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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시 감상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나희덕

작성자박수호|작성시간26.06.14|조회수24 목록 댓글 0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시 읽기>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나희덕

 

너무 늦은 도착

 

장례식이야 여러 번 가봤지만 입관을 본 건 딱 한 번이다. 201710월의 마지막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향년 99세인 연세를 생각하면 흔히들 호상이라 부르는, 그리 놀라울 것도 엄청나게 애통할 것도 없는 죽음이었다. 아까운 나이에 이별의 준비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우다 고통스럽게 죽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할머니의 경우는 비교적 편안하고 복 받은 죽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의 나이가 되고부터 나는 할머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혈육으로서 느끼는 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가고 걱정되기는 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할머니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기는 힘들었다. 내 눈에 비친 할머니는 가족 이기주의의 전형으로 욕심이 많고 남에게 인색했다. 타인과 비교심리도 강했고 노여움도 잘 타는 데다가 변덕도 심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 증언에 등장하는 인자한; 할머니는 대체 어떤 느낌일까 몹시 궁금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무려 43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런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할머니의 아들이나 딸이 아니라 맏며느리, 즉 나의 엄마였다는 현실에 있었고, 나는 그 현실이 때때로 견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막상 부음을 듣는 순간 심장이 날카롭게 아파오면서 눈물이 활짝 쏟아졌다. 이러는 내 자신이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염을 하고 입관할 때 본 할머니는 마치 순하게 잡든 아기 같았다. 체구는 몹시 작았으며 표정은 순진무구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할머니에게도 이런 표정이 있었나 싶은 낯선 느낌에 몇 초간 멍하니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기억 속에 각인된 할머니의 표정은 늘 무료함과 불만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 어쩌면 나는 할머니에게 원래 있었던 이 표정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영원한 잠에든 할머니의 모습은 꼭 내가 낳은 아기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오랜 시간 할머니에게서 느꼈던 복잡한 애증의 감정들이 너무나도 사소하고 하찮게 느껴졌다 죽음이 이만큼의 무게라는 걸 마흔이 넘어서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며칠 후에 우연히 이 시를 읽다가 입관 때보다 더 울었다.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은 누구나 너무 늦게갈 수밖에 없다. 그 앞에서 애통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죽은 사람이 요절한 친구든 천수를 다한 할머니든.

―김경민『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포르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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