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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Collapse)

2 과거 사회의 붕괴 / 제6장 바이킹의 영토확장 / 바이킹의 족장들

작성자연곤|작성시간26.06.11|조회수10 목록 댓글 0

바이킹의 족장들

바이킹이 스칸디나비아 고향을 떠나면서 가져간 사회 시스템은  계급사회였다.

침략해서 포로로 잡은 노예가 최하층이었고, 그 위로 자유인과 족장이 있었다.

바이킹이 영토를 확장하는 동안 스칸디나비아에서는

큰 통일왕국('왕'을 자처함족장이 지배한 지역 공동체와는 전적으로 달랐다.)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따라서 해외로 이주한 바이킹들은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왕들과 거래햐야만 했다.

하지만 이주자들의 일부는 신흥 세력으로 등장한 왕들을 피해서 달아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세워진 바이킹 사회에서는

자체의 왕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군사력을 지닌 족장을 필두로 귀족 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만이 배를 가졌고, 소중했지만 키우기 힘든 젖소뿐만 아니라  비천한 가축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키울 수 있는 양과 염소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가축을 보유할 여력이 있었다.

노예, 자유 노동자, 소작인, 자영농 등이 족장을 섬겼다.

 

족장들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전쟁도 마다하지 않앗다.

권위를 얻고 추종자들을 보상하며 자기편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선물을 나누어주고 잔치를 베풀었다.

어떤 식으로든 다른 족장들을 이겨야 했다.

족장들은 무역과 침략, 그리고 자체의 농산물 생산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했다.

그러나 바이킹 사회는 폭력적인  사회이기도 했다.

족장과 가신들은 해외에서는다른 민족들과 싸웠고, 국내에서는 다른 족장들과 싸웠다.

유혈이 낭자한 전투에서 패한 쪽은 재기(再起)를 꿈꾸면서 해외로 달아났다.

예컨대 980년 북은 털 에리크(erik the Red)라는 아이슬란드인이 패해서 추방당하자 

그린란드를 탐사한 후 , 추종자들을 이끌고 그린란드에서 농사짓기에 가장 적합한 곳에 정착했다.

 

바이킹 사회에서 중요한 결정은 족장들이 내렸다.

족장들의 권위를 높이기에 적절한 방법이엇다.

그러나 그들의 결정은 당시 사회 전체의 이익, 혹은 미래 세대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스터섬의 족장들과 마야의 왕들이 내린 결정에서도

이런 이해의 충돌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제2장과 제5장에서 보았다.

이런 이해의 충돌은 노르웨이령 그린란드 사회의 운명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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