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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시 감상

뒷모습/이병률

작성자박수호|작성시간26.06.12|조회수25 목록 댓글 0

뒷모습/이병률

 

 

 

왜 추운 데 서서 돌아가지 않는가

돌아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끝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쌀로 쌀에서 고요로 사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구덩이가 많아

그 차가운 존재들을 뛰어넘고 넘어서만 돌아가려 하는 것

인가

추워지려는 것이다

 

지난봄 자고 일어난 자리에 가득 진 목련꽃잎들을 생각한

생각들이

눈길에 찍힌 작은 목숨들의 발자국이

발자국에서 빗방울로 빗방울에서 우주의 침묵으로

한통속으로 엉겨들어, 조그맣게 얼룩이라도 되어

이 천지간의 물결들을 비벼대서

숨결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 돌아온다는 당신과 떠난 당신은 같은 온도인가

그사이 온통 가득한 허공을 밟고 뒤편의 뒷맛을 밟더라도

하나를 두고 하나를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한곳을 가리키며 떨리는 나침반처럼

눈부시게 눈부시게 떨리는 뒷모습에게

그러니 벌거벗고 서 있는 뒷모습에게

왜 그리 한 없이 서 있냐고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시읽기>  뒷모습/이병률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누구의 뒷모습이든 바라보다 보면 짠하다는 생각이 든다. 등은 아무런 힘이 없어서인가, 감시하고 간섭하는, 반항하고 고집 피우는 능력이 등에겐 없다. 무능하고 조용하며 순하다. 말하자면 완벽한 부장해제 상태, 옛날 서부영화에서 뒤돌아 있는 적에게 총을 쏘는 인간은 결투에서 이기고도 나쁜 놈 취급을 받았던 이유가 이래서였을 것이다. 미셀 투르니에의 에세이 뒷모습의 첫 챕터 뒤쪽이 진실이다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서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미셀 투르니에 저, 김화영 역, 뒷모습(현대문학, 2002)

 

이별의 상황에서 시인은 추운 데 서서 돌아가지 않는 사람의 뒷모습으로 보고 있다. 등을 보이는 사람과 등을 보고 있는 사람 중 누가 먼저 이별을 고했고, 누구에게 이별의 책임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둘 다 짠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시를 읽는 사람은 이 시의 화자에게 더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다. 등을 보이는 사람, 즉 떠나갈 사람보다는 등을 보고 있는 사람, 다시 말해 남겨진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추운 데 서서 돌아가지 않지만, (그녀)는 언젠가 떠날 것이고, 남은 사람은 덩그러니 서서 점점 추워질 밤을 견여야 한다. 그 견딤 속에 던져질 사람에게 당신의 뒷모습은 한곳을 가리키며 떨리는 나침반처럼 강력한 지침이 되어 남은 인생의 항로를 지배할 것이다. “발자국에서 빗방울로 빗방울에서 우주의 침묵으로/한 통속으로 엉겨들어, 조그맣게 얼굴이라도 되어/이 천지간의 물결들을 최선들을 비벼대서/숨결을 일으킬 것이다.

떠나는 사람 역시 남겨진 이가 이럴 줄 알기에 한없이 머뭇거리면서 쉽게 떠나지 못하고, 돌아온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남겨진 사람도 그 마음을 알기에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왜 그리 한없이 서있냐고 물을 수는 없는 것이고.

이 시를 읽다 보면 이런 상념에 젖게 된다. 과거에 나는 어떤 쪽이었나, 뒷모습을 보이는 쪽이었나. 뒷모습을 보는 쪽이었나. 만일 보이는 쪽이었다면 얼마나 망설였고 떨렸으며 상대에게 정직했는가. 보는 쪽이었다면 내 마음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 있을 조그마한 얼룩은 어떤 생김새를 하고 있는가.

―김경민『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포르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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