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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형중 열국지 388

작성자김상규|작성시간22.02.02|조회수170 목록 댓글 0

[列國誌] 388

■ 2부 장강의 영웅들 (44)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5장 난세의 군주들 (8)


송소공(宋昭公)은 맹제 땅으로 향하는 도중 도성에 변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호종 신하 탕의제(湯意諸)가 송소공(宋昭公)의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다른 나라로 몸을 피하십시오. 다음날 다시 군위를 찾으셔야 합니다."

송소공(宋昭公)의 입가에 허허로운 웃음이 스쳐갔다.

"소용 없는 일이오. 위로는 할머니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까지 모두 나를 미워하고 있소.

나는 벌써부터 왕희(王姬)의 마음을 알고 있었소.

도망간다 해도 어느 나라가 나를 귀하게 받아주겠소?

다른 나라에서 냉대를 받다 죽느니 차라리 내 땅에서 죽겠소."

행렬을 멈추게 한 송소공(宋昭公)은 밥을 짓게 하여 시종들을 배불리 먹였다.

식사가 끝나자 모든 시종을 불러놓고 말했다.

"죄는 이 한 몸에 있을 뿐, 너의들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다.

너희들이 나를 모신 지 수년이 지났건만, 그동안 내가 너희의 수고에 보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수레에 실린 것들은 모두 부고(府庫)의 보물이다.

너희들에게 나눠주려고 일부러 가지고 온 것이다.

너희들은 이것을 나눠갖고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라. 나와 함께 죽을 필요는 없다."

시종들이 슬피 울며 아뢴다.

"주공께서는 어서 출발하십시오. 뒤쫓는 군사가 있으면 우리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습니다.“

"공연히 생명을 버리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나만 이곳에서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너희들은 이제 나의 시종이 아니다."

이러는 중에 화우(華耦)가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해왔다. 그들은 송소공을 에워싸고 창칼을 들이댔다.

화우가 시종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무도한 임금만을 죽일 뿐이다. 그 외 사람은 안심하라."

송소공(宋昭公)도 고개를 끄덕이며 좌우 시종들에게 어서 떠나라고 손짓했다.

몇몇 사람이 눈치를 보며 떠났으나 대부분의 시종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화우(華耦)는 화가 났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는 칼을 빼어들고 송소공 곁에 서 있는 사성 탕의제를 향해 말했다.

"군조모의 분부요. 탕의제(湯意諸)는 곧 궁으로 돌아가시오."

탕의제(湯意諸)가 화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하 된 자가 어려운 고비를 당하여 몸을 피하면, 비록 살아 숨 쉰다고 할지라도 죽은 거나 진배없소."

더 이상 말해보아 소용없음을 안 화우(華耦)는 칼을 뽑아들고 송소공의 목을 치기 위해 덤벼들었다.

탕의제가 그 앞을 가로막고 화우와 싸움을 벌였다.

이를 본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탕의제를 죽였다.

그사이 화우(華耦)가 송소공의 목을 베었다.

송소공(宋昭公)의 재위기간 9년.

송소공을 따라왔던 시종들 중 달아나지 않은 자는 모두 도륙당했다. 또 하나의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송소공(宋昭公)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부터 그동안 어중간한 태도를 보였던 조정의 신료들은 태도를 돌변했다.

그들은 집정관인 우사 화원(華元)과 좌사 공손우(公孫友)를 앞세워 왕희의 처소로 들어갔다.

"포(鮑) 공자는 후덕하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마땅히 군위를 이어야 합니다.“

왕희(王姬)가 바라던 바가 이루어지던 순간이었다.

마침내 공자 포(鮑)가 임금에 올랐다. 그가 송문공(宋文公)이다.

BC 611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나라 임금 제의공(齊懿公)이 신지(申池)에서 피살되기 2년 전의 일이기도 하다.

화우는 새로 군위에 오른 송문공을 조하(朝賀)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자다가 별안간 소리를 내지르며 일어났다.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집안 식구들이 달려왔으나 이미 화우(華耦)의 숨은 끊어진 뒤였다.

사람들은 화우(華耦)의 이러한 죽음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 지난날 그의 할아버지 화독은 송상공을 죽이더니, 이젠 그 손자가 송소공을 죽였다.

화우가 급살병으로 죽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난신적자(亂臣賊子)는 원래 씨가 있는 것인가.

장미와 가시나무가 같을 수 없음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새로 임금이 된 송문공(宋文公)은 끝까지 송소공을 따른 탕의제(湯意諸)의 고결한 죽음을 높이 샀다.

그의 시신을 거두어 후히 장사 지내고 그 동생 탕훼(湯虺)를 등용하여 사마에 임명했다.

그리고 공자 수(遂)를 사성으로 삼아 도성의 살림을 꾸려가게 했다.

송나라에서 발생한 이 변란은 곧 중원 여러 나라에 퍼져나갔다.

진(晉)나라 재상 조순(趙盾)은 지난해 조카를 죽이고 임금에 오른 제의공을 치기 위해 출병했다가 뇌물을 받고 그냥 돌아온 일 때문에 비난의 소리를 들었었다.

- 이번에야말로 맹주국으로서 송(宋)나라를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순림보(盾林父)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송나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다.

아울러 위(衛), 진(陳), 정(鄭) 세 나라에게 사자를 보내어 호응케 했다.

순림보는 송나라 국경 밖에서 세 나라 군대와 연합한 후 기세좋게 상구성을 향해 쳐들어갔다.

송문공(宋文公)은 4개국 연합군이 자기 나라로 쳐들어 온다는 보고를 받고 대책회의를 열었다.

우사 화원(華元)이 계책을 내었다.

"지난날 연합군이 제나라를 쳤을 때 제의공은 연합군 대장 조순에게 뇌물을 바침으로써 국난을 해결한 바 있습니다.

우리도 또한 뇌물로써 순림보를 매수하여 저들의 침공을 막아내십시오."

송문공(宋文公)은 화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화원(華元)에게 많은 보물을 내주어 순림보의 영채로 보냈다. 화원은 순림보를 만나자마자 공손히 절을 올리며 호소했다.

"이번 변란은 백성들이 공자 포(鮑)의 후덕함을 공경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결코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송소공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순림보(旬林父)는 화원(華元)이 가지고 온 수레의 보물들을 이미 보았다.

싸움에서 이겨보았자 얻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정도 보물이라면 나라 살림의 반 년치 예산에 해당한다.

그는 황금과 보물이 가득 실린 수레를 받으려 했다.

그때 송나라 사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鄭)나라 장수 석초(石楚)가 황급히 달려들어와 순림보를 말렸다.

"우리 세 나라가 북을 울려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온 것은 송나라의 무법을 응징하고 후세를 경계하기 위함이었소.

만일 장군이 송나라와 화평한다면 이는 난신적자(亂臣賊子)를 장려하는 것밖에 되지 않소."

순림보(旬林父)가 대답했다.

"제나라나 송나라나 다를 바 없소. 우리가 이미 제나라를 용서해주었는데, 어찌 송나라만 징계해야 하오?

더욱이 백성들이 원한 것이라고 하니 난신(亂臣)의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소이다."

순림보는 끝내 화원이 바치는 황금과 보물을 접수하고 송문공(宋文公)의 군위를 인정한다는 서명까지 한 후 철군하였다.

정(鄭)나라 장수 석초(石楚)로부터 이러한 보고를 받은 정목공은 비웃음이 섞인 어조로 탄식했다.

- 진(晉)나라 사람은 뇌물을 너무 좋아한다.

그들의 패업이란 결국 재물을 얻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진(晉)나라는 두 번 다시 중원의 맹주가 되기는 틀렸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다시 초(楚)나라를 섬겨 이 나라의 평안을 도모해야겠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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