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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Collapse)

2 과거 사회의 붕괴 / 제7장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의 시작과 발전/유럽의 전초지 1

작성자연곤|작성시간26.06.21|조회수17 목록 댓글 0

제 7 장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의  시작과 발전

 

유럽의 전초지

그린란드(Greenland)에 대한 내 첫인상은 이름답지 않은 땅이라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세 가지 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얀색, 검은 색, 푸른색이 전부였다.

아니, 하얀색이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린란드라는 이름은

붉은 털 에리크가 노르웨이 사람들을 꼬드기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 주장하는  역사학자들도 없지 않다.

하여간 코펜하겐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그린란드의 동부 해안에 접근하자,

검푸른 바다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남극을 제외할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만년 빙상이다.

그린란드 해안은 대부분이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섬 대부분이 얼음으로 뒤덮인 고원지대이며

바다에는 거대한 빙하가 떠 있다.

우리 비행기는 하얀 빙상 위를 수백 킬로미터 날앗다. 

유일하게 다른 색은 헐벗은 돌산의 검은 색이었다.

마치 얼음 바다에서 불쑥 솟은 검은 섬이 간헐적으로 떠 있는 듯했다.

비행기가 서쪽 해안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하자 얼음의 틈새로 두 가지 다른 색이 눈에 띄었다.

옅은 초록색의 이끼와 갈색을 띤 자갈이었다.

 

그러나  그린란드 남부의 나르사르수아크 공항에 내린 후 빙산들이 흩뿌려진 피오르드를 건너,

붉은 털 에리크가 자신의 거처로 삼았던 브라타훌리드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린란드라는 이름이 거짓말이 아니라 올바로 붙여진 이름일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로스앤젤리스에서 코펜하겐까지, 다시 그린란드까지 오랜 비행에 지쳤지만

나는 13시간의 시차까지 아랑곳하지 않고 노르웨이의 유적을 둘러보러 나갔다.

그러나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 수 없었다. 짐을 맡겨둔 유스호스텔까지 돌아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유적지는 푸른 풀이 무성한 초원 한가운데 있었다.

두거운 이끼를 뚫고 올라온 30센티미터를 넘을 듯한 긴풀들까지

노란 미나리아재비, 노란 민들레, 푸른 불루벨, 하얀 과꽃, 분홍빛의 바늘꽃 등의 틈새로 엿보였다. 

매트리스가 필요 없었다. 베개도 필요 없었다, 

나는 자연이 선물한  부드럽고 아름다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노르웨이 고고학자로 내 친구인 크리스티안 켈러(Christian Keller)의 표현대로라면

'그린란드에서의 삶은 유용하게 쓸 푸른 조각을 찾아내는 삶'이다.

섬의 99퍼센트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며,

남서 해안에 위치한 두 피오르드 안쪽으로 푸른 땅이 약간 있을 뿐이다.

좁은 피오르드가 내륙으로 깊숙이 파고들어가, 그 끝은 그린란드 해안 지대에서

초목의 성장을 방해하는 차가운 해류, 빙산, 소금기를 띤 물안개 그리고 바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양쪽에서 가파른 벼랑을 피오르드를 따라 올라가면

푸른 풀이 유난히 빛나는 평평안 땅뙈기가 이곳저곳에서 눈에 띈다.

가축을 키우기에 적합한 곳으로, 나는 바로 그런 곳에 우워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사진 17)

984년부터 1400년대의 어떤 때까지 거의 500년 동안, 

두 피오르드는 유럽 문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전초지 역할을 했다.

노르웨이에서 2,4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그들은 성당과 교회를 세웠고,

라틴어와 고대 노르웨이어로 글을 썼으며,  철로 연장을 만들었고 가축을 키웠다.

그리고 유럽의 최신 유행을 따라 옷을 입었지만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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