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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Collapse)

2 과거 사회의 붕괴 / 제7장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의 시작과 발전/그린란드의 기후

작성자연곤|작성시간26.06.23|조회수17 목록 댓글 0

그린란드의 현재 기후

노르웨이 사람들이 그린란드에 정착해서 한동안 번성한 후에 몰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린란드 서쪽 해안, 정확히 말하면 북극권에서 약간 아래로

북위 61도와 64도 사이에 위치함 두 곳의 정착지에서 살았다.

아이슬란드보다 남쪽이고 , 위도로 비교하면 노르웨이 서쪽 해안에 앴는 베르겐과 토론헤임과 비슷하다.

그런 그린란드는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보다 더 춥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남쪽에서 흘러오는 따뜨한 난류의 영향을 받는  반면에

그린란드의 서쪽 해안은 북극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그린란드 해류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 노르웨이의 정착자들은  그린란드에서는  가장 축복받은 기후이지만

'춥고, 변덕스러우며, 바람이 세고,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이다.

 

최근에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두 정착지의 여름 평균 기온이

해안가는 섭씨 4=5~6도, 피오르드 안쪽엣는 10도에 불과하다.

그다지 축게 느껴지지 않는 온도이지만 이 돈도가 연중 가장 따뜻한 몇달의 평균기온일 뿐이다.

게다가 강하고 건조한 바람이 그린란드 빙상에서 걸핏하면 불어오고,

북쪽에서는 얼음 덩어리가 흘러내려오며, 한여름에도 빙산들이 피오르드를 막아 사방이 짙은 안개가 싸인다.

그린란드를 방문한 여름에 나는 변덕스런 날씨를 실감나게 겪었다.

소나기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비, 강한 바람, 안개는 보통이었다. 배가 항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해안 지대가 무척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그린란드에서는  배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요즘에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들을 잇는 도로는 없다.

같은 피오르드에서 같은 쪽에 위치한 마음들,

혹은 나지막한 구릉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 피오르드의 마음들이 도로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발세이 교회를 찾아가려던 내 탐사 계획도 강한 푹풍우 때문에 하루씩 뒤로 미루어야 했다.

7월 25일 화창한 날씨 덕분에 나는 배로 카코르토크에  도착할 수 았었다.

하지만 7월 26일 카코르토크를 출발하려던 배가 바람과 비, 안개와 빙산 때문에 꼼짝하지 못햇다.

7월 27일 날씨가 다시 얌전하게 변하면서 우리는 발세이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에도 신이 도왔던지 우리는 카코르토크 피오르드를 떠나 푸른 하늘을 보면서 브라타흘리드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그린란드의 기후를 한여름에 최남단의 정착지에서 실감나게 겪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여름 날씨에 길들여저 있던 내게 그린란드이 여름은 '쌀쌀하다 못해 추웠다'

나는 티셔츠, 긴팔 셔츠, 두터운 스웨터를 입고도 바람막이옷을 항상 입고 다녔다.

때로는 내가 북극을 처음 여행했을 때 구입했던 두꺼운  오리털 파카까지 입어야 했다.

온도가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변하는 듯했다.  그것도 큰 폭으로!

이런 급격한 온도 변화 때문에 나는 그린란드에 온 이유가 

파카를 입고 벗는 연습을 하려고 온 듯한 기분이었다.

 

내친김에  그린란드의 기후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보자.

그린란드에서는 약간의 거리 차이에도 날씨가 다르고, 해마다 기후가 다르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린란드에서 살아남으려면 유용한 푸른 조각을 찾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크리스티안 캘러의 말에서 거리 차이에 따른 날씨 변화가 설명된다.

또한 해마다 다른 기후는 노르웨이 정착자들이 의존했던 건초의 생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바다의 결빙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바다의 결빙 정도는  바이킨들에게 무척 중요했던  고기잡이와 배를 이용한 교역에 영향을미첬을 것이다.

이처럼 거리 차이에 따른 기후 변화와 해마다 달라지는 기후에 노르웨이 정착자들은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린란드는 애초부터 건초 생산의 한계 지역이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부적절한 지역에 자리를 잡거나 평년보다 조금이라도 추워지면

겨우내 가축을 먹일 수 있는 충분한 량의 건초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두 정착지가 남북으로 480킬로미터나 떨어졌다는 사실도 지역적 차이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정착지는  북쪽 정착지와 남쪽 정착지라 불리지 않고 동쪽 정착지와 서쪽정착지라 불렸다.

(이런 이름은 훗날 큰 비극까지 불러왔다. 그린란드의 서쪽 해안에 위치했는데도  '동쪽 정착지'로 붙여진 이름 때문에,

오랫동안 잊혀진 그린란드의 노르웨이인들을 찾아나선 유럽인들이 엉뚱하게 그린란드의 동쪽 해안에서그들을 찾아 해맸다.)

서쪽 정착지가 동쪽 정착지보다 북쪽에 위치하지만 여름에는 두곳 보두가 포근한 편이다.

그러나 작물의 재배 기간은 서쪽 정착지가 더 짧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햇살이 비치고 포근한 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화기 말하면 서쪽 정착지는 영상의 기온이 평균 5개월인 데 반해서 동쪽 정착지는 7개월이다.

또한 서(西)그린란드 한류의 영향도 지역적 기후 차이에 큰 역할을 한다.

예컨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피오르드 안쪽에 비해서

한류와 직접 맞닿는 피오르도 하구의 해안이 더 춥고 습하며 안개도 많이 낀다.

 

내가 그린란드에서 머무는 동안 직접 목격했던 것으로

지역적 기후차이를 유발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빙하였다.

빙하가 있는 피오르드가 있는 반면에 전혀 없는 피오르드가 있었다.

빙하가 있는 피오르드에는 언제나 빙산이 둥둥 떠 있지만

빙하가 없는 피오르드에는 바다에서 표류해 들어오는 빙산이 전부이다.

예컨대 7월에 나는 이갈리쿠 피오르드(바이킹이 그린란드에 세운 성당이 있는 곳)에서 빙산을 전혀 보지 못했다.

빙하가 그 피오르드에 흘러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리크 피오르드(브라타흘리드가 있는 곳)에는 빙하 하나가 흘러들어온 까닭에 빙산이 곳곳에서 보였다.

한편 브라타흘리드 북쪽에 인접한 세르밀리크 피오르드에는

커다란 빙하가 많아, 얼음 덩어리 때문에 통행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차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빙산의 다양한 모양과 크기가 무색무취한 그린란드 풍경을 볼거리로 만들어 주는 듯하다..

크리스티안 켈러는 에리크 피오르드의 유적을 연구하는 동안

언덕 너머의 세르밀리크 피오르드에서 유적을 발굴하던 스웨덴 고고학자들을 자주 찾아갔다.

스웨덴 발굴 팀의 야영지가 크리스티안의 야영지보다 훨씬 추웠다.

따라서 유물에서도 스웨덴 발굴 팀이 연구하던 농가가  크리스티안이 연구하던 농가보다 가난했다는 증거가 뚜렷했다

세르밀리크 피오르드가 더 추워 건초 생산량이 적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달라지는 기후 변화는

1920년대에 그린란드에서 다시 시작된 목양(牧羊)을 위한 건초 생산량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습한 해에는 식물의 생장률이 높아진다.

양에게 먹일 건초가 많아지고, 야생 순록이 뜯어 먹을 풀도 많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목양업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건초를 수확하는 8월과 9월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건초를 말리기 힘들기 때문에 건초의 생산량이 떨어진다.

게다가 쌀쌀한 여름도 좋지 않다. 풀의 생장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긴 겨울도 물론 좋지않다. 가축들이 축사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더 많은 건초를 축내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얼음 덩어리들이 많이 떠내려오는 여름도 좋지 않다.

안개가 짙게끼어 식물의 정상적인 생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후 변화가 요즘에도 그린란드에서 양을 방목하는 사람들의 삶을 불확실하게 만드는데,

중세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느껴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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