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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Collapse)

2 과거 사회의 붕괴 / 제6장 바이킹의 영토확장 / 바이킹의 남진 2

작성자연곤|작성시간26.06.07|조회수8 목록 댓글 0

스칸디나비아에는 여러 바이킹이 있었고, 그들이 구사하는 전략도 달랐다.

예컨대 현재 스웨덴 지역에 뿌리를 둔 바이킹, 즉 바랑족(Varangian)은

동쪽으로 발트 해를 건너 러시아에서부터 강을 타고 올라가 발트 지역으로 향했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진격해 흑해와 카스피해로 흘러가는 볼가 강 및

다른 강들의 상류 지역까지 진격해 비잔틴제국과 교역하면서,

훗날 근대 러시아의 디딤돌이 되었던 키예프를 세웠다.

한편 덴마크에 기반을 둔 바이킹들은 서진해서 북서 유럽의 해안과 영국의 동쪽 해안으로 향했고, 

라인 강과 루아르 강의 하구를 찾아내 노르망디와 브로타뉴에 정착했다.

그리고 동잉글랜드에서는 데인로를 건설하고 프랑스에서는 노르망디 공국을 세웠다.

게다가 에스파냐 해안을 돌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지중해로 들어가 이탈리아를 습격하기도 했다.

현제 노르웨이에서 시작한 바이킹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북부 해안 과 서부 해안으로 향했고,

더블린에 무역 전초 기지를 세웠다.

이렇게 유럽의  각 지역에 정착한 바이킹들은 토착민과 결혼하면서 그 지역에 점점 동화되어갔다.

그 결과로, 스칸디나비아 언어들과 스칸디나비아인으로 구성된 정착촌은 유럽 대륙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스웨덴 바이킹은 러시아인에 융화되엇고, 덴마크 바이킹은 영국민과 뒤섞였다.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들도 고유한 언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동화 과정에서 , 스칸디나비아의 유전자와 단어도 스며들었다.

예컨대 영어에서 '어색한 (awkward)', '죽다(die)/, '달걀(egg)', '스커트(skirt)'등,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적잖은 단어가 스카디나비이아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럽 땅을 향한 집요한 여행 과정에서 많은 바이킹 배들이 북대서야에서 바람에 떠밀려 항로를 벗어났다.

기후가 따뜻했던 당시에는 해빙(海氷)이 없었지만

나중에는 그 얼음 덩어리들이 항해에 장애물로 변해

결국 노르췌이령 그린란드와 '타이타닉호'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한몫을 했다.

하여간 항로를 벗어난 배들은 유럽인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땅들을 발견하는 뜻밖의 성과를 거두었다.

예컨대 페로제도는 800년 직후까지 실질적으로 무인도였고, 아이슬란드는 870년경에야 유인도가 되었다.

또한 그들은 980년경에 그린란드를 발견했다.

그때 그린란드에는 도싯족(Dorset people)이라 알려진 이누이트족이 북쪽 귀퉁이에 살고 있었을 뿐이다.

한편 뉴펀들랜드, 세인트로렌스 만등 북아메리카의 북동 해안 지역을 포괄하는 빈랜드를

1000년 경에 발견하고 첫 발을 내디뎠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이미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이킹은 10년만에 그곳을 떠나야 했다

 

유럽이 바이킹의 습격에 대비해서 방어력을 구축했고,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독일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바이킴의 공격도 뜸해졌다.

게다가 노르웨이 왕이 힘을 구축하면서 천방지축처럼 날뛰던 족장들의 힘을 억누르며

노르웨이를 남부끄럽지 않은 무역국으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에서는 857년 프랑크족이 센 강에서 바이킹을 몰아냈고

891년에는 벨기에의 루뱅 전투에서 바이킹에게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939년에는 브르타뉴에서 바이킹을 완전히 쫓아냈다.

한편 영국에서 바이킹은 902년에 더불린에서 축출되었고, 

954년에는 데인로에 세웠던 그들의 왕국이 붕괴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980년과 1016년 사이에 데인로를 끈질기게 침략하면서 왕국을 재건했다

1066년에는 유명한 헤인스팅스 전투가 있었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옛 바이킹의 후손이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군사를 이끌고 영국 정복에 나섰다.

윌리엄은 10월14일 잉글랜드 남동 해안의 헤이스팅스에서 잉글랜드의 왕 해럴드 2세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헤럴드와 그의 병사들이 지친까닭에 거둔 승리였다.

실제로 그들은 9월25일 중앙 잉글랜드와 스탐퍼드 브리지에서

바이킹의 마지막 침략군을 패배시키고 그들의 왕까지 죽인후에

거의 3주일 동안 남쪽으로 350킬로미터를 행군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어쨌든 1066년부터 바이킹의 침략은 끝을 맺었다.

그 후 스칸디나비아 왕국들은 정상적인 국가로 진화하면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교역했고,

이따금씩 전쟁을 도발하기는 했지만 옛날처럼 침략을 일삼지는 않았다.

따라서 중세 노르웨이는 두려운 침략자가 아니라 건조시킨 대구의 수출국으로 유럽인들에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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