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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플라벨, "은혜의 방식", 6장 믿음의 행사

작성자유정식|작성시간20.03.10|조회수225 목록 댓글 0

6장 믿음의 행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하나님의 성령의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는 일에 대해 영혼이 믿음을 가지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능동적으로 부응하는 일입니다. 본문이 바로 이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참여하여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문제를 믿음의 행사가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에서 권세라는 말은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같이 양자(養子)의 직위나 권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누리게 되는 현세의 은택과 내세에서 받게 될 하늘의 복된 기업에 대한 권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영접하는 자들입니다. 본문은 그들을 믿음을 가진 자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은택을 누릴 지위와 권리를 부여 받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접믿음의 구체적인 행사를 의미합니다. 많은 은혜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권리를 주는 은혜는 오직 믿음뿐입니다. 믿음의 행사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은 그가 누구이든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3:11).

 

영접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믿음의 본질과 그에 대한 적절한 행사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고, 그 이름을이라는 목적어로 믿음의 행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분의 인격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행사로 취해야 할 목표가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의 행사에 있어서 본성적인 무지의 흑암 속에 있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영접해야 할 분이 누구이신지, 그분의 거룩한 직무들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무지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은 영적인 빛으로부터 나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영적인 지식을 말하고 있습니다(53:11). ‘아는 것믿는 것은 불가분해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6:40).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배운 자들이 당신께 나아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6:45).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의 행사는 지식의 인도와 안내를 받는 것입니다. 그 빛이 우리로 하여금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심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이해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데 있어서 매우 필연적인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려면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은 물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에 대해 알고 깨닫는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지식 자체가 구원 받을 만한 믿음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의 기초와 터전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영혼은 자신의 시각에서 불확실한 것에 대해 믿음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기까지 영혼은 추정과 견해의 단계를 거칩니다. 자신의 견해가 형성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영혼은 보다 기울어진 쪽으로 찬동하는 경향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경향이 지속되면 결국 영혼은 확고한 찬동, 즉 믿음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단계에 돌입한 지성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지각을 가지게 됩니다.

 

마음의 승낙과 선택역시 그리스도의 영접이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즐거이 헌신하니....”(110:3). 죄인들의 의지를 이처럼 변화시키는 것이 복음이 가진 목적과 의도입니다. 바스퀴이즈(Vasquez)가 말한 것처럼, 어떠한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일(믿음)은 지성과 함께 반드시 마음의 의지를 필요로 합니다. 의지의 승낙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산물입니다(1:19). 죄로 인해 맞게 될 임박한 진노를 피할 소망의 문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하심으로 우리의 의지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선택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에 함축된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의 요소는 복음에 대한 부응입니다. 믿음은 복음적 제안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전15:11). 복음은 주님을 받아들이라는 것 외에 다른 조항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조항에 대해 단 두 가지의 선택만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든지, 그렇게 하지 않든지 말입니다.

 

복음은 매우 진지하고 사실적으로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완전한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왕의 직분을 갖추신 분으로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무지함을 깨닫는 자는 선지자로서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의 죄책을 아는 자는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넘어뜨리려는 강력한 죄악의 부패를 아는 자만이 그것을 제압하실 이신 그리스도께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 이 세 가지의 직무 모두가 있다는 것을 아는 신자들은 그 은혜를 감복해하며 그리스도 전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그 삼중직 모두를 함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전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과 중보 이외에 어떠한 것도 섞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의를 부분적으로 의뢰하고 나머지를 자기 자신의 의로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불완전한 분인양 만들지 마십시오.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완전한 분이십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근거로서의 의가 오직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아는 자만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께 감사하지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도 않습니다. 자신들의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갑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지위와 권리, 모든 특권과 은택을 누리게 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구원 받을 만한 분명한 믿음의 행사입니다.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의 기업에 대해 권한을 갖게 하는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권을 누릴 자들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주어질 특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된 신자들 속에는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발견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그리스도를 진실로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정도와 성질에 따라 찬동’, ‘영접’, 그리고 확신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황주의자들은 찬동의 요소에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국한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찬동자체만으로는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확신은 다릅니다. ‘확신은 매우 탁월한 신자들 속에서만 발견되는 높은 수준의 믿음의 행사인 것입니다. ‘확신은 단순한 찬동과 달리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관점을 가집니다. ‘영접은 그리스도 전체를 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신자들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의 행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매우 큰 수고를 동반하는 일입니다. ‘영접은 인간이 가진 부패한 본성을 중심 자리에서 몰아내고 부인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보배롭고’(벧후1:17), ‘경건의 큰 비밀’(딤전3:16)등의 칭호와 수식어로 높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은혜는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믿음은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우러러보는 보배로운 눈입니다. 광야에서 놋뱀을 바라보았던 사람의 눈처럼, 믿음은 그리스도로부터 영혼을 치료하는 은택을 끌어내는 통로이자 도구이며(2:8)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구원의 문을 여는 황금 열쇠인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는 입니다. 영적 생명을 얻을 실질적인 방편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많은 부유한 복락이 영혼에 들어오도록 열려져 있는 문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향해 나아가는 문인 것입니다(1:6). 믿음은 그리스도를 배우자적 사랑의 특별한 대상이 되게 합니다(5:29). 믿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비참에 대한 연민을 유도해 내는 것입니다(4:15). 그리고 죄인들은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하고 완전한 의를 포용하고, 죄인들의 모든 죄책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면제되어 완전한 용서로 인쳐지는 것입니다.

 

, 복된 믿음이여! 누가 그것의 가치를 헤아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믿음이 전달하는 그 용서의 은혜로 우리의 더러운 영혼은 가려지고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믿음이 이와 같이 우리 영혼으로 하여금 그러한 효력을 발휘한다면 이 한 가지의 국면만으로도 믿음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습니다. ‘칭의의 도구로서 믿음은 우리의 영적 평안과 기쁨과 위로의 샘인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는 평안과 기쁨의 씨앗입니다. 그 씨앗의 열매가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그러한 주권의 상태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영혼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혼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의 영적 생명력을 보전해 주는 방편입니다. 신자들이 누리는 기쁨과 평안, 소망, 인내가 모두 믿음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선입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에 대해 가지는 교황주의자들의 관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 행위 자체를 율법의 성취로 여기실 것이라는 복음적인 우리의 의를 말합니다. 그들은 믿음의 행위 자체가 자신들을 의롭게 한다고 주장하는데, 알미니안들이 가지는 의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영광의 보좌에서 끌어 내리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신 것 외에 그 어느 것도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이루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을 칭의의 도구로 보는 견해에 찬동합니다. 이것은 믿음을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으로 여기는 견해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가치를 가장 높이는 견해인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면서 다이아몬드를 감싸고 있는 금의 가치보다 다이아몬드 자체의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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