에 대해 살펴보면, 반 이상이 도덕적 종교적인 성격의 내용이며, 93절은 그 땅에 정착하는 일에 관계되는 특정한 명령을 다룬다. 신명기 속에서 매우 특정적인 내용이 권고, 경고, 축복의 약속 등이 바벨론 법전에서는 완전히 빠져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복잡한 법질서에 사용되었을 것 같은 엄격한 문체가 발견되는데, 이것은 비교적 도시화된 사회에 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연로하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여러 해 동안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도해 온 백성들에게 하는 말과 또한 그들이 함께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경험을 그 백성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을 우리가 듣는 듯하다
  이스라엘의 신앙보존에 관한 신명기에 나타난 입법의 형태와 요시야 시대 사이의 모순을 우리는 다시 한번 회상한다. 신명기 13:1-1817:2-5은 신앙을 떠난 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또한 그것은 여호와가 세운 나라의 언약을 저버리는 자들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므낫세(요시야의 조부) 시대에 그러한 법들이 만들어 졌다거나 부활되었다 생각하기는 어렵다. 요시야 개혁과 관련해서는 이에 대한 실제적 언급이 없다. 드라이버(Driver)까지도 "그것들이 강력히 시행되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기 때문에 그것들은 이상적인 가치밖에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위너(H.M. Wiener)가 지적한 것처럼, 이상주의 자들은 일반적 기초 위에서 고상한 기준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상에의 침해를 다루기 위한 절차를 규정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신명기의 이러한 구절 속에는 대단히 명확한 절차가 규정되어 있는데, 13장에서는 특히 초기의 상태를 가정하고 있다. 여기서 율법 수여자는 이 율법의 규정을 실행하기 위하여 그것이 전쟁을 유발한다 할지라도 국가 전체의 협동에 의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명기 12:2-4"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 하고"가나안의 모든 신당을 파멸하라고 명한다. 분명히 저자는 이러한 신당파괴가 저자의 시대에 실제로 있었으며 가능했던 것으로 간주했다. 여호와께서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먼저 그 땅에서 그러한 우상숭배의 상징들을 제거해야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자세는 B.C. 7세기나 솔로몬 이후 시대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때에 이스라엘 사회의 모든 계층에는 우상숭배가 만연되어 있었다왕조제도가 성립되기 이전 시대에 속하는 사사기의 기록에도 이러한 신명기적 조항의 존재가 암시된다. 따라서 바알의 단과 그 구역을 부수어버리는 기드온의 행위(6:25-32)는 그가 그러한 계명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며, 또한 이 행위에 대한 아버지의 변호는 그가 그의 아들의 행위가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19  여호수아서, 사사기, 룻기

 

 

        . 여호수아서

 

  이 책의 명칭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 속에 우뚝 솟아 있는 중심 인물인 여호수아의 이름을 따서 이름지었다. 본서의 주제는 세상을 정복하며, 약속된 기업을 위하는데서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의 불가학력적인 힘에 관한 것인데, 약속된 그 기업은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철저히 신뢰하며, 그 분과 맺은 언약관계를 깨뜨리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지 않을 때만 주어지는 것이다.

 

         1. 여호수아서 개관

 

  . 땅의 정복(1:1-12:24)
    A. 여호수아의 거룩한 임무(1:1-9)
    B. 요단 강을 건너기 위한 준비, 정탐꾼이 라합에 의해 구조됨(1:10-2:24)
    C. 요단 강을 건넘(3:1-4:24)
    D. 길갈에서의 할례(5:1-15)
    E. 여리고 정복, 승리의 확신(6:1-27)
    F. 아이에서의 실패, 죄를 제거함, 궁극적 승리(7:1-8:29)
    G. 에발 산의 제단, 율법을 엄숙히 낭독함(8:30-35)
    H. 교활한 기브온 족속과의 동맹<세상에 처음으로 말려듬>(9:1-27)
    I. 남쪽 가나안의 정복, 기브온의 전투(10:1-43)
    J. 북쪽 가나안의 정복(11:1-15)
    K. 여호수아의 전투 요약(11:16-12:24)
  . 기업의 분배(13:1-22:34)
    A. 분할에 관한 여호수아의 교훈(13:1-7)
    B. 요단 강 동쪽 지파에 대한 할당(13:8-33)
    C. 요단 강 서쪽 지파에 대한 할당(14:1-19:51)
    D. 도피성에 관한 약속(20:1-9)
    E. 레위 지파의 성읍에 관한 약속(21:1-45)
    F. 요단 강 동쪽 지파가 그들의 땅으로 떠나감(22:1-34)
  .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수아의 마지막 임무(23:1-24:33)
   
         2. 저자 및 저작 연대

 

  이 책은 여호수아 자신에 의해 쓰여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단일 저자에 의해 끝까지 기록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대부분은 여호수아가 직접 기록하였다(24:26). 그러나 본서에 포함한 갈렙의 헤브론 정복(15:13-14; 1:1,10-20), 웃니엘의 드빌 정복(15:15-19; 1:1, 11-15), 단 지파의 레센 정복(19:47) 및 여호수아의 장례 기사(24:29,30) 등의 기사는 모두 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발생한 일로서 후대의 사가(史家)들이 성령의 영감으로 여호수아가 생전에 남긴 본서의 주요부분에 이를 첨가하였다.   
  본서에 집필 연대도 일단 그 주요 부분의 경우는 여호수아 말년인 B.C. 1390년 경이지만 기타 추가된 부분의 연대는 그 이후로 추정된다. 그런데 본서에서 시돈이 큰 성읍(11:8; 19:28)으로 언급되고 있는 반면 두로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타나지 않은 점을 볼 때 두로가 아직 큰 성읍으로 성장하기 이전인 B.C. 12세기에 본서의 추가부분이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베니게'(페니키아) 사람들이 옛날 이름인 '시돈 사람'으로 호칭되고 있는 점도 B.C.12세기 저작설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볼 때 본서는 그 주요 부분은 B.C. 1390년 대에 완성되고 추가 부분은 B.C.12세기 이전 그리고 블레셋이 팔레스틴 땅을 침입하기 시작한 이후에 추가되어 최종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대부분 학자들은 그 최종 완성 연대를 웃니엘이 사사로 활동하던 시대(B.C. 1370-1330)의 말기로 보고 있다.  

 

          3. 텔 엘 아마르나 서신  
      
  1887년에 우연히 아멘호텝 4 (Amenhotep )의 옛 수도였던 아케타톤(Akhetaon)의 자리에서, 고대의 외교서신 문서를 완전한 묶음으로 발굴하게 되었다. 이것들은 점토 비문에 바벨론 설형문자로 쓰여졌는데, 이 문자는 애굽 제 18왕조 시대에 국제적 서신 왕래에 사용되던 언어였다. 콘더(C.R. Conder)는 이 비문 내용에 대한 예비조사에서 그것은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을 정복한 것과 관계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가나안 번역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확신했다. 1890년 그는 "히브리인의 승리의 기념비적 계시"라는 논문을 소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 서신왕래 문서에 집중시켰다. 같은 해에, 짐머른(H. Zimmern)은 단언적으로 주장하기를, 아마르나의 서신에서, 우리는 정말 히브리인의 가나안 침공에 대한 바로 그 당시의 기록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얻었다고 했다이러한 초기의 연구가들은 예루살렘 왕 아브디 헤파('Abbi- epa), 가나안 침공 자들은 그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점령했다고 놀라면서 바로 에게 보고하는 서신 속에서 "하비루"( abiru)라는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지적했다. 윈클러(H.Winckler)는 이것을 더 연구함으로써 설형문자 SA.GAZ와 관계되는 침공 군은 하비루와 동일한 것으로 확신했다. 가나안의 여러 군주가 모든 상황을 페니시아에 있는 시돈에 보내는 서신 속에는 SA.GAZ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매우 빈번히 발견된다
  바벨론에서 뿐 아니라, 나중에 마리(Mari)와 누지(Nuzi)에서의 발견은 이미 B.C. 2천 년대 초기에 메소포다미아 계곡의 역사 속에서 하비루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이것은 엘람 왕조(Elamite dynasty)의 와라드신(Warad-Sin)과 림신(Rim-Sin)에서 뿐 아니라, 함무라비의 바벨론이나 짐리림의 마리에서 나온 악카드어 텍스트 및 라르사(Larsa)의 림신의 수메르어 비문 등에 언급된다. 이 이름은 때때로 "전사"라는 한정된 의미로 나타난다. 헷족의 문서나 옛 바벨론 문서에 보면, SA.GAZ의 군대는 국가로부터 정기적인 양식을 배급받았으며, 그들은 왕실수비의 임무를 맡았고, 국가간의 조약을 보호해 주는 신을 예배했다고 나타난다. 보가츠코이(Boghazk i)에서 나온 헷족의 문서는, 하비루와 SA.GAZ는 동일한 사람이라고 명시했는데, 왜냐하면 텍스트 속에서 이름의 형태가 비슷하게 나타나며 또한 SA.GAZ의 신들이 하비루의 신들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마리(Mari)의 한집에서는 그들이 야파아다드(Yapah-Adad)와 같은 사람에게 고용된 용병으로 나타난다. 하비루라는 이름의 어원은 "넘어가는 사람", 혹은 동사 아바르(' bar, 통과하다)에서 나온[땅을] "통과하는 사람"이라는 기본적 의미를 나타난다.
  그러나 하비루라는 말은 본래 사회적으로 하층계급을 가르킨다는 말에는 틀림이 없다. 메레디트 클라인(Meredith K;ine)은 지적하기를, 알라라크에서와 같은 경우에는, 하루비가 정부의 공무원으로서 시 행정의 수뇌나 혹은 전차소유주(maryannu)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들과 평화 협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들이 단순히 종이나 일반 노예로 취급되지 않았음을 말해 줄 것이다. 클라인은 개인적으로 하비루를 자기들의 용역을 용병으로 팔았던 전사종족의 동족집단이라고 생각
                                              
했 는데, 어떤 경우에는 정착하여 지주가 되거나 관리가 되었다고 했다. 알라라크에서와 같은 경우에,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지역의 사람들과 문화적으로 통합되어서 그 지역에서 유행하던 비 셈족(non-Semitic)계통의 이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클라인은 하비루족이 이스라엘 히브리 족과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잘 연결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이 결론은 아마르나 문서들의 자료를 바르게 취급하지 못한다.      
  그린버그의 주장은, SA.GAZ는 가나안 땅 전역의 여기 저기에서 비교적 작고 비동족적인 집단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여지며,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여호수아서의 기사에서는 이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여호수아서의 우리는 열 두 지파로 구성된 큰 군대가 한 마디 명령아래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 견해에 대하여 두 가지 사실이 말해져야 한다. 하나는, 그 편지들은 B.C. 1400년으로부터 아크나톤(Akhnaton)의 통치 후반부까지 전부를 포함하는 독립된 넓은 시대의 산물일 것이다. 비교적 소규모의 군사행동을 암시하는 듯한 하비루 활동에 대한 그러한 언급들은 대출정(大出征)이 끝난 후시대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둘째, 하비리는 큰 세력을 가지고 그 땅에 진입해 왔으며 일순간에 그 땅의 많은 부분을 정복했다고 그 편지들 중의 상당수가 매우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편지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아브디-헤바로부터 온 EA 286번 편지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진실로, 나의 주, 왕이 살아 계실진대, 그 사절들이 갈 때 나는 이렇게 말하겠나이다. '왕의 땅이 사라졌도다제 말이 들리지 않는가요모든 통치자들이 사라졌고, 나의 주 왕은 단 한 사람의 통치자도 거느리지 못할 것입니다' 왕이여, 궁수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군대를 보내 사 그 땅을 잃지 않게 하소서! 하루비가 왕의 모든 땅을 약탈하나이다. 올해에 궁수들이 있으면, 나의 주, 왕의 땅은 그대로 남으려니와, 궁수가 여기에 없으면, 왕은 그것을 잃으리이다!" 다시 EA 288번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간청한다. "왕의 땅을 돌아보소서. 왕의 땅이 잃게 되리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며, 내게는 대적이 있나이다. 세일 땅과 심지어 갈멜 산 땅에 대해 말하자면, 그 모든 땅에는 평화가 없고 나에게는 대적이 있을 뿐이니이다." 그가 팔레스타인 중심지역의 정복에 대해 말할 때 이것은 여호수아 출정의 제2차 구면에 대한 언급이 분명하다
  많은 학자들은, 아마르나 서신의 하비리는 여호수아 군대의 히브리인과 동일시된다고 확신했다. 에드워드 메이어는 고대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히브리인 혹은 이스라엘인과 아마르나 시대에 팔레스타인을 침공했던 아마르나 비문에 나오는 하르비를 실질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르나 기록에 의하면 애굽과 서신왕래를 했던 성읍들은 므깃도, 이스글론, 악고, 가셀 및 예루살렘 등이었다고 그가 지적하는 증거와 같이, 엄밀하게 말하면 그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후기에 정복한 성읍들이었다. 한편, (F. B hl)가나안인과 히브리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진군으로 이미 함락되었거나 아니면 여호수아 군대의 대열에 합류했던 그러한 성읍들의 여리고, 브엘세바, 기브온, 헤브론 등과 같은 성읍들서신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세겜 근처에 있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여호와와 더불어 민족의 언약을 세운 일과 관련하여서 예루살렘의 아브디 헤파가 하비루에게로 변절하는 도시국가를 비난한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아니면 우리가 하비루에게 세겜 땅을 줘버린 라바유(Labayu)와 같이될 것인가?" 만약 여호수아와 세겜인들 사이에 어떤 비공식적 협약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유력한 도시 부근에서 이러한 종교  집회가 개최되는 데에는 곤란한 점이 없었을 것이다

 

         4. 여호수아서의 긴 날

 

  여호수아서 10:13에 보면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이라고 기록되었다. 만약 실제로 지구가 자전을 24시간 동안 멈추었다면, 가공할 만한 대변혁이 모든 항성과 지구상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하는 반대주장이 있었다. 이 긴 날에 대한 애굽, 중국, 힌두의 자료들이 긴 날을 말하고 있음을 밝히는 연구가 있었다. 해리 림머(Harry Rimmer)는 말하기를, 몇 사람의 천문학자들은 천문학적 계산에서만 하루가 빠져 있다고 했으며, 하바드 연구소의 피커링(Pickering) 교수는 이 누락된 하루를 여호수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았으며, 예일(Yale)의 토튼(Totten) 박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그러나 램(Ramm)은 이 보고를 입증할 만한 기록물도 입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카일(Keil) 델리취(Delitzsch)구약성경 주석은 주장하기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그 날이 초자연적으로 연장된 것처럼 보였든 아니 였든 간에, 그 날의 연장은 실제로 일어났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이틀 동안의 일을 그 날에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태양이 평균적 비율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구가 자전하지 않았다면), 정확한 시간 계산을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또다른 가능성을 첨가했는데, 하나님께서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연장하셔서, 빛의 굴절이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보통 정해진 시간 이후에도 눈이 보는 것을 가능케 하셨다고 했다

 

         5. 가나안 족속의 멸절    

 

  여리고나 아이의 함락과 같은 경우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그 주민들을 전멸시켰다고 여호수아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조치에 대한 책임은 히브리족에 있지 않고(만약 이 기록이 신뢰할 만한 것이라면)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원시적 기질을 지닌, 반야만적인" 이스라엘은 종교적 발전이 퇴보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런 잔인한 행위를 했다고 하는 몇몇 관용주의자들의 빈번한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위의 내용이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죽였을 때, 여호수아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본문은 매우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후의 이스라엘 역사는 이스라엘 속에서 살도록 허용된 가나안 족속이 있는 한,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매우 예리하게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들은 가장 타락한 형태의 다신주의와 성적 문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땅의 타락한 주민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에게 악한 영향을 미쳤고, 그들을 심하게 오염시켰다

 

         . 사사기

 

  책의 제목은 히브리어로는 쇼페딤(Sh -pe im)으로서 재판관, 행정지도 자를 의미하며, 또한 LXX역시 크리타이(Kritai)도 재판관을 의미한다.  

 

         1. 사사기 개관
  . 이스라엘의 부분적인 가나안 정복(1:1-2:5)
  . 가나안족의 남은 자들이 살아 남은 이유(2:6-3:6)
  .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와 웃니엘에 의한 구출(3:7-11)
  . 모압의 에글론의 압제와 에훗에 의한 구출(3:12-30)
  . 삼갈의 공적(3:31)
  . 하솔의 야빈의 압제 및 드보라와 바락에 의한 구출(4:1-24)
  . 드보라의 노래(5:1-31)
  . 미디안족의 압제와 기드온에 의한 구출(6:1-8:35)
  . 아비멜렉의 내력(9:1-57)
  . 돌라와 야일 의 다스림(10:1-5)
  ?. 암몬족의 압제와 입다에 의한 구출(10:6-12:7)
  ?. 입산, 엘론, 압돈의 다스림(12:8-15)
  ⅩⅢ . 블레셋의 압제와 삼손의 공적(13:1-16:31)
  ⅩⅣ. 미가의 제사장과 단 지파의 이동(17:1-18:31)
  ⅩⅤ. 기브아에서의 잔악한 행위와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19:1-21:25)
                                            
           2. 저작 연대

 

  내적 증거는 초기 왕조 시대를 가리키지만,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이전으로서 B.C. 990년 경이다. 18:1이나 19:1에 나오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라는 표현은, 또다시 불화와 재난이 그 나라를 괴롭혔던 분열왕국의 불행한 시대 이전이다.
  초기 저작설의 한 가지 난점은,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원어에는 ''<the land>)이 사로집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고 하는 사사기 18:30의 기록에 의해 제기된다. 만약 이 구절이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사마리아 왕국 북쪽을 차지한 732년의 앗수르 정복을 가리킨다면, 이 구절은 아무리 빨라도 8세기 후반의 산물일 것이다
  영거(Unger)는 주장하기를, 이 구절은 후에 어떤 미심쩍은 의도를 지닌 편집자에 의해 삽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Young)과 스타인무엘러(Steinmueler)""('ere )이라는 단어가 본래의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으며, 그것은 "언약궤"(' r n)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견해로 기울어지는데, 이것은 단지 글자 한 자의 변화를 수반할 뿐이다(마지막  [tsadhe] 대신에  [n n]으로).  그렇다면 "언약궤를 빼앗김"이라는 수정된 구절은 엘리가 죽던 해에 실로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에게 임했던 재난에 대한 언급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 지파가 있던 이스라엘의 북쪽 영토에서 발생한 사건과 얼마나 많은 연관성이 있을 것인가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세번째이며 보다 단순한 주장은, "땅의 사로잡힘"이라는 말은 사사 후기 시대의 어느 시기에 잔인한 국경지대의 싸움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군사적 패배와 추방에 대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북쪽에 있던 단지파 도시들의 주민들은, 그들 자신이 그 이전에 살던 주민들로부터 그 땅을 정복했을 때처럼, 외국의 침략자에게 침략 당했을 것이다(18:27-28). 이와 같이 해석된 사사기 18:30은 단순히 단 지파의 땅에 대한 언급이며, 그러므로 제작 연대를 다윗 통치 후의 어느 시기로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3. 저자 및 저작의 통일성

 

  저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 본서의 목적은, 몇몇 저작의 주장과 같이 이스라엘의 선조들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은혜를 영화롭게 하려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뮐러는 지적하기를 14명의 사사들은 너무 잘 배열되어 있어서 웃니엘과 삼손은 그 배열은 차음과 나중에 나타나지만,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둘씩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삼갈(3:31)은 에훗에 대한 간단한 첨가어로 나타나며, 바락은 드보라와 짝지어져 있으며, 그리고 기드온과 그의 아들 아비멜렉 사이에는 매우 분명한 관계가 있다.

 

         4. 연대기의 문제  

 

  사사기 10:7"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라는 기사는, 삼손과 입다는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고 분명하게 말해 준다. 왜냐하면 암목 족속의 압제와 블레셋 족속의 압제는 거의 같은 시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페인(J.B. Payne)B.C. 1381년의 웃니엘의 통치로부터 B.C. 1050년에 끝나는 사무엘까지의 가장 중요한 여섯 사사들의 통치에 관한 기본적 연대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연대계산법의 정당성은 사사기 11:26에 나오는 입다의 말로써 입증되었는데, 여기서 입다는 이스라엘의 헤스본 정복과 암몬과의 싸움 사이의 기간을 300년으로 계산한다. 이것은 요단 넘어의 정복 기간을 대략 B.C. 1400-1100년으로 인정하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사사기 그 자체 속에는, 사사들의 전 기간에 대해 긴 연대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사통치 시대 중 어떤 것들이 조금도 중복되지 않았다고 할 이유가 없다.       

 

                                             
        5. 사사 시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고고학의 공헌
                  
  애굽의 권위가 최소한 B.C. 12세기까지는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서와 사사기가 팔레스타인을 지나가는 주요 상업도로를 통하여 애굽의 세력이 유지된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블레셋 족속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그들이 팔레스틴 남서 해안에 처음 정착했던 시기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 B.C. 1195년 경 애굽 해군이 블레셋 족속에게 거둔 승리를 기록하고 있는 메디넷 하부에 있는 라암세스 3세의 비속으로 인하여 많은 비평가들은 애굽 사람에 의해 블레셋 족속이 패배해서 팔레스타인 해안선을 따라 처음으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론 내리기를, 1195년 이전에 블레셋에 대한 모든 언급은 창세기 21장이든, 여호수아 13장이든, 사사기 3장이든 간에 반드시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아브라함도 이삭도 성경의 기록과 같이 그랄에서 블레셋 족속을 발견했을 수가 없다(21:32,34; 26:1,814,15,18). 그러나 블레셋 족속의 침략자들이 라암세스 3세에 의해 팔레스타인 해변으로 쫓겨났다는 사실은 그 이전에는 거기에 블레셋 사람들이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증거가 결코 될 수 없다. 성경구절들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블레셋은 카프토림족, 케프팀족, 케리티트족 및 펠레티트족 등으로 구성되는 이질적 무리였다. 이들 여러 집단들은 그레데 섬으로부터의 연속적인 이주의 물결을 타고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미노아 시대까지도 그레데 섬의 주민들은 아브라함의 시대 이전의 매우 모험심이 많은 상인들이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상업적 목적을 위하여 팔레스타인 해안선에 무역 중심지를 설립하도록 많은 자극을 주었을 것이다.

 

         6. 입다의 딸의 제사 

 

  입다는 그의 "경솔한" 서원(11:30,31)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딸을 제단 위에 제물로 바쳤다는 것이 분명하다. "번제"라는 단어는 올라(' lah)인데, 다른 곳에서는 불로 완전히 태워버리는 피제사라고 한다. 그러나 카일과 델리취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문자적인 인간제사라고 하는 이러한 해석은 본문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하지 않다
  인간제사는 아브라함의 시대 이후로(그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에 의해 수양으로 대체되었다) 여호와께 대한 범죄며 혐오스로운 것으로 여겨졌으며, 레위기18:21;20:2-5 및 신명기12:31;18:10에서는 강력하게 비난하고 또 금지된 것으로 항상 이해되었다. 아하스 시대(B.C. 743-728) 이전에 이스라엘 사람 중 누구도 인간제물을 바쳤다는 증거가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입다가 그러한 죄를 범하고 혐오스런 행위를 함으로써 주를 기쁘게 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딸에게 두 달 동안 애곡이 허락되었는데, 그녀의 생명의 상실이 가까워졌음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처녀성(버툴림)을 몹시 슬퍼했었다(11:37-38).
  39절에는 입다가 서원을 한 후에 그의 딸을 "번제"로 바치고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만약 그녀가 죽었다면 이러한 말들은 핵심을 대단히 빗나갔으며 또한 어리석은 관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녀의 남은 생애가 장막문에서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바쳐졌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연결된다. 이 경우에 그 상황의 비애감은 입다의 딸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입다의 혈통이 끊어지는 데에서 나온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입다의 유일한 자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그의 딸은 그녀의 처녀임을 그렇게 슬퍼한 것이다. 여기에 인간 제사란 나타나지 않는다

 

          . 룻기

 

  본서는 각 페이지마다 중심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다윗의 혈통에 비이스라엘 계통의 피가 섞였음을 설명해 주는 다윗 왕의 가계에 나타난 한 일화를 말하려는 것
                                             
이다. 이 책은 또한 회개한 이방인일지라도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의 교제로 들어오는 것을 기뻐 하시는 그분의 은혜가 얼마나 넙은 가를 가르쳐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는 고멜(g  l), 즉 친족 구원자의 역할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1. 룻기 개관 

 

  . 모압으로의 이주와 체재(1:1-5)
  . 룻과 함께 유다로 돌아오려는 나오미의 결정(1:6-18)
  . 베들레헴에로의 슬픈 귀향(1:19-22)
  . 어려울 때의 친구 보아스(2:1-18)
  . 보상법에의 호소(3:1-18)
  . 보아스가 고멜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임(4:1-10)
  . 약속과 번영(4:17-22)

 

         2. 저작 연대

 

  자유주의 학파의 비평가들은 요시야 통치보다 늦은 연대를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룻이 신명기 25장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그들에게 의하면 신명기는 요시야의 개혁 직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 비평가들은 포로 기간인 B.C. 550년 경으로 그 연대를 추정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이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에 대한 느혜미야의 엄격한 율법강요에 반대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며, 100년 정도 더 늦은 시대로 생각했다. 이 책이 신명기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브라잇(W.F. Albright)은 요시야 이전 시대에 우선권을 두고 있음을 주목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알레만-플라크(Alleman-Flack)는 그의 주석에서, 보아스와 룻의 결혼에 대해 기록한 법률적 용법은 과부결혼에 관한 오경의 법보다 훨씬 이전 단계를 나타낸다고 하는 밀라 버로우즈(Millar Burrows)의 설명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올브라잇은, "우리는 룻기의 대부분을 7세기 이후로 추정할 수 없으며, 룻기의 기본이 되는 시적인 문장에 대해서는 9세기만큼이나 초기로 보는 것이 매우 가능하다고 말한다

 

         3. 본서의 기본적 교훈

 

  룻기의 기본적 교훈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본서는 앞으로 있을 축복의 확장을 예시해 준다. , 회개하고 여호와를 믿으면, 이방인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놀랍고도 예기치 못할 하나님의 섭리는 메시야의 왕적인 혈통 속에 이방인의 혈통이 포함되었음을 또한 나타내 준다(1:5). 
  친족 구원자는 그의 친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임무와 자격을 충족시키는 고엘(g  l), 즉 메시야의 모형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는 육친이어야 한다(그리스도도 처녀에게서 태어나심으로 육친이 되셨다).
   그는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을 돈을 갖고 있어야 한다(4:10 그리스도만이 죄인에게 대한 값을 치룰 수 있는 공로를 지니고 있다).
   그는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사려고 해야 한다(4:9 -그리스도는 자원하여 그의 생명을 내어놓았다).
   그는 죽은 친족의 아내와 결혼하려고 해야 한다(4:10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관계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살펴볼 때, 룻기라는 이 작은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에 관하여서는 구약 중애서 가장 교훈적인 책이다

 

 

                                               
  20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 사무엘 상하

 

  목적은 히브리 왕조의 설립을 기록하려는 것이다. 왕을 세운 사람, 사무엘의 생애, 언약을 잊고 폭군이 된 신실치 못한 왕, 사울의 생애, 메시아를 배출하게 되는 영속적이고도 정당한 왕조를 세운 신실한 신정국의 왕, 다윗의 생애 등이다
          
         1. 사무엘 상 개관

 

  . 사무엘의 생애와 블레셋으로부터의 구출(11:1-7:17)
    A. 사무엘의 어머니와 그이 찬송(1:1-2:10)
    B. 성전에서의 사무엘의 훈련(2:11-3:21)
    C. 실로의 재난과 엘리의 죽음(4:1-22)
    D. 블레셋 족에게 법궤를 빼앗김(5:1-6:21)
    E. 법궤가 이스라엘로 되돌아옴(7:1-17)
  . 사울 왕의 흥기(8:1-15:35)
    A.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의 청원(8:1-22)
    B. 사무엘이 사울 에게 기름을 붓고 승리로써 정당성이 입증됨(9:1-11:15)
    C. 사무엘의 마지막 연설(12:1-25)
    D. 블레셋에 대한 사울과 요나단의 승리(13:1-14:52)
    E. 아말렉 정벌과 사울의 불순종(15:1-35)
  . 사울의 몰락과 다윗의 흥기(16:1-31:13)
    A.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다윗이 궁궐로 들어감(16:1-23)
    B. 다윗이 골리앗을 죽임으로 이스라엘을 구출함(17:1-58)
    C. 다윗이 사울의 질투를 피하여 도망함(18:1-20:42)
    D. 다윗의 유랑(21:1-30:31)
    E. 길보아 산에서 사울의 마지막 전투와 그의 죽음(31:1-13)

 

         2. 사무엘하 개관

 

  . 유다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다윗의 생애(1:1-14:33)
    A.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함(1:1-27)
    B. 헤브론에서의 즉위, 아브넬과의 전투(2:1-32)
    C. 아브넬의 변절과 요압에 의한 죽음(3:1-39)
    D. 이스보셋이 암살됨(4:1-12)
    E. 국가적, 종교적 연합을 이룩함(5:1-6:23)
                                             
    F. 다윗과 세운 하나님의 언약 : 메시야적인 왕(7:1-29)
    G. 다윗이 통치권이 약속된 땅의 끝까지 확장됨(8:1-10:19)
    H. 밧세바와의 범죄와 그의 회개(11:1-12:31) 
    I.  암몬의 죄악과 압살롬의 복수(13:1-14:33)
  . 다윗 시대의 마지막 단계(15:1-24:25)
    A. 압사롬의 반역과 궁극적 승리(15:1-18:33)
    B. 다윗이 권력을 회복함(19:1-20:26)
    C. 기근 및 사울의 후손에 대한 기브온족의 복수(21:1-14)
    D. 블레셋과의 후기의 전쟁(21:15-22)
    E. 다윗의 찬송시와 최후의 유언(22:1-23:7)
    F. 다윗의 용장들의 목록(23:8-39)
    G. 백성을 계수한 다윗의 죄, 성전자리에서 재앙이 멈춤(24:1-25)

 

        3. 저작 연대
   
  합리주의 자들은 이 책을 주로 두 가지 문서(Pfeffer) 혹은 가능하면 세 가지 문서(Eissfeldt)를 편집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들이 솔로몬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들 중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들과 한께 "신명기 학파"의 편집자에 의해 약 B.C. 550년 이전에 추가된 것이다. 사무엘서의 어떤 부분에는 초기 연대라고 하는 충분한 증거가 나타나며, 파이퍼(R.H. Pfeiffer)와 같이 문서를 구분하는 비평가까지도 이 책 중 가장 초기의 것을 제사장 아히마아즈와 같은 10세기 저자의 것으로 돌릴 수 있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다른 부분들은 포로기와 같은 후기의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사무엘상 6장과 7장에는 레위기에 대한 언급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오경 비평에서와 같은 동일한 분석 방법이 사용되는데, 비슷한 기사와 동일한 기사를 분리시키려고 노력함으로써,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여러 시대의 저자를 밝혀 내는데 있어서 서로 사이에 그러한 "모순"이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 왕조를 설립하는 일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대립적인 입장이 주장되고 있는데, 사무엘 상 7장 및 8장의 입장(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결핍된 것을 하나님께서 비난하시는 내용을 기록함)과 사무엘이 기름 붓게 될 왕에 대한 은혜스러운 축북의 약속을 기록하고 있는 9(특히 16)의 입장 등이다.
  이러한 비평가들이 잘못 이해한 점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그릇된 동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무라신다고 해도, 그 사실로 인하여 그 백성들이 잘못 선택한 새 통치 형태에서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시기 위해 세우신 인간적인 기구에 대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인 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스럽게도 하나님은 그녀에게서 난 아들 솔로몬을 그의 아들 중 가장 영광스러운 다윗의 계승자로 삼으셨던 것이다. 다윗 이후 시대에 속하는 부분을 잘 분별할 수 없지만, 사무엘서의 저자가 이전에 기록되어진 자료를 사용했음은 의심할 수 없다. 그 예로서는 사무엘하 1:18에는 야셀의 책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다른 문서들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사무엘, 나단, 갓 등이 편집한 "다윗의 행적"을 포함한 공문서들을 참고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4. 본문의 보존

 

  다른 성경보다도 사무엘 상하의 본문은 맛소라 개정판(Masoretic recension)에서 잘 보존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 전신 사본에는 가끔 공백 부분이 있다(아마 벌레가 먹었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사용되어 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이것은 사무엘상 13:1에 나오는""(years)라는 단어 앞에 있는 숫자가 빠졌다는데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서의 70인경을 연구해 보면, 맛소라 사본의 전통보다는 전신사본이 다소 더 나은 상태였음을 나타내주므로, 이 두 책에 대해 고등비평을 사용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쿰란(Qumran)동굴에서 발견된 몇 가지 중요한 단편들은 MT 보다는 70인경에 조금 더 가까운 히브리어 본문을 담고 있다. 또 사무엘상 12:11에는, 12세기 사사들 중의 한 사람인 압돈 이라는 이름에서 아인( , 'ayin)이라는 글자가 빠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 '-B-D-N이 아닌    , B-D-N 으로 나타나므로 맛소라 사본은 "베단"(   , Bedan)으로 모음화했다

 

           5. 소위 기사의 모순      

 

  첫째로, 사무엘의 종족적인 배경으로. 사무엘상 1:1에서는 엘가나를 에브라임 지파로 주장하고, 역대상 6장에서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사무엘상 1:1에서는 엘가나의 지파소속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다만 그의 거처에 대한 지적뿐이었고, 율법에 의하면, 레위 지파는 12 지파 속에 흩어져서 48개의 레위 지파의 성읍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라마 다임이나 라마가 레위 지파가 살지 않았다고 할 수가 없다
  둘째로, 다윗이 사울 왕에게 소개되는 두 가지 기사이다. 하나는, 사무엘상 16:14-23에 다윗이 사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고용된 수금 연주가로 사울 에게 소개되었다. 그 다음은, 사무엘상 17:55-58에서 다윗이 사울 에게 소개되었음이 분명하다. "두 번째 소개"를 살펴보면, 그 나라에서 가장 용맹 있는 자들을 사울 자신의 경호원으로 삼으려 하는 사울의 정치적 목적에서, 이 때에 사울의 관심은 다윗의 아버지의 이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는 것이었다. 거인 골리앗을 죽인 이새의 막내 아들의 용감성을 한 본보기로 본 후에, 이새나 그의 다른 아들들을 자기의 정예부대로 삼을 가능성이 사울 에게는 충분히 있었다.
  세 번째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산악지경에서 추격대의 추격을 받다보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다윗과 사울 사이의 화해와 반목의 이야기 속에서 일시적인 우정의 회복이 갑작스런 무시무시한 미움의 폭발로 이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질투심과 심각한 불안감의 영향으로 인한 사울의 정신 분열과 타락을 이해하면, 이러한 사건들이 연속되는 것은 매우 사실적인 것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열왕기 상하

 

  명칭 : 고대 히브리어 정경에는 열왕기서가 상하 구분없이 한 권으로 되어 있었다. 책의 첫 머리에 나오는 단어나 구()를 따라 책 명을 삼는 관례로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책의 명칭을 "왕들"이란 뜻의 "멜라킴"(     )이라 한다

 

        1. 열왕기 상하 개관

 

  . 솔로몬 통치(왕상 1:1-11:43)
    A. 다윗의 최후 정리와 아도니아의 진압(1:1-2:11) 
    B. 솔로몬 통치의 시작(2:12-46)
    C.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결혼한 후에 지혜를 간구함(3:1-28)
    D. 솔로몬의 국가 통치(4:1-34)
    E. 솔로몬의 성정 건축(5:1-7:51)
    F. 성전 봉헌식과 하나님의 약속이 수여됨(8:1-66) 
    G.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 스바의 여왕(9:1-10:29) 
    H. 솔로몬의 배교와 몰락(11:1-45)
  . 다윗 계열 왕국의 초기 왕들(12:1-16:28)
    A. 르호보암의 어리석음, 여로보암의 반역(12:1-14:31)
    B. 유다의 아비야와 아사(15:1-24)
    C. 이스라엘의 나답, 바아사, 엘라(15:25-16:14)
    D. 이스라엘의 시므리와 오므리(16:15-28)
  . 유다와 이스라엘의 동맹 시대(16:29-왕하 9:37)
    A. 아합과 엘리야, 갈멜 산의 시험(16:29-18:46)
    B. 길르앗 라못에서 아합이 죽기까지의 아합과 엘리야(19:1-22:53)
    C. 이스라엘의 아하시야(왕하 1:1-18)
    D. 엘리사에게 기름부음과 엘리야의 승천(2:1-25)
    E. 여호람과 요호사밧이 모압을 대적함(3:1-27)
    F. 엘리사의 이적들, 나아만이 깨끗케 됨(4:1-5:27)
    G. 벤하딧의 전쟁, 사마리아의 구출(6:1-7:20)
    H. 하사엘과 예후에 대한 엘리사의 임무, 이세벨의 죽음(8:1-9:37)
  . 이스라엘의 쇠태와 멸망(왕하 10:1-7:20)
    A. 예후의 오므리가() 멸절 및 바알 숭배자들(10:1-36)
    B. 유다의 아달랴와 요아스(11:11-12:21)
    C. 이스라엘의 여호와하스(13:1-25)
    D. 유다의 아마샤와 아사랴(웃시야)(14:1-22;15:1-7)
    E. 여로보암 2(14:23-29)
    F.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들: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15:8-31)
    G. 유다의 요담과 아하스(15:32-16:20)
    H. 사마리아의 멸망, 반 정도 회개한 이방인의 재거주(17:1-14)
  . 사마리아 멸망 이후의 유대인의 왕조(18:1-25:30)
    A. 히스기야와 산혜립(18:1-19:37)
    B. 히스기야의 병, 갈대인의 사자에게 자기의 부를 과시함(20:1-21)
    C. 악한 왕 므낫세, 그이 아들 아몬(21:1-26)
    D. 요시야의 개혁(22:1-23:30)
    E. 마지막 왕들과 예루살렘의 멸망(23:31-25:21)
    F. 그달리야의 암살, 여호야긴에 대한 선대(25:22-30)

 

       2. 연대기의 문제

 

  앗수르의 자료들 속에 동시성(synchronisms) 또는 동시대적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히브리 왕조들의 연대기에 많은 빛을 비추어 주었다. 중요한 것은 B.C. 893년에서 666년까지의 그 제국의 역사에 속하는 앗수르 지명의 기원에 관한 이름의 명부(Assyrian eponym lists)이다
  틸레는 남쪽 왕국과 북쪽 왕국 사이에는 달력계산의 차이가 있었음을 입증했다. "비계승년"이라는 연대계산 제도는 왕이 즉위한 역년(歷年)의 나머지 기간을 그의 통치의 첫 해로 계산했다. 이 계산도는, 왕이 전 해의 마지막 날 왕위에 올랐을지라도 그 하루가 통치의 한 해로 계산되었다는 점과 또한 새해의 시작인 그 다음날이 통치 제2년의 시작이라는 점을 의미했다. 그러나 계승년 제도에 의하면, 왕이 즉위한 그 해는 전혀 통치 연대로 계산하지 아니했고 다만 그의 통치의 첫 해는 그 다음 새해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유다의 경우에 있어서는, B.C. 930년의 왕국분열 시대로부터 850년 경에 이르기까지 계승년 제도가 지켜졌다.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시대까지는 비계승년 제도가 북왕국에서 지켜졌다. 아마샤의 시대로부터 예루살렘 멸망에 이르는 유다의 마지막 시기에는 계승년 제도로 환원되었다. 북왕국에 있어서는, 930년에 비계승년 제도가 시작되어 800년 경까지 계속되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로부터 사마리아의 멸망에 이르기까지는(B.C. 
                                              
798-722) 비계승년 제도가 계승년 제도의 계산법으로 바꾸어졌다. 그러므로 유다에서는 여호사밧 제10년으로 계산된 햇수가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사밧 제11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보다 더 큰 혼란은, 북왕국에서는 종교개혁 첫 달인 니산월(Nisan) 혹은 아빕 월(Abib)에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다 왕국에서는, 매우 일관성 있게, 모든 역사 속에서 티스리 혹은 에타님을 세속력의 첫 달로 사용하였으며, 또한 이런 기초 위에서 모든 날짜와 통치 연대를 계산하였다. 이러한 상위점이 생긴 이유를 단정짓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연대계산에 있어서 1년이라는 차이가 있는 경우를 참작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사실은연대기는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은 계속해서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수주의 학자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페인(Payne)은 남북 왕국의 분열 연대를 930년으로 보고 있는데 비해, 틸레(Thiele)는 그 시기를 931년으로 계산한다. 항상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있어야만 하며 또한 새로운 증거가 나옴에 따라 적당한 조정이 있어야 한다
  유다 후기 역사에 대한 보다 최근의 작품은 와이즈만(D.J. Wiseman)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제목은 "영국 박물관에 있는 갈대아 왕들의 연대기"이다이 책에서 발견된 토판들은 B.C. 620년과 566년 사이의 일련의 분명한 연대들을 나타내 준다. 그 토판들은, 느부갓네살의 아버지인 나브폴라살(Nabopolassar)이 바벨론에서 앗수르 군대를 격파한 후에 6261123일에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음을 말해 준다. 니느웨의 멸망 후 612년에 앗수르의 왕이 된 앗슈루발리트 2세는 610년에 하란(Haran)에 있는 그의 방어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시야가 전사했던, 므깃도의 전투는 609년에 일어났고, 같은 해이거나 아니면 그 다음 해인 608년에 여호야김은 느브갓네살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느고(Necho)의 도움을 받아 통치를 시작했으며, 598년에 죽었다. 느부갓네살이 애굽과 앗수르의 연합군을 격파했던 그 유명한 갈게미쉬(Carchmish) 전투는 6055월이나 6월에 일어났었다. 나보폴라살은 605816일에 죽었으며 느부갓네살이 그의 후계자로서 97일에 바벨론의 왕이 되었다. 601년 바벨론 군대는 애굽 국경지역에서 애굽 군과의 고전 끝에 일시적으로 패배하였다(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실은, 여호야김이 그의 통치 말년에 위험을 무릅쓰고 바벨론에 반역하였던가 하는 점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루살렘을 597315일 혹은 16일에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했다. 같은 달에 시드기야가 임명된다. 결국 예루살렘은 느부갓네셀의 제 3차 침략 기간인 5876월에 멸망했다
  이러한 토판들은, 597년의 예루살렘 정복을 느부갓네살 제 8년이라고 하는 열왕기하 24:12과 그것을 느부갓네살 제7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 예레미야 52:28 사이의 모순을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갈게미쉬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갈대아 대군을 홀로 통솔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서쪽지방에서는 이미 그가 사실상의 왕이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열왕기하를 기록한 유대 역사가는 그의 최초의 통치 연대를 605년이나 604년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비계승년 제도를 사용하던 바벨론에서는 그의 통치가 604년이나 603년 이전에는 공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이 경우에 바벨론의 공식적 계산법을 따랐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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