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시 읽기> 낙화/조지훈
아형기의 「낙화」와 조지훈의 「낙화」 중에서 어느 시가 더 아름다운지를 견주는 것은 부질없다. 둘 다 마음에 새기고 싶은 시편들이다. 태어난 것은 죽고, 피어난 것은 진다는 것, 그것이 우주에 작동하는 순리다. ‘낙화’를 노래하는 시편들이 내심 일러주는 것은 태어나 죽고 덧없이 지는 것의 덧없음과 슬픔이다.
조지훈의 「낙화」는 꽃 지는 저녁의 서글픔을 노래한다. 이 시의 화자는 산골 같은 데서 고적하게 “묻혀서 사는 이”임이 분명할 테다. 혼자 사는 이의 고독이나 슬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꽃 지는 그림자가 뜰에 어리거나 창호지로 마감한 미닫이가 노을빛을 받아 우련 붉어지는 광경도 혼자 사는 이의 안복일 테다. “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라는 첫 연에서 이미 마음을 흔든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은 자연의 순환일 뿐이다. 바람 때문에 꽃이 피고 지는 일은 자연의 순환일 뿐이다. 바람 때문에 꽃이 지는 건 어떤 인과성이 작동한 탓이 아니라 그저 우연이 겹쳐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장석주,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포레스트북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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