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성 대 비이원성
문 : 과학과 영성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선명하게 밝힐 수 있을까요?
답 : 그저 모든 삶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접근 방식 혹은 생각의 범주,
즉 선형적인 것 대 비선형적인 것을 통해서 서술될 수 있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일반적인 의식의 (선형적인) 영역은
항상, 논리적인 연속, 나누고 정의하고 분류하는 지각과 관련된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적인 세계는 실체에 대한 뉴턴 식 패러다임과,
수학 과학, 테크놀로지로 그 패러다임을 언어화하고 표헌하는 하는 것 안에 있습니다.
뉴턴 식 패러다임에서의 설명은 '인과관계'를 담보로 잡고 있는 처리 과정의 전제를 토대로 합니다.
그 전제는 시간과 지속, 거리 ,속도, 무게,차원등과 같은 물리적인 힘과 측정치를 다룹니다.
지각의 이런 방식과 언어 표현은 비교적 정확한 예견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사건이 예견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거나,
미분학이나 그와 관련된 측정치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경우
전통적으로 그런 자료는 잡음이나 혼돈으로 취급되어 무시되거나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뉴턴의 우주는
정의할 수 있고 논리적이며 예견할 수 있고
언어학과 전통적인 의미론 및 인과관계라는 이치에 의한 설명과 부합합니다.
그런 우주는 또한 지각이 상반된 것'의 범주를 설정해 주는, 에고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패러다임의 약점은
인식의 정신적인 메커니즘을 관찰자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족적이고 ''객관적인' 가상의 우주에 투사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패러다임은 그 토대를 이루는 아주 중요하고 항상 존재하는 주관성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주과성은 모든 경험과 관찰, 과학적인 설명 등의 기반이 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따라서 이런 결함은 객관성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성립될 수 있는 모든 것의 필수적인 토대로 존재하는
주관성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밑에 깔린 인식론적인 오류를 드러냅니다.
그저 객관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이미 주관적인 진술이 됩니다.
모든 정보와 지식, 모든 경험의 총체는 주관성의 소산이며,
주관성은 생명과 앎, 존재, 사고에 본래 갖추어진 절대적인 필요조건입니다.
본질적으로 주관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진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동물적인 세계, 감각, 인간적인 정서, 싫고 좋은 감정은 지각을 토대로 합니다.
이것는 다시 심리학적인 메커니즘, 태도, 개성으로 한층 더 정밀하게 다듬어집니다.
지각의 세계에서는 차이가 더없이 중요하고, 모든 것을 규정해 주며, 가치, 합당함,
끌림과 반발이라는 상반되는 양극 내에서의 좋거나 싫은 감정을 분명하게 설명해줍니다..
싫고 좋은 감정은 구하거나 피하는 식의 반응으로,
그리고 사회의 주요한 원동력이 되는 가치와 합당함의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유형적이고 가시적이고 선형적이고 연속되는 원인과 결과와 지각에 기반을 둔
형상의 세계와는 심히 대조되면서 '비선형적인' 영역으로 서술되는,
무한하고 모든 것을 두로 포괄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런 영역은
'카오스 이론'과 '비선형적 역학' 분야의 과학자들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비선형ㅈ거 역학에 대한 연구는 과거에는 확률적이고(따라서 무의미하고)
정의할 수 없고 예견 가능한 질서의 세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무시되었던
초극미(超極微)의 사건을 탐지해 낼 수 있는,
처리 속도가 아주 빠른 최첨단 컴퓨터가 출현한 것을 계기로
최근에 이르러서야 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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