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부르기/마종기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도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찿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 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시 읽기> 이름 부르기/마종기
이름까지 감추고 혼자가 되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떠올려본다. 관계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서 (굳이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출발한다.
살면서 자기 얼굴에 100퍼센트 만족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하는 것처럼 자기 이름을 매우 만족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명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씩은 불만이 있다. 내 이름은 왜 이렇게 평범한가. 반대로 왜 이렇게 특이한가. 발음하기 어려운가, 기억하기 어려운가, 왜 이렇게 남자 이름 같은가 혹은 여자 이름 같은가 등등.
그런데 사랑을 하게 되면 달라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은 특별해진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서로의 이름에서 매달린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따뜻하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내 이름은 나의 영혼을 깨우는 신화가 된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이름에 들지 않았던 내 이름이 아름답고 귀하게 느껴진다.
사랑이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에 고유한 아우라를 던져 주는 것이라면 이별은 그 반대다. 누구도 내 이름을 그렇게 따스하게 불러주지 않는다. 내 이름은 예전의 그 평범하고 초라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기호로 몰락한다. 나 자신이 이젠 특별하고 사랑스럽지 않은데 내 이름 따위가 빛나겠는가. 게다가 나 역시 이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 그 사람이 그 이름으로 불릴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데도 나에게는 운명처럼 느껴지던 기호가 사라진 것이다. 어찌어찌 용기를 내어 다시 불러본다 해도 그가 대답해줄까. 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이 시는 단순한 이별의 정황에서 더 나아간, 소통불가의 상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 것도 충분히 안타깝건만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왜 그 지경이 되었을까. ‘무거운 편견’과 ‘부서진 마음’에서 짐작할 수는 있겠으나 그걸 속속들이 알아내기 위해서는 관계의 어두운 심연으로 직접 들어가 보아야 한다. 그것은 좀 무서운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라며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슬퍼할 뿐이다.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포르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