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붕괴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발세이에 있는 석조 교회에 감추어져 있는 듯하다.
이 교회는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로, 그린란드 관광 안내 책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산으로 에워싸인 길고 널찍한 피오르드의 끝에 펼쳐진 초원 위에 세워진 이 교호의 전망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벽, 서쪽출입구, 벽감, 박공은 거의 소산되지 않았다. 떼를 이어붙인 지붕만이 사라졌다.
교회 주변에는 주거지 축사, 창고, 배 보관소, 그리고 초지가 있다.
모두가 그 교회를 세운 사람들에게 살의 터전이었다.
중세의 유럽 도시들 중에서 노르웨이령 그린란드는 옛 흔적이 가장 잘 보존된 사회이다
그린란드는 벼려진 후 누구도 살지 않앗지만,
영국과 유럽 대륙의 도시들에는 여전힌 사람들이 살면서 그 위로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발세리를 둘러보면 바이킹들이 금방이라도 그 건물들에서 뛰쳐나올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실제로는 사방이 조용하다.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누구도 살지 않는다 (사진 15)
이 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은 유럽 공동체를 그곳에 다시 건설해서 영원히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동체는 수세기를 넘기지 못했다.
이런 미스터리 이외에 바이킹들은 그린란드를 다른 종족, 즉 이누이트(에스키모)와 공유해야 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바이킹들에게는 다른종족이 없었다.
달리 말하면 운명과도 같은 환경 문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린란드에서 바이킹은 사라졌지만 이누이트는 살아남았다.
달리 말하면 그린란드에서의 생존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며,
따라서 바이킹의 붕괴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요즘 그린란드 마을을 거닐어보면, 중세 시대부터 이 섬을 나누어 가졋던 두 인종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누이트와 스칸디나비아인이다.
바이킹이 사라지고 300년이 지난 1721년, 다른 스칸디나비아인(덴마크인)이 그린란드를 재점령했다.
그리고 1979년에야 그린 란드 주민들은 자치권을 획득했다.
나는 그린란드를 방문하는 동안 후른 눈에 금발인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발세이 교회를 세웠지만
그곳에서 사라진 사람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당혹스런 기분이었다.
이누이트족은 꿋꿋하게 살아남앗는데
그 중세의 스칸디나비인들은 그린란드의 문제를 이겨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엇을까?
아나사지 사람들처럼
그린란드에 정착한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닥친 운명도 논란이 분분하기는 했지만
주로 한 가지 요인으로 설명되어왔다. 가장 그럴듯한 이론은 바로 기후 변화였다.
고고학자 ㅋㅋ토머ㅡ 맥거번(Thomas McGovern)의 표현을 빌리면 "너무 추워졌고, 그래서 모두가 죽었다"
그밖에 이누이트의 공격에 노르웨이인들이 격멸했다는 이론, 본토의 유럽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이론,
환경 훼손론 등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린란드에서 노르웨이 사회의 붕괴는 이 책의 서문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요인 모두가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 교훈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린란드에 대한 기록을 문서로 남겼고
(이스터 섬 사람들과 아나사지 사람들에게는 문자가 없었다.)
폴리네시아 사회와 아나사지사회보다 중세 유럽 사회가 우리에게 훨씬 익숙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정보도 많은 편이다.
산업화되기 이전으로 풍부한 자료를 갖고 있지만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에는 여전히 속 시원히 플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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