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
학생 조나단 에드워즈는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초원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위엄과 자비가 갑자기 감미롭게 느껴졌다. 위엄과 자비가 감미롭게 결합되어 있고 위엄과 온화함이 결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감미롭고, 부드럽고, 그리고 거룩한 위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위엄찬 상냥함이었고, 두려운 달콤함이었고, 지극히 높고, 위대하고 그리고 거룩한 상냥함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의 모든 것들 속에 잔잔하고 감미롭게 드리우고 나타나는 것 같았다.”
자연은 지혜롭게 설계되었고 자연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전시하고 반영하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자연은 어떤 영적인 실체를 그려내 준다. 에드워즈는 자연을 하나님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회로 보았고 에드워즈는 이런 명확한 성경적 이유 때문에 자연을 매우 사랑했다.
“하나님의 탁월하심,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순결함과 사랑이 만물 안에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해, 달 그리고 별, 구름과 푸른 하늘, 풀, 꽃, 나무, 물과 온갖 자연,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깊이 사로잡았다. 나는 자주 하나님의 감미로운 영광을 보기 위해 밤에는 앉아서 오랫동안 달을 바라보고 낮에는 구름과 하늘을 많이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창조주와 구속주에 대한 묵상은 나직한 노래로 바뀌었다.”
“하나님 안에는 모든 선이 무한히 충만하게 존재한다. 모든 완전성, 온갖 탁월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무한한 행복이 충만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충만함은 퍼져 나와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흘러 넘쳐 전달되어야 한다. 선의 무한한 원천에서는 선의 물줄기가 풍성하게 흘러나올 것이다. 빛의 무한한 근원에서는 충만한 빛이 발산되어 사방 모든 곳에 비췰 것이다. 빛과 지식의 무한한 원천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지식과 이해를 전달하는 빛줄기가 흘러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합당한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 도덕적 완전성 그리고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의 무한한 원천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거룩함이 쏟아져 나와 전달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는 기쁨과 행복이 무한히 충만하기 때문에, 기쁨과 행복은 발산될 것이고, 햇빛이 태양에서 나오는 것처럼, 풍성한 기쁨과 행복의 물줄기가 기쁨과 행복의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이다.”
성경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창조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 창조 세계는 하나님이 정한 목적(가장 주된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다)을 위해 창조된 종속적인 영역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면서 하나님을 자연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심각한 신성모독이다. 세상은 여러 모로 아름답지만 이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뚝 솟은 네온사인처럼 번쩍인다.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곳 어디에나 ‘온갖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지으신’ ‘알파와 오매가’이신 분의 그림과 상이 존재한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와 단절되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증언하지 않은 채로 아무런 진리의 말씀도 주지 않으시면서 타락한 인류를 그냥 내버려 두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에드워즈는 모형론이라고 불리는 이론의 타당성을 줄곧 강력하게 주장했다. 모형론이란 성경에 나오는 실재가 그 자신을 넘어 더 큰 실재를 예표하는 것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학자들은 다윗 왕이 다윗 왕보다 훨씬 높고 위대한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생각한다. 에드워즈는 창조 구석구석의 모든 것이 세상에서 발굴된 무수한 ‘자연 모형’으로서, 창조주를 어떤 식으로든 증언하고 있다고 믿었다. 에드워즈는 더 낮은 피조물은 더 고등한 피조물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위대한 계획 속에서 ‘자연적인 것’을 ‘영적인 것’의 모형으로 주셨다. 에드워즈는 ‘모든 것이 이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에드워즈가 창조 질서를 생생하게 탐구한 것은 자연을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의 전시회로 보았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인류가 창조주를 믿도록 자극하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주와 창조주의 진리에 대한 파편들을 세상에 친히 심어 두셨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가 장미, 바다. 누에 또는 뱀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손과 마음을 보라는 의미다. 에드워즈의 하나님은 설계자이면서 동시에 예술 애호가이시고 교사이시다. 이 세상 자연은 자연을 창조한 분의 영광과 기쁨과 의도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의 작품들은 타락의 부패에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에드워즈 눈에는 창조 세상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3장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에드워즈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기 위해 세상에 보냄 받은 아름다운 그릇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다(골1:15, 히1:3).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자신의 영광을 가리셨지만 다른 무엇과도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계셨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여러 글에서 그리스도를 아름다움의 화신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신다.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 설교의 일부분이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표상 가운데 성경에서 사용되는 표상보다 더 탁월하고, 아름답고, 좋고 유익한 표상은 없다. 그리스도는 엄청난 능력, 영광스런 정복과 승리로 인해 사자로 불리고, 위대한 사랑, 동정과 연민으로 인해, 자비와 연민으로 자신을 낮추심으로 인해, 겸손, 온유 그리고 위대한 인내로 인해, 어린 양으로 불린다. 그리스도는 양처럼 도살장에 끌려가면서도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영혼에 영적인 음식과 자양분을 공급하시기 때문에 생명의 떡이요 생명의 물이라고 불린다. 그리스도는 자기 몸의 지체들에게 생명을 전달하시고 포도 열매가 몸에 원기를 붇돋아 주듯이 영혼에 위로를 주기 때문에 참 포도나무라고 불린다. 그리스도는 영혼의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생명이라고 불리고, 자신의 초월적인 아름다움과 향기로 인해 장미, 백합 그리고 여러 가지 것들로 불린다. 그리스도는 밝은 새벽별, 의의 태양이라고 불린다. 세상 빛으로 불린다.”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특별한 광채를 나타내셨다.
“성부 하나님이 빛의 무한한 원천인 데 비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빛을 전달하는 분이시다. 성부 하나님을 태양에 비유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거기서 흘러나오는 햇빛과 같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세상을 밝히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되셨다.”
회심이란 ‘의지와 감정’이 일깨워져 구원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자는 ‘영적인 잠과 죽음’에서 영적인 생명에로 일으킴을 받는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리고 신자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점점 그리스도의 ‘향내를’ 발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사람을 부르시면 그리스도는 그 사람을 새롭게 하고 자신을 닮게 만들어 자신의 향내를 발하게 하신다.
에드워즈는 모세가 친 반석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라는 반석 아래에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끝없는 수로가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반석은 그리스도의 신적인 완전성과 거룩함, 전능성, 영원성, 불변성을 상징한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 백성의 유일한 ‘복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한 번만 치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반석을 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신약 성도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된 샘에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환경이나 조건과 무관하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아름다움에 똑같이 그리고 무한히 나아갈 수 있다.
물리적인 태양이 몸을 녹이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빛은 우리 영혼을 따뜻하게 할 것임에 틀림없다. 자기 죄에 시달려 본 신자라면 ‘의의 태양이 밝아오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감미롭고, 활력이 넘치는’ 지 거듭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신자의 마음에 따뜻한 빛과 함께 새로운 소망과 확신을 주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감각을 심어주신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에 대한 사랑 둘 다를 가장 크게 나타내셨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명을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아래 내려놓은 것만큼 성부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 다른 역사는 없다. 그리고 동시에 이 십자가에서는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도 가장 위대하게 드러났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죗값을 요구하는 공의에 자신을 희생물로 바친 것만큼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존경심이 분명하게 나타난 적은 없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는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서 그리스도의 피로만 속죄할 수 있는 죄책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