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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Collapse)

2 과거 사회의 붕괴 / 제6장 바이킹의 영토확장 / 아이슬란드의 주변 환경

작성자연곤|작성시간26.06.18|조회수14 목록 댓글 0

아이슬란드의 주변 환경

아이슬란드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아이슬란드가 북대서양의 다른 다섯 정착지와 비교해서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잠시 살펴보자,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 식민지들에 닥친 운명은 네 가지 요인, 

유럽과의 항해 거리, 바이킹 이전의 정착한 주민들의 저항, 농업의 적합성, 그리고 환경적 취약성에 따라 달랐다.

아이슬란드의 경우에 두가지 요인은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나머지 두 가지 요인이 문제였다.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바이킹들에게 반가운 소식은  그 섬에 (실질적으로) 원주민이 없었다는 것과

유럽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 중세의 배로도 대량 교역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오크니 제도, 셰틀랜드 제도, 페로 제도에 비해서는 멀었지만

그린란드나 빈랜드에 비하면 무척 가까운 편이었다.

따라서 그린란드에 정착한 사라들과 달리,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사람들은

노르웨이나 영국과 정기적으로 저촉을 유지하면서

필수품(목재, 철, 나중에는 도기)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대량으로 수출할 수 있었다.

특히 말린 생선의 수출은 1300년 이후 아이슬란드를 경제적으로 구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바다가 결빙되면서 유럽과의 해로가 막혔던 그린 란드는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북쪽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식량 생산에서 그린란드 다음으로 불리한 처지였다.

정착한 초기부터 한계 산업이었던 보리 농사도 중세 말에 기후가 더 추워지면서 결구국 포기되고 말았다.

양과 젖소에 기반을 둔 목축도 한계에 부딪쳤다.

그러나 양은 아이슬란드의 기후을 너끈히 견뎌준 덕분에 ,

장착 이후 수세기 동안은 양모 수출이 경제를 지탱해주었다.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문제는 환경적 취약성이었다.

토양은 노르웨이의 여섯 개의 식민지 중에서 가장 취약했고, 초목은 그린란드 다음으로 취약했다.

 

이 책의 기본적 틀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요인,

즉 자초한 환경 훼손, 기후 변화, 다른 사뢰와의 적대 관계, 우호적인 이웃과의 교역, 문화적 가치관에서 

아이슬란드의 역사를 보면 어떻게 될까?

아이슬란드의 역사에는 네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간헐적으로 있었던 해적의 침략을 제외하면 적대적 이웃이라는 요인은 미미했다.

반면에 아이슬란드는 네 가지 요인의 복합적 관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취약한 환경을 유산으로 물료받았다.

소빙기에 기후가 더욱 추워지면서 이 환경 문제가 더욱 악회되었다.

그러나 유럽과의 교역 덕분에 아이슬란드는 이런 환경 문제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환경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들의 문화적 가치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특히 목축 경제, 소와 돼지에 대한 유별난 선호,   노르웨이와 영국의 토양에는 적합했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부적절했던 초기의 생활 방식 등은 그들의 출신지, 노르웨이의 문화적 가치였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바이킹들은 변해갔다.

돼지와 염소를 없앴고 소를 멀리했다.

취약한 환경을 조심스레 다루는 방법을 배워가며 보수적으로 변해갔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는 덴마크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때로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적잖은 손해를 안겼지만, 

궁극적으로 아이슬란드가 큰 위험을 범하지 않고 살아남은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아이슬란드 정부는

그들을 오랫동안 가난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양의 과도한 사육과

토양 치식이라는 역사적 저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토양을 유지하고 삼림을 조성하며 초목을  되살리고 양의 수를 조절하는 데 전념하는

독립된 부처(部處)가 있을 정도이다.

아이슬란드의 고원지대에서 나는 반듯하게 조성된 풀밭을 보았다.

그 풀이 없었다면 헐벗은 달 표면과 다름없었겠지만 

이 부처가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풀을 심어둔 것이었다.

사방이 갈색인 땅에 간혹 눈에 띄는 이런 풀들은

운명처럼 짊어진 환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환경을 조금씩 개선해 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슬란드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고고학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각국  정부를 설득시키는 데 주력한다.  달리 말하면 과거 사회의 연구가

오늘날 같은 지역에서 위치한 사회에 닥칠 일을 미리 예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정부기관들을 설득해서 연구비를 받아내려고 애쓴다.

요컨대 과거에 있었던 환경 문제가 지금 다시 닥칠 수 있다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연구해서 교훈을 얻어야 하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정부는  고고학자들의 이런 청원을 무시한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그렇지 않았다. 

1,130년 전에 시작된 토양 침식의 결과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초목과 절반 정도의 토양이 사라진 지경이다.

과거의  상처가 어디에서나 뚜렷이  남아 있다.

중세 시대의 생활 방식과 침식의 진행 과정에 대한 연구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 고고학자 친구가 아이슬란드 정부와 접촉해서

과거에 대한 연구를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하자 아이슬란드  정부는

"그렇습니다. 중세 시대의 토양에 대한 연구가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애써 설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기꺼이 연구비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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