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리낸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지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시 읽기>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어떤 시는 예언자 없는 시대의 메마른 삶과 속화된 욕망이 어떻게 꿈틀거리는가를 보여준다. 인간의 원형적 상상력에서 고양이와 달은 일란성 쌍둥이다. 달뜬 저녁에 고양이가 돌아오는데, 이것은 두 겹의 의미를 내포한다. 저녁이 가출한 고양이가 돌아오는 시각이라는 것, 그리고 고양이가 자주 집을 비우고 나간다는 점이다. 고양이는 늘 배고픈 마음, 채워지지 않는 욕망, 궁기와 배고픔으로 헐떡인다. “처마 끝 달의 한 장”은 처마 끝의 달을 묘사한다. 태양이 굳건한 남성의 이성이고 그것이 세상을 주재한다. 달은 여성의 감성이고 늘 변하기 쉬운 것의 표상이다. 달은 상현에서 만월로 차올랐다가 하현에는 다시 야위는데, 이는 여성의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종잡을 수 없는 것과 닮았다.
고양이가 배고파져서 돌아오지만 그걸 해결할 방법은 없다. 둥근 달은 떴는데, 마음은 헛헛하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빈 접시를 내밀어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이라고 한다.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에 의하면 “시는 실재에 대한 배고픔”이다. 왜 아니겠는가? 시인은 항상 세계의 가난을 산다. 그들은 열등한 형제, 패배한 자들, 굶주린 자들의 벗으로 동행한다. 우리 존재의 한가운데는 결핍으로 움푹 패어 있다. 고양이의 배고픔도 실제에 대한 배고픔이다. 달은 희고 둥근 접시라는 이미지로 전화轉化한다. 달이 희고 둥근 접시라는 이미지로 탈바꿈할 때 돌올하게 드러나는 것은 욕망하는 자의 배고픔이다.
―장석주,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포레스트북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