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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플라벨, "은혜의 방식, 1장 은혜의 방편

작성자유정식|작성시간20.03.04|조회수287 목록 댓글 0

1장 은혜의 방편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30).

 

본문을 통해 사도는 고린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택이 주는 크나큰 위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이 필요로 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채워주는 영혼의 참되고 안전한 행복의 전제인 것입니다.

 

사도는 이어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우리에게.....”라는 말씀을 통해 택함 받은 백성들이 그러한 탁월한 특권들을 입게 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네 가지의 주목할 만한 사항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모든 은택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택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받아들여야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떠나서는 은택을 입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택함 받은 자로 구원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택이 우리에게 실제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먼저 속전(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요구되는 값)이 지불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피 흘리심으로 속전의 총액을 지불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밖에 있는 자들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속전은 우리와 무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그 피가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 한 우리는 죄와 비참속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자유케 되는 일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 인격에 적용되어야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5:10-11).

 

그러나 그리스도를 실제로 우리의 영혼에 적용하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세 번째 요점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성부께서는 구원의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친히 그 방편을 지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자께서 그 모든 계획을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계획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인들의 모든 필요에 완전히 부합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온전케 하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 영혼은 어떠한 유익도 얻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는 굶주리고 헐벗은 영혼의 양식이자 의복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은사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모든 역사를 그리스도께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회심의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의 은사를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당하신 일이 사실상 우리에게 그대로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장사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다고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임 당하신 표본을 따라 우리 속에서 죄를 죽이는일을 적용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처럼, 우리가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까지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영적 소성의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가지신 생명을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구속을 적용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 뿐만 아니라 거듭남과 소명과 거룩하게 하심과 회심 등의 모든 역사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중생’(거듭남)은 성령께서 영혼에 주입하신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새로운 성향을 말합니다. 이것이 모든 거룩한 행위들의 원리가 됩니다.

 

소명은 성령의 부르심에 따라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영혼이 구원을 위해 부르시는 복된 소리에 응답하고, 현재의 자리를 떠나 그 부르심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화는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러운 죄악의 행실을 벗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오직 주님을 섬기는 일에 온전히 자신을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심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영혼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입니다.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자신의 영혼을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사람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적용되기 시작하면, 영혼은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새로운 원리와 법칙을 따라 삶을 영위해 나가는 새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의 섭리는 반드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전제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적용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2에서 사도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여러 요인들의 유기적 작용 과정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사도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리스도의 피에 성령님의 거룩케 하심이 첨가되어야 함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건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그 피가 우리 영혼에 실제로 뿌려져야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철저하게 성부의 주권적인 선택의 범주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8:30).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17:6).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들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들이 바로 성령께서 역사하실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행하시는 경륜은 성부와 성자께서 보내신 사명에 준합니다. 아버지께서 행하신 것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 그리스도처럼(5:19), 성령님 역시 아버지와 성자로부터 들은 것 이외에 어느 것도 스스로 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본질이 하나이십니다. 그 뜻과 의도 역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각각 다른 뜻과 의도를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심을 통해 사람들을 구분 지으셨습니다. 그들은 택하심을 받은 자들과 버리심을 받는 자들로 나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절대적인 주권으로부터 비롯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살전1:4-5). ‘상태의 변화성품의 변화등을 통해 그들이 다른 이들과 구분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변화 받은 사람들이 가지는 성품은 그들이 가졌던 원래의 성품과 완전히 다른 차이를 보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을 새로운 성향과 성품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가지는 기쁨은 택함 받지 못한 외인들이 결코 맛볼 수 없도록 감추어지고 봉인된 즐거움입니다. 루터는 복음으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달콤함은 라는 인칭 대명사 안에 들어 있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2:20). “소자여 안심하라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9:2).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라는 대명사를 제거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러한다면 여러분이 택함 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말미암아 느낄 수 있는 달콤함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또한 확신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복음에 대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빼버린다면 기쁨과 위안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우리 영혼에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적용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칭의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단번에 성취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지혜와 거룩함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시는 일은 다릅니다. 완전한 거룩을 이루기까지 느리고 점진적인 단계를 거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통한 내면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알게 되는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은 아침의 빛같이 영혼 속에서 자라갑니다.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4:18).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모든 은혜는 계속 자라납니다. 우리가 다 자란 식물을 보고 성장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거룩함의 성장도 그러합니다. 영혼의 내면적 성장은 그리스도와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의 충만함과 완전함을 향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의와 지혜와 거룩함과 구속하심은 각각 전가’(imputation), ‘새롭게 하심’(renovation), ‘영화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전가의 방식으로 새롭게 하심으로 지혜와 거룩을, ‘영화의 방식으로 구속하심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교황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방식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우리 속에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의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교리는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신자가 직접 행한 것으로 인정하시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신자들에게 전가해 주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의롭게 할 수 없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전가해 주신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전가의 방식을 통해서만 우리의 것이 됩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죄가 전가의 방식을 통해 우리의 죄가 된 것처럼,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의 역시 전가의 방식을 통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5: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것은 그 의가 가진 고유한 가치가 우리에게 옮겨짐으로 우리가 의로운 자들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적 의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지혜거룩함을 우리에게 적용하실 때는 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대표자의 원리 가운데 우리에게 전가된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지혜거룩함나누어 주시는’(imparting)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성령님의 새롭게 하시는 조명과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지혜와 거룩함의 은혜가 우리 인격의 실제적인 소유로 자리잡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거듭남을 입은 사람들에 한해서입니다. 우리 중 그리스도 안에 있는 탁월함을 본래 가지고 있던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찬란한 의의 두루마기를 값없이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공로를 자랑하려 들지 마십시오. 모든 영광은 온전히 그리스도께 돌려져야 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으로부터 찬미를 받아야 마땅한 분이십니다. 거룩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게 된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마음의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께 돌리십시오. 그리고 그러한 특권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십시오. 복음의 특권에는 여러분들이 행해야 할 마땅한 의무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칭의성화를 서로 무관한 것으로 여기며 복음을 능멸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거룩을 의와 분리시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종을 가리는 덮개쯤으로 여기는 자들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성화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룩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임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칭의와 성화가 서로 별개의 것이라면 성결은 필요치 않습니다. 성화는 우리 영혼의 체질과 성품을 변화시켜 하늘을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이땅에서 선한 행실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위대하신 구속주를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와 그분의 모든 은택들이 여러분의 것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만족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외적인 어려움으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과 세상의 것들을 비교해 본다면 여러분에게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면류관들과 금 홀을 전부 팔아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장 작은 긍휼 하나 조차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음에도 여러분이 더 받아 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범사에 만족하고 감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나님의 베푸신 모든 자비하심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그 모든 영광의 특권을 받게 되다니요! 그 놀라운 자비하심에 비교하여 세상에서 잠시 처한 조건들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떠한 조건에 처해 있든지 말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이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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