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m' (맛사)
짐, 들어올림, 운반함, 공물, 발언, 신탁
1. 맛사(명남)는 나사(ac;n: , 5375)에서 유래했으며, '짐, 들어올림, 운반함, 세금, 공물, 발언, 신탁'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9회 나온다.
(a) 맛사는 '짐'에 대해 사용되었다.
가장 본래적인 배경은 나귀(출23:5), 노새(왕하 5:17), 약대(왕하 8:9)와 같은 동물들의 등에 지워진 짐을 언급한다.
사 46:1-2에서 이사야는 말 못하며 아무런 힘도 없는 바벨론의 우상을 이러한 짐과 동일시한다. 이 우상들은 노획물 중의 일부로 실리워져 갔다. 거짓 신들과 그 우상들이 짐으로 때때로 짐승에 실려 다닌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무력하고 효력이 없으며 피곤하게 하는 짐이 된다는 것을 증거한다.
안식일에는 짐을 내거나 지는 것을 금한다(렘 17:21-22, 렘 17:24, 렘 17:27).
사 22:25은 '쐬기' 또는 '못'을 가리키는 논란이 되는 메시야적 용어인야테드를 포함한다. 이 '못'에 걸린 무거운 짐이 넘어져 떨어질 것이다. 그 짐이 셈나(Davib Baron)인지 엘리야김(E. J. Young)인지는 문제가 되고 있으나 확실한 사실은 이 단어가 이스라엘의 몇몇 굽은 (부정한) 관리를 비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백성이 짐이 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민 11:11, 민 11:17, 신 1:12, 삼하 15:33, 욥 7:20). 시편 기자는 심지어 그의 죄악들을 무거운 짐으로 언급한다(시 38:4, H5).
(b) 맛사는 '들어올림'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전형적인 비유적 용법 가운데 흥미로운 구절로 겔 24:25이 있다. 이 구절에서는 '그들의 마음의 소원' 즉 그들이 위하여 영혼을 들어올리는 그것을 의미하기 위해 명사적 동사 '그들의 영혼의 들어올림'을 사용한다.
(c) 맛사는 '운반'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민 4:24에서 "멜 것"은 '운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② 대하 20:25, 대하 35:3에서는 '운반하는' 것을 나타낸다.
③ 고핫 자손, 게르손 자손, 므라리의 아들들은 성막의 여러 물건들을 나르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민 4:15, 민 4:19, 민 4:24, 민 4:27, 민 4:31, 민 4:32, 민 4:47, 민 4:49).
④ 대상 15:22, 대상 15:27은 논란이 되는 구절이다. 사르 함맛사를 음악의 지도자로 번역하는 것은 옹호될 수 없다. 이 단어의 어근의 의미는 '말하다'가 아니다. '들다' lift이다. 케일(Keil)은 주장하기를 70인역본, 불가타역, 루터역(그리고 RSV, NEB, NAB, NASB, NIV, 그리고 부분적으로 JB도 추가 가능함)은 '짐'을 뜻하는 이 단어는 '노래 부르는 것'과 관련시키는데 이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오히려 문맥은 언약궤를 운반하는 것을 다루며, 맛사는 그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이 구절은 민 4장, 대하 20:25, 대하 35:3과 동등시할 수 있다.
(d) 맛사는 '운반하여온 것', 즉 '공물'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대하 17:11, "블레셋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도 짐승떼 곧 수양 칠천 칠백과 수염소 칠천 칠백을 드렸더라".
2. 맛사(명남)는 나사(ac;n: , 5375)에서 유래했으며, '발언 utterance, 신탁 oracle, 짐 a burden'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7회 나오며, 잠 30:1, 잠 31:1을 제외하고 예언적인 문맥에서만 나온다.
기독교 이전 시대부터 이 단어는 두 가지의 다른 의미로 번역되어 왔다. 흔히 받아들여지는 가장 초기의 번역은 burden이다. 요나단의 타르굼, 이퀼라역, 시리아 역본, 제롬(나 1:1에서), 루터, 칼빈, 헹스텐버그, J. A. 알렉산더는 이렇게 번역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가설적인 어근 나사(말하다, 받다)를 가정하면서 '신탁' oracle, '발언' utterance, 혹은 '예언' prophecy으로 번역한다. 70인역본, 콕시우스, J. D. 미카엘리스, 라우스, E. J. 영이 그러하다.
전자의 번역을 지지하는 가장 명확한 논증은 슥 9:1에 대한 헹스텐버그(E. W. Hengstenberg)의 [구약성서 기독론](Christology of the OT, Ⅲ, pp. 339-43)에서 발견된다. 그 논증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정확히 지적한다.
(1) 이 예언의 내용은 전적으로 위협으로 이루어져 있다.
(2) 맛사라는 단어는, 예를 들어 YHWH의 네움과 같은 그러한 화자를 나타내는 속격을 결코 수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목적을 나타내는 속격과 함께 사용된다. 예를 들면 바벨론에 대한 맛사, 모압에 대한 맛사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슥 9:1, 슥 12:1, 말 3:1(여호와의 말씀의 맛사 ["경고"])에서와 같은 부가적인 요소가 개입된다.
(3) 맛사라는 단어는 '말하다'라는 의미의 나사에서 파생된 명사의 예를 보여주지 않는다.
(4) 심지어 소위 예외라고 하는 대하 15:22, 대하 15:27, 애 2:14, 슥 12:1, 렘 23:33이하도 이 견해를 반박하는 입장의 증거이기 보다 오히려 이 견해에 대한 증거이다.
애 2:14의 적절한 번역은 "거짓 선지자들이 너희에 대하여 헛되고 현혹시키는 예언들을 보았다"가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된 짐들과 사로잡힌 몸들을 보았다"이다(한글개역,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한 분산에 관한 예언된 경고와 위협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맛두힘이라는 단어는 오직 '분산' dispersions이나 '사로잡힌 몸들' captivities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스오트는 적과 관련되어야만 한다.
슥 12:1도 환호의 구절이 아니다. 렘 23:33, 렘 23:34, 렘 23:36, 렘 23:38에서도 비슷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조롱하는 자들의 죄는 그들이 예레미야가 즐거운 예언을 의미한 맛사에 경고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씌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의 이엄중한 심판의 선언들을 조롱한 것이다. 그들은 조롱조로 예루살렘의 훌륭한 거민에 대해 그 받은 새로운 번거로운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모든 것은 그들이 요지를 파악했음을 증거해 준다. 그것은 단순히 예언이나 발언이 아니라 경고이었다.
이사야는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그가 메시지를 전할 때 이러한 경고의 형태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사 13:1(바벨론), 사 14:28(블레셋), 사 15:1(모압), 사 17:1(다메섹), 사 19:1(애굽), 사 21:1(바벨론), 사 21:11(두마), 사 21:13(아라비아), 사 22:1(이상의 골짜기), 사 23:1(두로)에서 나온다. 그는 사 30:6(남방 짐승)의 여섯 가지 화 가운데서도 이 단어를 쓴다. 이 메시지들은 성격상 모두 위협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사 19:16-25의 그것과 같은 장미 빛 약속을 부가하기도 한다.
그 밖의 경고들로 니느웨(나 1:1), 유다(합 1:1), 다메섹(슥 9:1), 예루살렘(슥 12:1), 이스라엘(말 1:1), 요아스왕을 살해한 사밧(대하 24:27), 요람왕(왕하 9:25)에 관한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