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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 全文(1948.7.24, 중앙청광장)

작성자정현규|작성시간23.06.16|조회수243 목록 댓글 0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

  ▷ 일시 : 1948년 7월 24일

  ▷ 장소 : 서울 중앙청광장

  ▷ 취임사 소요시간 : 약 20분

 

 

<주요 취임식 장면>

                                    ▲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기 이해 중앙청광장은 물론 멀리 세종로 거리까지

                                                  시민들이 운집해 있는 모습<사진/대통령기록관>

                                    ▲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우산을 들고 취임식장인 중앙청광장에 참석한 축하객들

                                                                                                                <사진/(사)월드피스자유연합>

                                                 ▲ 특유의 개량 한복을 입고 취임선서를 하고 있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

                                                                                                                 <사진/연세대 이승만연구원>

                ▲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역사적인 취임사를 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사진/국사편찬위원회>

 

 

 

<취임사 전문(全文)>

 

여러 번 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 은혜와 동포의 애호(愛護)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에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推戴)를 받는 나로는, 한편으로는 감격한 마음과 한편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禁)하기 어렵습니다.

기쁨이 극(極)하면 웃음이 변하여 눈물이 된다는 것을 글에서 보고 말로 들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나에게 치하(致賀)하러 오는 남녀(男女) 동포가 모두 눈물을 씻으며 고개를 돌립니다.

각처(各處)에서 축전(祝電) 오는 것을 보면, 누구나 눈물을 금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나는 본래 나의 감상(感想)으로 남에게 촉감(觸感)될 말을 하지 않기로 매양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석간장(木石肝腸)이 아닌 만큼 나도 뼈에 맺히는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40년 전에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이오,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사는 것이 오늘에 표명(表明)되는 까닭입니다.

 

오늘 대통령 선서하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무를 다 하기로 한층 더 결심하며 맹세합니다.

따라서 여러 동포들도 오늘 한층 더 분발해서, 각각 자기의 몸을 잊어버리고, 민족 전체의 행복을 위하여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국민된 영광스럽고 신성한 직책을 다 하도록 마음으로 맹세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맡기는 직책은 누구나 한 사람의 힘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책임을 내가 용감히 부담(負擔)할 때에 내 기능(技能)이나 지혜를 믿고 나서는 것이 결코 아니며, 전적으로 애국남녀(愛國男女)의 합심합력(合心合力)으로만 진행할 수 있을 것을 믿는 바입니다.

이번 우리 총선거의 대성공(大成功)을 모-든 우방들이 칭찬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 애국 남녀가 단순(單純)한 애국 성심(誠心)으로 각각 직책을 다한 연고(緣故)입니다.

그 결과로 국회 성립(成立)이 또한 완전무결한 민주제도로 조직되어 두셋(2, 3) 정당(政黨)이 그 안에 대표가 되었고, 무소속과 좌익(左翼) 색태(色態)로 지목을 받은 대의원이 또한 여러 명이 있게 된 것입니다.

 

기왕(旣往) 경험으로 추측하면, 이 많은 국회의원 중에서 사상(思想) 충돌로 분쟁 분열을 염려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가끔 극렬한 논쟁이 있다가도 필경(畢竟) 표결할 때에는 다- 공정(公正)한 자유 의견을 표시하여 순리적으로 진행하게 되므로, 「헌법」 제정과 「정부조직법」을 다- 공의(公義)대로, 다수결로 통과된 후에는 아-무 이의(異議) 없이 다- 복종하게 되므로, 이 중대한 일을 조속(早速)한 한도 내에 원만히 채결(採決)하여, 오늘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니, 국회의원 일동과 전문위원 여러분의 애국 성심(誠心)을 우리가 다 감복(感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국회의장(國會議長)의 책임을 이에 사면(辭免)하고 국회에서 다시 의장을 선거할 것인데, 만일 국회의원 중에서 정부 부처장(部處長)으로 임명될 분이 있게 되면, 그 후임자는 각기 소관 투표 구역에서 보궐선거로 다시 뽑게 될 것이며, 원만히 보결(補缺)된 후에 의장을 선거하게 될 듯 하며, 그동안은 부의장 두 분이 사무를 대임(代任)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의장 두 분이 그동안 의장을 보좌해서, 각 분야에서 도와 협의 진행케 하신 데 대해 또한 감사히 생각합니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조직에 대해서, 그간에 여러 가지로 낭설(浪說)이 유포되었으나 이는 다- 언론의 추측에 불과하며, 며칠 안으로 결정하여 공포될 때에는 여론의 추측과는 크게 같지 않을 것이니 부언낭설(浮言浪說)에 많이 주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부를 조직하는데, 제일 크게 주의할 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할 수 있는 기관(機關)을 만들 것입니다.

둘째는 이 기관이 견고해져서 흔들리지 않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사회적 명망(名望)이나 정당 단체의 세력이나 또 개인 사정상(私情上) 관계로 나를 다- 초월하고, 오직 기능(技能) 있는 일꾼들이 함께 모여앉아서, 국회에서 정한 법률을 민의(民意)대로 진행(進行)해 나갈 그 사람끼리 모여서 한 기관(機關)이 되어야 할 것이니, 우리는 그분들을 물색(物色)하는 중입니다.

어떤 분들은 인격(人格)이 너무 커서 작은 자리에 채울 수 없는 이도 있고, 혹은 적어서 큰 자리에 채울 수 없는 이도 있으나, 참으로 큰 사람은 능히 큰 자리에도 채울 수 있고 작은 자리에 채울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작은 자리 차지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참으로 큰 인물들이 있어, 무슨 책임을 맡기든지 대소(大小)와 고하(高下)를 구별치 않고, 작은 곳에서 성공해서 점점 큰 자리에 오르기를 도모하는 분들이 많아야 우리의 목적(目的)이 속히 도달될 것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함께 책임을 분담하고 일해 나간다면, 우리 정부 일이 좋은 시계(時計) 속처럼 잘 돌아가는 중에서 업적(業績)을 많이 나타낼 것이며, 세계의 신망(信望)과 동정(同情)이 날로 증진될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수립하는 정부는 어떤 부분적이나 어떤 지역을 한(限)하지 않고, 온 민족의 뜻대로 전국을 대표한 정부가 될 것입니다.

기왕(旣往)에도 말한 바이지만, 민주 정부는 백성이 주장(主張)하지 않으면 그 정권이 필경(畢竟) 정객(政客)과 파당(派黨)의 손에 떨어져서 전국이 위험한 데 빠지는 법이니, 일반 국민은 다- 각각 제 직책(職責)을 행(行)해서, 우선 우리 정부를 사랑하며 보호해야 될 것이니, 내 집을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필경(畢竟)은 남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과거 40년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의(義)로운 자를 옹호하고, 불의(不義)한 자를 물리쳐서, 의(義)가 서고 사(私)가 물러가야 할 것입니다.

전(前)에는 임금이 소인(小人)을 가까이하고 현인(賢人)을 멀리하면 나라가 위태하다 하였으나, 지금은 백성이 주장(主張)이므로 민중이 의(義)로운 사람과 불의(不義)한 사람을 명백히 판단해서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승인(承認) 문제에 대하여는 그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순서(順序)가 이대로 계속 전진(前進)된다면, 모든 우방의 호의(好意)로 속히 승인을 얻을 줄로 믿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注意)하는 바는, 승인을 얻는 데 있지 않고 먼저 국권(國權)을 공고(鞏固)히 세우는 데 있나니, 모든 우방이 기대(期待)하는 바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우리가 잘만 해 나가면 우리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도우며 후원할 것이니, 이것도 또한 우리가 일 잘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9월에 파리에서 개최하는 UN 총회에 파견할 우리 대표단은 특별히 긴중(緊重)한 책임을 가지는 만큼, 가장 외교상 적합한 인물을 택하여 파견할 터인데, 아직 공포(公布)는 아니 하였으나 몇몇 고명(高明)한 인물로 대략 내정(內定)되고 있으니, 정부 조직 후에 조만간 완전 공포될 것입니다.

우리의 대표로 「레이크 썩세스」(Lake Success)에 가서 많은 성적(成績)을 내고 있는 임영신(任永信) 여사에게 대해서는 우리 다- 고맙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재정(財政) 후원도 못하고, 통신상으로 밀접히 후원도 못한 가운데, 중대한 책임을 그만치 진취(進就)시킨 것을 우리는 다- 영구히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

 

이북 동포 중 공산주의자들에게 권고(勸告)하노니, 우리 조국을 남의 나라에 부속(附屬)하자는 불충(不忠)한 사상을 가지고, 공산당을 빙자(憑藉)하여 국권(國權)을 파괴하려는 자들은 우리 온 민족이 원수(怨讐)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나니, 남의 선동(煽動)을 받아 제 나라를 결단내고 남의 도움을 받으려는 반역(反逆)의 행동을 버리고, 남북의 정신통일(精神統一)로 우리 강토를 회복해서 조상의 유업(遺業)을 완전히 보호하여 가지고, 우리끼리 합(合)하여 공산당(共産黨)이나 무엇이나 민의(民意)를 따라 행(行)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기왕에도 누누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의 매국주의(賣國主義)를 반대하는 것이므로,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절실히 깨닫고 일제히 회심개과(悔心改過)해서 우리와 같이 같은 보조(步調)를 취하여, 하루빨리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해서, 정치와 경제상 모든 권리(權利)를 다 같이 누리게 되기를 바라며 부탁(付託)합니다.

만일에 끝내 깨닫지 못하고 분열을 주장(主張)해서 남의 괴뢰(傀儡)가 되기를 감심(甘心)할진대 지금부터 얼마지 않아 천의(天意)와 인심(人心)이 결코 방임(放任)치 않을 것입니다.

 

대외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와 다- 친선(親善)해서 평화를 증진하며, 외교 통상에 균평(均平)한 이익을 같이 누리기를 절대적으로 도모할 것입니다.

교제상 만일 친소(親疏)에 구별이 있다면, 이 구별은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요, 타동적(他動的)으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나라든지 우리에게 친선한 나라는 우리가 친선히 대우할 것이오, 친선치 않게 우리를 대우하는 나라는 우리도 친선히 대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40년간 우리가 국제상 상당(相當)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와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일본인들의 선전만을 듣고 우리를 판단해 왔었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우방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우리 자리를 찾게 되었던 우리가 우리말도 할 수 있고 우리 일도 할 수 있나니, 세계 모든 나라들은 남의 말을 들어 우리를 판단하지 말고 우리 하는 일을 보아서, 우리의 가치(價値)를 우리의 중량(重量)대로만 정(定)해 줄 것을 우리가 요청하는 바이니, 우리 정부와 민중은 외국의 선전을 중요히 여겨서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각국(各國) 남녀(男女)로 하여금 우리의 실정(實情)을 알려 주어서, 피차(彼此)에 양해(諒解)가 있어야 정의(情意)가 상통(相通)하여 교제가 친밀해질 것이니, 이것이 우리의 복리(福利)만 구함이 아니요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입니다.

 

새 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정부가 다- 필요하지만, 새 백성이 아니고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패(腐敗)한 백성으로 신성(神聖)한 국가를 이루지 못하나니, 이런 민족이 날로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舊習)을 버리고 새 길을 찾아서 날로 분발(奮發) 전진(前進)하여, 지나간 40년 동안 잃어버렸던 세월을 다시 회복해서, 세계 문명국(文明國)에 경쟁할 것이니,

나의 사랑하는 3천만 남녀는 이날부터 더욱 분투(奮鬪) 용진(勇進)해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만년(萬年) 반석(盤石) 위에 세우기로 결심합시다.

 

 

                                                                            대한민국 30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리 승 만

 

 

<용어 해설>

1) 촉감(觸感) : 외부의 자극을 피부를 통해서 느낌

2) 목석간장(木石肝腸) : 나무나 돌과 같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마음씨를 비유

3) 필경(畢竟) : 끝장에 가서는. 끝내

4) 채결(採決) : 의장이 토의할 안건의 찬성과 반대 여부를 물어서 결정함.

5) 부언낭설(浮言浪說) :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소문. 유언비어

6) 레이크썩세스(Lake Success) : 미국 NewYork주 동남부의 LongIsland에 위치한 마을로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임시 UN본부가 있었다.

7) 임영신(任永信, 1899~1977) : 상공부장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중앙대학교 설립자

8) 감심(甘心) 괴로움이나 책망 따위를 기꺼이 받아들임. 또는 그런 마음.

 

☞  참고 : 1950년 당시에 사용하던 어려운 용어는 오늘날의 쉬운 언어로 고쳤으며,

               또 어려운 한자말은 한자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각 정부 별 국정방향은 기조에 나와 있는 언론보도, 학술자료 등을 참고하였슴을알려드립니다.

 

 

【취임사로 본 제1공화국 <초대 이승만 정부>의 주요 국정방향】

 

가. 자유민주공화제 국가 수립

- 3・1독립운동 후 이승만을 비롯하여 서양에서 활동하던 우리 선각자들은 앞으로 세워질 한국인의 새 정부가 미국의 정체(政體)를 모방한 강력한 대통령 중심의 민주공화제 정부여야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특히 이승만 대통령은 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요소인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정치제도가 민주공화제라고 확신하였다.

-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원칙을 큰 토대로 하여, 그 안에 사는 모든 국민이 정치적・경제적 평등뿐만 아니라 남녀 간・지역 간의 차이를 없애 온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하고, 아울러 언론・출판・집회・종교 등 모든 분야의 자유권을 누려야 된다는 건국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이승만의 이 웅대한 건국 비전은 제헌헌법에 그대로 반영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 반공(反共) 노선의 확립

-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이름난 이승만 대통령은 청년기에 제정 러시아의 침략 책동을 보며 반(反)러시아 의식이 생긴 후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을 통해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하고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확실하게 반공(反共)사상으로 바뀌었다. 그 무렵부터 공산주의는 ‘원래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역해가며 국민을 지배하려는 사상체계’라고 규정하면서 공산주의에 입각한 정치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승만은 소련이 동유럽의 약소국가들을 위성국으로 병탄하고,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내전이 전개되는 상황 등을 지켜보며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한층 더 높였다.

- 이후 동서 냉전이 더욱 치열해지자 그는 1949년 5월 공산당이 국내에서 계급 간 알력을 조장하고 계급투쟁을 선동한다면서 이에 대처할 자기 나름의 이데올로기로서 ‘일민주의(一民主義)’를 제창하여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평등주의 국가 건설의 꿈을 실현하고 나아가 공산주의 확산에도 대처하려고 했다.

실제로 그는 6・25전쟁 때 이를 남북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북진통일(北進統一)’을 주창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에도 불참하는 등 임기 내내 반공주의를 기치로 내세웠다.

 

다. 국민교육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문명 부강 국가’ 건설

- 이승만은 일찍부터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으며,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 민족이 서둘러야 할 개혁과제로 국민 교육을 제일로 강조하고, 의무교육을 통한 전 국민의 민도(民度) 향상과 국민정신의 계발(啓發)에 노력했다.

- 또 한편으로는 한성감옥에서 집필한 논설에서 ‘이젠 천하 근본이 농사가 아니라 상업이다.’라고 주창하였으며, 광복 전후에 이루어진 일련의 경제정책관련 발언에서도 대한민국을 농업국에서 상공업국가로 탈바꿈시켜 산업화를 크게 촉진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 취임 후 상공업을 육성하여 국부(國富)를 늘리는데 정책의 주안점을 두는 한편, 1949년 6월 실시된 농지개혁 때도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원칙’에 따라 농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과거의 소작인들과 지주들이 다 함께 공존공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고 노력했다.

 

라. 기독교 국가 건설 포부

- 어린 시절에는 한학(漢學) 공부에 열중했던 이승만은 20대 초반 한성감옥에 투옥 수감 기간 중 기독교에 귀의하여 석방된 후 꾸준히 한국과 미국에서 선교와 교육활동에 종사했고,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이라는 경구(警句)를 좌우명으로 삼아 생활하며, 장차 한국인이 소생하고 번영할 수 있는 희망의 원천을 기독교에서 찾았다.

그 자신의 미국 유학 동기가 지극히 저열한 상태에 빠져 있는 한국인의 도덕 수준은 기독교 교육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기독교라는 새로운 정신적 토대 위에 새 나라를 건설할 것을 꿈꾸었다.

- 광복 후 귀국한 그는 1946년 3.1절 기념식 식사(式辭)에서 “한민족이 하나님의 인도 하에 영원히 자유 독립의 위대한 민족으로서 정의와 평화와 협조의 복을 누립시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1948년 5월 31일, 임시국회의장으로서 제헌국회 개원에 앞서 목사인 이윤영(李允榮) 의원에게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달라고 요청하였고, 7월 24일 거행된 초대 대통령취임식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하며 취임사를 시작할 정도로 기독교 국가건설을 염원했다.

 

 

- 자료 출처 :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취임사<도서출판 예중, 엮은이 정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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