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skunevw(프로스퀴네오)
예배하다, 경의를 표하다, 경배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프로스퀴네오는 프로스(prov", ~에, ~을 향하여)와 퀴네오(kunevw: 입 맞추다)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proskunevw 는
(a) 프로스퀴네오는 '입 맞추다'를 의미한다(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
접두사는 헬라 역사 이전 시대에 행해진 제의 의식과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이집트의 조각들에는 예배하는 자들이 신에게(프로스) 입맞춤을 위해 손을 쭉 뻗고 있다.
(b) 헬라인들 사이에서는 이 동사가 신들을 경배하는데 사용되던 전문용어로서, '땅에 엎드리다, 부복하다, 무릎을 꿇고 경배하다'를 의미한다. 아마도 땅(즉, 지신)이나 신상에 입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바닥에 엎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를 가진 것 같다.
(c) 후에 프로스퀴네오는 통치자를 신격화하는 것과 로마 황제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d) 프로스퀴네오는 예배에서의 꿇어 엎드리는 외적인 행위 이외에도 경외심과 겸손을 나타내는 내적인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프로스퀴네오는 70인역본에서 200회 이상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샤하의 힛파엘형(절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사람 앞에서 절하는 경우나 또는 예배에 다 같이 사용된 말이다(창 18:2; 창 19:1; 창 22:5; 창 23:7, 창 23:12; 출 4:31; 레 26:1; 민 22:31; 신 4:19; 수 23:7, 수 23:16; 삿 2:12, 삿 2:17, 삿 2:19; 룻 2:10 등). 그리고 프로스퀴네오는 세기드(신하의 예를 다하다, ~에 경의를 표하다, 단 2:46; 단 3:5이하, 단 3:10이하, 단 3:14, 단 3:18, 단 3:28), 주아(부들부들 떨다, 전율하다, 단 6:26), 카라(무릎을 꿇다, 에 3:2; 에 3:5), 나샤크(입 맞추다, 왕상 19:18), 아바드(섬기다, 시 97:7)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프로스퀴네오는 신약성경에서 6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오로지 하나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마 18:26에서조차 왕은 하나님의 상징적 표상)에게 드리는(혹은 드려야만 하는) 예배만을 전적으로 의미하는 것 외에는 구약성경의 의미가 채택되어 보다 발전되었다. 행 10:25이하; 계 19:10; 계 22:8이하에서는 예배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드리는 것이지, 사도나 천사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 앞에 절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왕이시며(마 2:2), 주이시며(마 8:2), 하나님의 아들이시며(마 14:33), 전지전능하신 분(보기: 마 14:33; 막 5:6; 막 15:19)이시라는 사상을 명백하게 혹은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절한다는 것은 종종 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연결된다.
한편, 절하는 것은 강하게 요청하는 것을 나타내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도와주시는 주님에 대한 믿음, 구속자에 대한 믿음,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확신에 찬 믿음의 표시이다(예: 마 8:2; 마 9: 18; 마 15:25).
요 9:38에서 절하는 것은 신앙이 외적으로 반영되어 나타난 행동과 다름없다. 즉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며, 그분을 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분에게 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배하는 것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 특히 합당한 것이다(마 28:9, 마 28:17; 눅 24:52).
사단이 만물의 참된 질서를 뒤집어 놓으려고 예수님에게 절하라고 요구했을 때, 사단은 바로 이러한 행위로써 자기 자신이 하나님 한 분에게만 합당한 권위를 빼앗으려 했으며(마 4:10; 눅 4:8),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명령을 모두 팽개쳐 버린 하나님의 대적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b) 절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종교적 본성의 표시이다. 그의 예배(절)는 그의 신이 누구인지, 곧 진정한 하나님인지 혹 우상이나 귀신인지, 아니면 사단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참조: 계 9:20; 계 13:4, 계 13:8, 계 13:12). 왜냐하면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주로 예배, 무엇보다도 기도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에로의 부름은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 예배하라!" 즉 이것은 전능하시고 영광되신 그분을 창조자이며 심판자로 받아들이고 그 유일하신 주권을 인정하며 너를 주장한다는 것이다(계 14:7).
(c) 프로스퀴네오는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곳에서 '공중예배에 참여하다, 기도들을 드리다'(예: 요 12:20; 행 8:27; 행 24:11)를 의미한다.
이로부터 유래하여 요한계시록에서는 프로스퀴네오가 특수한 종류의 기도, 주로 경배하는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것의 특징적인 용례는 요한계시록 전반에 걸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경배 찬송의 표현에 나타나 있다(계 4:8-11; 계 5:8-10, 계 5:12-14; 계 7:10-12; 계 11:15-18; 계 12:10이하; 계 15:3이하; 계 16:5-7; 계 19:1-7).
이는 하나님(혹은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며, 전 세계에 걸쳐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존재(즉 감사하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선물에 관련된 것이 아님)와 그 역사하심(참조: 계 4:8-11; 통치, 계 15:3이하; 계 16:5-7; 구속, 계 5:8-10; 종말, 계 11:15-18)에 관련되는 것이다. 찬송은 다양한 언어와 사상들을 사용하며 하나님의 존엄함을 찬양할 새로운 표제들을 끊임없이 찾아내며 그의 이름에 합당한 말들을 찾아 최고로 찬양 받으실 공로와 속성(영원하심, 전능, 경의, 지혜, 거룩, 능력 등)을 주님께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찬송은 자주 더할 나위 없는 찬사의 형태를 취한다: "~이 합당하오니"(계 4:11; 계 5:9; 계 5:12), "구원하심"(계 7:10). 여기에는 감탄하는 기도들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할렐루야", "아멘" 계 7:12; 계 19:1, 계 19:3, 계 19:4). 이러한 모든 찬송들에는 범우주적인 선율이 화려하게 흐르는데, 이와 같은 경배 앞에서는 인간의 기원과 감사가 침묵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참조: 마 6:13).
(참조: H. Schonweiss; C. Maurer;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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