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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Collapse)

2 과거 사회의 붕괴 / 제6장 바이킹의 영토확장 / 아이슬란드의 역사 1

작성자연곤|작성시간26.06.16|조회수15 목록 댓글 0

아이슬란드의 역사

아이슬란드로의 정착은 870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930년에 막을 내렸다.

영농이 가능한 거의  모든 땅에 사람들이 살고 있던 때였다.

대부분의 정착자는 노르웨이 서부에서 곧바로 건너온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일찍이 영국에  이주해서 켈트족 여자와 결혼한 바잍킹들이었다.

그들은 노르웨이와 영국에서 살았던 방식대로 새로운 땅에서 목축업을 재현해내려고 애썼다.

역시 다섯 종의 가축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양젖은 버터와 치즈로 만들어져 보관되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특산품인 '스퀴르(skyf)'로도 만들어졌다.

내 입맛에는 걸쭉한 요구르트처럼 맛있었다.

동물 고고학자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4만 7000개의 뼛조각을 끈기 있게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야생 동물과 생선으로 영양을 보충했다.

해마의 서식지는 금세 사라졌고, 바닷새의  서식지도 점차 사라졌다.

그때부터 사냥꾼들은 바다표범을 목표로 삼았다.

결국 단백질의 주된 공급원은 생선이 되었다.

호수와 강에는 송어와 연어, 곤들매기가 넘쳐 흘렀고, 바닷가에는 대구와 해덕이 풍부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소빙기를 이겨내는 데 대구와 해덕이 큰 역할을 해냈다.

게다가 이 두 생선은 오늘날에도 아이슬란드 경제를 끌어가는 원동력 중 하나이다.

 

바이킹이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슬란드는  4분의 1이 숲이었다.

정착자들은 나무를 베어내 초지를 만들었고, 나무들을 땔감과 목재와 숯으로 사용했다.

정착하고 수십 년 만에 삼림의 80퍼센트가 사라졌고, 현재는 96퍼센트가 사라졌다.

달리 말하면 이제 아이슬란드의 면적 중 1퍼세트만이 숲이다.(사진 16)

고고학적 발굴로 찾아낸 검게 그을린 커다란 나무 덩어리들을 분석한 결과는 놀라울 뿐이었다.

농지와 초지를 만들려고 베어낸 나무들이 그냥 버려지거나 태워졌다!

언젠가 목재가 부족한 때가 닥치리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무가 베어지고, 양들이 풀을 뜯었다.  그리고 정착 초기에 있던 돼지들이 뿌리까지 캐먹었다.

묘목이 자랄 틈이 없엇다.

오늘날 자동차로 아이슬란드를 둘러보라.

그러면 간혹 눈에 띄는 나무숲에 울타리가 둘러쳐진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리라. 

양들이 숲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울타리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수목 한계선 위의 고원지대는  비옥한 흙이 얕게 깔린 천연의 초지여서,

정착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곳이었을 것이다.

초지를 만들려고 힘들게 나무를 베어낼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고원지대는 저지대보다 더 취약했다.

더 춥고 건조해서 초목의 재생장률이 더 낮았고, 토양이 숲에 덮여 있지도 않았다.

카펫처럼 얄팍하게 흙을 덮은 풀이 사라지자, 바람이 싣고 온 화산재에 불과 했던 흙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빗물과 눈이 녹은 물이 언덕을 타고 내려와 저지대에 도랑을 만들었다.

그러나 도랑이 점점 깊게 파이고 지하수면이 도랑의 바닥까지 떨어지자

흙이 마르면서 바람으로 인한 침식이 더욱 심해졌다.

결국 바이킹들이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슬란드의 토양이 고지대에서 저지대 심지어 바다까지 밀려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원지대에서 풀은 물론이고 흙조차 볼 수 없었다.

전에는  푸른 초원이었던 곳이 인간, 혹은 양으로 인해서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그 후 저지대에서 공범위하게 침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바이킹 정착자들은 땅을 왜 그런 식으로 다루었을까?

어떤 결과가 닥칠지 몰랐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몰랐다.

땅 관리는 그들에게 낯설고 까다로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화산과 온천을 제외할 때,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나 영국과 비슷한 땅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바이킹 정착자들은 아이슬란드의 토양과 초목이 훨씬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스코틀랜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슬란드에서도 고원지대에 정착해 많은 양을 방목한 것은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아이슬란드의 고원지대가 양을 장기적으로 방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고,

저지대에도 가축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요컨대 아이슬란드가 유럽에서 생태적 훼손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전락한 이유는 

노르웨이와 영국의 이민자들이 그 땅에 정착하면서 부주의한 탓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푸른 땅처럼 보였지만

그들이 노르웨이와 영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햇던 취약한 환경을 만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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