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45
■1부 황하의 영웅 (245)
제 4권 영웅의 길
제 31장 유랑의 시작 (2)
개선하는 진군(秦軍)의 행렬 뒤로 헝클어진 머리를 한 사람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진(晉)나라 대부들이었다.
그들의 형상은 흡사 들판을 헤매는 유령 같았다.
그들은 엄밀히 말해 포로라고는 할 수 없었다. 붙잡힌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주공인 진혜공(晉惠公)을 구출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포로가 된 진혜공(晉惠公)과 함께 행동하기 위해 자청하여 진군(秦軍)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괵사, 한간, 양유미, 가복도, 극보양, 극걸 등등.......
모두가 망명시절부터 진혜공(晉惠公)과 함께 지내오던 가신들이었다.
'못난 놈이 신하들은 잘 두었군.'
그들의 행동에 대한 보고를 받은 진목공(秦穆公)의 감상이었다.
'대관절 저런 군주의 어디가 좋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마음과 뭔지 모를 감동이 그의 가슴을 스쳐갔다.
황하를 건너 옹주(雍州) 접경에 이르렀다. 그 곳부터는 진(秦)의 영토다.
영대(靈臺)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진목공은 진혜공에 대한 처리를 결정하기 위해 중신들을 불러 모았다.
처리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 죽이는 것. 진(秦)으로 데리고 가는 것. 진(晉)으로 돌려 보내는 것.
중신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졌다.
"진혜공(晉惠公)은 악덕 군주입니다. 죽여 없애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렇게 주장한 사람은 공자 집이었다.
진혜공을 살려두어서는 두고 두고 진(秦)에 해악만 끼칠 거라는 것이었다.
"굳이 죽일 것까지는 없습니다. 옹성(雍城)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공손지(公孫枝)의 의견이었다.
아무리 못나고 패악한 군주라고는 하지만 진(晉)나라의 임금이다.
타국의 임금을 함부로 죽여 공연히 진(晉)나라 백성들의 원한을 살 필요는 없다.
일단 도성으로 데리고 가 진(晉)의 반응을 보자는 것. 이것이 공손지의 의도였다.
- 죽일 것인가, 데리고 갈 것인가.
이 두 가지 처리 방법을 놓고 진목공(秦穆公)은 고민했다.
'어렵군.'
그러는 사이 공자 집과 공손지(公孫枝)는 계속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거듭 내세우고 있었다.
"신은 무작정 진혜공(晉惠公)을 죽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 중이(重耳)를 진혜공 대신 진(晉)나라 군위에 올리자는 것입니다.
중이(重耳)의 어짊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무도한 자를 죽이고 어진 이를 올려 세우면
진(晉)나라 백성들도 모두 우리의 은혜에 감복할 것입니다."
"진(晉)은 대국입니다. 우리는 이미 진혜공을 포로로 하는 순간부터 진나라 백성들의 자존심을 꺾어버렸습니다.
모두들 우리 진(秦)을 원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진혜공(晉惠公)을 죽이면 그들의 분노는 더할 것입니다. 결코 진혜공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진목공(秦穆公)과 그 중신들이 진혜공(晉惠公)의 처리 문제를 놓고 한창 논의하고 있을 때였다.
뜻밖으로 도성에서 여러 명의 내시들이 진목공을 찾아 영대(靈臺)까지 찾아왔다.
"너희들이 여기까지 웬일이냐?"
진목공(秦穆公)은 놀라서 물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들은 한결같이 상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희(穆姬)가 세상을 떠났는가?'
벌써부터 가슴이 떨리고 있었다. 진목공(秦穆公)은 차마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내시들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내시들이 진목공에게 절을 올리고 나서 말했다.
"주공께서는 군부인 목희를 살려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 속히 아뢰도록 하라!"
"지금 도성 안 궁중에서는 군부인께서 자진하려 하고 계십니다."
"목희(穆姬)가 자진을?"
내시들이 전하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목희(穆姬)는 진목공(秦穆公)의 부인이자 진혜공(晉惠公)의 누이동생이다.
그녀는 친오라비 신생(申生)을 닮아 마음이 어질고 형제들 간에 우애의 정이 깊었다.
따라서 그녀는 진, 진의 한원대전(韓原大戰)을 몹시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진목공이 한원대전에서 승리하여 진혜공을 포로로 잡아 귀국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오라버니가 죽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목희(穆姬)는 이내 상복을 입고 머리에 하얀 천을 둘렀다.
그러고는 후원에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게 하고는 어린 나이의 세자 앵(罃)과 그 동생 홍(弘), 딸 간벽(簡壁)등을 데리고 그 위로 올라가 내시들을 불러 말했다.
- 나의 주인이시자 이 나라의 주인이신 진목공(秦穆公)께 내 말을 전하여라.
하늘이 재앙을 내리시어 나의 시집인 진(秦)나라와 친정인 진(晉)나라가 우호를 잃고 서로 싸워 마침내는 친정 오라비인 진혜공이 포로의 몸이 되었다.
이는 곧 나의 불행이요, 두 나라의 불행이다.
만일 진혜공(晉惠公)이 죽거나 도성으로 끌려 들어온다면 나는 이 장작더미에 불을 지펴 이 아이들과 함께 타 죽을 것이다.
나의 살고 죽는 것이 오로지 주공께 달렸으니, 너희들은 가서 나의 이 마음을 전하도록 하라.
한 마디로 진혜공(晉惠公)을 살려 돌려보내지 않으면 자신도 불에 타 죽을 것이라는, 협박어린 애원이었다.
내시들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진목공(秦穆公)은 크게 놀랐다.
"목희(穆姬)는 참으로 어질도다. 진혜공이 목희에게 맹세한 내용도 지키지 않았건만,
목희는 오라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려 하는구나."
진목공(秦穆公)은 새삼 자신의 부인인 목희(穆姬)에게 감동을 느꼈다.
"내 어찌 못난 진(晉)나라 군주로 인해 어진 내 부인을 잃을쏜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마음을 정했다.
진혜공을 이 곳 영대(靈臺)에다 가두어 두어라. 다음 일은 차후에 의논하여 정하리라!"
진목공(秦穆公)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진혜공(晉惠公)을 영대의 초막에 가두어두고 엄중히 지키게 하였다.
이때부터 영대(靈臺)는 감옥으로 변하였다.
진목공은 일단 도성인 옹성(雍城)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같은 진목공의 조치에 진(秦)나라 과격파 신하들은 불만이 많았다.
공자 집을 비롯한 반(反) 진(晉)나라파 중신들은 연일 진목공을 찾아가 간언했다.
"진혜공(晉惠公)을 살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들은 내가 상복 입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진혜공(晉惠公)을 죽이면 목희(穆姬)가 죽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진목공(秦穆公)은 목희의 상을 치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목공과 과격파 중신들은 좀처럼 타협을 보지 못했다.
그럴 때 공손지(公孫枝)가 절묘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진혜공 대신 그 아들인 세자 어(圉)를 인질로 잡아두면 진혜공은 감히 우리에게 못된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뒷날 세자 어가 군위를 계승했을 때 그에게도 덕을 베풀면 진(晉)나라는 대대로 우리 진(秦)에게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
공손지(公孫枝)의 말을 들은 진목공은 모처럼만에 얼굴을 환하게 폈다.
"그렇게 하면 목희(穆姬)의 목숨도 구할 수 있고, 우리의 체면도 살고, 진(晉)의 원망도 면할 수 있겠구나."
그러고는 즉시 공손지(公孫枝)를 진혜공(晉惠公)이 갇혀 있는 영대(靈臺)로 보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