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농업
이주자들이 새로운 땅에 정착해서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갈 때
그들은 원래의 고향에서 영위했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고향에서 축적한 지식, 신앙, 생존 방식.사히 조직 등 '문화적 자산'을 그대로 유지한다.
바이킹처럼 처음부터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나, 기존의 정착자들과 접촉할 필요가 없는 땅에 정착할 때는 특히 그렇다.
심지어 새로운 이민자가 기존의 정착자들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날의 미국에서도
이미자 집단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특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예컨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 이란인, 메기코인, 에티오피아인 등과 같은 새로운 이미자 집단들은
문화적 가치과, 교육 수준, 직업, 재산의 정도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정도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런 차이는 그들의 원래 생활 방식에서 부분적으로 기인하는 듯하다.
바이킹의 경우에도, 그들이 북대서양의 섬들에서 만들어낸 사회들은 고향을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특히 농업, 철의 생산, 계급 구조, 종교등의 분야에서 이런 문화유산은 중요했다.
우리는 바이킹을 침략자나 해양 민족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바이킹들은 자신들을 농부라고 생각했다
노르우이 남부에서 재배된 곡물과 사육된 가축은 새러운 정착지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바이킹 개척자들이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로 가져가기에 적합한 동물이었고 식물이기도 했지만
그 동물들과 식물들이 바이킹의 사회적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깉은 먹을 거리, 같은 습관이라도 민족에 따라 다른 지위를 갖게 마련이다.
예컨대 미국 서부의 목장주들에게는 소는 소중한 가축이지만 염소는 그다지 중요한 가축이 아니다.
그런데 이주자들의 영농법이 새로운 땅에 적합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처음에 영국에서 가져온 양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에 유익하냐 그렇지 않냐를 두고 아직까지 논쟁을 벌이고 있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옛 땅에서는 적합했던 것과 새로운 땅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에 중대한 피해를 안겼다.
노르웨이의 추운 기후에서는 곡물 재배보다 가축 사육이 더 쉬웠다.
가축은 '비옥한 초승달'과 유럽에서 수천 년 동안 기본적인 먹을 거리가 되었던 다섯 종과 같았다.
즉 젖소, 양, 염소, 돼지, 그리고 말이었다.
이 중에서 바이킹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가축은 살코기를 얻기 위해 사육한 돼지,
치즈와 같은 유제품을 제공하는 젖소, 그리고 운송수단으로 쓰였고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진 말이었다.
고대 노르웨이 전설에서 돼지고기는 전쟁의 신 오딘(Odin)의 전사들이 죽은 후에
발할라(오딘 신을 모신 사당)에서 매일 즐기는 살코기였다.
양과 염소는 비천한 가축으로 여겨졌지만 경제적으로는 유용한 가축이었다.
살코기보다는 유제품과 털을 얻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할 가축이었다.
9세기경 한 족장의 집터로 추정되는 노르웨이 남부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굴한 뼈의 수에서
족장의 식솔이 막을 거리로 삼은 가축들의 상대적인 수를 추정할 수 있었다.
모든 가축 뼈 중 거의 절반이 젖소의 것이었고, 3분의 1은 돼지의 것이었다.
양과 염소의 뼈는 합해서 5분의 1에 불과했다.
바이킹 족장이 야망을 품고 해외에서 농장을 세웟다면 다섯가축을 고향과 똑같은 비율로 사육하고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에 초창기에 세워진 농장들의 쓰레기 더미에선 비슷한 비율로 가축의 뼈가 발견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뼈의 비율이 달라졌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환경에 잘 적응한 가축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가축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간이 지나면서 잦소의 수는 줄었고 돼지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양과 염소의 수는 오히려 늘었다.
노르웨이에서도 북쪽에서는 겨울이 되면 가축도 실내의 축사에서 길러야 한다.
달리 말하면 가축을 밖에 풀어놓고 스스로 풀을 찾아 뜯게하는 대신에 사람의 손으로 꼴을 먹여야 한다.
따라서 바이킹의 전사들은 자신들의 명성을 높여준 전쟁에 쏟는 시간보다
가축들을 겨우내 먹일 건초를 베고 말려서 저장하는 소박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기후가 포근한 지역에서도
바이킹들은 추위를 견디는 작물, 특히 보리를 재배했다.
보리보다 내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덜 중요하게 여겨진 작물로는 귀리, 밀, 호밀이 있었다.
채소는 캐비지,양파, 완두콩, 콩이 있었고, 아마포를 얻기 위해 아마가 재배되었다.
또한 맥주를 양조하는 데 필요한 흡도 재배되었다.
적어도 노르웨이에서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농작물의 중요성이 가축에 비해 떨어졌다.
야생 동물의 살코기가 가축을 대신할 수 있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특히 생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지
노르웨이 바이킹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굴한 짐승 뼈의 절반 이상이 생선 뼈이다.
바다표범을 비홋한 수생 포유동물, 순록과 말코손바닥사슴, 작은 육지 포유동물,
번식을 위한 서식지에서 나포한 바닷새, 오리와 물새 등을 사냥해서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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