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환경
내가 이이슬란드를 처음 방문한 목적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후원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생태적으로 훼손당한 환경의 복원이라는 주제로 열린 회의였다.
나토가 아이슬란드를 회의 장소로 선택한 것은 그야말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아이슬란드가 유럽에서 생태적으로 가장 훼손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착이 시작된 이후, 아이슬란드를 뒤덮고 있던 나무들과 초목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원래의 토양도 절반 가량이 바다로 침식된 지경이었다.
이런 훼손의 결과로, 바이킹이 처음 정착했을 때는 푸르렀던 아이슬란드의 많은 땅이
건물도 없고 도로도 없는 활량한 땅, 한마디로 인간이 사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 갈색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최초의 달 착륙을 준비하던 우주 비행사들이 달 표면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미국 우주항공국(MASA)이 달표면과 비슷한 곳을 지구에서 찾으려 했을 때 선택한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의 한 지역이었다.
전에는 푸르렀지만 지금은 불모의 땅으로 변해버린 곳이었다.
아이슬란드의 환경을 특징 짓는 네 가지 요소는 화산, 얼음 덩어리, 물, 그리고 바람이다.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에서 서쪽으로 965킬로미터 떨어진 북대서양,
즉 아메리카 대륙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만나고, 하산이 주긱적으로 해저에서 폭발하면서 새로운 땅덩어리를 만들어내는
대서양 중앙해령(大西洋中央海嶺,Mid-Atlantic Ridge)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 섬이다.
아이슬란드 주변의 많은 화산들은 평균 10년 혹은 20년 주기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화산 이외에도 온천과 지열지대가 많아 수도 레이캬비크 전역을 포함해
많은 지역에서 화석 연로 대신에 화산 열을 이용해 난방을 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 눈에 띄는 두 번째 풍경은 얼음 덩어리이다.
얼음 덩어리는 내륙의 고원지대에서 형성되며, 고원지대는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높이가 2.119미터이고 북극권 바로 밑에 있어 무척 춥기 때문이다.
빙하가 떠 있는 바다와 강에 비나 눈이 내릴 때
용암이나 얼음 덩어리가 댐 역할을 하면서 물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만년설 아래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상당한 양의 얼음을 갑자기 녹이면 강이 범람하면서 홍수가 난다.
끝으로 아이슬란드는 바람이 무척 심한 곳이다.
화산, 추위, 물, 바람 등 이렇게 네 요소가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서 아이슬라드의 침식을 가속화시켰다.
아이슬란드에 상륙한 바이킹들에게 화산과 온천은 낯선 풍경이었다.
노르웨이와 영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을 제외하면 아이슬란드 풍경은 그들에게 익숙한 것이어서 얼마든지 도전해 볼 만한 땅이었다.
초목과 새들도 거의 모두가 유럽에서 흔히 보던 것이었다.
저지대는 거의 숲이었지만 대부분의 수종이 작은 자작나무와 버드나무여서, 쉽게 개간해 방목지로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개간된 지역, 나무가 없는 습지, 수목한계선 위의 고지대에는
푸른 풀과 이끼가 잇어 그들이 노르웨이와 영국에서 이미 키웠던 가축들을 사육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토양도 비옥했다. 일부지역에서는 15미터 깊이까지 검은 흙이었다.
고원지대는 만년설로 덮여 있고 북극권에 가까웠지만
근처를 흐르느 맥시코 만류 덕분에 아이슬란드 남부의 저지대는 포근해서 보리를 재배할 수 있었다.
호수, 강, 연안에는 어류가 풍부했고 사냥당한 적이없어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닷새와 오리도 많았다.
또한 바다표범과 해마가 해안을 따라 살고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 남서부나 영국과 비슷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세 가지 점에서 크게 달랐다.
첫째,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 남서부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다. 게다가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따라서 더 춥고, 경작 기간도 짧아 농업은 한계 산업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세 말에 기후가 더 추워지자 정착자들은 농사를 완전히 포기하고 목축에만 주력했다.
둘째, 주기적인 화산 폴발로 인해 아이슬란드 전역을 뒤덮은 화산재가 가축용 건초까지 못 쓰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화산 폭발이 있을 때마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까지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1783년 라키 화산의 폭발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인구의 5분의 1이 굶어 죽는 비극이 발생했다.
정착자들이 착각한 세 번째 문제는 아이슬란드의 취약하고 낯선 토양이었다.
노르웨이와 영국의 건강하고 익숙한 토양과는 달랐다.
하지만 정착자들이 이런 차이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았다.
미묘한 차이였고, 전문 토양학자가 아니라면 찾아내기 힘든 차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핏 보아서는 눈에 띄지 않는 차이,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인식할 수 있는 차이 하나가 있었다.
즉 노르웨이와 영국의 토양에 비해서 아이슬란드의 토양이 느리게 형성되면서도 훨씬 빨리 침식되는 것이었다.
정착자들은 아이슬란의 비옥한 토양을 처음 보았을 때 환호의 탄성울 내질렀다.,
우리였다면 잔고가 막대한 통장을 유산으로 받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자율을 익히 알고 있으니 매년 두둑한 이자 수입을 계산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이슬란들의 토양과 울창한 사람림이
겉보기에는 통장의 대단한 잔고처럼 인상적이었지만
그 잔고는 마지막 빙하기 시대가 끝난 후부터 아주 느리게 축적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자율이 극히 낮았다.
정착자들도 아이슬란드에서는 생태적으로 이자율만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때달았다.
수만 년 동안 축적된 자본을 빼먹어야 했다.
그들은 일부지역에서 자본의 수십 년, 아니 1년 만에 바닥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토양과 초목을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지 않았다.
자원의 재생 속도에 맞춰 사용했더라면 잘 관리된 어장이나 숲처럼
자원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원유와 광물을 깨내듯이, 그들도 토양과 초목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했다.
아이슬란드의 토양이 그처럼 약하고 느리게 형성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된 이유는 아이슬란드의 태생과 관계가 있다.
화산이 없고 빙하기에 완전히 결빙되어 있었던 노르웨이, 영국 북부, 그린란드에서 찰진 흙은,
융기된 해성점토(海成粘土.marine clay)로 형성되거나,
암반과 마찰하면서 가루로 만들고 나중에 빙하가 녹을 때
퇴적물로 침전되는 입자를 싣고 다니는 빙하로 인해서 형성된 흙이었다.
반면에 아이슬란드에서는 화산들이 빈번하게 폭발하면서 미세한 화산 재가 대기 중에 방출되고 ,
가벼운 화산재가 강한 바람을 타고 아이슬란드 전역으로 퍼졌고
결국에는 가라앉아 화장용 분만큼 가벼운 화산재층(테프라)를 형성했다.
이렇게 형성된 화산 재층에 초목이 자라면서 화산재를 덮어 침식을 막았다.
그런데 바이킹이 정착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양들이 풀을 뜯어 먹고, 농부들이 화전을 일구면서 이런 초목이 사라졌다.
따라서 화산재가 노출되면서 침식될 수밖에 없었다.
화산재는 바람에도 날려가 버릴 만큼 가벼웠다.
이른바 바람으로 인한 침식, 즉 풍식(風蝕.wind erosion)이었다.
게다가 국지적으로 내리는 강한 비와 빈번한 범람까지 노출된 화산재층을 침식시켰다.
특히 가파른 경사지에서 침식 속도는 더 빨랐다.
아이슬란드 토양이 취약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약한 초묵과 관계가 있다.
초목은 땅을 덮어서, 그리고 땅을 찰지게 만들고
지력을 증가시키는 유기물을 배출해서 침식을 막는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지리적으로 북쪽에 위치하고 차가운 날씨로 인해
생장 기간이 짧아, 초목이 느리게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취약한 토양과 초목의 느린 생장 속도는 침식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나마 토양의 보호막 역할을 하던 초목을 양들이 뜯어 먹고 농부들이 불태워버리자.
그때부터 토양 침식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추운 기후 때문에 초목이 다시 살아나 토양을 보호해주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침식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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