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문답과 강의/ 21.창조와 진화(7) 칼 융의 동시성(synchronicity) 개념은 이해할 만한 것이 되고 있는지요?
작성자연곤작성시간26.06.19조회수9 목록 댓글 0문 : 칼 융은 동시성(synchronicity)이라는 개념을 창시했습니다.
그 개념은 이제 좀 더 이해할 만한 것이 되고 있는지요?
답 : 플로이트의 천재성의 의식 수준은 499 수준으로 측정되며 , 융의 그것은 540 수준으로 측정됩니다.
따라서 융은 인습적인 논리의 한계 너머를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융은 의식의 이런 도약에 힘입어, 보이는 것이 진정한 힘이 거주하는 보이지 않는 것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직관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힘이 보이지 않는 것에 있기 때문에 의식의 끌개장들은
관찰자들에게는 서로 완전히 동떨어진 것들로 보이는 많은 사건들에
그럴듯한 원인이나 명백한 메커니즘도 없이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동시성은 선형적인 차원 내에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의식 수준이 600을 넘어선 사람들에게는
기적이나 동시성 같은 것들이 삶의 일반적인 패턴들이 됩니다.
또한 그런 것들은 '에너지는 생각을 따라간다' 거나
'마음 속에 품은 것은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이 있다'라는 등의
흔히 이야기되는 의식의 특성이 사실임을 입증해줍니다.
이런 이해가 바탕이 되어 이제는 마음속에서 떠올리거나 그리는 것이
유용한 결고를 낳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동시성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양자(quantum)' 상관 관계를 뜻합니다.
그 상관관계는 서로 다른 듯이 보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 관찰할 수 없는 영역 내에의 한 패턴입니다.
따라서 수천의 쇳가루들이 하나의 전자기장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전자기장 속에서는 하나의 사소한 변화가,
눈에 띄는 사건들 속에서의 동시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의식으로 표현되는 영적인 힘은 엄청나게 많은 개인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따라서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나날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사건들을 논리나 의도의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은 그런 사건들이
태도나 관점, 감정, 끌리는 마음, 영감 등과 같은
무형적인 것들의 소산으로서 생겨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찰하고 체험하는 삶은 보이지 않는 영역 내에서의 무형적인 것들의 소산입니다.
이런 무형적인 것들은 적절한 형상과 알맍은 형태를 찾아냄으로써
끌림이나 반발, 의도 등의 작용을 촉발시켜 줍니다.
삶의 질을 결정해 주는 것은
유형적인 것들이 아니라 그런것들이 우리에게 지닌 의미입니다.
다행히도 애정 어린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훨씬 더 엄청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행성에는 이런 얘기를 해 줄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467 - 469 . '나의 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