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852
■ 3부 일통 천하 (175)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9장 여불위의 이상한 투자 (9)
한단성 50리 밖에 다다른 진소양왕(秦昭襄王)은 구원군을 파병한 위(魏)나라 초(楚)나라부터 위협하는 작전을 폈다.
각기 사자를 보내 윽박질렀다.
"지금 당장 군대를 돌리지 않으면 귀국의 영토부터 유린하겠소."
다분히 공갈이 섞인 협박이었지만 효과가 있었다.
위안리왕(魏安釐王)은 진소양왕의 위협에 겁을 먹고 대장 진비에게 명을 내렸다.
- 일단 행군을 멈추고 돌아가는 사세를 관망하라.
춘신군 황헐(黃歇) 역시 섣불리 조나라 땅으로 들어서지 않고 초나라 국경 근처에 머물게 하였다.
이로써 진(秦)나라와 조(趙)나라 간의 싸움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BC 257년(진소양왕 50년)이면 한단성 전투가 발발한 지 3년째로 접어드는 해였다.
자초(子楚)의 아들 정(政)이 세 살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위나라와 초나라와의 구원군이 도중에 진군(進軍)을 멈추었다는 소식이 날아들면서 조(趙)나라 왕실과 조정은 크게 불안해졌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장 큰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은 한단성(邯鄲城)에 볼모로 끌려와 있는 진나라 왕손 자초(子楚)였다.
언제 조효성왕의 입에서 '죽여라!' 라는 명이 떨어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여불위(呂不韋) 또한 극심한 초조감에 사로잡혔다.
'거금을 투자한 마당에 자초(子楚)가 죽으면 나는 망한다.'
하루하루 피말리는 나날을 보내던 여불위(呂不韋)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 탈출!
'성문만 빠져나가면 된다. 성밖에는 진왕(秦王)의 군대가 와 있질 않은가.'
여불위는 본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했다.
자초(子楚)를 찾아가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진(秦)나라 군사들의 공격이 심해질수록 공자께서는 위태롭습니다. 조만간 성밖으로 탈출시킬 터이니 공자께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십시오."
자초(子楚)는 두려움에 질려 여불위의 손을 움켜잡았다.
"선생만 믿소."
다음으로 여불위(呂不韋)는 한단성 남문을 지키는 장수를 찾아갔다. 평소 잘알고 지내는 편장급의 장수였다.
대뜸 황금 3백 근을 내놓고 말했다.
"나는 원래 양적(陽翟) 사람이오. 그런데 장사 때문에 한단에 와 있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소. 내가 지금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겨서 그러오. 장군께서는 특별히 아량을 베푸시어 나와 내 가족을 성문 밖으로 내보내 주시오."
신분이 확실한 데다가 평소 여러 가지 신세를 져왔기 때문에 그 장수는 두말 없이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승낙했다.
여불위(呂不韋)는 또 공손건을 찾아갔다. 공손건(公孫乾)은 자초의 감시를 맡은 조(趙)나라 왕족이었다.
자초의 집을 들락거리는 동안 여불위는 공손건과도 막역지간이 되었다.
역시 황금 3백 근을 뇌물로 바치며 부탁했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불안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양적(陽翟)으로 가려 합니다. 청컨대 공자께서는 남문을 지키는 장수에게 우리 식구가 나갈 수 있게끔 성문을 열어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공손건(公孫乾)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부탁을 받고 있는 터였다.
이럴 때 한 몫 챙기는 것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관행이기도 했다.
"여(呂) 대인께서 부탁하는 일인데 내가 아니 들어줄 수 없지요."
이런 식으로 여불위(呂不韋)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매수한 후 탈출하기로 정해놓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성문을 열어주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다.
여불위(呂不韋)는 자초에게 가서 귀띔해 주었다.
"날이 저물거든 집을 빠져나와 우리 아버지에게로 가십시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둘러대십시오."
자초(子楚)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괜찮으나 공손건을 따돌릴 자신이 없구려."
"공손건(公孫乾)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조치를 취해놓겠습니다."
자초와 헤어진 여불위(呂不韋)는 곧장 공손건의 처소로 향했다.
미리 시종들에게 돈을 주어 술과 음식을 준비시켜 놓았다.
"이제 오늘 밤이면 저는 한단성(邯鄲城)을 떠납니다. 그동안 공자에게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작별 인사 겸 은혜에 보답코자 술과 음식을 마련해 왔습니다. 변변치 않지만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때 아니게 공손건의 처소에는 술잔치가 벌어졌다.
여불위(呂不韋)는 연신 공손건에게 술잔을 건넸다.
공손건(公孫乾)은 주는 대로 받아마시다가 급기야 대취하여 자리에 곯아 떨어졌다.
한밤중이 되었다.
사위(四圍)는 고요했다.
'지금쯤이면 왕손께서 나의 집에 당도해 계시겠지.'
여불위(呂不韋)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건의 처소를 빠져나왔다.
처소를 지키고 있던 관리들도 대개는 술에 취해 벽에 기대어 자고 있거나 아직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니 과연 자초(子楚)는 처소를 빠져나와 여불위의 집에 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조희(趙姬)와 아들 정(政)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여불위(呂不韋)는 놀라서 물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자초(子楚)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집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조희(趙姬)가 토사곽란에 걸려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소. 그래서 조 대인에게 조희와 아들을 맡겨놓고 나만 혼자 이 곳으로 온 것이오."
조(趙) 대인이란 조희의 친정아버지를 말한다.
"아...............!"
여불위(呂不韋)는 낙심했다.
조희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요, 그 아들 정(政) 또한 실제로는 자신의 자식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더라도 조희(趙姬)와 정(政)은 훗날에 대비한 또 하나의 귀중한 기화(奇貨)였다.
그 기화(奇貨)를 졸지에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여불위로서는 예상치 못한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당장은 눈앞에 있는 자초(子楚)를 탈출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요. 어쩔 수 없군요. 우리끼리라도 떠납시다. 조희(趙姬)와 정(政)은 조 대인이 알아서 잘 보호하겠지요."
여불위(呂不韋)는 지체하지 않고 식구들을 데리고 남문으로 향했다.
이때 자초는 여불위의 가노로 변장한 뒤였다.
한단성 남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장은 여불위(呂不韋)로부터 뇌물을 받은 데다가 성문 책임자인 공손건의 명령을 받은 터라 아무 의심없이 성문을 열어주었다.
그 안에 진나라 왕손 자초(子楚)가 끼여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맙소. 다음에 오면 내가 거하게 술 한 잔 받아드리지요."
여불위(呂不韋)는 수문장에게 인사하는 여유를 부려가며 성문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이때 진군 장수 왕흘(王齕)의 영채는 한단성 서쪽 교외에 세워져 있었다.
양적(陽翟)으로 뻗은 길이 남문에서부터 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문으로 나온 여불위(呂不韋)는 얼마쯤 길을 가는 척하다가 이내 방향을 바꾸어 왕흘의 영채가 있는 서쪽 교외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날이 밝아왔다.
여불위 일행은 무사히 왕흘의 영채에 당도했다. 여불위(呂不韋)는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들에게 외치듯 말했다.
"여기 진나라 왕손께서 와 계시다. 지금 목숨을 걸고 한단성을 탈출해온 중이니 어서 왕흘(王齕) 장군께 안내하라."
막 침상에서 일어난 진군 대장 왕흘(王齕)은 왕손인 자초가 왔다는 말에 맨발로 뛰어나왔다.
자초(子楚)는 가노의 옷을 벗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왕흘 앞에 섰다.
왕흘(王齕)은 자초의 얼굴을 알보고 말했다.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마침 대왕께서 친히 여기 나와 계십니다. 대왕의 행궁(行宮)은 10리 밖에 있습니다. 지금 곧 그리로 모시겠습니다."
자초(子楚)와 여불위(呂不韋) 일행은 왕흘의 보호를 받으며 진소양왕의 행궁으로 옮겨졌다.
"오!"
뜻밖으로 손자의 얼굴을 대한 진소양왕은 놀라움과 감격을 금치 못했다.
자초(子楚)를 덥석 끌어안고 기쁨의 탄성을 토했다.
"세자가 너를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더니, 하늘이 도우시어 호랑이 굴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왔구나. 너는 어서 함양으로 가 네 부모를 안심시켜라."
자초(子楚)와 여불위(呂不韋) 일행은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진소양왕에게 하직한 후 수레를 타고 함양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