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가 드러났다.
분리된 존재를 느끼기를 소망하는 생각이 존재하자, 이 생각이 개별 인간으로 나타났으며
각 인간은 개별적인 정체성과 그 정체성에 어울리는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만물이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부처와 첨단 이론 물리학이 묘사했듯이 우주는 3처원 입체 사진을 보여주는 홀로그램 같은 것이었다.
부처와 이론 물리학은 우주의 본질이 그러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만물은 완벽하기에 소망하거나 욕망하거나 창조할 것이 없었고 어떻게 되어야 할 것도 없었다.
존재가 생겨나는 '존재하는 상태'의 본질인 '그것'만이 있었다.
그 '존재하는 상태'가 존재가 생겨나는 '근원'이며, 이상하긴 하지만 존재를 생기게하는 '원인'은 아니다.
자각 상태는 엄청나게 익숙한 것이었다.
마치 자각 상태를 항상 알고 있었던 듯햇고, 마침내 집에 돌아온 듯도 했다.
감정이나 기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감각의 존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것들이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려고, 실험 삼아 생각 하나를 찰나 동안 품었다.
즉시 물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버터나 커피를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웨이터가 즉시 가지고 왔다. 아무 말도 필요 없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과도 무언 수준에서 의사소통이 일어났다.
육체가 차를 몰고 가서 그날 저녁에 있었던 회의에 참석했다.
달라진 점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강렬하게 살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살아 있는 상태가 그들의 '존재하는 상태'로부터 보였고,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것인 '큰나'가 그들의 눈을 통해 보였다.
육체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평범한 대화를 계속 나누는 등 평소에 하던 대로 행동했다.
이때 육체는 마치 카르마적 태엽을 감아 놓은 장난감이
자체의 모든 익숙한 패턴과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육체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듯햇고, 그 일을 힘들이지 않고 매우 효과적으로 했다.
모든 대화와 상호 작용은 현상으로 목격되었을 뿐, 지시를 받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은 자아가 육체가 하는 행동의 창작자로서 존재한다는 믿음은 이상한 허영심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 육체는 우주 전체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행동을 하는 행위자는 전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마음이 일으키는 진동으로서 현상이 존재할 뿐이었고,
마음은 분리된 존재나 분리된 현실을 갖고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상태'만이 존재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그 '하나인 상태'뿐이었다,
다음날 오후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현실'로 통하는 길이 밝혀졌으니,
개인 상태의 의식으로 복귀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전까지 실제라 여겼던 그 개인이 되는 거이었다.
방 안의 공기는 방 안 에 있는 내용물을 경험하지 않듯이, '자신의 존재'를 경험하는 '나'는 더 이상 없었다.
그 공간에는 '나는 존재한다'를 경험할 '나'가 없었다.
개별의식으로 복귀한다는 것은 한가지 선택을 의미했다.
실제로는 결정을 내릴 '나'가 없었기 때문에 선택 스스로가 선택했다.
개별 자아를 경험하려는 욕망이 스스로 에너지를 다시 채웠다.
그런 욕망을 놓아 버리는 선택이 가능했지만, 세상에서 끝낼 일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다.
'나'인 상태를 느끼는 감각이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되 능동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다.
복귀 과정이 시작되었다.
과정을 허용할 수도 잇었고 놓아 버릴 수도 있었다.
과정으 ㄹ허용하자 복귀가 계속되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자 복귀는 완료디었지만 이제 개인적 정체성의 느낌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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