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남진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주제로 한 푸가의 서곡은 793년부터 시작된 바이킹의 남진(南進)이었다.
이때 바이킹은 아일랜드와 발트 해에서 시작해서 지중해와 콘스탄티노풀까지 내려갔다.
중세 유럽의 모태가 된 기본적인 요소들은 1만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즉 요르단 북부에서 터키의 남동부까지,
동쪽으로 이란까지 뻗은 초승달 모양의 서남아시아 지역에 뿌리를 두었다.
농업,가축 사육, 바퀴, 구리와 청동과 철, 도시, 부족 사회와 왕국, 조직화된 종교 등
모든 것이 이곳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 모든 것이 유럽의 남동부에 처음 전해졌고, 점차 북서부로 확산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원전 7000년경 아나톨리아에서
농업이 그리스에 전해지면서 유럽은 중동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유럽의 변방인 스칸디나비아는 비옥한 초승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까닭에 이런 문물을 가장 늦게 전달받았다.
농업도 기원전 2500년경에야 도래했을 정도였다.
또한 스칸디나비아는 로마의 영향권에서도 멀리 벗어나 있었다.
로마의 상인들이 스칸디나비아에 발을 디딘 적이없었고, 로마 제국과 국경을 맞댄 적도 없었다.
따라서 중세 시대까지 스칸디나비아는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사회였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는 자연에서 두 가지 유형의 혜택을 받은 땅이었다.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앞다퉈 수입하는
북쪽 숲에 사는 짐승들의 털가죽, 바다표범의 털가죽, 밀랍이 있었다.
또한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에서도 해안이 들쑥날쑥해서
육로로 여행하는 것보다 바다로 여행하는 것이 더 빨라, 항해술이 처음부터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중세 시대까지 스칸디나비아인들에게는 노를 젓는 배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서 돛을 동력으로 이용한 배가 없었다.
범선은 600년경에야 지중해에서 스칸디나비아에 전해졌다.
때마침 기후가 따뜻해지고 농기구까지 발달해 식량 증산이 가능해지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때였다.
노르웨이 땅은 대부분이 가파른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지금도 국토의 3퍼센트만이 농지로 이용되는 실정이다.
이 농지도 700년경 인구 증가의 압력 아래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것이었다.
인구는 증가했지만 농지를 개간하기에 마땅한 땅이 부족했던 까닭에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외부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돛이 도래하면서 그들은 날렵하고 조작하기 쉬운 배, 돛과 노를 동시에 동력으로 사용한 빠른 배를 만들어냇다.
유럽과 영국으로 호화로운 수출품을 실어 나르기에 안성맞춤인 배였다.
이런 배를 타고 그들은 바다를 해집고 다녔고,
수심에 구애받지 않고 얕은 해안이나 강을 타고 내륙가지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대다수의 해양 민족이 그랬듯이, 중세 스칸디나비아인들에게도 무역은 침략의 발판이었다.
일부 스칸디나비아 상인들이 풍요로운 나라까지 해로를 개쳑해서 모피를 팔고 그 대가로 은과 금을 받아오자,
그런 상인들의 패기만만한 동생들은 모피를 주지 않고도 은과 금을 빼앗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무역에 사용되던 배들이 해적선으로 돌변했다.
그들은 또같은 해로를 이용해 해안가의 마을들을 급습했고, 내륙 깊숙이 강가에 위치한 마을들을 약탈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이 그야말로 바이킹, 즉 침략자가 되었다
유럽 다른 지역의 배들에 비해 바이킹의 배는 월들이 빨랐다.
선원들의 행동도 민첩했다. 그들은 신속하게 약탈하고 재빨리 달아났다.
유럽의 느린 배들은 바이킹 선을 따라 잡을 수 없었고,
유럽인들은 바이킹의 본토를 역습해서 그들의 기지를 분쇄할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은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땅인 바이킹의 본토는 당시 하나의 왕 아래에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여러 족장과 토호가 앞다퉈 해외에서 약탈하면서 , 그 전리품으로 추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고국에서 다른 족장에게 패배한 족장은 해외에서 부활을 모색하기도 했다.
바이킹의 습격은 793년 6월8일에 전격적으로 시작되엇다.
이날, 그들은 풍요롭지만 방어가 허술한 린디스판 섬을 공격했다. 영국의 북동해안에서 약간 덜어진 섬이었다.
그 후 바다가 잔잔해지고 바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름이면 바이킹의 습격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바이킹은 가을이 되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딘디스판 섬의 해안에서 겨울을 지내고 다음해 이른 봄부터 다시 약탈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바이킹 함대와 목표로 삼은 민족의 병력(兵力)을 비교해서
재물을 획득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전략이 시도되었다.
군사력이 뒤처진 지역인 경우, 바이킹은 평화적인 거래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침략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공물을 강요하는 단계를 거쳐 약탈하고 퇴각하는 방법을 썼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지역을 정복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런 식으로 바이킹은 해외에 식민지를 건설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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